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24화 (224/273)

224화 돌파구 (2)

아론다이트라면 원탁의 기사 랜슬롯의 검으로 유명하다.

진짜 랜슬롯이 사용하던 검은 아니고, 유일 등급의 무기들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전설 속에서 이름만 따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설에서 유명한 이름을 가진 무기일수록 옵션이 좋은 경우가 많기에, 기대감을 갖고 설명을 보았더니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아론다이트 / 양손검 / 등급: 유일]

-마계 북부의 대호수 카른에 사는 마룡 오귀스트의 뿔을 이용해 만들어진 검으로 최초의 마왕 혹은 마신이라고도 불리는 제로원의 가호가 담겨 있다.

-아론다이트는 소유자는 넘버즈로서 에잇투의 이름을 부여받으며, 마계 전 국가에서 통용되는 백작위의 귀족 신분을 갖게 된다.

-절대 파괴되지 않는다.

-수중 혹은 수 속성 몬스터에게 근접 스킬 공격력 200% 증가

-근력+6, 마력+6

-자체 스킬: 하이드로 브레스

[하이드로 브레스 / 극상급 스킬 / 액티브]

-뇌전의 기운이 깃든 고압수 공격으로 직선상의 모든 것을 꿰뚫으며, 주변에 전기 충격을 준다.

-마력 소모: 10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키워드가 있다.

그건 바로 최초의 마왕이자 마신이라 불리는 제로원이란 존재에 대한 것이다.

‘마왕은 하나 같이 드래곤급의 존재라 들었는데, 설마 그 위의 존재가 또 있다는 건가?’

만약 시나리오가 꾸준히 진행되고, 추후 마계와 싸우게 되는 일이 생긴다면 이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내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에잇투도 그렇고, 제로원이란 마왕도 그렇고, 숫자가 섞인 이름의 마족이 많네.’

심지어 내 부하인 나인포도 그렇지 않은가.

아무래도 이런 이들을 가리켜 설명에 나온 ‘넘버즈’라 칭하는 것 같다.

아론다이트를 가진 것만으로도 에잇투란 이름과 백작위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니.

나인포가 스스로를 유서 깊은 명문 귀족 가문의 주인이었다고 했던 것이 마냥 허풍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마계에서 통용되는 귀족 작위라…….’

제로원이란 절대자의 존재가 신경이 쓰이면서도 그 와중에 혜택처럼 보이는 이 내용이 흥미를 끌었다.

아무래도 이것에 대해선 나인포와 이야기를 나눠 봐야 할 것 같다.

더불어 제로원에 대한 이야기를 왜 지금까지 알려 주지 않은 것인지도 따져 보고.

턱을 짚으며 생각을 정리하던 나는 아론다이트를 웨폰 체인저에 등록했다.

그리고 다른 보상들도 살폈지만, 경험치와 코인, 우리 파티엔 필요 없는 몇 권의 극상급 스킬북을 빼면 눈에 띄는 게 없었다.

이미 마족을 여러 차례 사냥한 만큼 최초 토벌 보상이 없는 게 컸다.

‘그런데 전임 에잇투가 쓴 그 필살기는 무기의 내장 스킬이 아니었나 보네?’

현 에잇투는 나니까, 방금 쓰러뜨린 에잇투는 전임자가 되었다.

나는 아론다이트의 내장 스킬이 마지막까지 애를 먹게 했던 스킬인 줄 알았다.

주변을 포위하듯 지면을 뚫고 덮쳐 오던 수천 다발의 검강 말이다.

아론다이트의 내장 스킬은 포켓*스터를 연상시키는 이름의 하이드로 브레스란 기술이었고, 획득한 보상 중 관련 스킬이 없어 아쉬웠다.

‘원하는 것을 매번 손에 넣을 수 없긴 하지.’

내가 아무리 운이 좋은 편이어도 이건 어쩔 수 없다.

아론다이트만 해도 충분히 좋은 보상인데다가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으니,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백호야. 손님이다.”

그렇게 보상을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시력이 좋은 시에나가 나를 불렀다.

그래서 고개를 돌렸더니, 저 멀리서 다가오는 100여 명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대한제국의 폐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들은 자칭 신 상하이방의 라이벌이자, 중국의 남부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공청단 멤버들이었다.

주요 간부들이 몰려온 건지 레벨은 모두 100 이상이었으며, 그들의 리더는 레벨 140으로 중국에선 매우 유명한 인물이었다.

[위즈잉 / 레벨: 140]

공청단의 여성 리더 위즈잉이 다가와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 왔다.

워낙 내 주변의 미인 비율이 높아 상대적으로 평범해 보이지만, 하나씩 뜯어 보면 매력 있는 외모를 가진 여성이었다.

나는 그녀의 인사를 담담하게 받았다.

“그냥 협회장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종종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띄워 주려고 폐하라 부르긴 하는데, 나는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기보다 닭살이 돋는다.

아직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서인지, 오글거린다고 해야 할까?

이런 내 지적에 공청단의 리더가 호칭을 바꿨다.

“협회장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무주지 점령에 나섰을 뿐이다.

하지만 그 무주지의 주인이 이들로선 감당하지 못하는 괴물 중의 괴물이었고, 이들은 연거푸 영지를 빼앗기던 입장인지라, 나의 행동이 공청단에게 큰 도움이 된 건 사실이었다.

아마도 신 상하이방의 입장으로선 이들이 그 괴물에게 더욱 괴롭힘을 당하길 바랐겠지만, 무주지 점령에 대해선 정치 관계를 따지지 않는 나였다.

정치 관계를 따지면 죽어나는 건 엄한 시민들이었으니 말이다.

“딱히 공청단을 도우려 한 건 아니니,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더구나 이제 이 땅은 제 것이 되기도 했으니까요.”

내 말에 표정 변화가 없는 위즈잉과 달리, 그녀 주변의 동료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불만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비겁한 수를 써서 잡았겠지.”

“그런 괴물을 싸워서 잡는다는 게 말이 돼?”

더구나 적개심을 보이는 사람까지 있어서 용기가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제 모르는 용기는 만용일 뿐이다.

“어?”

“쿨럭!”

나를 앞에 두고 허튼소리를 하던 이들이 갑자기 피를 쏟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공청단의 간부들이 당황하여 패닉에 빠지자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고.

곧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헬레나와 다켈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청단 간부들이 갑자기 피를 쏟기 시작한 건 두 사람의 작품이었단 뜻이다.

‘다켈프는 그렇다 쳐도, 헬레나까지 과잉 충성을 하네.’

그 둘의 거침없는 행동에 기겁한 공청단은 거리를 벌리며, 무기에 손을 얹었으나 감히 뽑지 못했다.

뽑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테니까.

분하겠지만, 그들은 공격을 당해 놓고도 참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는 서로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상황이었다.

“치료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치료마저 허락을 받고 행한 공청단의 리더 위즈잉은 단체를 위험에 빠지게 할 뻔한 이들을 직접 치료했다.

그리고.

-짝! 빠악!

“큭! 위, 위즈잉.”

“꺼져.”

그들의 뺨을 인정사정없이 후려치고 조인트를 날려서 쫓아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이 묘하게 연극 같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용건을 물었다.

무주지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모를 리도 없고, 갑자기 찾아온 데엔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대한제국에 복속을 청합니다.”

이어진 그녀의 용건에 비로소 나는 눈앞의 집단에 대해 처음으로 흥미를 느꼈다.

이 자존심 강한 중국인들이 숙이고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니까.

“불만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내 물음에 그녀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원래 패배자가 말이 많은 법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저놈들은 입을 함부로 놀리는 것 빼곤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작은 체구의 치와와가 더욱 요란하게 짓는 것과 같죠.”

그렇게 안 봤는데, 꽤 재밌는 사람 같았다.

“조건은요?”

“제가 바치는 영토의 번왕으로 저를 임명해 주십시오.”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복속을 청한 건지 알 것 같다.

어차피 단독으론 신 상하이방을 이길 수 없으니, 차라리 우리를 등에 업고자 한 거겠지.

신 상하이방이 동맹임을 생각하면 재고해야 할 제안이지만.

“그렇게 하죠.”

“감사합니다!”

[중국의 31개 지역을 다스리는 왕 위즈잉으로부터 영토 지배권을 양도받았습니다.]

나는 순순히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내가 바라는 건 시스템적인 국가의 통합.

동맹은 의미가 없었다.

현 시간부로 우리 대한제국에서 더욱 중요한 상대는 신 상하이방이 아닌, 공청단이 되었다.

아마 신 상하이방이 난리를 치겠지만.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이쪽의 말을 들어 먹지 않는데 동맹이 뭔 소용이겠는가.

나는 즉석에서 위즈잉을 번왕으로 만들어 그녀가 바친 영토의 관리를 맡겼다.

소식을 들은 신 상하이방은 예상대로의 반응을 보였고.

나는 깡그리 무시한 채 마계로 날아갔다.

* * *

마계에 존재하는 무법자의 도시 엔탈론.

그곳의 지배자는 다름 아닌 나다.

엔탈론은 현재 나인포가 관리를 하고 있는데, 그의 주요 임무는 바로 마계의 정세를 살피고 정보를 수집하는 거였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보고드릴 사항이 있었거든요.”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네오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나인포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끄악!”

넘버즈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다 치고, 제로원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지 않은 건 괘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마왕이자 마신이라 불리는 존재라니, 좀 무서운 정보인가?

“예? 넘버즈요? 그리고 마신이라뇨?”

하지만 억울하단 표정으로 말하는 놈의 반응을 본 나는 두 눈을 껌뻑여야 했다.

영문을 모르겠단 그의 반응에서 어떤 거짓말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진실의 눈이 고장이라도 난 걸까?

“제로원 가문이 팬드래건 제국의 황가를 뜻하는 건 알지만, 그 가문을 세운 초대 황제는 이미 골로 간 지 300년은 됐다고요! 지금 제로원 황제는 7대째고요!”

“아, 그래?”

살아 있는 당사자들 이야기가 아니었구나.

아무래도 아론다이트에 설명란에 쓰인 설정은 과거의 이야기를 담고 있던 건가 보다.

“그리고 숫자를 이름으로 갖고 있다고 무조건 명망 높은 집안인 건 아닙니다. 지금의 저처럼 몰락한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머쓱해진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나인포의 이마에 입김을 불어 주었고, 옆에선 시에나가 침을 발라 주었다.

시에나 방금까지 매운 과자 먹고 있던 거 같은데?

“그런데 팬드래건의 초대 황제가 마신이라니, 처음 듣는 이야기군요?”

“그래?”

“정보의 출처가 어떻게 됩니까?”

정보 출처를 묻는 나인포의 모습에 나는 순순히 아론다이트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 든 나인포는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이건?”

내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엄청난 강제력이 느껴집니다. 이 정도 강제력은 마왕에게서도 느껴 본 적 없어요.”

“그래?”

최초의 마왕이자 마신의 권능이 담겼다는 건 허풍이 아닌 모양이다.

“그럼 이 검의 설명대로 마계에서 백작위의 귀족 대우를 받을 수 있으려나?”

“영지 없이 단순히 귀족 대우를 받는 것뿐이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신분 패를 대신하는 보물들이 분명히 있긴 하거든요.”

나는 감탄사를 흘리며 아론다이트를 바라보았고, 나인포도 큰 관심을 보였다.

“음지에서 활동하는 가문들이 이런 보물로 신분을 증명하는 경우가 있다고 듣긴 했습니다.”

음지에서 활동하는 가문들이 많이 쓰는 신분 패라.

“이게 있으면 마계에서의 활동에 도움이 되겠지?”

“물론이죠! 이제 우리 엔탈론의 배후엔 귀족이 있게 되는 거니까요!”

우리의 처지에 너무도 알맞은 보물이 아닌가.

나는 한껏 상기된 나인포와 하하, 호호 웃으며 사업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얼마나 아론다이트를 들고 떠들었을까?

“그러고 보니, 보고할 게 있다고 하지 않았어?”

나는 문뜩 그가 나를 보자마자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이야기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어야 했다.

“지구에 대재앙이 발생했던 초기에 마계로 넘어온 인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런데 이들의 상황이 조금 특이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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