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폭발 (4)
“그게 무슨? 설마 크롤리 일파가 당했단 건가? 이렇게 순식간에?”
반대한제국 연합은 총 100명이 넘는 무주지의 영주, 즉 마족들과 동맹을 맺었다.
그중 레벨 240의 마족 크롤리가 레벨 230의 마족 6명과 함께 만든 세력을 일명 ‘크롤리 일파’라 칭했다.
이 크롤리 일파는 반대한제국 연합이 동원할 수 있는 전력 중에서도 가장 높은 레벨과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즉, 서백호에게 대항하기 위한 핵심 전력이자 비밀 병기란 뜻이다.
“그런 모양이야. 마야, 제이든만 겨우 살아서 도망쳤다는군.”
그런데 이런 비밀 병기가 서백호의 기습에 한순간에 정리가 되었다?
긴급 회의장에 자리한 이들은 조소와 함께 이어진 헤르만의 상황 보고에 하나같이 경악한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특히 방금까지 자신만만한 태도로 대한제국과의 전쟁을 주장하던 영국 총리의 얼굴이 볼만했다.
“마, 말도 안 돼.”
“크롤리 일파라면 서백호 일행을 막고도 남을 거라 생각했는데…….”
“당연하지! 레벨 240 하나에 230 여섯으로 이뤄진 파티라고! 더구나 놈들은 로드급 엘더 몬스터가 아닌가!? 일반적으로 로드급 엘더는 레이드 몬스터 취급일 텐데!?”
지금까지 이들이 대한제국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던 이유가 자신들에겐 서백호의 억지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억지력 역할을 해 줘야 할 크롤리 일파가 맥없이 당해 버렸다면…….
반대한제국 연합이 할 수 있는 수법이라곤 인해 전술뿐이었다.
아직 100명에 육박하는 200레벨 전후의 무주지 영주들과 대한제국의 2배에 달하는 사냥꾼 수를 보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사태는 일단락된 거 아닙니까? 대한제국을 건드린 원흉이 죽은 거니까요.”
그러나 모든 전력을 쏟아 내는 인해 전술은 제 살 깎아 먹기밖에 되지 않는 무식한 수단.
심지어 예상을 웃도는 서백호의 무력 덕에 인해 전술을 써도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때문에 긴급 회의실의 멤버들은 언제 전쟁을 논했냐는 듯, 원인 제공자가 죽어 상황이 종료되었으니 문제없는 거 아니냐는 희망 섞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서백호의 심판이 이걸로 끝날 리 없다는 것을.
그리고 대한제국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는 것을.
“크롤리 일파의 두 영주가 도망친 데다가, 몬스터인 그들을 대신해 일을 실행한 인간 수족들이 남아 있을 겁니다.”
“그 말씀은?”
“서백호의 평소 성향을 생각하면 관련자를 수색하겠다며 우리 연합을 뒤엎으려 할 겁니다. 분명 샅샅이 연합 내부를 들여다보고 심판의 칼을 들어 먹기 좋게 다듬으려 하겠죠.”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내뱉는 데이비드.
그에 사람들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고민해야 했다.
이 사태를 어찌 해결해야 할지.
“일단 자체적으로 수사대를 꾸리는 게 우선입니다. 표면적으로 대한제국을 도우며 그들의 곁에 붙어 폭주를 막아야 합니다.”
“잠깐만요. 그러면 꼭 우리가 항복하는 거 같지 않습니까?”
“제가 서백호라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억지 누명이라도 씌워 살려 두려 하지 않을 텐데요?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헤르만은 금세 시끌시끌해지는 회의장을 둘러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야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한 모습이 되었으니 말이다.
‘크롤리 일파가 무너지자마자 이 꼴이라니.’
그리고 헤르만은 피식 웃으며 손을 들었다.
자연히 회의실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고.
헤르만이 태연히 말했다.
“수사권 제게 주시죠.”
“…….”
수사권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당혹스러워했다.
데이비드의 말대로 사태 해결을 위해선 연합 내의 누군가가 수사팀의 수장이 되어야겠지만…….
왠지 헤르만에게 그 수사권이라는 중대한 권한을 주면 평소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사람까지 사건에 엮어 제거하려 들지 모른다는 걱정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헤르만 님이 뛰어나시다는 것을 매우 잘 알지만. 그러나 이 일은 의견을 직접 내 주신 데이비드 님이 적임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헤르만에게 종종 불만을 드러내던 이들이 괜히 찔려 그리 주장했다.
덕분에 연합을 위험에 빠뜨린 내부인을 찾아내고 처벌하는 권한을 가진 대표 수사관 자리에 미국인 데이비드가 일사천리로 임명되었다.
그에 헤르만은 불만 어린 표정을 보였지만, 딱히 반발을 하진 않았다.
어차피 헤르만이나 데이비드나 목적은 같았으니까.
* * *
“끝났군.”
발등에 불이 떨어진 반대한제국 연합이 최악의 수를 두었다.
바로 데이비드를 연합 내 ‘전쟁 범죄 수사관’으로 임명하며 막강한 권한을 쥐여 준 것이다.
데이비드와 헤르만이 내 사람임을 알았다면 과연 이런 권한을 부여할 수 있었을까?
어찌 되었든 수사 권한을 손에 넣은 데이비드는 연합 내 고위 인사들의 기대를 배신하며 반대한제국 성향이 노골적으로 강한 이들부터 온갖 이유를 들어가며 체포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를 따르는 이들의 충성심은 헤르만을 따르는 이들을 상회하면 상회했지, 결코 덜하지 않는다.
덕분에 데이비드가 한 번 조사 대상으로 낙인을 찍으면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어떤 식으로든 자백을 받아 냈다.
저지르지 않은 죗값까지 말이다.
연합은 데이비드가 휘두르는 망나니 칼에 잔뜩 쫄아 내부 분위기가 흉흉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주지의 영주 두 놈을 놓아준 게 정답이었군.’
그리고 연합을 조사하는 건 데이비드만이 아니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놓친 두 마족과 연관된 끄나풀을 찾아 대한제국의 조사관이 연합에 파견되니, 연합은 서서히 붕괴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놓친 두 마리는 진작에 쫓아가 토벌했다.
때문에 대한제국의 조사는 데이비드와 손을 잡고 연합을 해체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해 그른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고, 저희를 받아 주십시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눈치 빠른 한 사람이 연합을 탈퇴하고, 우리 대한제국에 들어오고 싶다며 선수를 쳤다.
그는 바로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이미 미국 측 세력은 데이비드에 반쯤 잠식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표면적인 국가의 수장은 그인 만큼 지금의 상황은 꽤나 상징적으로 비쳤다.
“흐음.”
나를 향한 그의 태도는 완전히 윗사람을 대하듯 바뀌어 있었다.
원래 그와 나는 사이가 나쁜 편이 아니었지만, 시나리오 시작 후, 내가 대한제국을 만들고 세계 통합이란 목표를 내세우면서 갈라서게 된 인물이다.
그의 입장에선 절대 위대한 미국이 타국의 휘하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처사였다.
때문에 지금 이렇게 얼굴을 다시 마주하게 되어 다행이라 할 수 있지만…….
그는 러시아를 따라 무주지의 영주인 몬스터를 끌어들이고 반대한제국 연합 결성에 크게 한몫한 양반이다.
그러니 저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있음에도 우리 대한제국 측에서 나오는 반응은 곱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흥, 불리해지니까 바로 꼬리 마는 거 보소.”
그건 시에나의 말이었다.
누가 감히 미국 대통령이 면전에서 이런 대사를 들을 날이 올 거라 생각했겠는가.
그런데 옆에 있는 윌리아와 강이솔 역시 기회주의자처럼 이리저리 진영을 옮기는 미국의 모습을 곱지 않게 보았다.
대한제국 내부에선 이런 미국에 최대한 많은 보상을 뜯어내야 한다며 으르렁댔다.
“좋습니다. 받아들이죠.”
“엥? 그렇게 쉽게?”
하지만 나는 너무도 간단히 미국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에 시에나는 물론, 주변 사람들 모두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반대한제국 연합이란 거슬리는 이름을 가진 국제동맹체의 대표 중 하나라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모양인데,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지금의 상황이 펼쳐진 것에 내 영향도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 내가 바라는 건 하루라도 빨리 세계를 하나의 세력으로 일통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그런 것처럼 시스템상으로만 미국이 대한제국 휘하에 소속된 국가가 되는 것뿐이지, 국가 운영은 그대로 대통령님께서 하시면 됩니다.”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이런 내 행동에 미국 대통령의 표정이 밝아졌다.
미국이 연합을 탈퇴하고 대한제국 휘하로 들어오게 되면 연합의 붕괴는 시간문제.
이 상황 자체가 우리에겐 큰 이득이다.
하지만…….
“그 대신.”
“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대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미국 대통령을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징벌을 미국에 내리기로 했다.
“데이비드 파티와 제임스 파티를 받아가겠습니다.”
“네?”
데이비드와 제임스의 파티는 미국의 양 날개라 할 수 있다.
그런 둘을 보내라는 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심지어 미국은 이미 클로에 주라는 걸출한 인물을 우리에게 빼앗기지 않았던가.
“물론, 그 둘이 허락하면 말이죠. 대신 그들이 온다고 하면 막지 마세요.”
“그 둘의 의사가 그러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죠.”
제임스는 클로에 보고 설득하라 하면 되고, 데이비드는 군말 없이 넘어올 거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양 날개가 꺾이게 되는 것이니 타격이 매우 클 터.
이 정도면 나름대로 징벌이 될 거라 생각한다.
* * *
시간은 흘러 시나리오가 시작되고, 두 달이 지났다.
[축하드립니다. 세계를 통일했습니다.]
[대한제국에 부여되었던 의무 전쟁 항목이 제거됩니다.]
대한제국 내에서 일어난 반란이 수습되고 보름 정도가 지나, 반대한제국 연합은 결국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대한제국은 붕괴된 연합의 사정을 더 이상 봐주지 않고, 게걸스럽게 그들을 먹어 치웠다.
덕분에 통합 과정에서 수차례 전투가 발생하긴 했지만, 우리에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사냥꾼 협회를 대한제국으로 만들고, 그 대한제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하나의 세력으로 묶는 데 성공했다.
‘이 정도면 큰 전쟁을 억누르며 최소한의 피해로 전력을 보존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어.’
물론, 이 모든 게 나 혼자만의 공은 아니다.
많은 동료가 도와줬기에 가능했던 일.
그럼에도 동료들이 황제 폐하라며 떠받들 때면 묘하게 가슴속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단체는 메시지는 이게 끝?”
“마족과의 전쟁은 바로 발생하지 않는 모양이네요. 나름 우리를 배려해서 정비시간을 주는 걸까요?”
“하긴 지금 맞부딪쳤다간 박살 나겠지. 전력 차이가 너무 크니까.”
나와 윌리아는 세계 통일에 대한 전체 메시지를 보며 대화를 나눴다.
메인 시나리오인 전쟁이 단 두 달 만에 종료가 되었다.
이후 새로운 시나리오가 나오는 거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기에 의외로 심플한 메시지를 보며 우린 의문을 표하면서도 안도했다.
그리고 이어서, 공지처럼 떠오른 그 전체 메시지와 별개로 개인 메시지가 추가로 떠올랐다.
[대한제국의 황제인 당신의 위대한 업적이 명예의 전당에 기록이 됩니다.]
[보상으로 대량의 경험치와 보물 창고 열쇠를 획득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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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올랐습니다.]
200레벨이 넘은 뒤로 처음 보는 연속 레벨업 메시지.
단번에 무려 8번의 레벨업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나 혼자만 레벨업을 한 게 아니라 우리 파티와 펫 전체가.
-파앗!
그리고 물적 보상으로 허공에서 황금빛과 함께 하나의 열쇠가 생성되어 내 손에 쥐어졌다.
“오오!”
“뭔가 심상치 않은데요?”
“써 봐! 써 보자!”
레벨업도 레벨업이지만,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열쇠는 우리 파티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게 세계를 통일하고 얻은 아이템인 데다가, 이름이 무려 ‘보물 창고의 열쇠’다.
절로 마른침이 삼켜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