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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32화 (232/273)

232화 명분 충족 (2)

내 계획은 심플하다.

반대한제국 측이 무주지의 영주급 몬스터를 끌어들여 우리를 견제할 예정이라면 그 결정에 반하는 이들을 결집시켜 내부에서 흔들 생각이다.

“그리고 그 중심 역할을 하는 게.”

“독일의 헤르만 로렌츠과 미국의 데이비드 카터란 거네.”

시에나가 이해했다며 퍼즐을 맞췄단 표정으로 내 계획에 필요한 핵심 인력들의 이름을 거론했다.

그녀의 말대로다.

그 둘을 이용해 반대한제국 측을 분할하고, 이들이 혼란에 빠졌을 때 단번에 병합할 생각이다.

하지만 이 계획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헤르만과 데이비드가 내 뜻대로 움직여 줘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 둘이 너한테 협력할까? 주변에서 바람을 넣은 덕분에 너에게 나름 대항 의식을 갖고 있을 텐데.”

시에나도 이게 가능한지 모르겠단 얼굴로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나는 이에 대해 문제 될 것 없단 반응을 보였다.

“현재 반대한제국 측은 무주지의 영주급 몬스터라는, 우리의 대항 수단을 손에 넣었습니다. 덕분에 저의 대응 상대로 거론되던 헤르만과 데이비드는 얼떨결에 후순위로 밀리고 말았죠.”

“그 상황만으로 네 뜻대로 그 둘이 움직이지는 않을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잊으셨어요? 무주지의 영주급 몬스터는 마족이 대부분이란 거.”

“그게 왜?”

“헤르만은 마족의 밑에서 검투 노예로 부려졌었고, 데이비드는 마족 마법사들에게 인체 개조를 당해 반 괴물이 된 상태입니다. 그 둘은 마족이란 존재에 학을 뗄 수밖에 없는 입장이란 거죠.”

“그런 것치곤 자국의 결정에 얌전히 있는 거 같은데?”

“둘의 힘이 아직 대세를 거스를 정도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 말은 즉?”

“헤르만과 데이비드에게 필요한 힘을 주면 된다는 거죠.”

물론, 내 말이 100% 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상황이야 내 뜻대로 흐르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닐까?

* * *

마계에서 귀환한 헤르만 로렌츠는 자신의 숙소로 배정된 뮌헨의 대저택에서 미슐랭 스타 셰프가 내어 온 식사를 즐겼다.

“푸엣취!”

그런데 음식을 잘 먹고 있던 그가 대뜸 요란한 재채기를 내뱉었다.

하필이면 로렌트는 와인을 마시던 중이었고, 덕분에 그의 맞은편에 앉아 식사하던 유럽연합 사냥팀의 간부가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괜찮으십니까?”

“누가 내 이야기 하나? 갑자기 간지럽네.”

하지만 유럽연합의 간부는 불만을 토할 수 없었다.

이유는 눈앞의 헤르만이란 남성이 독일의 제일…….

아니, 유럽 제일의 강자였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간부는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헤르만을 걱정하듯 말했다.

“혹시 모르니, 최상급 회복약 하나 드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 됐어. 어디 아파서 그런 건 아니니까.”

당연히 그 말이 입에 바른 대사임을 아는 헤르만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헤르만은 손으로 대충 입가를 훔친 후 식탁보로 닦으려 했는데.

“이거 쓰세요.”

그런 그에게 곁에 있던 여성이 냅킨을 건네 왔다.

“아, 아아. 땡큐. 아직 네가 있단 게 익숙하지 않네.”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금발의 똑단발, 얼굴부터 체형까지 마치 마네킹을 보듯 밸런스가 좋은 미인이 헤르만의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특이하게도 눈가를 얇은 흰색 베일로 가리고 있었는데, 행동을 보면 앞을 보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가지런한 흰색 로브에 큼지막한 수정이 달린 지팡이를 가진 그 여성은, 바로 헤르만이 공을 들여 만든 첫 번째 NPC 동료였다.

[제니스 / 레벨: 185]

포지션은 대한제국의 윌리아를 따라 한 힐러 겸 마법형 딜러.

레벨은 헤르만의 수준에 자동으로 맞춰져 185가 되었다.

몬스터에 의해 불모지로 변한 지옥의 땅 브레멘의 안전 구역에서 성당을 관리하던 제니스란 이 NPC는 헤르만의 트로피나 다름없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녀로 인해 헤르만의 가치가 더욱 높아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헤르만은 강하고 미인인 동료를 얻었음에도 그녀를 꽤나 껄끄러워했다.

이유는 외형만 보고 제니스를 동료로 선택했지만, 막상 동료로 만들고 보니, 그 성격이 자신과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NPC도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다양한 성격을 갖고 있었는데, 그녀는 매우 조신했다.

과할 정도로.

헤르만이 바란 건 서백호, 윌리아 커플처럼 믿을 수 있는 동료 겸 애인을 갖는 거였으나, 철옹성과 같은 그녀의 방어는 쉬이 뚫릴 것 같지 않았다.

“자꾸 끈적한 시선 던지면 저 돌아갑니다?”

“어? 어어, 미안.”

심지어 유럽연합 차원의 지원으로 각종 아이템을 이용해 손쉽게 호감도 수치를 높여 동료로 만든 덕인지, 그녀는 툭하면 이렇게 동료의 연을 끊겠다 협박을 했다.

덕분에 그 강건한 헤르만이 NPC 동료의 눈치를 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유럽연합 차원의 지원을 받은 만큼 스킬북과 각종 아이템 등 그녀에게 투자된 비용이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러니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야, 똑바로 일 안 하냐?”

“무언가 마음에 안 드시는 일이 있으십니까?”

그로 인해 헤르만의 짜증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졌다.

와인 테러를 당한 데다가 대뜸 갈굼까지 받게 된 유럽연합의 간부는 ‘이 미친놈 또 지랄이네’란 생각을 했지만, 이를 내색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면 개선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유럽연합에서 결국 무주지의 영주급 몬스터들을 끌어들이기로 했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사실이야?”

“…….”

그런데 막무가내로 시작된 것처럼 보인 갈굼은 무시하기 힘든 주제를 담고 있었다.

“대한제국에 대항을 할 거면 그냥 인간끼리만 힘을 합쳐도 되잖아. 뭐 하러 마족 새끼들과 손을 잡아야 하는데?”

“그, 영주급 몬스터가 전부 마족은 아닌…….”

“대부분이 마족이잖아. 그럼 마족과 손을 잡는 것이나 다름없지. 장난해?”

헤르만은 마족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마족은 헤르만에게 강해질 계기를 주었으나, 그를 검투사로 만들어 수백, 수천 번 죽음의 위기를 겪게 만든 주체였으니까.

“하지만 대한제국이 공개한 정보에 의하면 마계의 일반 마족은 NPC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반면 무주지 대부분의 영주들은 종족이 마족임에도 몬스터 취급이죠. 그들과 헤르만 님께서 싫어하는 마족은 다르다고 보시는 편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지랄하네. 네 말대로면 그게 더 문제 아니야? 아무리 급해도 몬스터와 손을 잡는 건데?”

“몬스터이긴 하나 그들은 말이 통하는 상대로 서로 이득을 공유하는…….”

“근본적으로 시스템에 의해 적으로 규정된 게 몬스터잖아.”

결국 헤르만을 말로 설득하는 데 실패한 유럽연합의 간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현실 이야기를 했다.

“저희도 그게 옳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도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죠.”

“그런데 왜?”

“놈들을 끌어들이지 않고는 서백호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있는데도?”

“그…… 아직 헤르만 님의 성장이 완전하지 않아서요. 아, 물론, 시간문제일 뿐 머지않아 헤르만 님이 서백호를 추월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갑자기 솔직해진 간부의 모습에 헤르만은 불쾌함에 혀를 찼다.

괜히 불편한 NPC 동료를 피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으나 본전도 못 찾은 느낌이다.

그리고 헤르만은 상대의 솔직한 반응 덕에 생각 이상으로 국가 고위층이 가진 서백호 공포증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대단하단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있긴 하지만, 직접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지라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헤르만은 마계에서 항상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워 온지라 같은 인간에게 진다는 생각은 쉬이 들지 않았다.

“아무튼, 상부도 계속 몬스터의 손을 잡고 있진 않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고, 힘이 축적되면 당연히 놓겠지요.”

간부의 이야기에 헤르만이 고개를 내저었다.

“병신들. 마족을 물로 보는구만.”

“네?”

“그놈들이 퍽이나 이용만 당해 주겠다.”

그는 유럽연합을 포함한 반대한제국 연합이 마족들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 여겼다.

하지만 그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들을 설득할 수 없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유럽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 건지.’

짜증이 솟구쳤지만, 귀환자인 헤르만은 아직 유럽연합 내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모두의 존중을 받고 있고 적지 않은 추종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것과 권력은 별개의 문제였으니 말이다.

그는 본래 싸우는 것이 체질이지만,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연합 내에서 영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오늘 식사 즐거웠습니다. 부디 다음에도 초대해 주셨으면 합니다.”

“봐서.”

“하하,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식사가 끝이 나고 오래지 않아 유럽연합 사냥팀의 간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헤르만은 짧은 말로 배웅을 대신했는데, 어째서인지 이후 가사도우미가 테이블을 정리하는 동안까지 식당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동료 NPC인 제니스가 의아해했다.

그런데 그때.

“나와.”

살기 어린 헤르만의 대사가 울려 퍼지고, 식당 출입구와 창문 쪽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솟구쳤다.

[엘더 이터 헬레나 / 레벨: 217]

[블러디 하이 엘프 다켈프 / 레벨: 212]

예상치 못한 침입자에 냉정을 유지하던 제니스가 처음으로 헛바람을 삼키며 놀란 모습을 보이고, 용케 이들의 존재를 알아챈 헤르만은 눈살을 찌푸리며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헤르만은 마계에서 검투사였던 만큼 장비와 스킬이 레벨에 비해 보잘것없었다.

때문에 유럽연합에선 심혈을 기울여 그의 장비를 세팅해 줘야 했는데, 그런 그에게 배정된 무기는 무려 3강까지 강화가 완료된 유일 등급의 대검 ‘발뭉’이었다.

자기중심적인 헤르만마저 만족해할 만큼 엄청난 보물임이 분명한 무기인데…….

“제법인데? 그쪽에서 먼저 우리의 기척을 느낄 줄이야.”

상대들이 든 무기에선 그의 발뭉을 상회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헬레나와 다켈프라…… 들어 본 적 있는 이름들이군.”

모를 수가 없다.

그들은 바로 서백호의 부하 겸 동료라 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으니 말이다.

‘헬레나는 서백호를 쫓아다니는 특이한 몬스터이고, 다켈프는 펫이라 들었어. 그런 놈들에게 저런 말도 안 되는 무기를 쥐여 주다니. 서백호는 유일 등급 장비가 남아도는 건가?’

유일 등급 장비는 국가 단위로 관리할 만큼 귀한 보물.

하지만 헬레나와 시에나가 쥔 무기는 그런 보물 중에서도 최고로 느껴지는 물건이었다.

‘아니, 유일 등급 무기가 전부가 아니야. 둘에게 풍기는 기운도 만만치 않아. 어찌 된 거지? 엘더 이터란 특수종인 헬레나는 둘째치고 다켈프는 펫이잖아? 펫은 일반 몬스터가 베이스일 텐데, 대체 뭐야 이 막강한 기운은.’

헤르만은 직감적으로 이 둘과 싸우면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거란 느낌을 받았다.

보통 엘더 몬스터는 표기된 레벨보다 강하기 마련이니 이해할 수 있어도, 일반 몬스터가 베이스인 다켈프에게서 조차 위기감을 느끼는 건 뭔가 이상했다.

이는 서백호가 펫 격상권이란 것을 이용해 다켈프를 네임드급 이상의 특수종으로 강화했기에 발생한 차이지만, 이를 헤르만이 알 턱이 없었다.

‘지휘부가 서백호를 겁내는 것도 이해되는군.’

본인이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 위기감을 심어 주는 존재다.

새삼 사람들이 왜 그렇게 서백호를 무서워하는지 단편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아아, 그리 정색할 필요 없어. 우린 심부름을 온 것뿐이니까.”

“하! 심부름? 얼마나 대단한 심부름이길래 이렇게 몰래 침입을 하는 거지?”

“음, 경계하는 게 당연한가? 그럼 사과할게. 미안. 전달할 게 은밀함을 요구하는 거라서.”

너무도 가볍게 내뱉은 사과.

헤르만은 황당해하며 두 사람을 겨누었던 무기를 내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전투가 벌어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속으로 안도했는데, 헤르만은 내심 자신이 약한 마음을 먹었단 사실에 당황했다.

“큼, 그래. 은밀함을 요구하는 심부름이 뭔지 들어나 볼까?”

헤르만은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식탁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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