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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20화 (220/273)

220화 전쟁의 시대 (1)

내가 레벨 100 때 구한 아이템 혹은 스킬이라고 해서, 레벨 100이 넘은 사람들 모두가 그것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다.

나는 최초 토벌 보상 등을 포함해 온갖 보너스를 독식해 온지라 뒤따라 오는 사냥꾼들의 일반적인 파밍 방식으론 절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개척되지 않은 길을 나아가는 선구자라 칭하곤 하지만, 그 선구자 역할로 얻는 이익은 매우 컸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을 앞마당처럼 날아다니는 게 당연한 우리 파티와 달리, 다른 대부분의 사람은 장거리 비행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단독 비행은 마력 소모가 너무 크고, 비행 펫은 구하기가 힘들지. 룡룡이와 와일번, 와이번은 레벨 125의 레이드 몬스터를 잡고 얻은 거였으니까.’

그렇기에 장거리 비행 능력 자체가 전쟁의 시대에서 전략적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침투 경로에 제약이 없는 만큼 빠른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윌리아 님!]

[네!]

수많은 섬으로 구성된 나라 필리핀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인 파나이.

내 지시에 윌리아는 초록색의 빛으로 이뤄진 날개를 크게 펼치며 파나이 섬의 주요 도시 일로일로에 폭격을 가했다.

-콰콰콰쾅!

200이 넘는 레벨과 온갖 버프 효과가 더해진 윌리아의 공격력은 무시무시했으며, 하늘을 날며 연신 강력한 벼락과 화염을 쏟아 내니, 그녀는 인간의 모습을 한 폭격기 그 자체였다.

[몰로 성당에서 영주 발견!]

그리고 그때.

시에나의 텔레파시가 울려 퍼지자마자 나는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최대 속도로 날아갔다.

곧이어 머리 위에 왕관 표식이 떠 있는 큰 덩치의 남성을 볼 수 있었고.

[아, 이런…….]

놈은 당황한 음성을 끝으로, 블링크로 순식간에 품에 파고들며 투과검 바리사다를 휘두른 내 공격에 목이 날아갔다.

목을 잃은 몸이 뒤늦게 광선과 같은 푸른빛을 쏘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애꿎은 하늘만 가를 뿐이었다.

[레벨 180의 필리핀 파나이 지역 영주 엘더 매지션 로드 제르닐을 처치했습니다.]

[무주지인 필리핀 파나이 지역이 대한제국에 귀속됩니다.]

[영주를 지정하시겠습니까?]

“아니.”

[필리핀 파나이 지역이 대한제국 직할령으로 편입됩니다.]

시나리오 조각을 모두 모으지 못했거나, 조각을 가진 사냥꾼이 자격 검증 시험에서 탈락해 영주가 배정되지 않은 지역을 ‘무주지’라 칭한다.

이런 무주지는 강력한 로드급 엘더 몬스터가 영주로 배정되는데, 윌리아가 공격한 대상은 인간 영지민이 아닌, 그런 놈이 부리는 몬스터들이었다.

[필리핀의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현 시간부로 의무 전쟁의 페널티가 한 달간 사라집니다.]

우리가 굳이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필리핀의 무주지를 차지한 이유는 전쟁 페널티를 빠르게 없애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이웃 영지인 세부 섬과 네그로스 섬의 영주가 대한제국에 넘어온 인물들이라 그들의 안전을 위해 취한 선택이었다.

[엘더 매지션 로드 제르닐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로드급 엘더 몬스터는 레이드 몬스터다.

비록 레벨이 나보다 20 이상 낮은 180이긴 했지만, 홀로 레이드 몬스터를 잡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

그런데 그런 몬스터를 일격에 잡는다는 건, 새삼 내가 강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보유한 장비가 뛰어난 것은 물론, 실력 역시 물이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아마 윤시아 등이 나와 같은 레벨과 장비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상대가 안 될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자화자찬 같아서 이런 평가를 하긴 싫지만…… 정말 타고나긴 타고났어.’

이젠 나도 스스로가 남들보다 전투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세상이 이 난리가 나지 않았다면 개화할 일이 없었을 재능이긴 하지만.

덕분에 이렇게 미친 세상에서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으니, 잘된 일이 아니겠는가.

“레이드 공적 100% 찍었겠네?”

시에나가 다가오며 은근히 보상을 물어 왔다.

그에 나는 씨익 웃어 보여야 했는데.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다크매터 / 망토 / 등급: 유일]

-암흑 물질로 만들어진 망토로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고, 원하는 모습으로 외형을 바꿀 수 있다.

-매우 강력한 대마법 방어력을 지니고 있으며, 투과 스킬에 대항력을 갖고 있다.

-모든 능력치 10% 상승.

너무도 심플한 설명.

하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사용 빈도는 성검 칼립소와 듀랜달이 높지만, 내가 가진 무기 중 가장 막강한 공격력을 지닌 것은 투과 스킬을 가진 바리사다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투과 스킬에 대항력을 가진 아이템이 나온 것이다.

투과 스킬을 가진 아이템이 또 얼마나 있겠냐만, 미리 대비해 둬서 나쁠 것은 없을 터이다.

그리고 이 아이템의 뛰어난 또 다른 점이 바로.

모든 능력치 10% 상승효과다.

‘능력치를 몇 올려 주는 게 아니라, 아예 퍼센티지로 올려 주네?’

이 장비를 착용하면 상시 능력 상승 버프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현재 내 능력치는 평균 300을 웃돌고 능력치 총합은 1천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거기에 10%면 거의 100에 가까운 능력치를 단번에 올려 준다는 것이니, 엄청나단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비록 일격 필살의 내장 스킬은 없지만, 지속되는 효과란 점에서 그 어떤 유일 등급 장비보다 효율적이었다.

“헐, 아무리 레이드 몬스터라고 해도 한 방에 잡은 몬스터잖아. 이런 걸 토하는 건 반칙 아냐?”

“최초로 영주 지위를 가진 몬스터를 토벌한 보너스가 더해진 덕이에요. 앞으로는 이런 행운을 기대할 수 없겠죠.”

나는 윌리아와 시에나에게 두 사람이 쓸만한 극상급 스킬북을 건네주었다.

즉 다크매터는 내 것이란 의미다.

두 사람은 원거리 공격이 주를 이루는 만큼, 전투에서 나 정도로 능력치를 타지 않기 때문에 당연한 조치였다.

“부럽네.”

다크매터를 착용하자 검은색의 연기와 같은 물질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모습이 꽤나 간지가 나서, 중2병 기질이 있는 시에나가 사족을 못 쓰는 디자인이었다.

‘마음에 드네.’

나 역시 다크매터가 마음에 들긴 마찬가지였다.

“백호 님.”

그렇게 폐허가 된 파나이 섬에서 보상을 체크하던 내게 윌리아가 무언가를 느꼈는지, 나를 불렀다.

아무래도 그녀와 연결된 펫, 다켈프의 부름이 있던 모양이다.

“필리핀 팀입니까?”

“네, 예상했던 대로 우르르 몰려온 모양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능의 날개를 펼쳤다.

그러자 다크매터가 푸른빛의 날개와 함께 펄럭였다.

* * *

시나리오 시작에 앞서 전 세계에 이상 지형이 발생했다.

그 이상 지형은 바로 길고 긴 다리.

섬과 국가, 대륙을 잇는 대교가 생겨난 것이다.

장거리 비행 능력은 아직 소수만이 갖고 있는 특혜와 같기에 섬나라 혹은 타 대륙을 침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기, 길들이지 않은 몬스터를 부리다니, 대체 서백호 협회장께선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비켜라! 펫 주제에 국가의 행사를 막는 거냐!”

서백호 일행이 쳐들어온 파나이 섬은 무려 필리핀 8개 지역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서백호는 남쪽의 섬들과 연결된 다리를 멍멍이와 룡룡이, 와일번, 와이번 등에게 지키게 했고,

팔라완, 민도르, 테블라스와 연결된 북부의 다리는 헬레나와 다켈프에게 지키게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백호 일행이 무주지인 파나이 섬을 공략할 거란 사실이 알려지면 필리핀 측 사냥꾼들이 방해하러 올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예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필리핀의 사냥꾼들이 헬레나와 다켈프가 지키는 다리를 통해 우르르 파나이 섬으로 몰려든 것이다.

“지나가고 싶으면 뚫어 보던지.”

헬레나는 족히 수천에 달하는 필리핀 사냥팀을 다켈프와 단둘이 막아서며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둘을 뚫어 볼 시도를 못 했다.

[엘더 이터 헬레나 / 레벨: 208]

[블러디 하이 엘프 다켈프 / 레벨: 202]

마치 사람을 유혹하듯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두 여성의 모습과 상반되게, 머리 위에 떠 있는 정보는 무시무시하기 그지없으며.

딱 봐도 두 사람이 쥔 무기가 희귀 등급을 넘어 보였기 때문이다.

“저, 저 무기들 설마 유일 등급은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 남자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남들은 하나 갖기 힘든 유일 등급 장비가 썩어 난다던데.”

“하긴 레벨이…….”

필리핀에도 레벨 100이 넘은 사냥꾼은 많았다.

심지어 유일 등급 무기를 가진 사냥꾼도 있었고.

하지만 지금 나서는 건 용기가 아닌, 만용이었다.

“도약과 디딤판 스킬로 우회해!”

결국, 필리핀 팀은 헬레나, 다켈프와 싸우기보다 차라리 피하는 길을 택했다.

-촤아악!

“으악!”

“헉!”

그러나 그들은 끝내 둘을 지나치지 못했다.

헬레나가 기다란 낫을 쥔 채 춤을 추듯 휘두르자 거대한 공간이 갈라지며 옆으로 빠져나가려는 모든 이들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속도를 미리 줄이지 못하고 그 공간에 들고 있던 창이 넘어간 남성은 자신의 애병이 파괴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희귀 등급의 무기조차 파괴해 버리는 광역 공격.

덕분에 감히 그 공간을 넘겠다며 도전 의식을 보일 수도 없었다.

“아니, 이거 너무 하잖아! 여긴 필리핀이라고! 너희가 뭔데 우릴 막는 거야!”

너무도 당연한 외침.

그럼에도 헬레나의 표정은 단호했다.

“나는 지시에 따를 뿐이야. 곧 백호 님께서 오실 테니, 얌전히 기다리도록.”

“젠장!”

마음 같아선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두 여성을 뚫어 버리고 싶지만,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발생할지 알 수 없고, 또 뚫는다는 보장도 없다.

더불어 둘을 공격하는 순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게 되니, 필리핀 팀은 분통을 삼키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왔다.”

대치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머지않아 저 멀리 하늘에서 거대한 드래곤과 함께 빛을 뿌리며 날아오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헬레나와 다켈프도 범상치 않았지만, 서백호가 이끄는 또 다른 펫의 모습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가장 압권은 누가 뭐래도 서백호와 윌리아, 시에나 세 사람이었다.

신의 군대가 있다면 저런 느낌일까 싶은 모습.

그만큼 장비의 질은 물론,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쿵!

거대 드래곤(진화한 룡룡이)과 함께 서백호 일행이 지면에 내려서자, 그저 마른침을 삼키는 것밖에 하지 못하던 필리핀 팀의 리더가 앞으로 나섰다.

“이, 이곳은 우리의 영토입니다. 영토 침범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필리핀의 주장은 지극히 상식적이라 할 수 있다.

예전이라면 서백호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최대한 서로에게 손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일을 해결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달랐다.

“우리는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 하루빨리 전쟁을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고로 여러분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 그게 무슨?”

“대한제국은 기존 국가 체제를 인정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우리는 기존의 국가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말은 즉 이 뜻이 아닌가.

“이번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침략 행위를 할 것이란 뜻입니까?”

서백호는 새하얗게 질린 필리핀 측 대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하루빨리 이 사태를 진정시키는 방법이라면요.”

그리고 옆에서 엘프 꼬맹이도 한마디 거들었다.

“알아들었으면 빨리 망고나 가져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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