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황금의 땅 마계 (3)
현재 내 레벨은 242.
반면 마주한 상대의 레벨은 270이다.
레벨 차이가 28이나 나긴 하지만 충분히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보다 더 차이가 심한 상대와도 많이 싸워 온 데다가, 내 곁엔 든든한 동료들이 함께였으니 말이다.
-강화된 블레스에 의해 능력치가 50% 상승합니다.
-강화된 그레이스 오브 글로리에 의해 공격 스킬의 위력이 50% 상승합니다.
-강화된 홀리 바이블에 의해 방어구의 강도가 50%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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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깃발을 사용하여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중요한 전투를 앞둔지라 나와 윌리아, 시에나가 재정비를 겸해 보유한 버프 스킬을 파티 전체에 부여했다.
덤으로 윌리아의 막강한 회복 스킬로 이전까지 있던 전투로 쌓인 약간의 피로마저 날아가니, 나는 최상의 컨디션을 갖추게 되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로렌시아의 마왕과 팬드래건의 대공이 벌이는 전투로 인해 세상이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요란한 진동과 충격음이 연거푸 발생했다.
우리가 위치한 성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상태가 되었지만.
서로를 죽일 듯 노려보는 두 진영엔 침묵이 감돌았다.
“절대 회복!”
이런 침묵을 깬 건 다름 아닌 윌리아였다.
윌리아의 극상급 회복 스킬이 레벨 270의 마족이자 로렌시아의 공작 투엔티원에 향했기 때문이다.
마족과 인간의 속성은 정반대.
때문에 인간의 회복 스킬은 마족에게 대미지를 주고, 마족의 회복 스킬은 인간에게 대미지를 준다.
더구나 윌리아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천사의 고리는 회복 스킬을 증폭시켜 주는 아이템.
“크윽!”
덕분에 투엔티원을 감싼 치유의 빛이 불꽃처럼 녀석을 삼켰다.
설마 회복 스킬로 선빵을 날릴 거라 생각 못 했는지 투엔티원이 다급히 전신에 검은 기운을 둘렀으나.
“하이?”
-흠칫.
어느새 앞에 나타난 내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그의 목에 투과 스킬이 깃든 바리사다를 들이밀고 있었다.
-쉬익! 쉭! 쉭!
그러나 270의 레벨은 폼이 아니다.
기습에 가까운 공격에도 놈은 다급히 몸을 틀어 내 공격을 모두 피해 낸 것이다.
-뚝뚝.
물론,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건 아니다.
중장 갑옷을 입고 있는 그의 투구 사이로 적지 않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치명상이라 볼 수 없는 수준이었기에 나는 아쉬움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요사스러운 검이구나.”
피하지 말고, 검으로 내 바리사다를 쳐 내려 했다면 단번에 끝날 수도 있었을 텐데.
레벨이 높은 마족들은 하나같이 감이 좋다.
짧았지만, 상대에게 충분한 위기감을 심어 준 일격.
덕분에 놈의 눈에 진지함이 깃들었고.
우리의 충돌이 기폭제가 되어 본격적인 양 진영의 충돌이 벌어졌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퍽! 퍼버벅!
하늘 위에서 싸우고 있는 두 드래곤급 존재의 위엄이 대단하지만, 그렇다고 지상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이 모자라는 건 아니다.
지구에서 내 라이벌로 평가받는 헤르만, 데이비드의 레벨이 210 전후인데, 지금 이곳에 자리한 마족들 중 제일 약한 놈도 그 둘보단 레벨이 높았으니 말이다.
“신기한 스킬과 아이템을 많이 가진 녀석이구나!”
두 번째 충돌.
우리 파티의 자율 공격 장비인 프라가라흐와 브라흐마스트라가 까다롭게 놈의 발을 노리고, 윌리아와 시에나의 원거리 공격 지원 속에 다시금 놈에게 달라붙었다.
놈은 한 손 장검에 방패를 사용하는 전형적인 기사 타입이다.
더구나 가지고 있는 방패가 엄청 좋은 건지, 금빛 기운을 두른 채 휘두를 때면 윌리아와 시에나의 원거리 공격도, 프라가라흐와 브라흐마스트라도 맥없이 튕겨 나갔다.
하지만 투과 스킬이 깃든 내 바리사다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어서 기를 쓰며 피해 냈고, 나는 놈의 회피 동작에 맞춰 제3의 손이 쥔 성검을 통해 때론 빛을 발사하고, 때론 빛의 검을 휘둘러 놈을 압박했다.
-파파파밧!
“이런!?”
더불어 내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멍멍이가 수시로 놈을 포박하려 들고, 빈틈이 보일 때마다 암살 기술을 찔러 넣는 다켈프와 헬레나가 있어서 투엔티원은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공격 속에 반격 한 번 못 하고 방어와 회피만 계속 이어 갔다.
상대의 레벨이 높다고 해도 역시 우리 파티의 다구리를 이겨 내긴 쉽지 않은 모양.
이에 놈도 자존심이 상하는지 투구 사이로 드러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끄아아악!”
“컥!”
그리고 전황이 유리한 건 이쪽만이 아니었다.
호각지세인 마왕 대전과 달리, 나머지 전투원들은 모두 팬드래건 제국 측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로렌시아 왕국 측의 전력은 비명과 함께 하나둘씩 쓰러지고 있어서 전망이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음?”
결국, 로렌시아의 대장군 투엔티원 공작은 시간을 끌어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는지, 바로 필살기를 사용했다.
-파앗!
갑자기 놈이 소름 끼치게 번뜩이는 핏빛 안광을 뿌리더니, 전신을 감싸고 있던 검은 기운이 폭발하듯 범위를 키워 간 것이다.
‘광폭화 같은 건가?’
아무래도 내가 가진 폭주 스킬과 비슷한 계열의 스킬이 아닐까 싶다.
마족이 지닌 스킬과 아이템은 인간과 다른 게 많아서, 정확하게 어떤 스킬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놈이 성검을 휘두르는 제3의 손과 바리사다의 투과 스킬에 버벅대던 것도 마계에서 처음 보는 공격이어서 그런 거고.
“죽어!”
이어서 놈이 지금까지 당한 것을 되돌려 주겠다는 듯, 포효에 가까운 외침을 내뱉었다.
-콰아아아앙!
그러자 주변 일대에 보이지 않는 파동이 확산되어 바닥이 난도질을 당하듯 갈려 나가고, 놈을 공격하던 윌리아와 시에나의 공격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상쇄되었으며.
[꺅!]
[큭!]
은신한 상태로 뒤를 치려던 헬레나와 다켈프도 피를 흘리며 튕겨져 나갔다.
둘이 저렇게 맥없이 튕겨 나가는 건 처음 보기에도 페이즈2에 접어든 투엔티원의 전투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즉시 체감할 수 있게 했다.
-티티티팅!
하지만 나는 태연히 서 있었다.
놈의 포효에 주변 일대가 갈려 나갔음에도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번에 보물 창고에서 손에 넣은 유일 등급 방어구 세트 덕분인 것 같다.
해당 방어구는 기본적으로 공격을 반사하는 기능이 담겨 있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튕겨 냈다.
“둘 다 물러나서 윌리아와 시에나 보호해.”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다행히 헬레나와 다켈프의 상태는 위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놈이 내지른 포효만으로 저런 상태가 되었으니, 대비 없이 다시 접근하는 건 상책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래서 둘을 뒤로 보내고는 성큼성큼 투엔티원에게 다가갔다.
‘사고 가속.’
그리고 이번에 획득한 방어구의 세트 스킬을 사용하고, 다른 결전 스킬 또한 연이어 사용했다.
‘폭주. 분신.’
폭주와 분신은 1분만 유지되고, 사용 시간이 끝나면 후유증도 발생하지만, 내 인벤토리엔 이를 리셋하는 아이템이 잔뜩 들어 있다.
때문에 거리낌 없이 모든 결전 스킬을 쏟아 낼 수 있었다.
-두근. 두근.
그러자 눈앞의 세상이 바뀌었다.
유독 심장 소리가 강하게 울려 퍼지고, 보이는 모든 풍경이 느릿느릿 흘러가기 시작했다.
폭주 스킬을 사용했을 때 발생하는 일시적인 효과와 완전히 다르다.
사고 가속이 더해지게 되면서 비로소 이 여유로운 세상이 완성된 느낌이다.
-쿠아아아아아아와아아아왕!
가속의 세상 속에서도 나름 빠르게 움직이는 투엔티원이 즉시 공격을 가해 왔지만.
뒤에서 상황을 지켜 보고 있던 윌리아와 시에나의 적절한 지원에 한 턴이 씹히면서 바로 내 공격이 이어졌다.
* * *
레벨 260의 팬드리건 제국의 로열나이츠 대장 카로스가 서백호를 처음 보고 느꼈던 감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적으로 만난 데다가, 자신들이 더 많은 보상을 제시하자 거리낌 없이 같은 편이었던 로렌시아 왕국을 배신하고 진영을 옮겼기 때문이다.
때문에 카로스는 서백호에게서 양아치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강함은 진짜다.
이건 검을 맞대었던 카로스가 느꼈던 바이다.
그런데 카로스는 자신의 생각을 정정해야 했다.
오늘 보여 준 서백호의 전력은 그의 상식을 가볍게 넘어섰으니까.
‘균형이 잘 잡힌 파티다. 멤버 하나하나 정예야.’
서백호의 파티원들도 대단하긴 하지만.
결코, 서백호에 비할 수준은 아니었다.
‘괴물이었군.’
처음 서백호가 레벨 270의 대장군급 적장을 상대할 때만 해도 동료들과 합을 맞춰 차근차근 공략해 나갈 거라 여겼으나, 뚜껑을 열어 보니 원맨쇼였다.
속도면 속도, 파괴력이면 파괴력, 심지어 검술이면 검술.
레벨이 28이나 높은 상대를 완전히 찍어 누르고 있었다.
적장은 서백호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으며, 맥없이 뒤로 밀려날 뿐이었다.
더불어 전투가 어찌나 화려하고 파괴적인지, 하늘에서 싸우고 있는 마왕들보다 절로 서백호에게 시선이 향해졌다.
‘마치 내가 추구해야 할 이상향이 여기 있다고 알려 주는 것 같군.’
자신의 전투에 집중을 해야 하는데, 카로스는 쉽사리 집중하지 못했다.
아니, 그건 카로스뿐만이 아니었다.
폐허가 되어 버린 왕성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는 모두가 알게 모르게 서백호를 두 눈으로 좇고 있었으니까.
‘대체 저런 존재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뭐지?’
마계에서 통용되는 서백호의 신분은 에잇투란 이름을 가진 무영지 백작이다.
심지어 팬드래건 제국의 초대 황제의 공인을 받고 있어서 그의 신분을 의심해선 안 된다.
하지만 의심과 관심은 별개의 감정이다.
카로스는 서백호가 어떤 존재인지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다른 마음이 있어서가 아닌, 검사로서의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아직 한계 레벨을 채운 건지, 아니면 넘긴 건지 모르겠지만, 분위기를 보면 아직 어린 개체 같아. 포섭할 수 있으면 확실히 포섭하는 게 나을 거야.’
서백호는 팬드래건 제국에서도 통용되는 귀족이긴 하지만, 영지가 없으니 반쪽짜리 작위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카로스는 황제께 그에게 공작위를 줘서라도 반드시 포섭해야 한다고 진언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마계에선 신분에 따라 한계 레벨이 정해져 있다.
카로스는 서백호의 레벨이 270 정도만 되어도 마왕급 존재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있다면 팬드래건 제국의 세계 일통이 더욱 쉬울 거다.’
카로스는 뜻하지 않게 좋은 패를 주웠다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렇게 전투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촤아아악!
“오오.”
서백호의 폭풍처럼 몰아치는 검에 의해 적장 중 하나인 대장군 투엔티원의 목이 날아갔다.
가뜩이나 유리한 전황이 완전히 팬드래건 제국 측으로 돌아선 순간이었다.
감탄사를 흘린 카로스는 질 수 없다며 부하들과 연합해 또 다른 대장군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힐끔 서백호를 눈으로 좇고 있던 그는 머지않아 헛바람을 삼켜야 했는데.
‘서, 설마 저자가?’
허공을 응시하며 마왕과 대공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그가 느닷없이 등 뒤로 푸른 날개를 펼쳤기 때문이다.
그건 누가 봐도 두 드래곤급 존재의 전투에 끼어들려는 태도였다.
“안 돼, 미친놈아!”
카로스는 저도 모르게 서백호에게 소리를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