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37화 (237/273)

237화 폭발 (3)

“당신들이 바라는 게 대한제국과의 전면 전쟁이면 아주 옳게 된 상황이네, 안 그래?”

반대한제국 연합의 긴급 회의장.

헤르만은 그곳에 자리한 사람들을 쓱 둘러 보며 그리 발언했다.

긴급 회의장엔 반대한제국 연합에 소속된 주요 국가의 수장들과 고레벨의 사냥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헤르만의 이죽거림에 억울하단 표정을 지어야 했다.

“대, 대체 누가 이런 멍청한 짓을 벌였단 말입니까!? 굳이 평화롭게 흘러가는 국제 정세를 혼돈에 빠뜨리다니요!”

그리고 그때, 신상하이방의 방주이자 현 중국 주석인 류이창이 외쳤다.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이 가득 담긴 음성.

류이창은 서백호를 굉장히 무서워하는 부류이기에 지금의 상황에 성을 내는 게 당연했다.

“왜 이쪽을 쳐다보십니까? 전 이 일과 무관합니다.”

“나, 나도 아니야. 평소 대한제국에 대한 불만을 많이 토로하긴 했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 평화주의자라고.”

하지만 그의 말에 돌아오는 반응은 한결같았다.

다들 자신은 관계없다며 고개를 도리질 칠 뿐이었으니까.

헤르만은 그런 류이창과 주위의 모습에 도리어 코웃음을 쳤다.

그는 회의실 테이블 위에 양발을 얹는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지랄들 하네. 연합체 이름에 떡하니 ‘반대한제국’이란 명칭을 박아 놓고 그들과 싸우긴 싫은 모양이지?”

“…….”

계속해서 이어지는 헤르만의 도발적인 언행에 누구 하나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현재 독일의 헤르만과 미국의 데이비드가 가진 발언력은 이 자리에 모인 누구보다 높다.

때문에 그의 태도나 발언을 문제 삼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대한제국 내에서 벌어진 반역 행위에 의견을 냈다가 괜히 의심을 받을까 걱정이 밀려왔다.

그래서 다들 눈알만 굴려 댔다.

-지그시.

결국, 사람들의 시선이 미국 대통령에게 향해졌다.

뭔가 말 좀 해 보라는 듯이.

하지만 이런 주변의 반응에도 미국 대통령은 입을 열지 않았고, 결국 프랑스 전 대통령이 모두가 꺼내길 망설이던 주제를 대신 꺼냈다.

“그런데 우리가 했단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프랑스 전 대통령의 물음에 헤르만이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가 아니면 누군데? 설마 대한제국 측이 자작이라도 했단 거야?”

“다른 증거가 없다면 우리 단체를 위해서라도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발뺌하면 그만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는 전 프랑스 대통령의 모습에 헤르만은 아직 이들이 정신을 못 차렸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더 큰 문제 아냐?”

“네?”

“만약 이 상황이 자작극이라면 저쪽은 아예 우리랑 전쟁하겠단 마인드란 거잖아? 그럼 그냥 전쟁할까?”

“아…… 그렇게 되는군요.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오히려 이 상황이 대한제국의 자작극인 편이 더욱 좋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덕분에 전쟁을 막기 위해선 괜히 머리 굴려 책임을 회피하려 말고, 범인을 찾아내든가 아니면 범인을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깨닫게 되었다.

“이거 참.”

“어찌한다…….”

다들 심각한 얼굴로 앓는 소리를 내고 있을 때.

독일, 프랑스와 함께 현 유럽연합을 이끄는 영국의 총리가 조소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이며 끼어들었다.

“굳이 전쟁을 피할 필요 있소?”

그에 모두가 황당하단 반응을 보이고, 이는 헤르만과 데이비드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그럼 전쟁을 하자는 건가?”

처음으로 헤르만을 대신해 데이비드가 입을 열었다.

고양이처럼 세로 동공의 눈을 가진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지자 영국 총리가 움찔거렸다.

그러나 그는 이내 헛기침과 함께 태도를 고치며 단호히 답했다.

“굳이 걸어온 싸움을 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우린 대한제국에 대항하기 위한 단체이지 않습니까?”

“대항 단체이긴 하지. 그러나 무작정 대한제국과 싸우는 게 아니라 견제를 통해 그들의 무리한 확장을 막고, 연합국 회원국의 주권을 지키는 게 설립 목적이라 생각했는데?”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싸워야죠. 우리 가족의 안위와 동료들의 명예를 위해.”

영국 총리의 주장이 통한 걸까?

몇몇이 동조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헤르만과 데이비드 모두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영국 총리의 말이 맞아.”

“우리가 굳이 겁먹고 움츠러들 필요 있을까? 무주지의 영주들도 있는데.”

놀랍게도 서방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영국 전 총리를 지지하는 사람 중엔 현 이슬람 수니파 세력의 지도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전이라면 감히 생각지도 못할 상황.

그런데 왜일까?

헤르만과 데이비드는 그들의 모습이 잘 만들어진 연극을 보는 것 같단 느낌을 받았다.

“범인을 찾을 생각을 않고 전쟁을 하자는 말이 나오다니. 뭔가 구린내가 나는군.”

“구린내라뇨. 말씀이 심하시군요.”

“정작 전쟁을 주장하는 당신은 전투 인력이 아니잖아? 편한 곳에 앉아서 전쟁을 부르짖는 건 위선이라 생각하지 않나?”

“그건 인정합니다. 위선처럼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영국의 총리는 구세력을 대표하는 존재.

정치적으론 헤르만과 데이비드의 반대편에 속한 이들로, 두 사람이 생각하기에 대한제국 내에서의 사건에 가장 가능성 높은 용의자 중 하나였다.

“굳이 극단적인 주장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거 보니……. 혹시, 이번 일 당신이 꾸민 거 아냐?”

“헤르만 님은 편해서 좋으시겠습니다. 필터 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을 수 있어서요.”

“…….”

잔뼈 굵은 정치꾼인 영국 총리의 발언에 회의장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런데 그의 도발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이거 참 실망입니다. 헤르만 님과 데이비드 님 두 분은 서백호의 대항마로 세력을 키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막상 싸울 상황이 벌어지니 피할 생각만 하시네요. 그렇게 서백호가 무서우십니까?”

도발을 넘어선 조롱에 헤르만의 얼굴에 굵은 핏줄이 돋아나며 금방이라도 검을 뽑아 들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영국 총리가 나섬으로 인해 회의장의 세력은 3등분 되었다.

하나는 헤르만과 데이비드의 세력, 다른 하나는 중립 세력, 다른 하나는 영국 총리를 지지하는 구 권력층이었다.

‘나와 헤르만, 중립 세력 측은 전쟁을 피하자는 입장이고, 영국 총리를 비롯한 구 권력층은 모두 전쟁을 바라고 있어.’

웃긴 점이 전쟁을 바라는 구 권력층은 대부분이 정치인들로 비전투 인력이란 점이다.

때문에 그런 이들이 말만 지껄이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사냥꾼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의 주장을 마냥 가볍게 여길 수 없었는데, 무주지의 영주급 몬스터들의 관리를 도맡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먹을 게 있으면 파리가 끼는 건 당연한 일.

덕분에 이들을 지지하는 사냥꾼들도 분명 존재했다.

“영국 총리는 목숨이 두 개인가 보군.”

반대한제국 연합의 긴급 회의장이 내부 분열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는 분명 서백호가 바라 오던 상황이지만…….

어째 그 서백호 본인은 예상을 벗어난 행동을 계획하고 있었다.

-흠칫.

영국 총리를 위협하듯 검에 손을 가져가던 헤르만이 느닷없이 몸을 떨었다.

이어서 헤르만이 갑자기 자세를 곧추세우며 심각한 표정을 짓자, 예상 밖의 상황에 많은 사람이 의아함을 표했다.

저 개망나니가 웬일로 참고 있냐면서.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전쟁을 주장하며 헤르만을 흥분시킨 영국 총리의 물음.

헤르만은 언제 그와 다투었냐는 듯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전해 왔다.

“아무래도 서백호가 범인을 찾은 모양이야.”

“네?”

“서백호가 쳐들어왔다는군.”

“헙!”

그로 인해 시끌벅적하던 회의실에 공포가 자리했다.

“서백호의 공격 대상이 누굽니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인간이 아니네?”

“그, 그 말은?”

“그래, 아무래도 무주지의 영주 몬스터들이 뒤에 있던 모양이야.”

그에 몇몇 사람들의 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 * *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넘어져도 동전 줍고, 뒤로 걷다 쥐 잡고.

명분을 쥐고 있는 만큼, 반대한제국 연합에서 가장 위협적인 상대를 쳐 죽이고, 헤르만과 데이비드를 시켜 그들을 범인으로 몰 생각으로 쳐들어온 것이었는데.

[제, 젠장!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알아챈 거지?]

[정보가 샌 건가!?]

알고 보니, 정답이었던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기겁하며 자신들의 죄를 토로하는 마족들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가뜩이나 끌어 올랐던 살의가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반대한제국 연합은 이런 멍청한 놈들 때문에 놀아났다니.

나는 길게 재고 따질 것 없이 바로 검을 꺼내 들어 몸을 날렸다.

그중 레벨이 가장 높고 말도 많은 놈에게.

[엘더 매지션 로드 크롤리 / 레벨: 240]

내 현재 레벨은 223.

상대하는 몬스터는 레벨 230 여섯에 240이 하나다.

아무리 놈들이 특출나게 강한 특수 몬스터라 해도 레벨이 엇비슷하다면 절대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250 이상의 준드래곤급 몬스터들을 토벌하며 더욱 업그레이드된 장비빨과 전투 능력을 선보이며, 윌리아, 시에나, 헬레나, 펫들과 함께 놈들을 압박했다.

[대체 어찌 이런 빠른 대응이 가능한 것이지?]

레벨 240의 크롤리란 마족이 전투 중에도 쉬이 이해가 안 된다며 내게 답을 구해 온다.

하지만 내가 답할 수 있는 건 이 한마디뿐이다.

“뽀록이야.”

[뭐?]

그 외에 뭐라 하겠는가.

그런데 내 솔직한 답변에 놈은 크게 분개했다.

[이이익! 감히 미개한 인간 주제에!]

아무래도 내가 자신을 우롱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놈은 특이하게도 하나하나 막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검은 광선을 딜레이 없이 난사해 댔는데, 놈이 발작하자 날아드는 광선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수십 다발의 검은 광선이 노끈처럼 엮이며 더욱 굵고 파괴적인 위력의 공격으로 변모하자 나는 제3의 손으로 성검 칼립소를 뽑아 들어 성검 방출을 사용했다.

이어서 검은 광선과 짙푸른 광선이 충돌하며, 놈들이 차지하고 있던 오스트리아의 빈 쉔브룬 궁전이 일시에 소멸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놈은 제법 강했다.

공격 하나하나가 전술 미사일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끄아아악! 이, 이놈이.]

하지만 이는 지금까지 싸워 온 상대들에 비해 특별하다 할 수 없고.

[자, 잠깐…….]

내게 큰 위협이라 할 수 없었다.

“분신.”

폭주 스킬까지 사용할 필요도 없다.

분신 스킬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놈은 정신없이 날아드는 검에 뒤로 밀리고 밀리다가, 끝끝내.

[안 돼! 이렇게 죽을 순…….]

-푹!

[끄아아아악!]

최후를 맞이했다.

[무주지의 영주 엘더 매지션 로드 크롤리를 토벌했습니다.]

[크롤리의 영지와 재산이 대한제국에 귀속됩니다.]

[크롤리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이후 나는 다른 동료들이 상대하며 시간을 끌고 있던 마족들을 하나씩 처치해 나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230레벨의 마족 2마리를 놓치고 말았다.

그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 놈들을 처리하고 대충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울 생각이었는데, 진짜 진범으로 밝혀지지 않았는가?

‘놈들과 협력한 인간들도 잡아야 하지 않겠어?’

도주한 마족들과 접촉하는 반대한제국 측 인사가 있다면 무조건 공범이란 뜻이니, 이번 사건의 범인들을 일망타진할 기회가 될 거다.

즉, 두 마리는 일부러 놓아줬다는 뜻이다.

‘이번 일을 기회로 헤르만과 데이비드를 이용해 무주지의 영주인 마족들을 반대한제국 연합에서 몰아낼 수도 있을 터.’

감히 몬스터 주제에 인간들 사이를 이간질시켜 전쟁을 일으키려 한 것이다.

반대한제국 연합의 전력을 약화시킬 참 좋은 명분이다.

‘모든 상황이 날 돕는군.’

이제 진짜 지구를 일통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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