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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51화 (251/273)

251화 생태계 파괴자 (3)

좋은 장비를 얻는 방법은 간단하게 두 가지로 추릴 수 있다.

하나는 흔치 않은 업적을 달성해 그에 대한 시스템 보상을 받는 것.

다른 하나는 강한 몬스터 혹은 강한 적(마족, 인간 등)을 쓰러뜨려 장비를 습득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드래곤은 두 가지에 모두 부합되는 최적의 상대라 할 수 있지.’

지구에선 레벨 200 이상의 몬스터를 보기가 매우 힘들다.

물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는 신규 던전이나, 강원도에 위치한 하늘섬처럼 특수한 필드에서 종종 볼 수 있긴 하지만, 그 수는 매우 적어 레벨이 200에 근접한 사냥꾼은 마경을 탐색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런 지구에서 어울리지 않게 레벨 300이란 궤를 달리하는 몬스터가 있으니, 그게 바로 드래곤이다.

‘심지어 보통 마왕의 강함을 표현할 때 드래곤급이라 표현하곤 하는데, 그만큼 강함의 기준이 되는 몬스터라 할 수 있지.’

실로 상징성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드래곤을 사냥하는 데 성공하면 신화 등급의 장비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자연히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레벨 100대일 때 놈을 마주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 압도적인 존재감과 마치 나를 벌레 보듯 무시하고 지나가던 놈을.’

일찍이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강자로 입지를 굳힌 상황에서 보았던 드래곤의 존재는 가히 충격이었다.

“네?”

“설마, 그 실버 드래곤에게 덤벼들게?”

그리고 그건 윌리아와 시에나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 혼잣말에 두 사람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화 등급 장비를 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루트가 아닐까 싶어서요.”

내 주장에 두 사람도 확실히 그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드래곤 사냥에 대해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어린애처럼 신화급 장비가 갖고 싶다며 조르던 시에나까지 그러니, 괜히 헛웃음이 났다.

아무래도 첫 만남에서 새겨졌던 놈의 임팩트가 잊히지 않는 모양이다.

“월광도에서 놈과 싸우면 섬 다 날아가겠네.”

“하하, 그건 그렇죠.”

신화 등급의 장비인 엑스칼리버의 최고 스킬인 개벽 한방이면 섬 하나 날리는 건 일도 아니다.

아무리 방비가 잘되어 있다고 해도, 섬의 규모가 그리 크다고는 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드래곤의 레어는 하나가 아니고, 정기적으로 다른 지역의 둥지를 방문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지역의 레어로 갔을 때 공략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얘 진심이네. 싸울 생각 만만인데?”

드래곤 토벌을 떠올리게 된 원인은 시에나에게 있지만, 막상 요목조목 따져 보니 공략을 시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왕 일리야를 쓰러뜨리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그동안 우리의 레벨은 20이나 올랐고, 보유한 신화급 무기도 2개가 되었죠.”

레벨 290과 300은 또 다르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레벨 290에 마신의 오브로 무장하고 있던 일리야는 신화급 무기를 지니지 않은 레벨 300의 마왕과 비견해도 부족함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도 우린 그런 일리야를 상대로 승리했다.

물론, 약간의 운이 더해진 결과임은 분명하지만, 그때보다 지금의 상황이 월등히 좋지 않은가.

고로 아무리 드래곤이 일반적인 레벨 300의 마왕보다 강력하다고 한들, 충분히 가능성을 따져 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런 자신감에는 윌리아의 존재와.

“더욱이 마신의 오브를 이용한 윌리아 님의 투과 마법 난사는 덩치가 큰 드래곤 같은 몬스터에게 특히 강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마왕 일리야를 토벌하면서 얻은 업적 보상이 한몫했다.

“새로 얻은 인챈트 스킬도 있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밀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있긴 했지.”

마왕 최초 토벌 업적으로 손에 넣은 스킬.

[인챈트 / 신화 등급 스킬 / 액티브]

-장비로부터 한 가지의 옵션을 추출하여 다른 장비에 부여할 수 있으며, 부여된 인챈트 효과는 약 1시간 동안 유지된다.

-비슷한 계열의 옵션은 중복으로 적용되지 않으며, 더 효율 좋은 옵션의 효과 하나만 적용된다.

-인챈트 장비는 1인당 1개만 사용할 수 있다.

-마력 소모: 50

장비에 내장된 옵션을 빼서 다른 장비에 부여할 수 있는 신화 등급의 스킬로, 정확히는 업적 보상으로 지급된 ‘신화 등급 스킬 뽑기권’에서 나온 거다.

만약 원거리 공격 스킬이 나왔다면 시에나의 몫이 되었겠지만, 일종의 보조 스킬인지라, 전략적 사용을 위해 내가 보유하게 되었다.

참고로 옵션은 장비의 내장 스킬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장비에 부여된 고유 효과를 뜻한다.

“인챈트로 아스칼론에서 드래곤 슬레이어 효과를 빼내 파티원들 메인 장비에 부여하면 승률은 더욱 올라가겠군요?”

“오? 그러네?”

아스칼론에 붙어 있는 용족 추가 공격력 옵션.

그걸 내 엑스칼리버와 윌리아의 마신의 오브에 붙인다고 생각하니…….

윌리아도 토벌 가능성을 따지는 내 모습이 일리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더불어 윌리아가 드래곤 슬레이어 효과를 콕 집으며 예시를 드니 시에나도 그제야 두려움을 접고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래도 쉽진 않겠죠. 하지만, 전쟁과 다르게 몬스터 레이드는 얼마든지 재도전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불리하다 싶으면 중간에 도주할 수도 있고 말이지?”

“이 정도면 드래곤 사냥,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것 같죠?”

“응응! 할 만한 것 같아!”

벌써부터 신화 등급 장비를 손에 넣은 듯 웃음꽃을 피우는 시에나.

윌리아 또한 어느새 내 주장에 공감하며 드래곤 사냥에 관심을 드러냈다.

‘안 그래도 월광도를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드래곤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는데. 이 기회에 치워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덕분에 우리 파티의 대화는 드래곤 공략이 가능한가 여부를 따지는 게 아닌, 드래곤을 어찌 공략할지에 대한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 * *

드래곤 공략은 바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유는 마계 팬드래건 제국의 황제로부터 호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잇투 공작에게 대공의 지위와 함께 기존 영지에 구 로렌시아 왕국의 서부를 추가로 하사한다.”

놀랍게도 제국의 황제 제로원은 나에게 마왕급 신분인 대공 지위를 부여했다.

마왕이라고 작위를 낭비할 순 없다.

그에 합당한 국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팬드래건 제국은 이번 정복 전쟁으로 여러 나라를 흡수 합병하여 충분한 여력이 있는 상황이지만, 효율을 따지면 대공 한 명을 추가하는 것보다 신임 공작을 여럿을 만드는 게 더 좋을 테니 말이다.

“분에 넘치는 은혜 망극하옵니다.”

때문에 나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는 좋은 보상이었지만, 황제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잘 모르겠다며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부인이었던 인물이니까.

그런 이에게 공작위를 주는 것만 해도 파격이라 할 수 있는데, 마왕급에 해당하는 대공위까지 주다니, 보통의 배포가 아니다.

심지어 주변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고위 귀족들의 모습만 봐도 이는 황제의 독단의 가까운 행동임을 증명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신분이 상승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란 것이었는데.

“로열 나이츠의 대장 카로스 후작에게 대공의 지위와 함께 구 루시아스 왕국의 동부를 영지로 추가 하사한다.”

“마, 망극하옵니다!”

으레 전쟁이 그러하듯 파격적인 논공행상이 연달아 이어졌다.

나와 몇 번이고 합을 맞춘 적이 있는 로열 나이츠의 카로스 대장이 후작에서 단번에 대공이 된 데에 이어, 후작위의 귀족들이 대거 공작 위에 올랐으며, 수많은 고위 귀족이 새롭게 탄생했다.

‘마왕을 죽이니 새로운 마왕이 생기는군.’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새롭게 지위가 상승한 이들이 바로 죽은 마왕 수준의 무력을 보유하게 되는 건 아니었으며, 죽어 버린 병사와 귀족들의 전력을 복구하기 위해선 긴 시간을 필요로 했으니까.

‘어쨌든 이로써 떳떳하게 레벨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군.’

앞으로도 팬드래건 제국에서 전쟁 영웅으로 활동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는 의미다.

나는 배포가 큰 황제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논공행상이 진행되는 이벤트 끝물에…….

“그대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네. 그대라면 짐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열 자격이 충분하니.”

황제가 내 어깨를 다독이며 이리 말했다.

그리고 제로원 황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물러났지만.

마지막의 그 대사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져서 나는 표정을 굳혀야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의미심장하긴 해도 그 말 자체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긴 힘들어 보였으니 말이다.

‘그냥 팬드래건 제국의 미래에 내가 필요하다는 뜻이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행동을 더욱 조심해야겠다.

아무리 많은 팬드래건 제국인이 나를 떠받들어도 내 근본이 되는 땅은 지구다.

이곳의 사람들과 친한 척 웃고 떠들어도 결국엔 외부인일 수밖에 없다는 뜻.

더불어 나 자신도 지구에 있는 내 가족과 동료들의 안위를 위해라면 방금까지 웃고 떠든 팬드래건 제국의 귀족들을 향해 거리낌 없이 검을 휘두를 수 있다.

이는 인성에 문제 때문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시 드래곤 토벌을 빠르게 진행해야겠어.’

그렇게 나는 바로 드래곤 레이드 일정을 잡았다.

* * *

“드래곤 둥지에 대한 정보 말이십니까?”

강이솔은 서백호의 지시에 의문을 표해야 했다.

사냥꾼들의 레벨이 높아지고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드래곤 둥지의 위치를 몇 개 파악하고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곳은 접근해선 안 될 금지(禁地)였기 때문이다.

모처럼 마계에서 돌아와 중립 도시를 찾은 서백호가 당혹스러운 지시를 내리니 강이솔은 이유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고.

“드래곤 잡아 보려고요.”

“네?”

상상치도 못한 대답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헛바람을 삼켜야 했다.

서백호와 다른 파티의 레벨 차이는 좁혀지긴커녕 어째 계속 벌어지고 있는 상황.

심지어 마왕을 토벌했단 업적 메시지가 떴을 땐 다들 하던 행동을 멈추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런 인물이 다음으로 드래곤을 찾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겠지만…….

도무지 그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윤시아는 레벨 300을 찍는 건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그랬어. 레벨 250 이후의 특수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 완전히 재능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런데 폐하는 벌써 드래곤에게 도전한다고?’

강이솔은 눈앞의 괴물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심지어 탐색 정도가 아니라 잡겠다고 하시니…… 이거 참.’

이 소식이 알려지면 다른 사람들이 어찌 반응할지 벌써부터 머릿속에 그려지는 강이솔이었다.

마치 혼자만 치트키를 쓴 듯 달려가는 이 재능러에게 대항심을 갖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행위가 되어 가고 있다.

진짜 몇 번이고 생각했던 거지만 그가 같은 편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일단 현재까지 확인된 드래곤은 총 3종입니다. 레벨은 모두 300이며, 이중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실버 드래곤 안타레스의 둥지가 가장 상세히 알려져 있죠. 그리고 나머지 두 드래곤은 유럽의 골드 드래곤 시피드, 북아메리카의 레드 드래곤 캐플러가 있습니다.”

강이솔은 부하들을 시켜 관련 정보 수집을 부탁했는데, 머지않아 엷은 공책 정도의 자료가 만들어져 빠르게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리고 브리핑을 모두 들은 서백호는 결론을 내렸다.

실버 드래곤 안타레스의 중국 쑤저우 둥지를 공략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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