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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46화 (246/273)

246화 더욱 스텝업 (2)

‘내게 공작위와 영지를 준다고?’

그제야 황제의 부름과 이 자리에 후작 이상의 주요 귀족들이 모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공작위를 받아도 문제없는 건가?’

분명 좋은 제안이지만, 나는 황제의 말에 바로 긍정을 표할 수는 없었다.

아론다이트 덕분에 에잇투란 이름과 마계의 백작위 작위를 부여받은 상태지만, 이는 엄연히 아이템에게 빌린 두 번째 신분이니 말이다.

더구나 내 진짜 신분은 마계의 적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한 지구의 대표 지도자이다.

때문에 혹시라도 시스템에 의해 내 정체가 까발려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건 아닌지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팬드래건 제국의 황제 제로원이 ‘에잇투 백작’에게 공작의 작위와 함께 영지 하사를 제안했습니다. 이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하지만 괜한 걱정은 말라는 뜻일까?

시스템 메시지가 위와 같이 떠올랐다.

황제의 제안은 어디까지나 서백호가 아닌, 에잇투 백작에게 향해진 것이라며 이름이 강조되어 있는 것을 보니, 문제가 없을 것 같은 분위기다.

“공작위 임명서와 영지 증명서, 새로운 인장일세.”

곧이어 궁내부 대신을 겸하는 공작위의 마족이 황금 실로 묶여 있는 두루마리 2개와 붉은 보석이 박힌 반지가 든 상자를 가져와 내 앞에 내밀었다.

그 상자를 받아 들면 작위와 영지가 주어지는 모양이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조심스레 상자에 손을 뻗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팬드래건 제국의 황제가 에잇투 백작에게 공작위와 함께 구 로렌시아 왕국의 동부를 영지로 하사했습니다.]

[새롭게 하사받은 작위와 영지는 아론다이트를 보유한 상태에 한해 유지되며, 아론다이트를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분실할 경우 상실하게 됩니다.]

다행히 작위는 문제없이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사받은 영지가 하필 내 손에 의해 멸망을 맞이한 로렌시아 왕국의 땅이라니…….

딱 봐도 고생을 꽤나 할 것 같은 영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질서가 확립된 팬드래건 제국 내에서 감시의 눈길을 받는 것보다 나을 것 같기도 하니까.

“크흠…….”

내가 순순히 황제의 선물을 수습해서인지, 몇몇 귀족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과 별개로 황제는 나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용병 출신이었던 그대에게 당장 충성을 바라는 건 힘들겠지. 때문에 황궁 내에서도 그대에게 공작위와 영지를 내리는 걸 반대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네.”

너무 솔직한 황제의 이야기.

나는 애써 웃어 보여야 했다.

“황제 폐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내 대답에 황제는 입에 발린 말은 필요 없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러나 짐은 상벌을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바. 추후 그대가 다른 마음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공적에 합당한 상을 내리기로 했네.”

왠지 모르게 양심을 건드리는 대사였다.

나는 황제의 말에 최대한 감정을 숨기며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황제는 이런 내 모습에 피식 실소를 흘리고는 이내 힘 있게 선언하듯 말했다.

“혹시라도 누군가 그대에게 큰 보상을 제안하며 배신을 종용하거든 짐을 찾아오게! 제안받은 것보다 더 많은 보상을 안겨 줄 터이니!”

“…….”

“이는 그만큼 자네의 실력을 높이 산다는 뜻이며, 당장은 아니어도 추후 짐에게 충성하도록 만들고자 하는 욕심의 표명이네.”

과연 황제라는 걸까?

나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강한 자신감과 살을 떨리게 하는 위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레벨 300.’

아마 그에게서 느껴지는 자신감은 레벨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그는 마계 제일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이끄는 나라가 마계 최고의 국가이기도 하니까.

그에 비해 나를 포함해 지구의 여력이 팬드래건 제국의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니, 제로원이란 황제의 존재가 더욱 위대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지구의 사냥꾼들이 이런 놈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현재 지구는 대한제국으로 세력이 통일되면서 의무 전쟁 조항이 사라져 매우 평화로운 상태다.

물론, 사냥꾼들은 지금도 열심히 레벨을 올리고 있긴 하지만, 마의 레벨인 200대에 접어들고 버벅거리는 헤르만과 데이비드를 보면, 지구가 마계에 맞서기 위해선 연 단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새삼 나 자신이 얼마나 규격 외 성장을 하고 있는지 똑똑히 깨닫게 되네.’

어쩔 수 없지만, 그전까진 내가 정신을 똑똑히 차리고 이용할 수 있는 건 모조리 이용해 시간을 끄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공작이 되어 한계 레벨이 뚫렸을 테니, 어서 레벨을 올리게나. 대공의 말에 의하면 그대의 레벨이 270쯤 되면 마왕에 버금갈 거라던데, 내 기대해 보겠네.”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본 황제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족은 신분에 따라 올릴 수 있는 레벨의 한계가 정해져 있다.

공작위 귀족의 성장 한계 레벨은 270.

그래서 황제가 저런 말을 하는 거다.

하지만 그건 마족인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

어차피 내용물이 지구인인 나는 성장의 제약이 아직 없다.

‘실제로 지금 내 레벨이 249인데, 이는 백작의 한계 레벨인 245를 진작에 4나 넘어선 거지.’

일반적이라면 왜 신분보다 높은 레벨을 갖고 있냐며 주변에서 이상하다고 의심할 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마계에도 딱 하나, 신분을 초월해 레벨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게 바로 마족과 같은 마계의 주민들을 처치하여 경험치를 빼앗는 것이다.

물론 마계에도 법이란 게 있기에 이유 없는 살인은 용서받을 수 없으나, 지금은 전쟁이 한창이지 않은가.

신분에 따른 한계 레벨을 초월한 사람들이 등장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심지어 나처럼 레벨이 한참 높은 마왕 등과 싸우고 있는 이레귤러라면 더더욱.

‘그런데 그것도 한때야. 마족이 같은 마족을 잡아 레벨을 올리는 건 효율이 나쁘니까. 그건 마왕을 셋이나 잡았음에도 레벨이 1밖에 오르지 않은 팬드래건 대공이 증명하지. 때문에 전쟁에서 아무리 활약을 하더라도 홀로 눈에 띄는 성장을 계속해 나갔다면 언제고 의심을 사는 날이 올 수밖에 없었을 거야.’

다행히 이젠 공작위가 있으니 레벨 270까지는 아무런 의심을 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제의 보상은 시기 적절히 이어진 거라 할 수 있겠다.

“고생했네. 주변 반응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축하드립니다. 에잇투 공작 전하.”

“고맙습니다.”

나와 친분이 있는 팬드래건의 귀족들이 작위 임명이 끝나자 다가와 축하를 건네 왔다.

반면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못마땅하단 표정으로 자리를 떴는데, 솔직히 팬드래건 입장에선 그들이 오히려 나라에 도움이 되는 애국자라 할 수 있겠다.

‘지구에선 황제, 마계에선 공작.’

어쩌다 보니, 양 세계에서 모두 최고위 신분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 기회에 대공 자리까지 노려서 마계에서 마왕급의 존재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가능하다면 말이다.

* * *

마계와 지구 두 세계는 마경을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는 상태다.

하지만 두 세계의 포지션은 전혀 다르다.

마계가 이능이 완전히 자리 잡힌 성숙한 세계라면, 지구는 이제 막 이능이 개화한 어린아이 같은 세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시스템은 이런 두 세계를 강제로 싸우게 만들 생각이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하루하루 가파른 변화를 겪게 된 지구 입장에선 모든 게 재앙과 같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건 시스템 역시 잘 알고 있는지, 마계보단 지구 측에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지구 출신으로 마계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이기에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알비온 제1 텔레포트 게이트입니다. 이렇게 공작 전하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디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엘리언트 전선으로.”

“네, 알겠습니다. 엘리언트 전선으로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마계에선 웨이포인트가 매우 적다.

대한민국은 한 도시에 적게는 1개에서 많게는 3~4개까지 웨이포인트가 설치돼 있는데, 마계엔 도시 단위가 아닌 한 국가에 많아야 3개를 넘기지 않았다.

그래서 마계에선 웨이포인트를 본 따 직접 만든 텔레포트 게이트가 이동 수단의 주류로 쓰였다.

-팟!

“충!”

“충!”

[팬드래건 기사 라이덴 / 레벨: 180]

[팬드래건 중급 지휘관 카지스 / 레벨: 210]

그리고 또 다른 차이.

지구는 마계와 달리 신분에 따른 성장 레벨에 한계가 없다는 거다.

덕분에 지구인의 잠재력만큼은 마계인들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마계 수준으로 성장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해서 그렇지.

“우와, 진짜 인간족인데 공작이네?”

“그치? 인간족 중에 저렇게 레벨 높은 사람 처음 봐.”

“에잇투 공작님으로 인해 마계 내의 인간족들이 팬드래건에서 득세하게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그건 좀…… 아무리 같은 마계인이라 해도 인간들은 마족에 비해 덜떨어지지 않나?”

“쉿! 들리겠어.”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에 대한 정보 차이가 크다.

일단 지구는 마음만 먹으면 마계의 정보를 획득할 수 있지만, 마계에서 지구의 정보를 획득하는 건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계인을 구성하는 종족 중에 인간족도 있어서 나를 봐도 지구인이란 의심을 하는 사람은 아예 없고, 그저 마계에 원래부터 있던 인간족으로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지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대재앙 초기에 이상 지형에 휘말려 마계로 넘어왔던 헤르만이나 데이비드 같은 사례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마계에선 고위 지도층들이 지구인의 등장으로 인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거란 추측을 하고 있는 수준의 정보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실시간으로 마계의 정보를 실어 나르는 나와 같은 인물이 있는 지구와 달리, 마계에선 지구의 정보가 몹시 귀했다.

그 외에도 성장에 좋은 사냥터의 여부, 최초 토벌을 포함해 다양한 보상 제공 및 마계에 비해 획득 확률이 높은 스킬북 등 시스템은 지구 측에 많은 편의를 봐주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해서 마계와 지구를 싸우게 만들려는 건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살기 위해 룰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편의 제공에도 상황은 지구에 유리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마계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마계가 지구에 관심을 갖는 시간을 미루고자 전쟁터로 향했다.

내가 이동할 때면 주변에서 어김없이 수많은 시선이 쏟아졌는데, 지금은 이런 호기심에 꽤나 익숙해진 상태인지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높아진 신분 덕분에 알아서들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예전에 비하면 나를 두고 수군대는 게 많이 적어졌다.

“엘리언트 전선에 어서 오게나, 에잇투 공작.”

오늘도 어김없이 전선에서 나를 반겨 주는 팬드래건 대공.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 깃든 긴장감을 읽을 수 있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덕분에 자연히 내 입에선 의문의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곧 상상치도 못할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상황이 좋지 않아. 적진에 무려 세 명의 마왕이 출전한 걸 확인했으니 말이야.”

“네?”

지금까지 팬드래건 제국이 손쉽게 3개의 왕국을 먹어 치울 수 있던 건 각국의 마왕과 정예들을 각개 격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군의 마왕이 셋이나 한자리에 함께하고 있다니, 벌써부터 공략 난이도가 헬이란 느낌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황제 폐하께서 와 주실 거란 사실이네.”

“오, 그거 다행이네요.”

팬드래건 제국의 황제는 마계 제일의 강자.

마왕급이라고 다 같은 마왕급이 아니니, 충분히 승산 높은 싸움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피어올랐다.

심지어 마음 한편으론 레벨 300대의 마왕의 활약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란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한국말이 그런 거처럼 마계의 말도 끝까지 들어야 했다.

“그런데 상대 진영에도 레벨 300의 마왕이 하나 있어. 대국인 알피던스 왕국의 국왕이지.”

“네? 그 말씀은?”

“잘하면 자네가 마왕 하나를 물고 늘어져야 할 수도 있단 뜻이네.”

“허…….”

상상치도 못한 발언.

그에 나는 미간을 찌푸려야 했다.

‘아니 시발, 공작위 좀 줬다고 너무 부려 먹는 거 아니야?’

하지만 한편으론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었는데…….

‘이젠 그걸 쓸 수 있으니까.’

이유는 바로 어제 레벨 250을 달성하면서 전설 등급의 무기, 엑스칼리버의 사용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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