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황금의 땅 마계 (4)
빛의 갑옷 시리즈의 세트 효과로 주어지는 사고 가속 스킬은 꽤나 사기성이 짙은 것 같다.
-푸확!
그도 그럴 게 광폭화 스킬까지 사용한 레벨 270의 대장군 지위를 가진 마족이 아무것도 못 하고 방어만 하다가 목을 베였기 때문이다.
물론, 사고 가속뿐만 아니라 폭주와 분신 등 시너지 효과가 좋은 스킬에 바리사다와 성검 칼립소 같은 질 좋은 무기, 중간중간 타이밍 좋게 이어지는 윌리아와 시에나의 견제도 전투에 큰 도움이 되었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레벨 28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헬레나.”
[네, 넵!]
로렌시아의 공작 투엔티원 대장군의 목을 엘더 이터 헬레나에게 던졌다.
그러자 그녀의 그림자가 투엔티원 대장군의 시체를 날름 삼켜 버리고, 뒤이어 그에게서 나온 장비들은 멍멍이가 수습해 내게 건네주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곧 경험치 균등 습득으로 나와 윌리아, 시에나의 레벨이 오르면서.
[축하드립니다. 세계 최초로 마계의 대장군을 처치하셨습니다.]
업적 달성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와 함께 보상으로 ‘유일 등급 악세서리 뽑기권’ 하나가 주어졌다.
투엔티원 대장군을 처치하고 얻은 아이템을 포함해 이번 마계행으로 충분한 유일 등급의 장비를 획득했지만, 유일 등급의 악세서리는 그중에서도 매우 귀하다.
때문에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시선을 허공으로 옮겼다.
-쿠쿠쿠쿠쿵!
로렌시아의 마왕과 팬드래건의 대공의 전투에 의해 구름이 걷히고 수백 다발의 벼락이 연거푸 내리쳤다.
더불어 하늘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지면까지 흔들리니, 무시무시하기 그지없었다.
“저기에 참전하시게요?”
윌리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벤토리에서 이벤트 상점에서 구매했던 ‘스킬 재사용 대기시간 초기화권’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내 그것을 찢자, 폭주 스킬의 사용 시간이 끝나면서 발생한 페널티(능력치 하락)가 사라졌다.
더불어 폭주 스킬 등을 즉시 재사용할 수 있게 되니, 다시금 만반의 상태를 갖출 수 있었다.
“위, 위험하지 않아?”
윌리아와 시에나 모두 같은 레벨대의 상대와 비교하면 훨씬 강한 편이다.
내 동료답게 매우 뛰어나단 소리인데, 그런 두 사람이라 해도 마왕의 전투에 끼어드는 건 무리수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나도 폭주에 분신, 사고 가속까지 풀세트를 사용해야 겨우 낄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해 보였으니 말이다.
“마왕한테 제대로 한방 꽂아 넣기만 해도 배당되는 경험치가 상당할 것 같지 않아요?”
나는 그런 두 사람을 씨익 웃어 보였다.
앞선 대장군의 전투에선 윌리아와 시에나의 견제가 제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마왕과의 전투에는 아무리 두 사람이라 해도 끼어들기 힘들다.
때문에 나는 윌리아와 시에나에게 팬드래건 제국의 로열나이츠를 도우라 지시하곤 이능의 날개를 펼쳤다.
동시에 다시금 사고 가속과 폭주, 분신 스킬까지 쓰고는.
-콰아아앙!
전력으로 도움닫기를 한 후 최대 속도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방금까지 내가 딛고 서 있던 땅이 터져 나갔다.
“조심하세요!”
“조심해!”
나는 윌리아와 시에나의 걱정을 뒤로하고.
두근두근 심장이 울리는 전투가 진행되는 현장으로 접근했다.
폭주 스킬의 제한 시간은 1분.
딱 그 1분 동안만 저 안에 낄 자격이 있다.
물론, 스킬 재사용 대기시간 초기화권의 재고량이 충분하니, 몇 번이고 그걸 사용한 후 달려들어도 되지만.
팽팽하게 진행되는 전투에 균형을 가져오기까지 1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팬드래건의 대공이라면 유리해진 상황을 놓치진 않을 것 같으니까.
‘괜히 불필요하게 명예니 뭐니, 귀찮은 주장을 하면서 지원을 거절하는 사람이 아니면 좋겠네.’
-콰아아앙! 콰아앙!
나는 순식간에 두 드래곤급 존재가 전투를 벌이는 현장에 도착했다.
살 떨리는 충돌 속에서 로렌시아의 마왕과 팬드래건의 대공이 힐끔 내 쪽으로 시선을 주는 게 느껴졌다.
“돕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짧은 대사를 남기고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력으로 로렌시아 마왕의 뒤를 파고들었다.
마왕과 대공 모두 검사형이었지만, 무기가 달랐다.
대공은 양손 검을 사용했고, 마왕은 나처럼 한손반 검의 사용자였다.
나의 접근에 마왕은 가소롭다는 듯 검을 뻗어 왔는데, 그 속도는 사고 가속과 폭주 스킬이 더해진 상태에서 겨우 좆을 수 있을 정도였다.
-콰아아아아앙!
-쇄애애액!
나는 마왕의 검을 성검으로 받아 내고는 바리사다로 반격을 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내 공격은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마왕의 뺨에 아주 얕은 상처를 냈을 뿐이었으니까.
“…….”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마왕의 표정은 굳어지고, 붉은 사자를 의인화한 것처럼 생긴 대공은 유쾌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재밌군!”
아무래도 그들의 전투에 끼어들 자격을 갖췄다는 의미 같았다.
마왕과 나는 재차 충돌했다.
얼핏 보면 나름 호각지세로 싸우는 것 같지만…….
“대공님! 도, 도움!”
급히 뒤에서 멀뚱히 구경만 하고 있는 대공에게 SOS를 칠 만큼 위급하기 그지없었다.
그냥 압력이 다르다.
마왕의 일격 하나하나는 속도도 속도지만, 검을 맞대었을 때 전신을 울리는 충격이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수준이었다.
바리사다의 투과 스킬은 극강의 공격력을 지녔지만, 반대로 말하면 상대의 검을 쳐 낼 수가 없다는 의미인 만큼, 방어력은 제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혹시 몰라 바리사다를 제3의 손으로 보내고 성검을 손에 쥐었는데, 무기의 착용 위치를 바꾸길 진짜 잘한 것 같다.
만약 손에 쥐고 있는 게 성검이 아닌, 바리사다였다면 적의 공격을 막아 내지 못해 나는 진작 두 쪽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역시 마왕은 대장군과 급이 달랐다.
“하하! 알겠네! 알았어!”
나름대로 마왕과 공방이 성립되긴 했지만, 이길 것 같단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내 결전 스킬을 모조리 때려 박았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애초에 나는 2:1로 유리함을 가져오기 위해 이 전투에 참전을 한 거지, 마왕과 일기토를 하기 위해 뛰어든 게 아니다.
다행히 팬드래건 제국의 대공은 무인의 자존심이니 뭐니, 개소리를 하는 부류는 아니었다.
그는 다시 합류하며 대검을 있는 힘껏 휘둘러 왔다.
-콰아앙!
“젠장!”
마왕은 욕설을 내뱉으며 그 공격을 쳐 내야 했다.
앞선 전투로 그는 나를 한두 번의 공격으론 죽일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아니, 심지어 반격까지 가능하니, 순식간에 전투의 우위가 이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아앙!
-채채채챙!
“오오, 제법 손발이 맞는데?”
때로는 순수 검술로, 때로는 스킬을 써가며 공방을 주고받는데, 분명 처음 보는 사람과 합을 맞추는 것임에도 나와 대공은 꽤 손발이 잘 맞고 있었다.
일정 경지 이상이 되면서 자동으로 연계의 묘리를 깨우치게 된 건지.
아니면 애초에 그와 내 성향이 잘 맞는 건지는 몰라도 나름 분투를 이어 가던 마왕은 어느새부턴가 방어 일변도가 되었고.
‘투과.’
-서걱.
마왕의 몸에 새겨지는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로렌시아의 마왕은 노년에 가까운 중년의 외모를 갖고 있어서 점차 흐트러지는 모습이 안쓰러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내게 지금의 그는 보상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마왕이 맥없이 밀리기 시작하자, 신이 나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보상을 얻기 위해 과감하게 한 방의 기회를 노렸다.
“대단한데? 검이 점점 더 예리해지고 있어.”
덕분에 내가 빈틈을 노릴 때면 마왕은 여지없이 큰 부상을 입게 되었고, 대공은 이런 나를 향해 눈을 빛내며 뭔가 위험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왔다.
“이런 비겁한 놈들 같으니!”
그렇게 일방적인 전투 속에서 이대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마왕이 광폭화를 시도했다.
“내 죽더라도 한 놈은 갈가리 찢고 갈 것이다!”
지금도 말도 엄청나게 강한데, 광폭화까지 되면 얼마나 강해질까?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켜야 했다.
그런데.
“큭!”
돌연 마왕이 몸을 비틀며 미간을 찌푸렸고, 나와 대공은 의아하단 반응을 보여야 했다.
“응?”
“이건?”
그때.
마왕에게서 익숙한 기운을 느낀 나는 놀라서 지상으로 힐끔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저 밑에서 녹색의 날개를 지닌 윌리아가 머리 위에 달린 천사의 고리를 반짝이며 도망치는 게 보였다.
“하하핫! 네놈의 동료도 끝내주는 센스를 가지고 있군!”
윌리아가 치유의 헤일로를 이용해 증폭한 극상급 회복 스킬을 마왕에게 걸고 튄 것이다.
그로 인해 마왕은 크게 놀라 저도 모르게 멈칫했고, 이는 둘도 없는 기회로 작용했다.
그 찰나와도 같은 잠깐의 빈틈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콰콰콰콰콰!
“큽!”
대공의 막강한 일격이 혜성처럼 날아들어 마왕의 머리 위에 내리꽂힌다.
콤마 초 단위로 공방을 연거푸 주고받는 우리의 전투는 블링크 등의 이동기로 피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때문에 마왕은 그대로 당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역시 마왕은 마왕이란 걸까?
높은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빈틈을 파고든 그 공격을 막아 내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대공의 미간이 꿈틀대고 마왕은 안도했다.
“나도 있는데?”
하지만 이 자리에 두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덕분에 나는 프리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 방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서걱!
“끄아악!”
바리사다가 마왕의 가슴 한복판을 관통했다.
그에 마왕은 두 눈을 부릅뜨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이걸로 끝이 아니다.
곧바로 성검의 빛이 그의 목에 닿았으니까.
바리사다의 투과 공격과 달리 성검의 빛은 마치 얇은 톱으로 밀도 높은 나무를 자르는 것처럼 강한 저항에 마주쳤다.
하지만 나는 전심전력을 다 해 성검을 휘둘렀고, 결국 마왕의 목을 베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타격을 줘서 보상을 좀 얻어가려 참전한 전투인데, 결정타를 날리게 된 것이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덕분인지 중간부터 난입했음에도, 나는 엄청난 경험치를 얻으며 두 번의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역시 마계의 전쟁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내 배를 불려 주는 전쟁이었다.
“자네 아주 제법이야.”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 전쟁으로 더 얻은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마왕급 존재이자, 팬드래건 제국 2인자와의 친분이었다.
* * *
마왕의 죽음으로 로렌시아 왕국은 끝내 팬드래건 제국에 병합되고 말았다.
하지만 로렌시아 왕국은 마계에 존재하는 국가들 중에서도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는 소국이다.
팬드래건이 기세 좋게 정복 전쟁을 선언한 것 치곤 꽤나 고생해야 했다는 점에서, 주변국들은 대제국의 힘이 예전 같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후방의 국가들은 이 전쟁을 안일하게 바라보았는데…….
로렌시아 왕국을 정복했을 때와 달리,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인근 소국 2개가 팬드래건 제국에 추가로 정복을 당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팬드래건 제국은 단단히 마음을 먹었고, 언제고 자신들마저 위험해질 것이라고.’
때문에 팬드래건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남쪽의 국가들이 힘을 합치기 시작했다.
점차 전쟁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내가 바라마지 않던 상황.’
마계가 자신들끼리 싸우느라 피를 흘리면 흘릴수록 지구인으로선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혼자 다른 생각을 품고 전쟁이란 마계에 닥친 화마에 장작을 넣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오, 에잇투 백작님이다!”
“백작님!”
웃기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마계에서 입지가 높아져 갔다.
에잇투 백작이란 마계에서의 내 신분으로 이젠 팬드래건 제국 어딜 가나 환영받는 입장이 되었다.
심지어 황궁에선 내게 공작위를 내린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 상황이니 말 다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