217화 복귀 (1)
윤시아는 시나리오 조각 자격 검증 시험으로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에 떨어졌다.
그녀가 받은 과제는 생존자 100명 이상을 구출하고 그 인원을 안전한 장소로 인도하는 것.
안전한 장소가 어디인지 힌트는 없어도, 목적은 명확하니 임무 수행이 어렵지 않다고 판단했다.
윤시아는 유일 등급의 무기이자 이번에 서백호가 4강까지 강화시켜 준 아서왕의 창 롱고미안트를 움켜쥐고 폐허로 변한 서울 도심을 거닐었다.
-구어어어어!
“낮밤 구분 없이 움직이는 좀비네. 더구나 달리기까지 하는.”
거리엔 좀비들의 숫자가 상당했다.
심지어 움직임도 민첩한 데다가 힘도 세고.
‘내가 있던 세계를 기준으로 하면 레벨 10~20 정도의 몬스터 수준이야.’
다만 문제는 쪽수가 많아서 한 놈에게 어그로가 끌리면 줄줄이 소시지처럼 좀비들이 몰려온단 사실이다.
‘영화를 보면 좀비는 사람을 감염시키는 능력이 있던데, 조심해야겠다.’
영화 이야기쯤으로만 여길 게 아니라 실제로 이곳도 그런 듯했다.
어딘가 물려 뜯겼거나, 생활 환경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복장의 좀비가 많았으니 말이다.
과연 이런 환경 속에서 일반인들이 생존할 수 있을까?
100명을 구조하는 일이 마냥 쉽지만 않을 것 같았다.
-그어어어!
때로는 좀비를 쓰러뜨리고, 때로는 좀비를 피해 움직이면서 생존자들이 있을 법한 건물을 뒤졌다.
그러다가 오래된 아파트 단지 앞의 마트 입구가 무거운 물건들로 막힌 것을 발견한 그녀는 그곳에 다가가 작게 문을 두들겼다.
혹시라도 안에 사람이 있다면 경계할 수도 있으니, 무기와 특이한 형태의 방어구는 잠시 인벤토리에 수습했다.
-똑똑.
“어?”
그러자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윤시아는 애써 웃는 모습을 보였으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트 앞을 가로막고 있던 물건이 치워지고, 갑자기 남성의 팔이 나타나 그녀를 건물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녀라면 얼마든지 팔을 피하거나 비틀 수 있었으나, 일단 상대의 장단에 맞춰 건물 내부에 들어갔다.
“오, 대박!”
그리고 윤시아가 조우한 첫 생존자 그룹은 일진처럼 보이는 남자 고등학생 15명과 그런 놈들에게 핍박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성인 9명으로 이뤄져 있었다.
“야! 예쁜 여자 주웠어!”
“뭐? 진짜?”
그들은 마치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침을 흘리며 윤시아를 맞이했는데, 이런 상황은 저쪽 세계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인지라 그녀의 표정은 평온했다.
“예쁜 누나, 잘 찾아왔어! 여긴 먹을 것도 많고 아주 안전한 곳이거든! 그런데 여기엔 한 가지 룰이 있어. 바로 우리의 말에 복종해야 한다는 거지! 하핫!”
“우선 알몸 댄스라도 시켜 보자.”
“좋지!”
일진들은 작은 동네 마트에서 왕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윤시아는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대기 바쁜 일진들을 스윽 둘러보곤.
-빡!
“컥!”
-빠각!
“으헉!”
-퍽!
“끄아악!”
가볍게 놈들을 쓰러뜨렸다.
개중엔 권투를 배웠는지 제법 그럴싸하게 주먹을 휘둘러 오는 놈들도 있었고, 쇠파이프를 휘둘러 오는 놈들도 있었으나, 그녀는 온갖 몬스터들과 싸워 온 인물이다.
평범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사, 살려 주…….”
“죄송합니다.”
놈들은 질 나쁜 대사를 던진 만큼 처참하게 얻어터졌다.
덕분에 그녀로 인해 작은 마트엔 평화가 드리웠다.
‘일단 양아치들을 포함시키면 24명이니까, 이런 식으로 4~5곳만 더 찾으면 생존자 100명을 채울 수 있겠어.’
이 정도 수준이면 임무 난이도가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윤시아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현실의 인간은 게임 속 등장인물처럼 순리대로만 행동하지 않으며, 각자 다양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단 사실을 말이다.
“함께 가지 않으시겠다고요?.”
“네……. 놈들을 제압해 주신 건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흰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굳이 안전한 이곳을 두고 모험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이거든요.”
한쪽에 굴비처럼 줄줄이 엮인 일진들을 두고, 평범한 생존자들과 대화를 나눴더니, 단 한 명도 그녀를 따라나서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젠장, 이 임무에서 가장 어려운 건 좀비들에게서 생존자들을 지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내 말을 따르게 하는 거였어.’
윤시아는 속으로 혀를 찼다.
마음 같아선 그들이 뭐라 하건 억지로라도 끌고 가고 싶지만…….
그녀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워 온 인물인지라 성격상 억지로 그들을 끌고 갈 수 없었다.
윤시아는 이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했는데, 문뜩 그녀의 시야에 포박된 일진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쩔 수 없죠. 그럼 이 쓰레기들만 끌고 가야겠네요.”
“오오, 그래 주시겠습니까?”
평범한 사람을 대할 때와 달리, 악인에겐 가차 없는 윤시아였다.
덕분에 소득이 아예 없진 않았다.
“저, 저 안 나가면 안 돼요? 제발요…….”
“나가면 좀비에게 죽는단 말이에요!”
아니, 오히려 이게 편할지도 모르겠다.
-빠악!
“컥!”
“닥치고 움직여. 좀비를 만나기 전에 내 손에 죽고 싶지 않으면.”
악인들은 인권을 봐줄 필요가 없으니까.
“자, 잠깐만요. 뒤에 친구 넘어졌어요.”
윤시아는 사정 따윈 봐주지 않았다.
말 안 들으면 패고, 움직임이 멈춘 놈이 있으면 그냥 질질 끌고 다녔다.
그러다가 좀비에게 물린 사람이 발생하면.
“아아악! 이 시발것아!”
그대로 개에게 간식 주듯, 좀비 무리에 던져 주었다.
가느다란 손으로 성인 남성이나 다름없는 고등학생을 휙 던져 버리는 모습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이쯤 되니, 일진들은 윤시아에게 좀비보다 더한 공포심을 느끼게 되었다.
덕분에 놈들은 그녀의 말이라면 재깍재깍 따르는 발 빠른 이등병처럼 변하기 시작했고.
“저 여잔 악마야. 거역해선 안 돼.”
“나 앞으론 착하게 살래.”
그래서 윤시아는 생존자 100명을 아예 악인들로만 채우기로 했다.
‘쓰레기는 분리수거를 해야지.’
그렇게 윤시아는 좀비 세계를 누비며 며칠에 걸쳐 악인들을 수집했고.
“야, 그 이야기 들었어?”
“뭐?”
“질 나쁜 인간들을 제압해서 자기 부하로 끌고 다니는 여자가 있대.”
“아아, 나도 들었어. 말 안 듣는 놈은 개처럼 줄로 엮어 끌고 다니거나 좀비 밥으로도 던진다고 하던데.”
“나 어제 실제로 그 무리 봤잖아.”
“지, 진짜? 소문처럼 여자가 무시무시하게 생겼냐?”
“아니, 엄청 예쁘던데?”
“어?”
그녀에 대한 소문은 폐허 속에서도 울려 퍼졌다.
[축하드립니다. 임무를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윤시아는 조금 괴이한 방식이긴 했지만, 어쨌든 큰 문제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달성해 냈다.
“앞으로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어딜 가시는지 모르겠지만, 꼭 돌아오세요, 대장!”
다들 처음엔 살기 위해 윤시아의 눈치를 보았다면, 나중엔 그녀가 가진 강력한 무력과 카리스마에 반하고 말았다.
심지어 안전 지역에 도착한 악인들은 떠난다는 윤시아의 말에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는 가차 없이 그들의 엉덩이를 걷어찬 후, 원래의 세상으로 되돌아왔다.
그녀가 임무를 시작하고 복귀까지 소요한 시간은 총 5일이었다.
“어!? 윤시아 총괄님!? 여기! 윤시아 총괄님이 복귀하셨습니다!”
-우르르르.
“총괄님!”
“총괄님. 괜찮으십니까?”
철원에 자리한 중립 도시의 전쟁관.
그곳엔 사냥꾼 협회의 지원팀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윤시아는 익숙한 풍경과 익숙한 사람들을 보며 안도했고, 이내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협회장님은요?”
“아직 돌아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자격 검증에 나선 분 중 윤시아 총괄님께서 가장 먼저 돌아오셨어요.”
그녀는 협회장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미간을 좁혔다가 금세 무슨 일이 있겠냐는 듯 표정을 풀었다.
적어도 그녀가 아는 협회장에게 실패란 단어만큼 어울리지 않는 말이 없었으니 말이다.
[당신은 임무를 빠르게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로서 악인들을 갱생시켜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윤시아는 눈앞에 깜빡이는 메시지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임무 달성 보상으로 지급되는 경험치의 획득량이 크게 증가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녀는 빠르게 임무를 달성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추가 보상까지 획득했다.
한 번에 레벨이 무려 5나 오른 것.
단순히 임무를 빨리 달성하기 위해 악인들만 골라 끌고 다녔던 건데, 사냥으로 한 번에 올리기 힘든 레벨이 대량으로 상승하자 윤시아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 * *
성공리에 자격 검증 시험을 마치고 복귀하는 데 성공한 윤시아.
그녀는 추가 보상으로 대량의 레벨업까지 하면서 매우 기분이 좋았지만, 이 기쁨의 감정은 오래 않아 차갑게 식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복귀했잖아! 어째서 협회장님만 복귀를 못 하시는 거지!?”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이 자격 검증을 위해 방문하는 가상의 세계는 현실과 시간 차이가 있다.
그 비율은 약 3:1.
좀비 세상에서 5일을 보낸 윤시아는 현실 시간으로 약 30시간 만에 복귀할 수 있었다.
윤시아가 복귀한 뒤로 반나절이 지나자 최도겸이 돌아왔고, 한나절이 더 지나자 강이솔, 김시우가 복귀했다.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복귀한 사람은 절반 이상이 되었으며, 최종적으로 5일이 지난 시점에서 서백호를 제외한 모두가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한자리에 모였다.
“연락이라도 되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자격 검증 시험을 받는 동안은 모든 종류의 통신은 먹통이 되어 연락할 수단이 없었다.
“배, 백호잖아. 별일 없겠지. 혹시 다른 세상에서 바람이라도 피우고 있는 거 아닐까?”
윤시아의 걱정 가득한 반응에 하늘을 나는 엘프 시에나가 애써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런 시에나마저 10일이 지나도록 서백호가 복귀하지 않자, 초조해하기 시작했고, 가만히 있어도 동공이 쉼 없이 흔들렸다.
그런 윤시아와 시에나의 모습은 마치 분리 불안을 가진 동물을 연상시켰다.
“큰일입니다! 해외에서 서백호 협회장님이 가상 세계에서 사망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 모양이에요! 그로 인해 동맹국들이 동요하고 있어요!”
“뭐? 어떤 건방진 나라가 그딴 소리를 해? 말해 봐 이 죽음의 요정(시에나 별명)님이 그 소문을 낸 나라 지도자의 대가리에 화살을 박아 줄 테니까.”
심지어 서백호의 공백이 길어지니 각종 음모론이 돌기 시작했다.
덕분에 사냥꾼 협회와 동맹 세력들은 서백호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백호 님, 부디 무사히 돌아오세요.”
서백호의 연인인 윌리아는 그저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천사의 고리를 가진 그녀가 기도를 하니 성스러운 느낌마저 들었지만, 다들 그녀의 자태에 대해 감탄을 하기 보다 서백호에 대한 걱정에 함께 기도를 해야 했다.
* * *
“응? 뭐지?”
어디선가 윌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온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럴 리가 있겠냐며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게 윌리아의 목소리를 듣기엔 지금 내 주변의 상황이 좀 어수선해야지.
-콰아아앙! 콰아앙!
강력한 폭발과 함께 발생하는 지축을 울리는 폭음.
진득한 피 냄새와 화약 냄새가 사방에서 흩날리는 모래바람과 섞여 말로 형언하기 힘든 불쾌함을 만들고.
악의에 찬 사람들의 눈빛과 분노 어린 욕설이 난무하는 이곳에서 연인의 달콤한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드디어 정신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싶다.
-서걱! 서걱!
사방에서 연거푸 총알과 유탄, 대전차 미사일이 날아든다.
이젠 너무도 익숙해진 공격이지만, 내가 지금 상대하는 미친놈들은 격이 달랐다. 아군이 휘말리건 말건 탄도 미사일까지도 떨어뜨렸다.
물론, 나는 간단히 요격을 해 내고, 요격에 실패하면 블링크로 자리를 피할 뿐이니, 전부 소용없는 뻘짓이 되었지만 말이다.
‘정말이지, 징글맞은 놈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들의 모습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내가 있는 이 장소가 세상을 음지에서 주무르는 음모론에서나 등장할 법한 세력의 총본산이었기 때문이다.
일명 시온 수도회.
그게 바로 내가 맞서고 있는 단체의 이름이자, 검증 시험의 주제인 제3차 세계 대전을 막기 위한 토벌 대상이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자신들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 겁 모르고 달려드는 병사들처럼, 악에 받친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 무려 45일째, 이제 슬슬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후욱. 후욱.”
-휘이이잉!
아무리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적이라 해도 쉴 틈 없이 물량 공세로 밀어붙이니, 숨이 차올랐다.
하지만 숨을 고르는 내 주변은 어느새 고요해져 있었고, 정신을 차리자 주변에 서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시온 수도회의 총본산이 자리한 이스라엘령 예루살렘.
나는 그 성지 예루살렘을 거닐며 한 박물관에 닿았다.
겉으론 문화유산 박물관을 표방하고 있는 그곳의 관장이 바로 시온 수도회의 대장이자, 세상을 주무르는 검은 손이었다.
-콰콰쾅!
나는 성검 칼립소를 뽑아 들며 그 박물관을 단번에 날려 버렸고, 박물이었던 그곳 한가운데에 자리한 지하실로 걸음을 옮겼다.
어째 죄다 지하에 숨어 있나 모르겠다.
“어서 오게.”
그리고 나를 반겨 준 것은 흑막 답게 검은 로브를 걸치고 선 늙은 남성이었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노인.
그가 웃는 낯으로 나를 반겨 주었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눈빛에 깃든 공포와 분노를.
“내 이름은…….”
“닥쳐.”
시온 수도회의 지도자는 대뜸 자기소개를 하려 했다.
아무래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인데, 애석하게도 나는 그와 한시라도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퍽!
내 허리춤을 벗어난 프라가라흐가 그대로 발사되며 노인의 머리를 꿰뚫었다.
“후우.”
나는 허무하게 끝을 맞이하는 세계의 그림자를 뒤로 하고 잠자코 가만히 섰다.
[축하드립니다. 임무를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떠오른 메시지에 두 팔을 위로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