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19화 (219/273)

219화 복귀 (3)

전쟁을 강제하는 시스템에 동맹국들은 난리가 났다.

비동맹국들은 둘째 치고 이대로 가다간 동맹국들끼리 치고받게 생겼으니 말이다.

‘물론, 불안처럼 품고 있긴 했어. 모든 게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하지만 시스템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싸움을 붙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빠져나갈 길이 없는 외통수 같은 상황에 모두가 당황하고 있는 상태다.

이럴 거면 뭐 하러 동맹 시스템을 만들었나 싶은데…….

아무래도 이 동맹 시스템도 분란을 부추기기 위해 만든 게 아닐까 싶다.

“협회장님, 신 상하이방 소속 선양시 영주들이 한반도로 복속이 가능한지 물어 오고 있습니다.”

“협회장님, 인도 뭄바이 팀에 속한 영주들이 복속을 청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가리아 팀에서도 합병과 관련해 상담을 바란다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혀, 협회장님. 방금 클로에 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LA 등 미 동부의 영주 다섯도 복속을 희망한다며…….”

그도 그럴 게.

동맹으로 엮인 타국의 영주들이 그들의 나라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음에도 내 휘하로 영지를 소속시키고자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본과 몽골 등 사냥꾼 협회의 지부가 있는 곳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이미 속국이나 다름없던 만큼 빠르게 복속이 정해졌다.

하지만 미국과 인도 등 강력한 나라에 속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멀리 떨어진 한반도에 붙으려는 영주들이 많아 동맹국들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중이다.

‘이러니 사전에 맺은 동맹이 오히려 분란을 부추기고 있단 거다.’

이대로 가면 어제의 동맹이 오늘의 적으로 변모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다고 복속을 청하는 사람들을 내칠 수도 없잖아. 클로에처럼 그들 대부분이 골수까지 친서백호의 세력인 건데.”

이쯤 되니 동맹은 두 부류로 나뉘고 있다.

‘자신들의 나라보다도 나와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세력.’

‘기존의 국가 틀에서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세력.’

첫 번째는 그들 나라 입장에선 매국노라 칭해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도 할 말이 있는 게 이미 시스템이 기존 국가의 틀을 깬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새로운 규칙에 따라 더욱 생존 가능성이 높은 선택을 한 것뿐이란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평범한 사냥꾼이 아니라, 한 지역을 관리하고 수호할 의무를 가진 영주들이야. 이전과 같은 논리를 들이밀면 안 되지. 막말로 백악관이 뭔 권한이 있어? 대통령이 영지를 가진 영주인 것도 아니잖아. 워싱턴DC를 소유한 영주가 강제 추방을 하게 되면 대통령은 앞으로 백악관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도 없는 신세인 건데.”

내 옆에서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밝히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시에나다.

그리고 이런 시에나의 주장은 사냥꾼 협회 주요 간부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고 있었다.

워싱턴DC를 차지한 영주는 대통령 세력인 제임스이니, 추방당할 일은 없다.

그러나 논리적으론 틀리지 않은 주장이었다.

“애초에 이쪽의 제안을 먼저 거절한 건 동맹국들이야. 그들을 아직도 동맹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굳이 신경 써야 해?”

시에나의 빠꾸 없는 이야기에 협회의 주요 간부들이 은근한 노기를 드러냈다.

시나리오가 시작되면서 시스템은 전쟁을 끝내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전 세계가 하나의 나라. 혹은 하나의 군주국과 신하국으로만 구성이 되면 의무적 전쟁의 규칙이 사라집니다.]

하나의 세력으로 일통하기만 하면, 불필요한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동맹국들에 제안했다.

-아예 나라들을 합쳐 하나로 만들던가.

-기존의 국가 틀을 유지한 채 자치권을 부여받은 신하국이 되거나.

당연히 나라를 합친다면 시스템상 지도자는 내가 될 수밖에 없고.

신하국이 되길 선택한다면 상국 또한 내가 이끄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고로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껏 사이좋게 웃고 떠들긴 했지만, 진심으로 내 신하가 되길 바라는 나라는 없었으니까.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그래서 클로에 같은 사람들이 자국을 포기하고 직접적으로 나의 휘하에 들어오고자 하는 거고.’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을 어찌 해결해야 할지.

“으음.”

“백호야 쉽게 생각해.”

“진통이 있더라도 일단 덩치를 키우는 게 낫습니다. 그게 오히려 전쟁을 줄이니까요.”

시에나에 이은 윤시아의 주장까지.

강경한 그 주장은 두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사냥꾼 협회의 대부분 멤버들이 그러했다.

나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지지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상 세계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던 동안 각국이 보인 태도 때문이기도 하단 걸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윌리아 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나와 연인이란 특수 관계인 탓인지 윌리아는 최대한으로 말을 아끼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니, 그녀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백호 님께서 각 국가들에게 상황을 묻고 의견을 나누는 건 그들을 배려해서이지, 그들보다 못해서가 아니죠. 하지만 배려가 과하면 가끔 상대가 착각하고 맙니다. 백호 님의 군림은 필연입니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을 굳이 신경 쓸 필요 있을까요.”

윌리아의 말투는 담백했지만, 반대로 그 내용은 가차 없었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도 내가 없어진 동안 동맹국들이 보인 태도에 화가 난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아니, 연인이니 당연한 걸까?

하지만 그녀의 말은 내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맞는 말이야.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답은 없으니까. 그렇다면 가장 피해가 적게 발생할 방법을 택하는 게 맞지 않을까?’

엄연히 따지면 지금 발생한 혼란은 영주 시스템과 기존의 정치 시스템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어차피 강제력이 있는 영주 시스템이 주류가 될 수밖에 없음을.

“지금부터 대한민국에 복속을 청해 오는 영주는 국가 따지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를 방해하거나 무력 개입을 해 온다면 적으로 치부해 반격할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최대한 빠르게 세계를 하나의 세력으로 묶어 ‘시스템적인 의무 전쟁 규칙’을 없애는 겁니다.”

내 말에 함께 자리한 사냥꾼 협회 주요 간부들과 동료들의 표정이 모두 밝아졌다.

그중엔 통쾌하다며 주먹을 불끈 쥐는 사람조차 있을 정도였다.

“참, 국명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면 백호국이라던가.”

“네?”

그런데 강이솔이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왜 갑자기 국명을 거론하나 싶어서 물으니.

“현재 한반도는 국왕으로 등록된 백호 님 휘하에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북한도 속해 있는 만큼, 단순히 대한민국으로 칭하는 건 불공평한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서요.”

이건 또 생각지도 못한 이슈인데.

확실히 북한 쪽에서 불만을 가질 만하다.

더구나 봉건제가 됐는데 대한민국을 칭하는 것도 기만 같고.

“그럼 대한제국이라 하죠.”

이건 남북한이 하나이던 때에 써먹은 국명이기도 하니, 상관없지 않을까?

“하지만 이건 시스템상 국명일 뿐이니, 남북한 국민들은 그냥 예전 국명으로 편하게 불러도 상관없는 거로 해요.”

“그런데 대한이란 단어마저 싫다고 하면, 어쩌죠?”

“그 이상 타협할 필요 있을까요? 그냥 무시하죠.”

그래서 나는 그냥 심플하게 답했다.

“대한제국이라…… 전 좋은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제국이란 말이 강해 보이기도 하고.”

동료들은 큰 이견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 * *

“하하, 대한제국. 대한제국이라…….”

현재 한반도는 대한제국이라는 이름 아래 통일되어 있지만, 남북한 지역의 국민들을 관리하는 것은 여전히 남한과 북한 정권이다.

서백호도 당장은 행정 체계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것 같고, 각 지역의 영주들도 따로 권한을 행사하고 있지 않지만…….

김응수 대통령은 직감할 수 있었다.

지금의 정치 체제는 머지않아 시스템에 의해 소멸할 수밖에 없음을.

“대통령님.”

“괜찮으십니까?”

청와대 주요 참모진들은 대통령을 위로했지만, 김응수 대통령은 의외로 담담히 반응했다.

“뭐, 지금까지랑 다를 바가 없는 것 같기도 하군.”

“그게 무슨?”

“지금도 국민들의 관리는 우리 청와대가 하고 있지만, 나라의 대표는 서백호이며, 국방도 사냥꾼 협회가 맡고 있다고 여기는 중 아닌가?”

“…….”

어차피 서백호와 시스템은 대항할 수 없는 존재.

이미 허수아비 취급에 익숙해진 대통령이었다.

“차라리 서백호 님께서 세계를 일통하시고, 우리 청와대는 지금처럼 그 영토와 국민 관리를 위임받는 걸 목표로 하는 게 옳은 방향이 아닐까 싶어.”

그리고 대통령은 허수아비 취급에서 그치지 않고 청와대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그에 참모진들은 좋은 생각이라며 긍정을 표하면서도 고개를 돌려 눈물이 핑 도는 걸 감춰야 했다.

어느새 대통령도 서백호를 ‘서백호 님’이라 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반도는 축복을 받았어.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으니 말이지. 이게 모두 서백호 폐하의 은덕 아니겠는가.”

청와대의 참모진은 실시간으로 서백호를 향한 대통령의 존칭이 님에서 폐하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 *

[현 시간부로 대한제국에 속하고자 하는 해외 영주들의 편입 요청을 무제한으로 받아들인다.]

대한민국.

아니, 대한제국의 선언과 함께 세계 각국 영주들의 이탈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기존 정권이 유지되고 있는 국가들과 민족적 색채가 강한 사냥꾼 단체에서 반발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엑소더스를 방해하지 못하고 지켜만 봐야 했는데…….

[또한, 현 시간부로 동맹 체제를 가다듬을 생각이며, 우리의 행사를 방해하는 세력은 적으로 치부될 것이다.]

이유는 지금까지 ‘평화’란 단어를 앞세우며 수많은 나라를 돕고 이끌던 사냥꾼 협회에서 유례없는 강경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제야 각국은 사냥꾼 협회가 활동 방침을 바꾸었단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시스템이 전쟁을 부추기고 있는 이상, 빠른 평화를 위해 공세를 마다하지 않기로 했단 뜻이다.

그리고 사냥꾼 협회가 달라졌음을 증명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사냥꾼 협회 1세대 동맹인 중국 신 상하이방에서 이탈 영주들을 단속하다가 걸려, 서백호가 직접 날아가 그곳의 방주이자 현 중국 주석의 멱살을 잡으며 단단히 경고한 것이다.

“우리 말을 무시하다니, 선전 포고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중국 주석궁에 쳐들어간 것은 서백호 본인인데,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이건 결코 동맹이었던 세력에게 보일 수 있는 태도가 아니었다.

다행히 주석이 구차하게 잘못했다며 비는 바람에 사태는 평화롭게(?) 끝날 수 있었지만, 그 결과로 신 상하이방은 동부 전체를 대한제국에 빼앗기고 말았다.

아니, 중국뿐만이 아니었다.

서백호가 직접 주석의 멱살을 잡으며 경고를 날린 이후, 상부의 눈치를 보던 영주들마저 대탈출을 감행했고.

대한제국은 전쟁다운 전쟁 한번 없이, 새 시스템이 도입되자마자 바로 전 세계 곳곳에 영토를 가진 대제국으로 거듭났다.

전 세계 영주 중 약 2할이 대한 소속이 된 것이다.

새삼 서백호가 속한 사냥꾼 협회의 위엄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 직감했다.

그들의 팽창은 이제 시작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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