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21화 (221/273)

221화 전쟁의 시대 (2)

뜬금없이 망고를 찾는 시에나의 발언에 필리핀 팀 사람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무래도 그녀가 자신들을 비웃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잠자코 있던 윌리아가 그런 시에나의 뒤통수를 쳤고, 덕분에 허공을 제 공간처럼 유영하던 시에나의 집중이 깨져 바닥에 처박혔다.

-딱!

“악!”

비행 능력은 머릿속 이미지로 조종하는 것이다 보니, 꽁트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윌리아의 행동으로 필리핀 팀의 반응이 한결 누그러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다.

나는 머리 위에 쓰여진 왕관 형태 투구의 기능 중 하나를 활성화하며 턱을 치켜들었다.

[에기르 헬름 / 등급: 유일]

-상대에게 강한 공포심과 위압을 준다.

내게서 강렬한 위압감이 뿜어지자, 새로이 획득한 망토 다크매터가 어둠의 기운처럼 내 등 뒤에서 일렁이기 시작했다.

“현 시간부로 파나이 섬은 우리 대한제국에 귀속되었습니다. 파나이 섬뿐만 아니라 인근의 우리 영토를 침범하거나 해코지하려는 낌새가 보이면 곧바로 선전 포고를 할 터이니 명심하시죠.”

선언과도 같은 대사.

하지만 필리핀 사냥팀의 리더와 일행들 모두 내 기세에 질려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등을 돌려 서울로 돌아가려는데…….

“어, 어째서입니까?”

필리핀 사냥팀의 리더여서일까?

아니면 레벨 130이 넘는 유일한 글로벌 수준의 사냥꾼이라 그럴까?

뻣뻣하게 굳어 있던 리더가 내 등에 대고 물음을 던져 발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나와 내 동료들 모두가 고개를 돌렸고, 그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당신이라면…… 더욱 평화롭게 사태를 이끌어 갈 수 있지 않습니까? 어째서 이렇게 과격한 방식을 취하는 겁니까?”

나와 우리 사냥꾼 협회는 계속해서 전 세계 영주들을 향해 대한제국으로의 전향을 계속 종용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타국의 무주지를 점령하여 그들의 나라였던 땅을 뺏으니 우리의 행동을 좋게 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단호했다.

“우린 분명 평화로운 해결법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을 거절한 건 당신들이고요.”

“그게 무슨?”

“이 전쟁을 마치기 위해선 세계가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거나, 혹은 하나의 군주국과 신하국으로 구성이 되어야 하죠. 그래서 제안하지 않았습니까? 나라를 통합하거나, 자치권을 보장해 줄 테니 휘하로 들어오라고요.”

“하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당신에게 종속되는 것 아닙니까!?”

제법 익숙해졌는지 언성을 높이는 상대.

그래서 나는 위압의 강도를 더욱 높이며 말했다.

“어차피 누군가 한 명이 명목상이라도 지도자가 되어야 평화가 찾아오는 시스템이라면. 제가 되는 게 맞겠죠.”

“…….”

“자화자찬은 취향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토벌이 힘든 강력한 몬스터가 등장하거나, 위험한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다들 저부터 찾을 테니까요.”

지금의 세계에서 나를 대신할 만한 강자는 없다.

그러니 내가 중심을 잡아 주는 게 당연하다 판단했다.

“물론, 누군가가 위에 군림하는 건 싫겠죠. 그러나 지금은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혹시라도 사태를 원만히 해결할 좋은 아이디어나 저를 대신할 리더가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기꺼이 그 의견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건…….”

생각이 많아진 모습.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등을 돌렸다.

“우리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빠른 사태 해결을 위한 것, 즉 모두가 바라 마지않는 평화를 위한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이걸 마냥 싫다고만 하지 말고, 뭐가 최선의 해결법인지 잘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인근의 웨이포인트로 향하기 위해 이능의 날개를 펼치며 말했다.

“대한제국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찾아 주세요.”

그리고 나와 일행들 모두 몸을 날렸다.

자신들의 땅을 빼앗은 것에 대해 불만을 잔뜩 토해 내고 싶었겠지만.

만약 대화를 나누면 말리는 건 그들이었다.

이쪽은 사태 해결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인 반면, 그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 * *

대한제국은 현재 해외 영주들의 영입을 계속해서 벌이면서 무주지 위주로 공략을 이어 가고 있다.

나름 공격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지만…….

직접 타국의 영주와 왕을 공격하고 있진 않으니, 전면 충돌은 아직 피하고 있는 거라 볼 수 있다.

물론, 영주를 빼 오고 무주지를 차지하는 것만으로도 타국 입장에선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겠지만, 전쟁을 치르는 사태는 최대한 막겠단 의미다.

하지만 이제 그 사고방식을 고쳐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작은 희생으로 큰 희생을 막을 수 있다면.

“남아공이 레소토와 에스와티니를 점령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요르단을 공격하고, 나이지리아는 카메룬을 공격했다라…….”

“중국 내에서도 신 상하이방과 공청단이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리고 인도와 이란 역시 내전이 발생할 것 같고요.”

가장 우려했던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시스템이 만든 땅따먹기 게임에 동조하는 나라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자신들의 영토 내에 있는 무주지부터 정리하기보다 주인 있는 영지부터 공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단 내부 단속을 먼저 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무주지를 점령한 몬스터의 전력이 생각 이상으로 강해서, 주변의 고만고만한 세력부터 흡수하려는 것 같았다.

‘이대로 가면 더 많은 국가가 전쟁에 참전하게 될지도 몰라.’

사냥꾼 협회라고 해서 전 세계 나라들을 단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칫 걷잡을 수 없이 전쟁의 불길이 커질 수도 있는 노릇.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인간끼리 전쟁을 벌이는 거죠?”

“보유한 영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얻을 수 있는 과실이 많아지잖아. 지금 자리를 못 잡으면 미래의 주도권 싸움에서 영영 배제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라들이 영토 확장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주와 왕이 되면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영주는 1개의 영지당 매달 1억 코인의 봉급을 기본으로 받고, 더불어 세금까지 징수할 수 있다.

세금은 처음에 1할(10%)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를 최대 3할까지 높일 수 있다.

세금이 어찌 징수되냐 하면 영지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코인 거래에서 수수료처럼 떼어 간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10코인으로 물건을 구매하면 1코인은 자동으로 영주의 주머니에 들어오고, 판매자는 9코인을 획득하게 된다.

이는 안전 구역 상점뿐만 아니라, 인간끼리의 개인 거래에서도 적용된다.

현 세계 최대 도시 중 하나인 서울의 영주가 된 나의 경우 하루 세금 입금액만 수천만 코인에 달하니, 사람들이 눈이 돌아가는 게 당연했다.

‘지금 세상에서 코인은 곧 권력이니까.’

더불어 국왕은 한 달 기본 봉급이 3억 코인인 데다가, 영주들의 수익 중 1할을 추가 징수한다.

나처럼 세계 곳곳에 많은 영토를 가진 거대 국가의 지도자라면 한 달 수익은 가볍게 수십억 단위가 되고 만다.

‘당연히 영주와 국왕은 수익이 큰 만큼, 영지민과 국민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재투자해야 하지만…… 그래도 누구나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지.’

더구나 영주와 국왕이 얻는 이익은 봉급과 세금으로 끝이 아니다.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전리품을 획득할 수 있는데, 그 전리품 중엔 막대한 경험치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전쟁을 잘만 이용하면 빠른 레벨업도 가능하단 것이다.

“시스템에 놀아나는 꼴이 처참해서 못 봐 주겠군.”

불만 가득한 윤시아의 발언에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쓴웃음을 흘렸다.

이어서 윤시아와 대화하던 강이솔이 내게 말을 돌렸다.

“저희의 입장을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을 유지할지. 아니면…….”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인지를 말이죠?”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어렵지 않게 이해한 나는 뒷말을 완성시켜 주었다.

그에 강이솔을 포함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목표가 빠르게 세계를 통일시켜 인간끼리의 전쟁을 막는 것이라면, 아예 무력을 통한 정복 활동을 추가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또다시 선택의 때가 온 것이다.

‘가상의 세계에서도 분쟁을 무력 개입으로 막고 다녔었는데, 여기서도 그러게 생겼네.’

평화를 위해 무력 개입을 한다는 논리 자체가 모순이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어쩔 수가 없다.

“전쟁에 개입하죠.”

큰 전쟁을 작은 분쟁으로 막는 방법 외에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다만 나는 조건을 달았다.

“대신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에 한해서 말이죠.”

“하지만 언젠가는 다른 나라들도 합병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문뜩 한국이란 나라가 전 세계의 합병을 거론하는 거 자체가 재밌게 들렸다.

격세지감이라 해도 좋을 만큼.

대재앙으로 인해 국가의 위상이 달라졌다.

“아무리 우리라 해도 전 세계와 싸울 수는 없죠. 당장 우리 파티를 제외한 나머지 전력은 미국과 비등한 정도 아닙니까? 그런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연합해 덤벼 온다면 그 피해는 더욱 심대하겠죠.”

“으음…….”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는 법이란 소리.

일단 전쟁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몇몇 나라에 개입을 하여 세력을 불릴 생각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혼자 다 해먹는 게 아닌, 윤시아 등의 빠른 성장을 부추길 예정이고.

‘평화’라는 단어를 내세우고 있지만, 어찌 됐든 전쟁을 하는 것 아닌가.

현재 전쟁만큼 빠른 성장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이 없으니, 기회라 할 수 있다.

내가 레벨업을 1번 할 정도의 경험치면, 윤시아 등은 단번에 10번의 레벨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진 내가 최선두에서 모두를 이끌었지만, 다르게 말하면 이건 나에 대한 의존이 너무 높다는 뜻이기도 하지.’

앞으로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이상,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의 존재가 필요했다.

“알겠습니다. 폐하의 지시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우리의 방향이 다시금 정리되었다.

자신들이 앞으로 많이 구르게 될 운명이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윤시아를 포함한 간부들은 나를 폐하라 칭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니 뭐니, 그런 거 하지 말래도요…….”

* * *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사냥꾼 협회와 한국이 세계의 중심 세력으로 떠오르긴 했지만, ‘과연 서백호가 빠진다면 그들이 지금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라고.

이에 대해 저마다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서백호가 가상의 세계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을 때, 각국이 사냥꾼 협회를 대하는 태도는 명확했다.

서백호가 없는 사냥꾼 협회는 주류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들었어? 사냥꾼 협회에서 보내왔다는 경고 이야기?”

“사냥꾼 협회가 아니라 대한제국이라던데.”

“아, 됐어. 그게 그거지.”

“듣긴 했어. 사람끼리의 전쟁을 일으키는 세력과 나라를 제재하겠다지?”

“맞아. 웃기지 않아? 자기들은 남의 나라 무주지 점령하고 다니면서 말이야.”

“뭐, 그런 이중적인 태도도 힘이 있으니까 보일 수 있는 거지. 서백호 파티가 단독으로 범이슬람 연방 쓸었었잖아? 놈이 나서면 그 미국도 당해 내지 못할 테지.”

“어우, 진짜 재수 없어.”

“그래서 우리도 제재당하는 거야? 지금 열심히 카메룬을 공격하는 중이잖아.”

“제재가 들어올 가능성이 크지. 그런데 상부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여.”

“뭐? 미쳤대?”

“그런데 이유가 있어. 듣기로는 서백호 본인이 직접 나서서 싸우고 다닐 건 아닌가 봐. 본인은 바쁘다고 전쟁국 관리를 부하들에게 맡길 생각이라고 했다던데?”

“엥? 그게 가능해?”

하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서백호를 제외하고도 사냥꾼 협회는 강력한 힘을 지닌 조직임을.

-콰아아아앙!

“뭐, 뭐야!?”

“사냥꾼 협회! 아니, 대한머시기 놈들이다! 정말 제재하겠다며 쳐들어왔어!”

“이 새끼들이 감히!”

“막아! 어차피 서백호는 없다!”

아프리카 제일의 경제 규모와 2억2천만이 넘는 인구를 가진 나이지리아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제재하겠다며 쳐들어온 사냥꾼 협회의 행동을 비웃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의 표정이 바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으악!”

“피해!”

“사, 살려 줘!”

윤시아를 비롯한 사냥꾼 협회의 주요 멤버들은 마치 자신들이 서백호라도 된 양 나이지리아를 제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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