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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40화 (240/273)

240화 마계의 이변 (2)

지구인들은 마계가 어떤 곳이며 어떤 환경을 갖고 있는지 나름 잘 알고 있다.

이는 엔탈론을 장악한 내가 마계와 지구 사이에 전쟁 발발 가능성을 매우 높게 판단하여 그곳의 정보를 수시로 퍼 날랐기 때문이다.

마계의 환경은 지구와 비슷해 인간도 문제없이 생활할 수 있다.

대륙엔 산과 강, 들과 호수가 있고, 바다엔 여러 섬이 있으며, 무엇보다 곳곳에 몬스터가 있다.

마계는 단일 대륙으로 이뤄져 있는데, 약 70%의 땅을 마계 국가들이 점거했으며, 나머지 30%는 개척이 불가능한 불모지로 여겨지고 있다.

마계의 국가들은 모 봉건 체제다.

1개의 제국과 11개의 왕국이 자리하고 있으며, 국가별로 국력도 규모도 다르지만, 동맹을 통해 나름대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 마계란 단어만 들었을 땐 전쟁이 끊이지 않는 혼돈의 카오스를 떠올렸는데, 이 평화가 백 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고 해서 의외가 아닐 수 없었지.’

마계의 각 국가는 마왕이란 존재가 다스리고 있으며, 국력의 차이처럼 마왕 사이에도 약간의 격차가 존재한다.

마계의 유일 제국 팬드리건의 초대 황제는 최초의 마왕이자 마신이라고도 불릴 정도였다.

나는 마왕들의 무력을 드래곤급으로 예상하지만, 팬드리건의 초대 황제에 대한 정보로 인해 그것마저 초월한 존재가 있을지 모른단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인포는 레벨의 끝이 300이라 했지만……. 확실한 건 아니지.’

각 마왕이 다스리는 12개의 국가엔 마족뿐만 아니라, 수인과 인간족을 포함해 다양한 종족이 살고 있다.

그리고 이 마계의 주민들은 인간에게 몬스터가 아닌 적대적 NPC로 취급된다.

‘그들은 몬스터와 같은 리젠 방식이 아닌, 우리 인간처럼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거쳐 성인으로 자란다고 한다.’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레벨을 100씩 달고 있는 게 아니라, 레벨 1부터 시작해 성장에 따라 레벨이 차차 오르고, 지금 우리가 그러는 것처럼 사냥을 통해 자의적으로 레벨을 올릴 수도 있다.

그리하여 마계엔 고레벨의 사냥터만 있는 게 아니며, 주민들의 거주구 근처엔 저 레벨의 몬스터들도 많았다.

다만 마계의 주민은 지구인과 달리 ‘성장 한계치’라는 게 있다.

이 성장 한계치라는 건 직업과 신분에 따라 올릴 수 있는 최대 레벨이 정해져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레벨을 마구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란 뜻이다.

만약 성장 한계치가 없다면 마계엔 드래곤급 존재가 넘쳐나게 되니, 적절한 제약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한계 레벨을 넘어서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일반적으로 성장 한계치를 넘어서는 방법은 더 좋은 직업을 갖거나 신분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외에 한 가지 더 레벨을 올리는 방법이 있으니.

그건 바로 같은 마계의 주민을 죽여 경험치를 빼앗는 것이다.

합법적인 전쟁을 통해서든 아니면 단순한 살인이든.

‘우리가 엔탈론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싸운 범법 집단의 리더들이 레벨 200 전후였던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지.’

아무튼 나인포의 존재와 엔탈론을 3개월 정도 운영하게 되면서 나에게 마계는 더 이상 미지의 세계가 아니게 되었다.

그저 눈으로 곳곳을 전부 보질 못했을 뿐, 관련 지식은 확실히 갖고 있단 뜻이다.

때문에 나는 마계에서의 활동에 거리낌이 없었다.

-힐끔…….

“겁나 기분 나쁘게 쳐다 보네.”

“아무래도 레벨이 레벨이니깐요. 마계에서도 200레벨 이상은 흔하지 않거든요. 물론, 지구에 비하면 넘쳐 나는 수준이긴 하지만.”

마계에서 레벨이 200 이상이란 건 귀족이거나, 그만큼 살인을 많이 저지른 존재란 뜻.

덕분에 높은 레벨을 갖고 있으면, 마계에선 어디서나 두려움을 샀다.

지구에서 항상 부러움과 응원을 받던 몸이기 때문인지 시에나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불편한 시선에 짜증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용병 사무소]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엔탈론과 인접한 케일론 왕국의 대도시.

대뜸 이곳의 용병 사무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유는 전쟁에 참여할 신분을 만들기 위해서다.

용병 사무실의 입구는 레벨 130대의 경비 둘이 지키고 있었다.

나와 내 일행들이 다가가자 흠칫 놀란 그들은 감히 우릴 제지하지 못하고 용병 사무소로 통과시켰다.

-시끌시끌.

-시끌.

-…….

그리고 우리가 용병 사무소에 들어서자 활기와 소란스러움이 가득하던 공간에 머지않아 침묵이 내려앉았다.

용병 사무소가 1층에 펍을 함께 운용하고 있어서인지 매우 많은 용병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레벨은 문밖의 문지기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우리와 큰 격차가 있었다.

다들 숨죽이고 우리 일행을 주시하고 있는 게 묘하게 재밌다.

“바,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용무로 찾아오셨습니까?”

이어서 용병 사무소의 데스크로 다가가자, 레벨 100이 안 되는 마족 아가씨가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반겨 주었다.

“용병 등록하려고요. 저와 제 동료 모두요.”

“그, 그럼 신분 확인을 거쳐야 하는데…….”

신분 확인이란 말에 나는 문제 없다며 유일 등급의 대검 아론다이트를 꺼내 들었다.

마계에서 유일 등급의 장비는 귀족의 전유물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데스크 직원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아론다이트를 향해 손을 대자.

작게 내 신분을 인증하는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확인되었습니다. 방문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에잇투 백작님.”

에잇투 백작.

그게 바로 아론다이트의 소유주에게 주어지는 이름과 지위다.

이후 나는 레벨 검증을 비롯해 다양한 측정을 해야 했고, 오래지 않아 하얀 카드 한 장을 받을 수 있었다.

[흰색 용병패를 획득했습니다.]

흰색은 등급 외 용병패로 보통 귀족이나, 레벨이 지나치게 높은 존재가 첫 용병 자격을 취득할 때 주는 것이다.

웬만한 등급의 용병패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는 카드였기에 나와 우리 일행은 불만 없이 하얀 카드를 챙겼다.

“이걸로 참전을 위한 준비는 갖춰졌군.”

당장은 팬드리건이 일으킨 전쟁으로부터 이곳 케일론 왕국은 안전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평화일 뿐.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마계 세력도가 깨지고 말았으니, 머지않아 케일론 왕국도 전쟁의 겁화에 휩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린 그때가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릴 생각이 없다.

바로 전쟁 지역으로 향할 예정이니까.

“정말 괜찮을까요?”

그렇게 용병패를 갖고 용병 사무실을 나서는데, 윌리아가 우려를 표해 왔다.

그녀의 우려는 지극히 당연했다.

우리의 레벨이면 마계에서도 매우 높은 편에 속하지만, 지구에서와 달리 적수가 많았으니 말이다.

즉, 지구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위험하면 튀면 되니까요.”

하지만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정 위험하면 도망치고, 만만한 놈을 골라 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럼에도 얻을 수 있는 보상은 매우 클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강한 만큼 책임을 다하는 것도 좋지만, 저는 백호 님이 희생하는 걸 원치 않으니까요.”

윌리아의 말만 들으면 무슨 숭고한 결정을 내린 것 같다.

아무래도 애인이라고 나를 너무 높게 평가하는 모양.

사실은 그냥 마계의 귀족들을 벗겨 먹을 생각뿐인 도적 같은 건데.

* * *

용병 자격도 얻었겠다.

전쟁에 참전을 해야 하는데, 문제가 한 가지 있다.

그건 바로 어느 진영으로 참전을 하냐는 것이다.

내 귀족 작위는 마계 내의 모든 곳에서 통용되는 것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론다이트는 팬드리건의 초대 황제와 연관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팬드리건 제국에 참가를 해야 하나 싶지만…….

가뜩이나 강건하고 국가의 규모도 거대한 팬드리건 측에 참여하기보단 상대적으로 열세인 진영을 고르는 편이 운신의 폭이 넓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팬드리건의 초대 황제가 만들었다는 아론다이트를 쥐고, 그들의 반대 진영을 선택해 참전했다.

“그대와 같은 강자가 참전해 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바라는 것이 있는가?”

“독자적인 작전권을 주셨으면 합니다. 대신 절대 여러분을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뭐, 좋겠지. 편한 대로 하게.”

열세인 진영에 참가하니, 그냥 거짓말 판별 기능을 이용해 팬드리건 측의 세작인지만 확인할 뿐, 내 정체에 대해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투엔티원(마족) / 레벨: 270 / 소속: 로렌시아 왕국]

-호감도: 20%(관심)

“감사합니다. 사령관 각하.”

그리고 군사령관에 의해 내 뜻대로 독자적인 작전권까지 부여해 주기까지 하니, 더는 활동에 제약이 없었다.

마족들을 털어먹을 때가 온 것이다.

* * *

현재 마계는 북부 팬드리건 제국에서 시작된 전쟁의 바람으로 인해 세계 전체가 뒤숭숭했다.

북부 팬드리건은 마계의 패자라 할 수 있는 존재.

때문에 언제 전쟁의 불길이 전 세계로 확대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막상 전쟁이 시작되니 의외의 상황이 펼쳐졌다.

순식간에 쓸려 나갈 거라 생각한, 로렌시아 왕국과 그의 동맹들이 팬드리건의 남부 진출을 제법 잘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네 그거 들었나?”

“뭐?”

“최근 보급 부대와 후방만 전문적으로 공격하는 미친놈들이 있다는 거?”

“보급 부대와 후방을? 거참 비겁한 놈들이구만.”

그런데 로렌시아 왕국과 그 동맹들의 분투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그건 바로 한 부대의 미친듯한 활약이 팬드리건 제국의 진군을 방해하고 있단 것이었다.

사실 전쟁이 동네 싸움도 아니고, 한 부대의 방해라 해 봤자 대세엔 영향을 주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 부대가 집요하게 보급과 후방을 기습하여 계속해서 큰 성과를 거두다 보니, 이로 인해 차근차근 누적된 피해가 조금씩 전황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더불어 팬드리건 측에서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건.

그 습격자들이 집요하게 귀족을 노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얼마 전엔 레벨 250의 후작급 귀족까지 당하는 바람에 팬드리건 제국 황실에서 현장 지휘관을 대거 교체하기까지 했다.

“이러다가 제대로 활약다운 활약 한 번 못하고 전쟁이 끝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에이, 설마 그러려고. 우리나라 어디야? 바로 팬드리건이란 말이지. 최초의 왕국이자 최초의 제국. 쉽게 패배할 나라가 아니야.”

“음, 그러려나?”

그러나 팬드리건은 거대하다.

거대할 뿐만 아니라 견고한 나라였다.

계속해서 뒤를 물려 전쟁의 맥이 끊기자,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제국의 비밀 병기이자, 주력 부대를 투입키로 한 것이다.

[팬드리건 로열 나이츠 부대원 제르머 / 레벨: 230]

[팬드리건 로열 나이츠 부대장 아르민 / 레벨: 245]

[팬드리건 로열 나이츠 대장 카로스 / 레벨: 260]

일반 부대원의 평균 레벨이 230, 부대장은 245, 대장은 260인 로열 나이츠 150명.

감히 팬드래건 제국이기에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이 로열 나이츠의 목표는 당연히 자신들의 뒤를 괴롭히고 있는 습격자들의 제거로, 그 대상은 용병 자격으로 전쟁에 참전한 특이한 존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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