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폭발 (1)
“이럴 때가 아니지! 어딥니까? 멤버들이 습격당한 장소가.”
나는 습격을 받았다는 멤버들의 위치를 급히 물었다.
“자, 장소가 어디냐면…….”
그에 강이솔은 8개 장소를 하나하나 일러 주었다.
장소는 크게 세 곳으로 분류할 수 있었는데, 마경에 다섯 곳, 필드 두 곳, 던전 한 곳이다.
나는 즉시 파티원들과 펫, 부하들을 분산시켜 8팀을 모두 지원케 했다.
‘마계와의 전쟁에 대비해 최소한의 희생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했어. 그런데 그게 너무 무른 생각이었을까?’
협회 주요 멤버들을 기습하는 예상치 못한 형태의 반란에 입술을 깨문 나는 즉시 윤시아가 있다는 장소로 이동했다.
나는 한시도 쉬지 않고 달리고, 날고, 순간이동을 했다.
덕분에 주변의 풍경이 미친 듯 빠르게 바뀌어 갔다.
‘누구 하나 죽기만 해 봐. 전부 뒤집어 버릴 테니까.’
나는 대한제국 내 측근들의 무사를 빌며, 관련 세력에 대한 자비 없는 척결을 다짐했다.
* * *
대한제국에서 반란이 발생하기 며칠 전.
서백호에게 경상도 킹스맨이라 불리는 김시우는 해체된 남부 패밀리에서 3인자였던 인물이 내뱉은 폭탄 발언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이 이상의 성장을 포기하겠다고?”
몬스터를 사냥하면 경험치와 코인, 아이템, 스킬 등을 얻을 수 있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몬스터를 사냥하고, 그를 통해 얻은 보상으로 생활하고 나 자신을 강화하는 게 기본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잊어선 안 되는 사실이 있다면 현실은 게임이 아니란 것이다.
부상은 회복약이나 스킬로 치료할 수 있어도,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젠 힘에 부치네. 수시로 새로운 사냥터를 공략해야 한다는 것도 큰 부담이지만, 내 레벨 대의 몬스터들이 요즘 따라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무서워.”
때문에 세계 평균 레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자신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옛 남부 패밀리의 주력 멤버마저 낙오를 택하자 김시우는 당혹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위로 계속 올라가는 것도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거야. 단순한 노력만으론 안 돼.”
하지만 이어진 상대의 말에는 김시우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 강조했듯 현실은 게임이 아니다.
꾸준히 위로 올라가기 위해선 그만큼 위험한 모험을 계속해야 한단 뜻이다.
목숨을 건 싸움을 지속한다는 게,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때문에 지체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사냥꾼들을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하긴, 단순 노력만으로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긴 하지. 윤시아나 클로에 주를 보면 재능의 차이란 게 여실히 느껴지니까.”
더불어 한국엔 신의 축복을 받은 재능의 덩어리라 할 수 있는 서백호가 있다.
때문에 김시우도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김시우의 모습에 낙오를 택한 옛 동료가 헛웃음을 흘렸다.
“내 눈엔 너도 충분히 재능 넘치는 존재야. 너도 막힘 없이 성장하고 있잖아?”
“그런가?”
실제로 김시우의 레벨은 김현수, 최도겸 등 대한제국 주축 멤버들의 바로 뒤에 위치해 있었다.
이 정도만 해도 세계에서 톱클래스 수준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존재가 낙오자를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여 봤자 기만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아무튼 나는 여기까지야. 앞으로는 레벨 100 이하의 몬스터만 사냥하면서 살려고.”
아쉽지만 김시우는 그의 선택을 막을 수 없었다.
목숨을 건 싸움을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래도 성장을 그만둔다고 사냥꾼이길 포기하는 건 아니고, 대한제국 내에서 그의 지휘 역시 한동안 유지될 터이다.
김시우는 이 옛 동료가 잠깐 최전선을 떠나 머리를 식히면서 떨어진 자존감과 의욕을 회복하길 바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김시우.”
“어? 너 설마 복귀한 거야?”
미국의 사냥꾼 데이비드와 독일의 사냥꾼 헤르만이 서백호에 이어 200레벨 돌파했단 소식이 들려올 때.
김시우는 낙오를 택한 동료의 방문에 크게 반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옛 동료가 슬럼프를 떨쳐 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 3자 교류회 멤버들하고 반대한제국 연합에 붙기로 했어.”
이어진 그의 이야기는 상상치도 못한 내용이었다.
쉬이 믿을 수 없는 소식에 김시우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되물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뭐라고 했어?”
“아니, 넌 제대로 들었어. 그러니까 김시우. 같이 가자. 우리에겐 리더였던 네가 필요해.”
슬럼프에 빠져 낙오를 택했던 그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덴 이유가 있을 터.
김시우는 대충 상황을 눈치챘다.
“미국이야? 아니면 유럽?”
“…….”
“너희에게 바람을 넣은 새끼들이 있을 거 아냐!”
김시우는 자신이 앉아 있던 테이블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그런 그의 반응에도 대한제국을 향한 배신을 종용하러 온 전 동료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렇게 광기 어린 경쟁의 장에서 살아가게 된 게 모두 서백호 때문이란 생각 안 들어?”
“뭐?”
“반대한제국 연합이 만들어진 것도. 그들이 고위 몬스터를 끌어들여 동맹을 맺은 것도, 지금의 세계가 신냉전체제가 된 것도 전부 서백호 때문이란 거지. 놈만 없으면 국제 정세가 이렇게 악화되진 않았을 거야.”
가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지금 세계의 세력이 양분된 게 모두 서백호가 통일 정부 의지를 버리지 않아서라고.
즉, 서백호가 자신의 고집만 접으면 싸울 일이 없다는 의견이다.
“아니, 그건 모두 언제 벌어질지 모를 마계와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잖아!”
하지만 김시우는 이런 주장에 동조할 수 없었다.
예전의 그였다면 무조건 서백호의 주장에 반대 의견을 냈겠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군에 귀속된 지금은 달랐다.
그는 서백호의 예측과 판단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하아, 그건 서백호의 일방적인 주장이잖아.”
“이 사실을 허위로 여기는 거야말로 일방적인 현실 부정이지.”
옛 동료는 생각보다 강경한 김시우의 모습에 쓰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설득이 불가능하다고 깨닫게 된 것이다.
“김시우가 서백호의 딸랑이가 되었단 이야기가 돌던데 진짜였네.”
자존심을 긁는 그 말에도 김시우는 결코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서백호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존재.
감히 그를 배신할 수 없었다.
“너야말로 정신 차려! 서백호 님에게 반기를 들어 봤자 그 끝이 좋을 리 없으니까.”
결국 김시우를 반대한제국 연합으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한 옛 동료는 등을 돌려야 했다.
“네가 그리 강경하다면 어쩔 수 없지. 대신 우리 일이나 방해하지 마.”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건데?”
김시우는 그가 물러나자 안도를 하면서도 이후 그가 저지를 짓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계획을 알려 줄 리 없었다.
“젠장!”
김시우는 떠난 옛 동료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깊은 한숨이 섞인 욕설을 토해 냈다.
그리고 잠시 머릿속을 정리한 그는 각오를 다졌다.
‘내가 막아야 해. 남부 패밀리도, 3자 교류회도 모두 내가 만든 거니까. 어찌 보면 서백호 님을 향한 대항 의식도 나 때문에 생긴 걸지 몰라.’
때문에 김시우는 옛 동료의 계획을 알아내기 위해 최측근을 동원해야 했고.
“뭐!? 최상위 8개 팀 제거 계획!?”
그 계획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가 계획을 알아냈을 땐, 실행을 사전에 차단하기엔 너무 늦은 후였다.
이미 기습에 돌입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빌어먹을! 동원 가능한 전력 전부 끌어모아!”
그나마 다행인 건.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던 그의 행동이, 강이솔이 보고를 받고 병력을 파견한 것보단 빨랐다는 점이다.
‘대한제국의 최상위 팀 멤버 중 누구도 죽어선 안 돼! 그럼 엄청난 피바람이 불 거야!’
김시우는 다급한 얼굴로 바쁘게 움직였다.
* * *
다른 나라에선 보기 힘든 유일 등급의 장비를 대한제국 내에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유는 최상위 팀이라면 최소 3개 이상의 유일 등급 장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모두 유일 등급 장비를 수시로 구해 오는 서백호의 능력 덕이었다.
심지어 그들의 장비는 최소 3단계 이상 강화가 된 상태이며, 주력의 장비는 최소 4강에서 5강까지 된 경우도 있었다.
“비, 빌어먹을! 생각보다 더 강하잖아!”
때문에 막상 대한제국 내 최상위 파티와 맞서게 되면, 그 파괴력은 예상을 크게 웃돌았다.
“배신? 아니, 이 경우 반역이라 봐야 하나?”
세계 5대 사냥팀 중 수위를 다투는 윤시아가 손에 쥔 새하얀 창을 화려하게 돌리고는 이내 강하게 찔러 넣었다.
그러자 그녀의 애병 롱고미안트에서 백광이 번쩍이며, 직선상의 모든 것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수십 명이 몰살을 당하자 습격자들은 주춤거려야 했다.
서백호에 가려져서 그렇지, 윤시아 역시 매우 강력한 존재임을 상대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획대로 간다! 1번!”
“네!”
하지만 아무리 윤시아 일행이 강하다고 한들…….
작정하고 기습을 계획한 사람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반역자들이 거리를 벌리며 연거푸 포획 아이템을 뿌리고, 지금은 보기 힘든 옛 이벤트 상점제 소모성 스킬 아이템을 사용했다.
포획 아이템은 사냥꾼들의 수준에 맞춰 꾸준히 진화해 이젠 레벨 100이 넘는 몬스터 사냥에서도 종종 쓰이게 됐다.
덕분에 윤시아 파티의 레벨이 높다고 마냥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마치 레이드 몬스터가 된 느낌이야.’
심지어 10명인 윤시아 파티를 잡겠다고 반역자 약 300명이 몰려왔다.
그런 적들이 마치 레이드를 하듯 자신들을 공략하니, 윤시아도 서서히 위기감을 느꼈다.
“최대한 버텨. 그러면 지원군이 올 테니까.”
윤시아는 동료들을 다독였다.
기습과 동시에 강이솔에게 보고를 했으니, 머지않아 지원 병력이 올 테니 말이다.
그렇게 윤시아는 배신자들의 기습 공격을 꾸역꾸역 막고 때론 반격하며 전황을 유지했다.
“쳐!”
그런데 그때, 윤시아의 파티 등 뒤에서 새로운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의 존재를 발견한 순간 윤시아는 서백호에게 구원을 받았을 때 이후 처음으로 죽음의 위기를 직감했다.
하지만…….
“어?”
그들은 윤시아를 공격하는 게 아닌 배신자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윤시아 씨! 괜찮으세요!?”
“김시우?”
그들 틈엔 다름 아닌 김시우가 끼어 있었다.
“후우…… 다행입니다. 늦지 않았네요.”
안도하는 그의 모습에 윤시아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기습해 온 상대들이 옛 3자 교류회 출신임을 바로 알아보며, 그녀 멋대로 김시우 역시 배신자라 짐작했었기 때문이다.
“일단 상황부터 정리하죠.”
“그, 그래.”
윤시아는 쉬이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김시우가 따로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닌지 예의 주시 하며 싸웠다.
이런 그녀의 생각을 아는지 김시우는 더욱 열심히 옛 동료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오래지 않아 전투는 윤시아 측의 승리로 끝이 났다.
“김시우!”
“이 배신자 새끼!”
3자 교류회 출신들은 설마 김시우가 자신들의 계획을 망칠 거라 생각 못 했기에 굉장히 분노했다.
하지만 김시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을 뿐 그들과 말을 섞지 않았다.
불필요한 대화는 그의 입장을 불리하게 만들 뿐이니까.
“이게 뭔 상황이야?”
그리고 머지않아.
모두를 흠칫 떨게 만드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시우 네가 설명해 봐.”
새로운 등장인물은 대한제국의 지도자, 서백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