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50화 (250/273)

250화 생태계 파괴자 (2)

강자 간의 전투는 한순간의 방심, 한 번의 실수로 유리했던 전황이 단번에 뒤집히기도 한다.

일리야는 마왕으로서 경력이 길진 않아도 자신의 무력에 충분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고, 오늘의 전투도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녀는 마계에서 전설로 전해져 오던 극강의 무기, 마신의 오브를 소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본인의 실력은 마왕 중에서 특출나다고 할 수 없지만, 신화 등급에 해당하는 마신의 오브를 소유한 이상, 마계 제일의 강자라 불리는 제로원 황제에게조차 비벼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손쉽게 처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레벨 250 따리에게 이렇게 고전을 하게 될 줄이야.

‘에잇투 공작이라 했나?’

팬드래건 제국과 3왕국의 전쟁이 처음 시작됐을 당시 3왕국 측의 용병으로 참전했던 인물.

당시 그는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마계 초기 신분 중 하나인 백작위의 자유 귀족이었다.

자유 귀족들은 음지에서 활동하는 가문 소속인 경우가 많은데, 약삭빠르게 본래 진영을 배신하고, 많은 보상을 약속한 팬드래건 제국 측에 붙은 것은 과연 음지 출신답다고 생각했다.

이후 에잇투 백작은 팬드래건 제국에서 승승장구하며 빠르게 입지를 다졌고, 결국 황제에게 포섭되어 제국의 공작이 되었다.

‘제법 강하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원래대로라면 소문보다 월등히 강한 힘을 가진 마왕 일리야가 에잇투 공작을 빠르게 처치하고 다른 전선에 합류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그녀가 처음 에잇투 백작, 서백호와 맞붙게 되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는데…….

당혹스럽게도 마왕들조차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 신화 등급의 장비를 고작 귀족이었던 그가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래선 무기를 앞세운 일방적인 우위를 점칠 수 없다.

심지어 막상 본격적인 전투에 돌입하니, 그녀는 상대와 상성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저 신화 등급의 검도 검이지만, 다른 장비들도 하나같이 뛰어나기 그지없어! 장비 수준으로만 따지면, 웬만한 마왕보다 나아 보이는군! 제기랄!’

특히 검은 연기처럼 일렁이는 망토는 일리야가 가진 신화급 장비 마신의 오브의 고유 스킬인 투과에 대한 저항 능력을 갖고 있어서 그녀가 자주 애용하는 포위 공격의 효과를 반감시켰다.

뿐만 아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수백 수천 발의 투과 공격은 악몽과 같으니, 누구라도 머지않아 고깃덩어리를 만들어 줄 그 공격을.

-콰콰콰콰콰쾅!

-서걱! 서걱! 서걱!

이 미친놈은 귀신같은 검 놀림으로 베고 또 베어 냈다.

그리고 일리야의 폭풍과도 같은 공격을 연거푸 베면서도 앞으로 전진하는 호전성까지 갖고 있으니, 위기의 순간을 겪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돌아 버리겠군.’

마치 자신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존재.

일리야는 에잇투 공작, 서백호를 보며 그리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레벨 차이와 마신의 오브의 뛰어난 스킬 덕에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팟!

‘젠장, 이래선 끝이 없어.’

하지만 상대 역시 신화급 무기를 지녀 한 방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저 밑에서 일리야를 방해하며 막강한 회복 능력으로 서백호를 백업하는 동료들의 존재가 승패를 장담치 못하게 했다.

그녀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그게 일리야에게 부여된 기본 임무인지라 그녀가 이대로 묶여 있게 되면 결국 전황은 팬드래건 측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일리야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아도 초조해할 수밖에 없었고.

“하핫 봐라! 우리의 황제께서 네 동료의 목을 자르는 모습을!”

“뭐!?”

그 초조함은 서백호의 연기에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가게 만들었다.

“속았지?”

-푹!

“컥!”

일리야의 방어를 무시하고 파고들어 살과 뼈, 심장을 관통해 버리는 검 한 자루.

단 한 번, 한눈을 팔아 버린 그 실수에 의해 그녀는 치명상을 입고야 말았다.

‘투, 투과검…….’

신화 등급 무기뿐만 아니라 투과검까지 갖고 있다니.

새삼 최악의 적임을 깨닫게 해 주는 상황이었다.

“이, 익! 이대로 죽을쏘냐.”

하지만 일리야는 버텨 냈다.

놈은 심장이 아니라 머리를 노렸어야 한다.

심장이 파괴된다고 당장 움직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그녀 정도의 존재라면 얼마든지 파괴된 심장을 회복할 수단을 갖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마족인 그녀는 재빨리 암 속성의 회복 스킬을 사용했는데, 어째서인지 스킬이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저년이…….”

암 속성의 회복 스킬과 동시에 빛 속성의 회복 스킬이 날아들어 그녀의 치료를 방해한 것이다.

바로 아까부터 자신의 적인 서백호를 치료해 주던 힐러, 윌리아의 방해였다.

-쿨럭.

일리야는 결국 피를 토하며 비틀거려야 했고.

이런 기회를 상대가 놓칠 리 없었다.

“하, 하하…….”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의 빛.

그것이 서백호가 가진 신화 등급 무기의 결전 스킬(개벽)임을 확인한 그녀는 이 상황 자체가 어처구니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 * *

[한국인 서** 님이 마왕을 토벌하셨습니다.]

[세계 최초로 마왕을 토벌한 업적은 명예의 전당에 기록이 됩니다.]

[모두 한국인 서** 님을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백호는 이미 여러 마왕의 목을 벴다.

하지만 그건 그의 온전한 업적이라기보다 팬드래곤 대공의 공이 크게 작용한지라, 업적 메시지가 떠오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즉, 이번에 떠오른 업적 메시지는 온전히 서백호의 힘으로 마왕을 쓰러뜨렸단 의미기에 이를 보게 된 이들은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기어이 드래곤급 존재까지 쓰러뜨렸어.”

헤르만과 데이비드는 레벨 250의 준드래곤 몬스터를 토벌하고 함께 사냥에 참가한 이들과 회포를 풀고 있었다.

덕분에 지구의 최고위 사냥꾼들이 한자리에 모여 해당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황당함이 가득 담긴 헤르만의 반응에 누구는 동감하고, 누구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대박! 대박! 역시 대단하시다니까!”

“얼른 폐하께 축하 편지 보내죠!”

윤시아나 김민희 등 서백호의 열렬한 추종자들은 자신이 준드래곤급 몬스터를 쓰러뜨렸을 때보다 이 메시지에 격한 반응을 보이며 기뻐했다.

그러나 헤르만도, 윤시아도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감정이 있었으니.

“하여간 같은 편이라 정말 다행이라니까.”

“그럼요. 폐하는 희망의 등불이십니다. 그 존재만으로 많은 사람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시니까요.”

그건 바로 안도감이었다.

든든히 뒤를 받쳐 주는 절대 강자의 존재는 이들이 품고 있는 마음속의 불안감과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었으니 말이다.

앞에 뭐가 있을지 알 수 없는 미개척지를 모험하는 것과 누군가가 개척해 놓은 길을 따라 걷는 것은 천지 차이다.

서백호는 존재 자체만으로 바다 위의 등불처럼 안도감을 주는 인물이 되고 있었다.

“다음 레이드 일정도 바로 잡죠.”

“좋습니다. 우리도 조금 더 힘내 보도록 해요.”

* * *

반팬드래건 연합이 만들어지면서 처음으로 벌어진 마왕 간의 집단전.

당연히 이를 주시하던 국가들은 반팬드래건 연합 측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나도 이해는 한다.

반팬드래건 연합은 레벨 300의 마왕 하나와 레벨 290의 마왕 둘이 나섰으며, 팬드래건 제국은 레벨 300의 마왕 하나, 레벨 290의 마왕 하나, 레벨 250의 공작 하나가 대항해 왔으니 말이다.

심지어 반팬드래건 연합에선 마왕 중 최약체로 치부되던 일리야가 알고 보니 전설 속의 무기를 보유한 다크호스였던 만큼, 승리를 확신하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그들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에잇투 공작이 마신의 오브를 지닌 마왕 일리야를 쓰러뜨렸다.]

반팬드래건 연합 측의 희망이던 일리야가 마왕도 아닌 레벨 250의 공작에게 패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팬드래건의 황제는 황제대로 크게 활약했으나, 위의 소식이 더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때문에 한껏 쫄은 반팬드래건 연합의 나머지 다섯 마왕들은 똘똘 뭉쳐야 했다.

“아, 안 돼! 마공이 등장했어!”

이렇듯 상층부가 소극적으로 대응을 하니, 전쟁에서 죽어 나가는 건 그 아랫사람들이다.

덕분에 내가 바라던 대로 마계의 전력이 전체적으로 크게 깎여 나가는 게 눈에 띄었고.

나는 그 상황에 큰 역할을 했다.

“개벽.”

-콰콰콰콰쾅!

-끄아아악!

-도망쳐!

팬드래건 제국 진영에 속해 있음을 증명하듯 인정사정없이 눈에 띄는 모든 적군을 망설임 없이 날려 버렸다.

엑스칼리버를 들고 날뛰는 나는 적군에게 재앙이나 다름이 없었으며, 이런 나를 따르는 파티원들의 활약은 두말할 것 없었다.

그런데 내 파티원 중에서 특히 돋보이는 존재가 있었으니.

“제, 젠장! 타천도 있어!”

그건 바로 마신의 오브를 손에 넣은 윌리아였다.

마신의 오브는 투과 스킬이 깃든 원거리 마법 공격을 가능케 해 줬는데, 그녀가 허공을 날아오르면 지상은 융단 폭격을 당한 것처럼 수많은 마족이 맥없이 죽임을 당했다.

마신의 오브는 예상대로 윌리아와 상성이 좋았다.

덕분에 그녀의 활약은 나 못지않았으며, 머리 위의 천사의 고리로 인해 타천이라 불리며 악명을 떨쳤다.

‘마공에 타천이라, 참으로 중2병스러운 이명이네.’

전쟁에서 학살에 학살을 거듭한 덕에 우린 엄청난 속도로 레벨업을 이어 갈 수 있었다.

평범하게 사냥을 한다면 한 번의 레벨업에 며칠이 걸릴지 알 수 없으나, 고레벨의 마족들을 몰이사냥 하다시피 하니. 전쟁 발발 한 달이 된 시점에서 우린 레벨 260을 넘어 270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마계 공작의 레벨이 270 정도인데, 이를 거의 꽉 채운 것이다.

“너희 마공에 타천이라 불리는데, 나는 떨거지 취급이잖아! 나도 신화급! 신화급 무기 줘!”

다만 가파른 성장에도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시에나에게 엄청나게 시달려야 했다.

나와 윌리아가 이명까지 얻어 가며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것과 달리, 그녀의 유명세는 지구에서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에나도 신화 등급의 무기를 얻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신화 등급은 정말 운이 하늘에 닿아야 얻을 수 있는 보물로, 한 번도 일반적인 루트로 구한 적이 없는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팬드래건 제국의 황실에서 윌리아의 마신의 오브를 탐내지 않아 다행이지.’

그래서 우린 유일 등급 장비를 구하면 무조건 시에나에게 우선 배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로원 뒤통수치자.”

“네? 언제고 할 거긴 한데, 당장은…….”

그럼에도 시에나의 조르기는 멈출 줄 몰랐다.

이런 뜬금 없는 제안을 해 올 정도로.

‘확실히 황제를 쳐서 죽이는 데 성공한다면 신화 등급 무기를 얻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너무 리스크가 크다.

더불어 원하던 목적에 반하고.

마계를 더욱 쑥대밭으로 만들기 위해선 아직 제로원 황제의 힘이 필요했다.

‘물론, 지금의 우리가 뒤치기를 한다고 해도 그 막강한 황제를 이긴다는 보장이 없지.’

더구나 최근 황제가 내게 대공위를 부여할 거란 소문이 돌고 있다.

공작위를 받고 한 달도 안 되어 대공위를 거론하다니, 내부적으로 시끄러웠지만, 황제는 강행할 낌새다.

그런데 황제의 총애 속에서도 이쪽에선 뒤통수를 칠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악당이 아닌가.

“신화급! 신화급 무기!”

때문에 나는 시에나의 조르기에 신화 등급의 장비를 구할 방법이 정말 없을까 꾸준히 고민해야 했다.

“아…….”

얼마나 시에나에게 시달렸을까?

나는 결국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리는 데 성공했다.

“혹시 드래곤이라면…….”

우리 월광도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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