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52화 (252/273)

252화 드래곤 (1)

소설을 보면 흔히 드래곤은 마법의 종주이자, 인간의 수십 수백 배의 삶을 사는 장수 종족으로 표현된다.

때로는 조율자로서 세상을 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유희 삼아 인간을 학살하기도 하는 변덕스러운 존재.

하지만 이 드래곤에 대해 한 가지 공통된 인식이 있으니.

그건 바로 인간으로서 감히 항거하기 힘든 다른 차원의 강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저, 정말 드래곤을 공략하실 생각입니까?”

그래서일까?

내가 드래곤을 사냥하겠다 선언했을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꽤나 극적이었다.

경악하는 건 기본이요.

덜덜 떨며 무리하지 말라며 나를 걱정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괜히 가만히 있는 드래곤의 콧수염을 건드려 난동을 부리게끔 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덕분에 나의 드래곤 공략 소식은 매우 빠르게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많은 이들의 시선이 공략 장소가 될 중국 쑤저우에 향해졌다.

“네, 준비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청단의 리더이자, 6개로 쪼개진 중국 동부의 지도자 위즈잉은 빠르게 대한제국 휘하로 들어온 영주 중 하나였다.

현재 그녀는 중국 내에서도 대표적인 친한 인사로 꼽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이벤트만큼은 강하게 반대했다.

‘그녀의 입장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하필 쑤저우는 중국 최대 도시인 상하이의 이웃이다.

그만큼 거주 인원도 많고, 상하이를 포함해 주변에 대도시가 많이 밀집되어 있어서 위즈잉으로선 내 결정이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직 대피 안 한 사람이 있어?!”

“혹시라도 괜찮겠지라며 안일한 생각으로 집을 지키고 계시다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얼른 나오세요!”

때문에 위즈잉은 내가 드래곤과의 전투를 확정하자마자 쑤저우는 물론, 인근 도시의 주민들까지 멀찍이 대피시켜야 했다.

나와 레벨 300의 드래곤이 마음먹고 싸우면 주변이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니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그러니 그녀가 반대했다고 무조건 비난해선 안 된다.

“죄송합니다. 이거 완전 민폐가 따로 없네요. 최대한 타이호 내에서 싸우고, 되도록 주변에 피해가 안 가게 할게요.”

타이호는 중국에서 3번째로 큰 담수호로 서울의 3배가 넘는 면적을 갖고 있다.

드래곤의 둥지가 이 타이호 내의 섬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나는 최대한 그곳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말로 위즈잉을 안심시켰다.

“후우…… 아닙니다. 드래곤이 사라지면, 그만큼 쑤저우는 더 안전해지는 거잖아요. 그러니 전투가 시작되면 주변의 피해는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무엇보다 폐하의 안위가 최우선이니까요.”

“그리 말씀해 주니 고맙습니다.”

내켜 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신변을 걱정하는 그녀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새삼 다른 사람들에게 나 자신이 얼마나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이후 위즈잉과 사소한 잡담을 나눴다.

하지만 곧 여자 친구인 윌리아의 눈빛에 냉기가 돌기 시작했고, 신변의 위협을 느낀 나는 악수로 위즈잉과의 대화를 얼른 마무리 짓고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드래곤과의 전투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대표 사냥꾼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헤르만, 데이비드, 윤시아, 클로에 주 등등.

강자라 불리는 이들이 빠짐없이 내 전투를 관전하고자 모여 있었다.

가볍게 그들에게 손을 흔든 나는 이내 파티원들에게 말했다.

“가시죠”

“오늘 중국에서 3번째로 큰 호수가 사라지겠네.”

내 말에 시에나가 실없는 대사로 답했다.

하지만 마냥 농담으로 여기긴 힘들었는데, 그만큼 이번 전투는 어느 때보다 파괴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하늘을 날아 목적지 도착했다.

“저기군요.”

호수(타이호) 안에 있는 상당한 규모의 섬.

그 섬에는 또다시 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호수 안에 있는 섬의 호수라니.’

뭔가 말장난 같지만, 나는 그 안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기운으로만 따지면 마계 제일 강자인 제로원조차 비교가 안 될 만큼 강대했다

덕분에 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준비되었습니까?”

더 이상 길게 재고 따질 것 없다.

“네.”

“오케이.”

나는 즉시 자신과 윌리아와 시에나, 헬레나, 다켈프 등에게 인챈트 스킬을 사용했다.

인챈트 효과는 용족에 대한 스킬 추가 데미지 200% 증가.

흔히 말하는 드래곤 슬레이어 옵션이다.

‘괜히 신화 등급의 스킬이 아니야.’

더구나 나라면 지구 내 사냥꾼들이 보유한 모든 아이템을 대여하는 것도 가능하니, 부여하지 못할 옵션은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다.

그 증거로 드래곤 슬레이어 외에도 수중 옵션, 비행 옵션, 출혈 옵션 등 인챈트를 위해 대여해 온 갖가지 장비들이 인벤토리에 저장되어 있었다.

“다들 위험하다 싶으면 무조건 귀한 스크롤 찢으세요. 사냥은 실패해도 어차피 재도전하면 되니까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동료들에게 당부를 했다.

그 무엇도 동료의 목숨보다 우선될 수 없으니까.

이어서 동료들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짧은 심호흡과 함께 윌리아에게 지시했다.

“시작하죠.”

그에 윌리아는 마신의 오브에 양손을 얹으며 스킬을 사용했다.

“마신의 권능.”

그러자 하늘 위로 오로라와 비슷한 빛의 커튼이 생성되었다.

다만 그 오로라는 푸른빛이나 녹색 빛이 아닌, 밤하늘의 은하수와 같은 심오한 빛을 품고 있었는데, 저건 이제부터 그녀가 사용하는 투사형 마법 스킬에 투과 효과가 걸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절망의 빛.”

뒤이어 윌리아가 가진 가장 강력한 공격이 내섬의 호수에 내리꽂혔다.

-쉬익!

절망의 빛이라면 그녀가 가진 매직 스태프의 내장 스킬로 내섬(호수 안에 있는 섬)의 작은 호수 따윈 일시에 증발시키고도 남을 위력이 담긴 파괴 광선이다.

그러나 호수는 윌리아의 막강한 공격에도 무슨 일이 있냐는 듯 잠잠했는데, 이는 그녀의 공격이 호숫물마저 투과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호수에 파고든 마법 공격에 대해 머지않아 신호가 왔다.

-드드드드드드드!

갑자기 호수가 요동치더니, 이내 섬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크롸롸롸롸!

그리고 공기 전체를 뒤흔드는 살 떨리는 포효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콰아아아앙!

우리의 발아래 자리하고 있던 규모가 상당한 내섬뿐만 아니라, 타이호의 중심부 수십 킬로미터가 폭발과 함께 터져나갔다.

타이호는 중국의 3대 호수 중 하나로 매우 넓지만, 평균 수심은 3미터 이하로 굉장히 얕다.

그래서 아무리 난리를 쳐도 수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얕은 호수라 해도 면적이 넓은 만큼 일시에 사방으로 물이 밀려나니, 인근의 도시들이 해일에 덮쳐지듯 호숫물에 잠기는 재앙이 발생했다.

주민들이 진작 대피를 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전투 시작도 전에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크르르르르르…….

그러나 나는 시작부터 위즈잉에게 했던 약속을 깨게 되었단 사실보다.

분수처럼 솟구친 거대 물보라 속에서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등장한 거대 괴물에게 집중해야 했다.

[실버 드래곤 안타레스 / 레벨: 300]

몇 번이고 월광도에서 마주했던 존재.

하지만 그때는 놈이 다른 둥지로 이동할 때, 먼발치에서 지켜만 본 것인지라, 이렇게 정면으로 본 건 아니었다.

정면으로 마주한 놈은 지금껏 수차례 보았을 때와 달리 매우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웠으며, 또 거대했다.

[네놈들이 드디어 미친 것이냐.]

그리고 이어진 드래곤의 낮은 음성.

아무래도 그 역시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 같은 물음이었다.

하긴, 지금까지 우리처럼 놈과 많이 마주친 사람들도 없을 테니까.

나는 그런 드래곤에게 엑스칼리버를 겨눴다.

“드래곤은 한 마리가 다섯 개 이상의 둥지를 갖고 있다지? 둥지에 보물들 잘 채워 뒀냐?”

드래곤을 처치하면 각 둥지에 저장된 보물들을 모두 손에 넣을 수 있을 터.

심지어 월광도에 자리한 둥지는 예전 북한에서 손에 넣은 보물 지도에 이무기의 둥지(바리사다를 손에 넣은 곳)와 함께 표시되어 있던 곳이기도 하다.

물음에 물음으로 내가 답을 하자 드래곤은 웃음과 같은 낮은 소리를 냈다.

[언제든 죽일 수 있던 벌레 놈들이 결국 커서 이렇게 덤벼드는군. 진작 죽일 걸 그랬어.]

역시나 놈은 그동안 우리를 벌레 정도로 여겼던 모양이다.

“우리의 선빵이 꽤 아팠나 보네? 혀가 긴 거 보니까.”

아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일 등급 5강 무기의 내장 스킬인 절망의 빛은 가뜩이나 파괴력이 높은데, 드래곤 슬레이어 효과로 위력이 2배로 증가한 데다가 투과 스킬까지 더해졌으니 말이다.

놈이 방심하고 있었다면 바로 골로 보낼 수도 있던 공격이었다.

[우습군.]

겉보기엔 따로 부상이 없어 보이지만, 약간 뜸을 들이고 바로 답을 못하는 거 보니, 타격이 있긴 했던 모양이다.

곧이어 드래곤과 우리 사이에 대화가 없어지고.

-고고고고고.

눈에 보일 정도로 흉포하게 날뛰는 푸른 마력이 드래곤을 중심으로 휘몰아친다.

나는 검도의 상단 자세를 취하며 입을 벙긋거렸다.

“개벽.”

엑스칼리버 내장 스킬이자, 내가 가진 최강의 공격 스킬이 드래곤 슬레이어 효과를 머금고 눈앞의 적을 향해 쏟아졌다.

* * *

드래곤이 등장한 것만으로 중국의 쑤저우시가 물에 잠기고 말았다.

그러나 위즈잉은 한숨조차 내쉴 수 없었는데…….

-고고고고고고고고!

-콰아아아아앙!

저 멀리 타이호에서 일어나고 있는 광경 때문이었다.

검게 변한 하늘은 무수한 별을 품은 듯 반짝이고, 그 기이한 하늘을 뚫고, 눈부신 백광이 내리꽂혔기 때문이다.

동시에 드래곤이 등장했던 것 이상으로 세상이 심하게 요동치고.

뒤이어 온갖 빛이 난무하는 전투가 벌어졌다.

“허, 진짜…….”

그런 위즈잉의 곁엔 대한제국의 중심 멤버들이 모여 있었는데, 지구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인 헤르만이 그 광경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단 반응을 보였다.

숨 쉬는 것조차 잊게 만드는 엄청난 전투.

그건 위즈잉을 비롯한 이 자리의 모두가 지금까지 보고 경험한 전투를 애들 장난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쿠릉! 쾅! 쾅!

“나 참, 드래곤과 충돌하는 것만으로 여기저기서 천둥이 발생하네.”

서백호 일행과 드래곤의 공격 하나하나가 어찌나 대단한 위력들을 품고 있는지, 충돌이 발생할 때면 대기가 찢기고 땅이 갈라지며, 하늘에선 천둥이 쳤다.

저들이 마음만 먹으면 세계 지도를 바꾸는 건 일도 아니랴.

“주민들을 피난시키길 잘했네요. 아마 전투가 끝나면 이 일대는 다시 재건해야겠어요.”

“그래도 폐하가 피해에 대해선 자금을 지원해 주시기로 했으니 걱정은 안 됩니다.”

전투의 영향으로 위즈잉과 대한제국의 주축 멤버들이 딛고 있던 빌딩은 지진으로 무너진 지 오래.

서백호는 최대한 피해를 줄이겠다 약속하긴 했지만,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도시 전체의 붕괴는 피할 수 없어 보였다.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서백호 본인이, 스스로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단 의미였다.

“이대로 가다간 신에 필적하는 존재가 되는 거 아냐?”

“‘이대로 가다간’이라고 표현할 것도 없어. 난 이미 저 모습이 신에 필적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허탈한 웃음.

하지만 그 누구도 서백호와 비교하며 나약한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지 않았다.

서백호는 다름 아닌 자신들의 리더였고, 그라면 앞으로 이 세상에 발생할 위기들을 물리쳐 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들은 자신이 언젠가 서백호의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길 바랐다.

진심으로, 강렬히.

“어? 브레스 내뿜으려는 거 같은데?”

이후로도 서백호 파티는 그 드래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전투력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되던 때.

“근데 저거…….”

헤르만이 기겁하듯 헛바람을 삼키며 말했다.

“드래곤의 대가리가 이쪽 방향이잖아?!”

기존의 전쟁에서 눈먼총알을 조심해야 하듯, 지금의 세상에는 눈먼 스킬을 조심해야 했다.

방심했다간 그대로 골로 갈 수도 있으니까.

“튀, 튀ㅇ.”

-콰아아아앙!

다행히 그들을 향한 공격은 하늘에서 떨어진 백광에 브레스가 막히면서 방어가 되었다.

“와, 죽는 줄.”

“폐하 덕분에 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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