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전쟁의 신호탄 (4)
대재앙 이후 기존의 기술을 이용한 통신 체제는 완전히 무너졌다.
하지만 사람들이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게 되면서 그 빈자리를 ‘통신 아이템’이 대신했고, 덕분에 안정 국면에 접어든 국가들은 제법 신속하게 국제 이슈를 확인할 수 있었다.
때문에 러시아가 무주지의 영주 몬스터들과 연합하여 대한제국의 세력권을 공격한 사실 역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 이런 미친. 그래도 이건 좀…….”
“솔직히 나쁘지 않은 방법 같은데?”
“그게 뭔 개소리야?”
“서백호도 펫 아이템으로 길들이지 않은 몬스터 하나를 동료로 끌고 다니잖아. 지능이 높은 몬스터 중 말이 통하는 상대라면 그렇게 무리수는 아닌 것 같아.”
“놈들은 몬스터야. 인간을 죽이는 몬스터. 서백호가 데리고 다니는 몬스터는 원래부터 인간과 거래를 하며 공존하던 별종이고. 하지만 러시아가 동맹을 맺은 영주급 몬스터 모두가 그런 별종일 거라곤 생각되지 않아.”
“인간도 인간을 죽이는데, 새삼 영주급 몬스터가 인간을 죽일 수 있는 게 무슨 문제인 거야? 결과적으로 생존에 도움이 되냐 안 되냐의 차이인 거지.”
“아무리 대한제국 밑으로 들어가는 게 싫다고 해도 용납할 수 없는 미친 짓이야. 몬스터와 손을 잡고 같은 인간과 싸우다니. 그 끝이 좋을 리 없어.”
“무조건 적이라 결론을 내릴 필요가 있을까? 영주급 몬스터는 대화가 통하는 상대인데?”
러시아의 참신한 선택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 사람들의 의견을 둘로 나눌 만큼 파격적이기도 했고.
현재 전 세계의 무주지 비율은 약 3할 정도이니, 레벨이 높은 무주지의 영주 몬스터들과 동맹을 맺게 된다면 독재나 다름없는 대한제국 지배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는데.
“대한제국에서 가만있지 않을 거야.”
“러시아 놈들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군. 서백호의 다음 행보는 모스크바를 불태우는 게 될 거야.”
비록 대한제국의 독재 체제가 거슬리긴 해도 그들이 딱히 악행을 저지른다고 볼 수 없고, 몬스터와 손을 잡은 순간 대한제국과 서백호의 적임을 선언하는 꼴이니, 큰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대한제국과 서백호의 존재감이 크고 두렵단 뜻이다.
덕분에 모두의 이목이 대한제국과 러시아에 집중되었다.
[대한제국의 서백호 러시아 점령 선언.]
그리고 예상대로의 상황이 전개되면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일단 지켜보자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태도일 뿐.
머릿속으로는 다들 셈을 하느라 바빴다.
상대가 몬스터라지만 현재로선 거의 유일하게 대한제국에 대항이 가능한 세력이었으니, 구미가 당기는 게 당연했다.
“하, 어처구니가 없군. 자기들의 능력이 부족하니까. 몬스터의 힘을 빌리겠다는 건가?”
이런 소식은 서백호의 대항마로 여겨지며 동레벨의 동료를 만들기 위해 NPC 호감도 작업을 진행 중인 독일의 헤르만과, 미국의 데이비드에게까지 전해졌다.
미국과 독일은 그 둘을 품게 되면서 그나마 다른 나라보다 상황이 낫다지만, 무주지 몬스터 영주와의 동맹은 빠르게 전력을 향상시킬 유일한 방법이라며,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그들 내부에서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비겁한 판단을 한 루저 새끼가 누구야? 내 앞으로 끌고 와 봐. 뺨따귀를 날려 줄 테니.”
이에 헤르만은 길길이 날뛰며 성을 냈고, 데이비드 역시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도 비정상적이라며 불만을 품었다.
러시아가 쏘아 올린 공으로 인해 현재 국제 정세는 복잡해져만 갔다.
* * *
전쟁이다.
그것도 상대가 러시아인 큰 전쟁.
이번 전쟁은 내가 바라던 상황이 아닌 만큼,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힘의 재분배가 이뤄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러시아를 상대로 패배를 하면 몬스터 영주와의 동맹이 대세로 떠오를 테고.
반대로 우리가 승리하거든, 벌어진 전력 차를 좁히겠다고 또 몬스터 영주에게 접근하는 나라들이 나올지 모른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결론이 같을 거란 뜻.
때문에 전쟁에 나서는 동료들의 비장한 모습을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걱정이 많아 보이십니다.”
그런 나의 곁으로 윤시아가 다가와 인사와 함께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딱히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상보다 피해가 많을 것 같아서 그렇죠.”
내가 바라던 건 명분이었다.
세계를 하나로 합치더라도 탈이 적도록 최소한의 이유를 만드는 것.
그런데 예상치 못한 영주급 몬스터와의 동맹은 이런 명분을 충족해 주기에 꼭 나쁘다고만 볼 순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이 예상보다 커진 만큼, 인적 피해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걸릴 뿐이다.
그나마 피해를 줄이는 방법은.
“전의마저 상실시킬 만큼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해야 합니다.”
함부로 덤빌 마음이 들지 않게끔.
“폐하와 함께라면 분명 가능할 테죠.”
잊을 만하면 폐하라 부르는 윤시아 덕에 나는 피식 실소를 흘려야 했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러시아 침공 첫 공격 목표는 블라디보스토크.
우린 러시아를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점령해 나갈 예정이다.
“도착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내 물음에 이번엔 윤시아가 아닌, 대한제국 등장 초기에 귀화한 클로에 주가 답을 주었다.
“약, 5분 정도면 블라디보스토크에 닿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윽 주변을 둘러 보았다.
현재 나를 비롯해 사냥꾼 협회의 주력은 새로운 탈것인 부유 방호 차량과 비행펫에 나누어 탑승해 이동하고 있다.
적대 국가로 지정이 되면 서로의 영토로 웨이포인트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직접 육로나 해로를 건너야만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가 한 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인원은 무려 1천여 명.
아마 이렇게 대대적으로 고속 침투가 가능한 나라는 대한제국뿐일 것이다.
“우리가 당당하게 러시아를 점령하겠다고 선언했으니, 놈들도 철저히 대응해 올 겁니다. 아마 주력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집결해 있을 테지요. 첫 단추를 잘 끼우면 뒷일은 쉬울 겁니다.”
뜬금없어 보이는 이 말은 300명이 탑승 가능한 초고속 비행체 내부에서, 내가 대한제국의 주요 멤버들에게 한 말이다.
꾸준히 성장한 덕에 이곳의 주요 멤버 레벨은 평균 150에 육박하는 수준이 되었다.
레벨 인플레란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지만, 이는 여러 나라를 흡수하면서 덩치를 키운 대한제국이기에 가능한 전력.
단연코 해외 어디에도 이 만큼의 정예를 갖춘 나라는 없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내 말에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을 한 초고속 비행체 안의 멤버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성원은 한국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일본인과 중국인, 심지어 백인과 흑인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명령했다.
“전원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추세요.”
그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장을 갖추고, 나와 우리 파티 역시 출동 준비를 마쳤다.
* * *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고속 비행체.
그 비행체를 눈에 닮은 러시아 측 전력은 마른 침을 삼켰다.
“시, 시X. 진짜 대한제국과 싸우는 건가.”
러시아에 붙은 영주급 몬스터는 총 12개체.
레벨은 180~220으로 평균 레벨은 딱 200이다.
그런데 이 영주급 몬스터들 대부분이 로드급 엘더 몬스터인지라, 휘하의 엘더 혹은, 네임드 몬스터까지 포함되어 표면상으론 충분히 대한제국과 붙어 볼 만하다고 여겨지는 전력이었다.
그렇게 적이었던 몬스터를 든든한 우군으로 맞이하여 대한제국과 싸우게 생겼는데…….
-키아아아아!
살이 떨리는 포효 소리를 내지르는 거대 드래곤을 선두에 두고, 그 뒤를 쫓아 날아오는 SF스러운 비행체들과 수많은 와이번 떼를 보며 러시아 측은 긴장해야 했다.
역시 대한제국, 포스부터 다르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멋들어진 위용이었다.
그게 적이라서 문제인 거지.
그리고.
-고고고고고!
거대 드래곤(룡룡이)과 나란히 날던 비행체의 측면이 열리며, 푸른빛의 날개를 단 남성이 소닉붐을 일으키며 접근해 오기 시작했다.
“저, 저게 서백호.”
“조심해! 다짜고짜 장거리 공격을 날려 올 수 있으니까.”
이어진 누군가의 경고.
그런데 그 경고는 너무도 시기적절했다.
실제로 서백호가 성검을 뽑아 공격을 해 왔기 때문이다.
“어어?”
서백호는 유명하다.
그만큼 그의 전투 스타일도 널리 알려져 있고.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으니, 얼핏 보고 들은 것과 직접 그 공격을 접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란 것이다.
더불어 서백호는 꾸준히 발전해 왔다.
레벨도 올리고, 새로운 장비도 얻고 기존 장비 역시 풀 강화가 된 상태.
-콰아아아아아!
직접 마주한 그의 공격은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했다.
“아, 안나?”
순식간에 덮친 서백호의 성검 방출에 의해 범위 내에 있던 천여 명이 증발해 버렸다.
한 사냥꾼은 자신의 동료가 공격에 휩쓸리는 것을 보며 손을 뻗었는데, 그의 손과 함께 동료는 말 그대로 삭제되어 버렸다.
아무리 전쟁이 무정한 것이라지만, 사람의 목숨이 이렇게 벌레 죽듯 순식간에 없어지다니, 정상적이지 않았다.
그제야 자신들이 싸우는 상대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재차 인지하게 된 러시아 사냥꾼들.
“제, 젠장!”
“표토르! 표토르가 흔적도 안 남았어!”
“이건 안 돼! 개죽음이라고!”
“저런 괴물을 어떻게 이겨!”
서백호의 공격 단 한 방이 날아왔을 뿐인데, 벌써 러시아 측 진영은 패닉에 빠졌다.
“진정해! 무주지의 영주님(몬스터)들이 나설 거다! 그분들이라면 서백호를 막을 수 있어!”
그럼에도 러시아 사냥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물러서지 못한 거라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들의 생살여탈권을 쥔 고위 사냥꾼들이 뒤를 지키고 있는 데다가, 드디어 러시아가 준비한 비장의 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엘더 매지션 로드 크로슈 / 레벨: 180]
[엘더 나이트 로드 안델로스 / 레벨: 200]
[엘더 어쌔신 로드 유니트 / 레벨: 220]
영주급 몬스터 열둘이 무시무시한 기세를 뿌리며 서백호를 향해 날아가는 모습을 러시아 사냥꾼들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오오오!”
덕분에 언제 겁을 먹었냐는 듯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서백호를 향한 저주와 함께 동료의 복수를 그들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무기를 맞대야 하는 적(몬스터)이었음에도 말이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앙!
-쇄애애애애액! 고고고고!
그리고 벌어진 전투는 마치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무시무시한 위용을 자랑했다.
서백호에 이어 그의 동료인 윌리아와 시에나가 합류하고, 헬레나를 포함한 펫들 역시 전투를 지원했다.
매우 치열하게 진행되던 전투.
하지만 얼마 안 가 러시아 진영 사람들의 표정에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방금 하나 당한 거지?”
“어어? 또 하나 당했어!”
그들은 비장의 수.
주변국의 손가락질을 받아 가며 동맹을 맺은, 극강의 무력을 자랑하던 무주지 영주들이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서백호 일행에게 일방적으로 밀려 목숨을 잃어 갔다.
“아, 안 돼.”
“망했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영주급 몬스터들은 이렇게 쉽게 패배해선 안 된다.
그들의 패배는 곧 러시아의 패배를 의미했으니까.
그러나 야속하게도 전투는 오래지 않아 엔딩을 맞이했고.
“…….”
서백호의 손에 목이 뒤틀려 죽은 마법사형 마족의 사체가 빛과 함께 사라지며, 러시아에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