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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28화 (228/273)

228화 전쟁의 신호탄 (2)

지옥의 입구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눈앞의 땅굴에서부터 풍겨 오는 강한 사기는 마계에서조차 느껴본 적 없는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력 수치가 증가하면서 다양한 기운에 민감해지긴 했지만, 아마 이렇게나 요사스럽고 강한 기운이라면 평범한 사람들도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던전이라면 입장 권장 레벨이라도 뜰 텐데, 이곳은 던전이 아닌지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음…….”

동티모르의 아타우루 섬처럼 작은 곳이 영지로 분류된 것을 보면 이 밑에 거대한 이상 지형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뭐가 있을지 궁금하긴 한데, 이거 분위기가 너무 압도적이라 나라고 해도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물러날까? 굳이 중요하지도 않은 이 무주지를 차지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지 않아?”

웬일로 시에나가 정상적인 의견을 냈다.

-덜덜덜.

아니, 이제 보니 단순히 무서워서 그런 모양이다.

항상 당차던 그녀가 웬일로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으니까.

평소 시에나의 성격을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는 그 모습에 실소가 나왔지만, 다시 시선이 지옥의 입구로 보이는 통로로 향해지니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뇨. 가 보죠. 진짜 위험한 장소라면 이대로 시간이 지나게 두는 거보다 초반에 해결하는 게 나을 테니까요.”

아마 시나리오 초반인 지금 우리를 위협할 정도의 적수는 흔치 않을 거라 생각한다.

시스템도 생각이란 게 있다면 난이도 조절 정도는 하겠지.

나조차 목숨이 위험한 수준의 장소라면 다른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불모지가 전쟁이 가능한 영지로 배정된 거니까.

내 결정에 윌리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해 주었으나, 시에나는 ‘엑’ 소리를 내며 질색했다.

“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지켜 드릴 테니.”

이런 내 말에 시에나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지고, 반대로 윌리아는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여자 친구의 질투 어린 모습을 보는 건 묘하게 기분이 좋았지만, 시에나의 전력을 뺄 수 없으니, 입에 발린 말이라도 하는 편이 나았다.

실제로 무슨 일이 생겨도 우리 파티라면 도주하는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을 것이다.

“하긴 뭐, 빛쟁이인 윌리아도 있으니 괜찮으려나?”

프리스트를 빛쟁이라 표현하는 게 시에나다웠다.

그렇게 웬일로 겁을 내는 시에나를 구슬리는 데 성공하며, 우리의 입장이 정해졌다.

“그런데 의외네요. 언데드 몬스터 뚝배기는 잘 깨시는 분이.”

내 말에 시에나도 창피함을 느끼는지 헛기침을 했다.

“원래, 확인되지 않은 알 수 없는 위협이 알고 있는 위협보다 더 무서운 거라고.”

뭔지 알 것 같다.

공포 영화도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는 귀신보다, 찔끔찔끔 존재감만 드러내는 폴터가이스트가 무섭게 느껴지는 법이지 않나.

하지만 지금 세상에선 귀신이 등장해도 몬스터라며 처치할 것 같은 느낌이라,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괜히 먼저 겁을 먹을 필요 없다.

시에나의 말처럼 우리에겐 프리스트 윌리아가 있어서, 이런 장소에서 더욱 강한 위력을 보이기도 하니까.

-통. 통. 통.

우린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낡은 철제 계단을 밟지 않고 허공을 날아 지하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날아 내려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에서 알 수 없는 소음이 들려왔다.

-깡! 깡!

마치 누군가가 금속판을 반복적으로 때리는 듯한 소리였다.

공포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한 거면 참으로 컨셉을 잘 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꽤 깊네요.]

[거의 한 500미터는 내려온 거 같은데…….]

지열의 영향으로 주변의 공기가 후덥지근해지는 게 느껴질 정도.

보통 지하 100미터마다 섭씨 2.5도의 온도가 증가한다고 하니, 이 만큼 내려오면 온도 변화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얼마나 더 깊이 내려가는 건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 넓은 공간이에요.]

그리고 500미터를 더 내려가니, 높이 4미터, 넓이 300평 정도의 넓은 원형 광장 같은 것이 등장했다.

더울 수밖에 없는 깊이의 지하 공간.

하지만 높은 등급의 장비엔 기본적으로 온도 유지 기능이 달려 있는지라, 누구도 덥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저기 문이 있네요.]

텔레파시로 이어지는 헬레나의 보고에 모두의 시선이 원형 관장의 한곳으로 향했다.

굳이 그녀의 보고가 없어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충만한 사기가 바로 그곳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냥 날려 버리죠.]

문에 다가가는 것조차 꺼려질 정도.

그래서 나는 텔레파시를 통해 그리 말했고, 시에나가 신궁 비자야의 시위를 가볍게 당겼다가 놨다.

그러자 빛의 화살이 형성되어 날아가 문을 파괴했다.

-휘잉!

“큭…….”

“윽!”

파괴된 문 너머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왔는데.

당혹스럽게도 그 바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역한 악취를 담고 있어서 우리 일행 모두 미간을 찌푸려야 했다.

-꿈틀. 꿈틀.

심지어 내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지옥견 멍멍이까지 꿈틀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에어 쉴드.]

다행히 윌리아가 제때 수중에서 호흡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공기 막을 형성했고, 비로소 우린 그 악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체 썩는 냄새 같은데.]

[그런 거 같네요. 다만…….]

시체 썩는 냄새는 사냥꾼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시체를 마주하는 일이 가장 많은 게 우리 사냥꾼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시에나가 파괴한 문 쪽으로 다가가며 드러난 풍경에 윌리아가 끊었던 말을 이었다.

[이 정도로 짙은 냄새는 처음입니다.]

이어서 드러난 풍경은 폭 5미터 정도의 긴 복도에 인간이 한 명 겨우 지나갈 만한 공간을 빼고, 사람으로 보이는 시체들이 빼곡하게 천장에 걸려 있었다.

마치 도축장을 보는 듯한 풍경.

다만 일반적인 도축장과 다른 점이라면, 걸려 있는 것들이 심하게 썩어 문드러져 검은 진물들을 바닥에 쏟고 있단 점이었다.

지금까지 온갖 끔찍한 것들을 봐 왔지만, 이렇게까지 잔혹한 광경은 처음이다.

마족이 아닌 진짜 악마라도 있는 걸까?

더욱 큰 문제는…….

[복장들을 보니, 진짜 사람들인 것 같아요. 연출용 더미 같은 게 아니라.]

그 시체들 모두가 납치를 당해 온 사람들로 추측된다는 것이다.

복도를 채운 수만 해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족히 수천 명은 될 것 같다.

이 정도의 사람들이 행방불명되었다면 진작 티가 났을 텐데 왜 알려지지 않았을까?

[뭐가 있는지는 몰라도, 백호 님의 말처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상대임은 분명한 것 같군요.]

윌리아의 감상에 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시에나도 감상을 더했다.

[그나저나 시나리오가 시작되고 아직 한 달이 안 지났는데, 이 시체들 너무 심하게 부패한 것 같지 않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방식으로 부패한 게 아니란 뜻이니, 나는 미간을 찌푸렸고.

곧 시에나의 의견이 틀린 게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엄한데 시선을 빼앗겨 제대로 보지 못한 복도 천장에 마법진과 같은 것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으니까.

그뿐 아니다.

-키이이.

천장에 걸려 있는 것들이 돌연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강화 자폭 구울 / 레벨: 150]

그리고 그 시체들의 머리 위로.

일제히 위와 같은 정보가 새겨지기 시작했고, 나는 자폭이란 글자를 본 순간 두 눈을 크게 뜨며 벼락같이 성검을 뽑았다.

-콰콰콰콰콰!

동시에 강렬한 푸른빛이 복도를 삼키며 직선상에 있던 모든 구울을 증발시켜 버렸다.

성검의 공격에 의해 둥글게 관통상이 생긴 복도는 흙과 바위가 마그마와 같이 붉게 녹고 뚝뚝 흘러내려 바닥에 고였다.

이건 결코 과민 반응이 아니다.

자폭 몬스터는 레벨보다 강력한 위력을 보이는데, 그중 레벨 150에 달하는 자폭 몬스터는 처음 마주한 거였다.

‘그런 몬스터가 천 단위로 폭발하면 아무리 우리라 해도 위험할 수밖에 없다.’

여차하면 윌리아의 절대 방어 스킬이 있지만, 이곳은 지하.

자칫 생매장의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귀환 스크롤을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럼 이곳에 재입장을 하기 귀찮아진다.

[이곳의 주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빨리 죽여야겠군요.]

사람의 시체를 폭발 몬스터로 만들어 다루는 놈이다.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이런 수법을 쓰는 놈이 위기감을 느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면 끔찍한 대참사가 벌어질 게 분명하다.

-휘익!

우리는 뻥 뚫린 복도를 날아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지하 공간의 풍만한 사기가 거슬리지만, 적의 수법에 정의심이라든가 분노라든가 그런 것 없이, 순수하게 위기감을 느낀 나는 다소 급박하게 움직였다.

[이상한 거 발견하면 그냥 날려 버리세요!]

[네!]

[오케이!]

대신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거리낌 없는 선제공격을 실시했고, 덕분에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상함을 느껴야 했다.

[같은 길을 빙빙 도는 느낌 아닙니까?]

[확실치는 않은데,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라? 여긴 우리가 아까 파괴한 곳이잖아? 지금은 멀쩡한데?]

등장하는 몬스터 따윈 없었다.

중간중간 인간으로 만든 폭탄이 숨겨져 있으며.

-챙! 챙!

강력한 핏빛 마력이 깃든 쐐기 등 함정들이 날아들었다.

나는 바닥에서 솟구친 쐐기를 날렵하게 검으로 쳐 내고는 곧바로 프라가라흐를 날려 시에나의 등 뒤에서 은밀히 뻗어 오는 쐐기를 쳐 냈다.

기감이 뛰어난 나와 검술 스승 아이템을 가진 윌리아는 함정에 빠른 대응이 가능했지만, 시에나와 헬레나 등은 상대적으로 이런 기습에 약해 신경을 써 줘야 했다.

-챙!

“까, 깜짝이야.”

쐐기에 깃든 마력의 종류도 제각각이고 발사되는 쐐기의 양과 속도도 전부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방어력만 믿고 무시하기엔 매우 강한 위력을 품고 있단 것이었다.

이렇게 귀찮은 장소는 또 처음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네요. 잠시만요.]

계속 같은 곳을 도는 느낌과 함정 때문에 신경도 예민해져서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틀을 깨기로 마음먹었다.

아예 길을 개척하기로.

-척.

다시금 손에 성검이 들리고.

나는 마력을 아끼지 않고 여기저기 성검의 일격을 내질렀다.

성검이 증발시키는 지면의 거리는 300여 미터.

나는 귀한 마력 물약을 마셔 가면서 바둑판을 그리듯 촘촘하게 길을 뚫었다.

-스스스.

[길이 다시 고쳐진다! 일반적인 회복 속도가 아냐!]

하지만 나오라는 길은 나오지 않고.

금세 성검으로 뚫어서 만든 통로들이 막히기 시작했다.

마치 생물의 살이 채워지는 것처럼.

“자, 잠깐. 이거 설마.”

그에 나는 최악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거 설마 이 시설 전체가 몬스터인 건 아니겠죠?”

“…….”

“…….”

내 물음에 윌리아와 시에나가 말을 잃었다.

내 추측이 맞다면, 납치한 인간들은 몬스터가 소화 중인 식량이었고, 자폭 공격은…….

백혈구가 세균을 잡아먹는 것과 비슷한 것이며, 쐐기를 이용한 함정도 침입자에 대비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문제가 있다면 인간을 어떻게 납치했냐는 것인데.

그건 더 조사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내 추측이 진짜라면 현재 우린 몹시 위험한 상태이며,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발상을 바꿔 생각하면 지금 우리는 내부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건가?’

물론, 내 추측이 틀릴 수도 있다.

어쨌든 길이 나올 때까지 계속 헤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우린 이렇게 하기로 했다.

일단 주변을 미친 듯이 공격해 보기로.

이 시설을 계속해서 파괴해 나가다 보면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겠는가.

“그냥 스킬의 위력을 시험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네.”

내 말에 표정이 굳어 있던 시에나가 씨익 웃어 보이고, 윌리아도 나름 재밌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우리 파티의 전력을 다한 딜링이 어느 정도일지, 나 자신도 궁금하던 차다.

나는 양손에 성검과 듀랜달을 쥐고, 제3의 손으로 아론다이트를 쥐었다.

동료들 역시 각자의 주력 무기인 유일 등급 장비를 강하게 움켜쥐고는.

“갑시다!”

-콰아아아앙!

지형을 미친 듯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추측이 틀리면 뻘짓이 되는 거지만, 그럼 마력만 다시 회복하면 그만이다.

혹시 모를 붕괴는 토사에 휩쓸리기 전에 추가 공격으로 날려 버릴 생각이다.

그렇게 얼마나 공격을 이어 갔을까?

-그어어어어.

어디선가 대왕 고래의 울음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아무래도 누군가의 공격이 역린을 건드린 모양.

즉, 내 추측이 맞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에 우린 더욱 신이 나서 주변을 날렸고.

머지않아 공간 전체를 뒤덮은 짙은 사기가 우리 머리 위로,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지지지지징!

그런데 한데 모이는 사기의 농도는 상상을 초월했고, 거기에 위기감을 느낀 우린 공격을 이어 나가다가.

“윌리아 님 절대 방어요!”

“네!”

윌리아가 입은 성녀의 로브의 내장 스킬인 절대 방어, 신의 가호(하루 3번 사용 가능)를 사용했다.

그러자 유리와 같이 투명한 막이 우리 일행을 감싸고.

-콰아아아아!

자폭 공격처럼 강렬한 폭발이 발생해 주위를 휩쓸었다.

그리고.

[어잌후!]

뜬금없이 폭발의 근원지에서 웬 이상한 녀석이 떨어지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굉장히 비실비실해 보이는 놈이었다.

이게 뭔 상황인지는 몰라도 나는 검을 고쳐 잡았다.

이 안에 멀쩡한 놈이 있다면, 그놈이 원흉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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