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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48화 (248/273)

248화 더욱 스텝업 (4)

마계의 전쟁은 라인전 중심.

마계에선 병사들의 기본 레벨이 100대 중반인지라, 단순하게 쌓아 올린 성벽은 소용이 없다.

마계의 전쟁을 보면 아주 스펙터클한데, 만 명 단위의 병사들이 충돌할 때면, 전투가 너무 요란해서 절로 헛웃음이 날 지경이다.

허공을 내달리는 것은 기본이요, 하늘을 날거나, 블링크를 사용하는 이들도 많았으니 말이다.

더불어 공격 스킬을 한 번에 쏟아 내면 그 위력은 레벨 200대의 귀족들조차 무시하지 못할 정도여서 쪽수에서 오는 파괴력이 상당했다.

‘마계의 거리를 보면 중세 혹은 르네상스 시대를 보는 것 같은데, 전쟁은 미국의 모 히어로 영화처럼 ‘어X져스 어셈블’을 외쳐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니까?’

한번은 팬드래건 제국 측에서 폭발 스킬을 보유한 병사들이 일시에 해당 스킬을 쏟아 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수천 번의 폭발이 동시에 작렬하던 광경은 앞으로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만약 지구와 마계가 정말 전쟁으로 맞붙게 된다면, 저 엄청난 쪽수를 자랑하는 병사들은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지구에선 기본적으로 레벨이 100 이상이면 고레벨의 사냥꾼으로 여겨지는데, 마계에서 그 정도는 병사 축에도 끼지 못하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계의 인구가 지구보다 적고, 병사들의 평균적인 장비와 스킬의 질이 그리 높지 못하다는 거야.’

마계는 기본적으로 계급 사회이기에 귀족들에게 부가 쏠려 있다.

그래서 지구인들 입장에서 마계의 병사들을 보면 ‘저 정도 레벨에 왜 저걸?’ 싶은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병사 수준의 전력까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거야. 장비와 스킬빨을 내세우면 레벨 20 차이 정돈 얼마든지 커버 될 테니까.’

때문에 나는 마계 병사들의 화려한 충돌에도 별로 긴장하지 않고 나름대로 웃으며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간 보기 타임인 병사들 간의 충돌이 끝이 나고,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하며 등장하기 시작한 마계 귀족들의 모습을 보면 머리가 지끈거릴 수밖에 없다.

레벨 200 전후의 저 괴물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지구의 정예들이 나서야 하는데, 놈들은 쪽수도 많고 장비와 스킬도 최상으로 갖춰 뒀다.

“대장군이다!”

“적군에 대장군이 등장했어!”

“아니, 저 뒤를 봐! 마왕도 함께야!”

뿐만 아니라 레벨이 270대인 대장군(공작급)들과 레벨이 290, 300에 달하는 마왕들이 등장할 때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들 덕에 아직 지구는 갈 길이 멀다는 게 뼈저리게 느껴졌으니까.

‘차라리 나와 우리 파티가 전부 때려잡는다는 마인드로 가는 게 나으려나?’

뒤를 받쳐 주는 부하들의 존재는 소중하지만, 차라리 내가 수를 쓰는 게 현실적일 거란 생각마저 든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마계에 잘 침투하여, 최강국인 팬드래건 제국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니까.

“그럼 짐도 거들도록 하지.”

“뒤따르겠습니다. 폐하.”

마계에선 지위가 높으면 레벨도 높기 때문에 황제나 왕이 직접 싸우는 걸 꺼리지 않아했다

그래서인지 제로원 황제는 적군 측에 마왕이 등장하자 스스럼없이 앞장서서 제로투 대공과 나를 이끌었다.

나는 슬쩍 황제의 뒤를 따르며 마계 제일인이라는 그의 장비를 살폈다.

‘외형만으로 정확한 등급을 파악할 순 없지만…….’

그가 쥐고 있는 한손검과 방패, 그리고 악마의 날개로 변모한 망토가 유독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 상대한 마왕들 중에 신화급 장비를 가진 마왕이 없었단 것을 떠올리면 저 3개가 모두 신화급일 리는 없겠지.’

하지만 제로원 정도 되는 신분의 존재라면 분명 신화급 장비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마계와 지구의 전쟁이 본격화된다면 눈앞의 제로원이 최종보스화가 될 테니, 나는 주의 깊게 그를 살폈다.

“에잇투 공작, 손에 쥔 검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군.”

-깜짝.

그런데 상대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망토를 변형시켜 검은 날개를 크게 펼친 제로원 황제의 말에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려야 했다.

“네, 분에 넘치는 무기입니다.”

“좋군, 새삼 자네를 끌어들이길 잘했단 생각이 들어.”

혹여 남의 무기에 욕심을 내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황제는 내 검에서 시선을 거뒀다.

그는 한손검을 선호하는 데 반해, 엑스칼리버는 한손반검(한손과 양손으로 모두 사용 가능한 검)이어서일까?

정말 다행이다.

-힐끔.

황제의 말에 양손검을 선호하는 제로투 대공도 내 무기에 슬쩍 관심을 주었다가…….

[알피던스 왕국 마왕 제로세븐 / 레벨: 300]

[데일라 왕국 마왕 제로나인 / 레벨: 290]

[루시아스 왕국 마왕 일리야 / 레벨: 290]

이내 적군의 마왕들을 앞에 두게 되어 관심을 거두었다.

“일리야 양과는 처음 보는군.”

두 마왕 진영 사이엔 약 100미터에 달하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황제의 말을 듣지 못할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루시아스 왕국의 마왕이자, 전혀 강해 보이지 않는 외형을 가진 여성이 적군의 수장임에도 예의 있게 인사를 건네왔다.

‘왠지 윌리아와 시에나 사이에 세워 놓으면 딱일 것 같은 여자네.’

신장도 155cm 정도로 시에나보다 크지만 윌리아보단 작고.

외모도 엄청난 미인으로 시에나보단 성숙해 보여도 윌리아보단 앳돼 보였다.

귀여움과 아름다움 사이의 무언가.

마왕 일리야는 그런 외형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내 시선 때문일까?

일리야가 사금을 뿌려 놓은 듯 반짝이는 금발을 귀 뒤로 쓸어 넘기며, 금색 눈동자를 내게 고정시켰다.

“대충 상대는 정해진 것 같군.”

황제의 앞엔 레벨 300의 알피던스 왕국의 마왕이 자리하고.

제로투 대공 앞엔 레벨 290의 데일라 왕국의 마왕이 자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앞에 레벨 290의 루시아스 왕국의 마왕 일리야가 자리했는데, 다들 동렙의 마왕을 상대하는 것과 달리 이쪽은 레벨 차이가 무려 40에 달했다.

‘너무하는구만.’

새삼 이번 작전이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황제의 신임을 얻기 위해 까라면 까야지.

다행히 내겐 마왕조차 보유하기 힘든 엑스칼리버란 신화 등급의 무기와 저 밑에서 언제든 나를 지원하기 위해 대기 중인 파티원들이 있었다.

처음 마왕이란 드래곤급 존재에게 절절매던 나와 우리 파티는 3번에 걸친 대마왕전으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잘 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전투에 불만이 있을지언정, 엑스칼리버를 쥔 손아귀엔 힘이 잔뜩 들어갔다.

-휙.

‘응?’

그런데…….

나는 신임 마왕이라 그나마 상대하기 만만할 것이라 추측되던 일리야가 새로운 장비를 꺼내 들자 흠칫 놀라야 했다.

마치 깊은 심해를 담은 듯 짙은 남색의 무언가가 속에서 일렁이는 유리구슬.

놀랍게도 그 남색의 내용물엔 우주를 담은 듯 다양한 빛깔로 점멸되는 점들이 수 놓여 있었다.

일리야의 손 위에 10cm 정도 높이로 떠 있는 그 특이하고 매혹적인 구슬은 마법 계열 스킬의 위력을 증폭시키는 ‘오브’가 분명해 보였는데…….

‘저건 누가 봐도 신화급 장비 아니냐?’

나는 범상치 않은 때깔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닭살을 돋게 만드는 기운을 품은 그것에서 시선을 돌려, 팬드래건 제국의 황제와 대공에게 말했다.

“제일 약한 마왕이 아닌 거 같은데요?”

그리고 이런 내 얼빠진 대사와 함께.

“죽어라 황제!”

“덤벼라 제로투!”

황제와 대공이 손을 쓸 틈도 없이 전투가 개시되었다.

“설마 나 미끼인 건가?”

황제와 대공의 눈빛에 당혹스러움이 담겼던 것을 보면 분명 의도한 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적군이 머리를 잘 썼다고 봐야겠지.

물론, 이로 인해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건 나라는 게 문제지만.

“오브의 특별함을 알아챘는가? 제법 눈썰미가 좋은 녀석이군. 그렇다고 너무 절망할 것 없다. 고통 없이 저세상으로 보내 줄 터이니.”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일리야의 얼굴에 옅은 조소가 깃들었다.

이어서 그녀가 오브를 문지르자.

하늘 위로 은하수가 펼쳐지듯 짙푸른 오로라가 생겨났다.

저게 뭐 하는 건지는 몰라도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거란 건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 신화급 장비인가 보네.”

한껏 힘을 준 이펙트.

일리야의 대사와 화려한 장비뽕을 보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개벽.”

다짜고짜 엑스칼리버의 신화급 종결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어?”

윌리아와 쓸데없이 이름이 비슷한 일리야의 머리 위로 웅장하게 펼쳐지던 은하수 오로라를 뚫고 백광이 떨어졌다.

-쿠쿠쿠쿵!

곧이어 그 백광이 지상에 닿았는데, 어째 기세가 줄긴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부피를 키워 갔다.

직경 1km 빛의 기둥이 하늘과 지상에 연결되고.

-훅!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공간 내의 모든 것을 삼키며 빛의 기둥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

동그랗게 도려진 구름에 강한 햇볕이 내리쬈다.

순간적으로 이게 뭔 일인가 싶어 모두가 벙찐 표정을 지었으나…….

-콰콰콰콰쾅!

강렬한 빛과 함께 후폭풍이 발생하면서 더 넓은 공간을 휩쓸었다.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덕분에 현세에 지옥이라도 강림한 듯 온갖 비명 소리가 주변을 잠식했다.

‘장난 아닌데?’

상대가 뭔가 수를 쓸 것 같아서 선수를 친 건데, 너무 과했나?

일단 일리야는 필사적으로 도망친 덕에 무사했다.

팔 하나가 날아가긴 했지만, 마법사로 보이는 그녀에게 그건 부상도 아니었다.

하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적군 진영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다.

설마 하늘에서 벌어지던 전투의 여파가 자신들에게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다.

역시 언제 봐도 무시무시한 일격이다.

나는 한껏 굳은 일리야를 불렀다.

“야.”

그리고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베는 제스쳐를 취하며 도발했다.

“저세상 보내 준다며.”

이런 내 행동에 그녀의 입꼬리가 꿈틀대고.

이내 도끼눈을 뜨며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적의 작전은 일리야가 빠르게 나를 처치하고 나머지를 돕는 거였을 것이다.

그런데 좀 전의 일격으로 인해 확실해졌다.

적의 작전은 실패할 것이란 사실이.

‘그렇다고 내가 일리야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오히려 우리의 작전은 내가 일리야를 쓰러뜨리는 게 아닌, 시간을 버는 거였으니 가능성은 이쪽이 더 높지 않겠는가.

나는 성화로 이글거리는 엑스칼리버를 손에 쥐고, 제3의 손으로 바리사다를 쥐었다.

이런 내 주변으로 프라가라흐와 시에나의 브라흐마스트라가 공전했다.

일리야는 더는 나를 경시 못 하고 일단 각종 버프로 자신을 도배하더니.

간격을 좁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무차별적으로 원거리 공격 스킬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화염 마법, 뇌전 마법, 얼음 마법.

각종 원거리 공격 스킬이 날아들었다.

하나같이 위력이 증폭되어 극강의 모습을 보여 주는 스킬들이었지만.

-촤촤촤촥!

나는 묘기를 부리듯 공격들을 엑스칼리버와 바리사다로 일일이 베면서 전진을 거듭했고.

그와 동시에 프라가라흐와 브라흐마스트라가 일리야의 측면을 노리게 했다.

비로소 마왕과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심지어 그냥 마왕도 아니고, 어떤 변수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신화 등급 장비를 가진 마왕과 말이지.

‘아니, 부정적인 생각은 말자.’

만약 내가 눈앞의 저 녀석을 쓰러뜨린다면 놈의 신화 등급 장비는 내 것이 되는 거다.

윌리아에게 참으로 어울릴 것 같은 저 신화 등급의 오브가.

그러니 물고 늘어지는 선에서 그칠 게 아니라 처치한다는 생각으로 적에게 덤벼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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