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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45화 (245/273)

245화 더욱 스텝업 (1)

내가 마계에서 귀빈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유일 등급 무기 아론다이트 덕분이다.

[아론다이트 / 양손검 / 등급: 유일]

-마계 북부의 대호수 카른에 사는 마룡 오귀스트의 뿔을 이용해 만들어진 검으로 최초의 마왕 혹은 마신이라고도 불리는 제로원의 가호가 담겨 있다.

-아론다이트 소유자는 넘버즈로서 에잇투의 이름을 부여받으며, 마계 전 국가에서 통용되는 백작위의 귀족 신분을 갖게 된다.

이 아론다이트를 가진 나는 시스템이 공인하는 마계의 귀족이었고, 때문에 누구나 나를 마계의 인간족으로 생각하지, 지구에서 건너온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니 내게 공작 작위 부여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거다.

하지만 내가 공작 작위를 부여받는 걸 부정적으로 여기는 여론도 분명 존재한다.

그도 그럴 게 처음에 난 로렌시아 왕국 진영에 속해 팬드래건 제국과 싸웠고, 팬드래건 제국으로 넘어오게 된 것도 더욱 큰 보상을 제안받았기 때문이라 충성심을 의심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로렌시아를 포함해 주변 왕국들을 병합하는 데 큰 몫을 했다고 해도, 적대하거나 견제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이상 공작위를 받긴 쉽지 않을 거야.’

팬드래건 제국의 수도이자, 황성이 자리한 알비온의 시장을 거닐던 나는 어느 마족이 주고 간 고기 꼬치를 먹으며 피식 웃었다.

연이은 승전으로 100년 만에 영토를 확장하게 된 팬드래건은 시장의 풍경만 봐도 알 수 있듯 축제 분위기다.

때문에 승전의 주역인 나를 많은 이들이 환영하면서도 곳곳에선 적대감 어린 시선이 날아왔다.

‘전쟁 초기에 내게 목숨을 잃은 병사의 가족이거나, 제국에 대한 ‘충성심’ 문제로 나를 의심하는 사람들이겠지.’

사실 저런 시선은 지구에서 힘으로 여러 국가를 복속하며 충분히 받아온지라 익숙하다면 익숙하다고 할 수 있다.

“오, 그거 뭐야? 맛있어 보이네?”

“드셔 보실래요?”

시에나가 누군가가 내게 주고 간 고기 꼬치에 관심을 보였다.

이미 절반 정도 먹어서 건네주는데 미련이 없었는데…….

“혀를 아리게 하는 매운맛이 특이하네요.”

“퉷! 퉷!”

“왜 그러세요?”

“이씨, 독 든 거잖아.”

시에나가 혀를 아리게 하는 매운맛에 정체를 알려 주어 나는 실소를 흘려야 했다.

“어차피 그 정도 독은 통하지도 않으니, 그냥 향신료라 여기면 되죠.”

“웩. 그래도 꺼림칙하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전쟁 영웅이니 뭐니 떠받들어지는 것보다 이런 솔직한 대우를 받는 게 마음 편하다.

주변에서 내게 손을 흔들며 환한 미소를 짓는 주민들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그들을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닌, 쓰러뜨려야 할 적으로만 여기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바라는 건 마계의 혼란이자, 전력 약화.

그러니 필요하다면 다시금 팬드래건을 배신할 수도 있다.

‘내게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가족과 친구, 동료들이 살고 있는 지구지, 마계가 아니니까.’

그래서 독이 든 고기 꼬치도 웃으며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응?”

그렇게 일행들과 함께 팬드래건 국민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아발론의 시장을 얼마나 둘러보고 다녔을까?

나는 시장 한곳에서 눈길을 잡아끄는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요.”

“오오, 에잇투 백작님 아니십니까?”

설정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실제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마계는 수백 년 동안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다.

때문에 그들은 필드에 나가면 몬스터가 뛰노는 풍경이 당연한 환경 속에서 오래 살아왔고, 그로 인해 지구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신기한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다.

내가 시장을 방문한 게 바로 이런 기술들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혹시 그게 기피제 추출기입니까?”

“네, 맞습니다. 팬드래건 마탑의 최신 제품이죠. 마력석 1개로 한 달 동안 작동을 시킬 수 있을 만큼 에너지비가 좋고, 생산량도 전 세대 제품에 비해 30% 증가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피제 추출기라는 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기피제란 바로 몬스터의 접근을 막아 주는 물약을 뜻했기 때문이다.

기피제의 재료는 회복초, 트롤의 피.

지구에선 회복약 조합 재료로 널리 알려진 물품으로 획득 난이도는 낮은 편에 속한다.

“정확하게 얼마나 추출할 수 있는 겁니까?”

“회복초 10개와 트롤의 피 0.1리터로 1시간에 걸쳐 15리터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1,500명이 사용 가능한 분량입니다.”

회복초 10개와 트롤의 피 0.1리터면 500코인 이하로 살 수 있다.

즉, 한 사람분의 기피제 재료비가 겨우 0.3코인밖에 안 된단 뜻이다.

“그럼 장비 하나로 24시간 동안 36,000명분의 기피제를 생산할 수 있다는 거군요?”

“네, 그렇게 되지요.”

“기피제의 유지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보통 하루 동안은 유지된다고 합니다.”

기피제라는 게 일상품으로 퍼지게 되면 지구의 일반인들에게 여벌의 목숨이나 다름없는 물건이 될 것이다.

다만 기피제가 레벨 100 이상 몬스터에겐 소용이 없어도, 지구 내 일반 필드에선 레벨 100이 넘는 몬스터를 보기가 힘들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생존에도 도움이 되지만, 이걸 이용하면 일반인들도 생존 구역 외 활동이 가능해져. 그렇게 되면 활동 반경 확장 및 물류 운송 등, 할 수 있는 게 매우 많아지지.’

현재 활동 구역을 확장하기 위해선 사냥꾼들을 경비로 동원해야 하고, 물류 운송은 인벤토리에 물건을 넣고 웨이포인트를 활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즉,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피제라는 게 도움이 되면 이런 부분에선 혁명이라 칭해도 좋은 변화가 발생한다.

‘더불어 일반 시민들이 기피제를 사용해 채집 활동을 시작한다면 짭짤한 돈벌이도 되고, 필드에서 구할 수 있는 채집물의 수급도 원활해질 거야.’

여러모로 도입이 시급한 제품이었다.

“대당 가격이 얼마입니까?”

“200만 코인입니다.”

문제는 장비의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거다.

이렇게 되면 기피제의 판매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기피제는 최대한 싸게 풀어야 일반인들이 살 생각을 할 텐데.

“음…….”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굴려 봤다.

‘원가엔 재료비뿐 아니라 장비 가격, 에너지비(마력석), 인건비 등이 포함되어야 해. 건물이야 나라에서 지원한다고 쳐도, 손익 분기점을 넘기려면……. 대략 3코인에 팔아도 1,000번 이상은 추출해야 하는군. 2코인이면 2,000번이고.’

1,000번 추출이면 42일 후부터 손익 분기점이 넘고, 2,000번은 그 두 배의 기간이 필요하다.

고민하던 나는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손익 분기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솔직히 국가에서 일종의 복지처럼 무상으로 지원해 줘도 그로 인해 새로운 시장이 형성된다면 손해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무상은 오바고, 1코인에 팔면 되겠지.’

1코인에 팔면 손익 분기점을 넘기긴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는 아니었다.

“우선 100대 정도 주문하고 싶네요.”

“네? 그, 그렇게 되면 구매 비용만 2억 코인인데요?”

“상관없습니다. 가능합니까? 물건은 준비가 되면 제가 찾으러 오죠.”

“그, 계약금을 30% 정도 거시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나는 상관없다며 그에게 바로 6천만 코인을 건넸다.

귀족을 상대로 장난질을 쳤다간 목이 날아가니, 사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가, 감사합니다.”

뜻밖에 대박 계약을 따냈다며 상인은 한껏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 정도면 마탑에서 용도를 물어 올 텐데 뭐라고 답을 할까요?”

“개인 연구용입니다.”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영주가 아닌 내가 대량으로 기피제 추출기를 구매하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래서 적당히 둘러댔다.

이미 나인포에게 기피제 추출기가 다양한 연구에 활용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렇게 답을 했다.

이후로도 나는 시장 곳곳을 돌며 지구에 도입할 다양한 물품들을 구매했다.

‘지구에서도 마도공학 연구에 신경 써야겠어.’

구입 물품 중엔 마도공학의 기초 등을 포함해 마계의 기술을 담은 책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계에선 스킬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특징이나 문양 등을 연구해 자체적으로 아티팩트를 제작할 정도에 이르렀다.

난 지구 역시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기한 게 많네.”

“맛있는 것도 많고.”

처음엔 마계라고 해서 지옥의 한 종류 같은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둘러 보면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란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평화로운 풍경과 별개로 외곽에선 전쟁 준비가 한창이니, 마계라면 마계답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이에나처럼 야금야금 마계의 것을 적대세력인 지구로 옮기는 나라는 스파이도 있고.

* * *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을까?

아발론의 시장에서 한창 쇼핑을 즐긴 다음 날.

나는 팬드래건 제국의 황성에 입성하며 황제를 만나게 되었다.

“하하, 어제 시장에서 돈을 펑펑 썼다지?”

“그동안 너무 음지에서 생활한 것 같아서, 이 기회에 양지 생활 좀 하려 합니다.”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팬드래건 제국은 자네를 지지하는 바이네.”

“감사합니다. 폐하.”

서로 자연스레 주고받는 대화.

하지만 나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팬드래건 황제 제로원 / 레벨: 300]

은연중 황제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절로 살이 떨릴 정도.

나는 레벨 290의 마왕급 존재도 혼자선 쓰러뜨릴 수 없다.

지금까지 3명의 마왕과 싸웠지만, 단 한 번도 최초 토벌 업적이 뜨지 않은 것을 보면, 내 승리 기여도 함께 싸운 팬드래건 대공의 비해 한참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기여도로 따지면 2~3할 정도 될까?’

그만큼 레벨 290대의 마왕들과도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 레벨 300의 황제를 마주하니, 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저자는 대체 얼마나 강할는지.

그런데 문제는 황제뿐만 아니었으니.

[팬드래건 황태자 제로원 2세 / 레벨: 290]

황태자라며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의 레벨까지 마왕급이었다.

새삼 팬드래건이 왜 홀로 마계의 제국인지 알 수 있는 모습이다.

나는 현재 황실 대전에서 황제와 황태자, 대공까지 세 마왕급 존재를 앞에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레벨 270대의 대장군급 공작 다섯에 레벨 260의 근위대장급 후작 열에 둘러싸인 상황이다.

당장 전투라도 벌어지면 끔살당하기 딱 좋은 포지션.

지구에서 아무리 최강이라 치켜세워 줘도 마계에선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뭐지? 뭔데 이렇게 강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거야?’

아무리 황제가 있는 황성이라 해도 후작급 이상의 강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건 평범하지 않다.

개중엔 나와 안면을 튼 팬드래건 대공이나, 로열나이츠 대장 카로스도 있지만, 모르는 얼굴이 훨씬 많았다.

특히 나를 보며 아니꼽다는 반응을 보이는 존재들도 있어서 웃고 있는 입꼬리가 경련을 일으키며 절로 씰룩였다.

“내 그대를 부른 이유는 상을 주기 위함이다.”

상이란 말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이어진 말.

“에잇투 백작. 그대에게 공작위와 함께 영지를 하사하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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