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53화 (253/273)

253화 드래곤 (2)

그야말로 천재지변.

드래곤이란 존재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좋은 게 있을까?

공격 하나하나가 유일 등급 5강 무기(내장 스킬 위력 5배 상승) 내장 스킬급이었으며, 마력통이 대체 얼마나 되는 건지 그런 공격을 이리저리 난사했다.

심지어 놈의 브레스는 의심할 여지 없이 신화 등급의 공격 스킬이었으며, 몸은 어찌나 단단한지, 이쪽의 공격을 맨몸으로 맞으면서도 굳건히 버텨 냈다.

마치 난공불락의 결전 요새를 보는 듯하다.

‘라스트 보스 느낌 풀풀 풍기는구만!’

하지만 그 굳건한 상대라고 해도 타격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단순 공격력만 보면 인챈트와 각종 버프로 떡칠한 우리가 놈을 상회하고 있었으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드래곤 정도의 방어력이라면 웬만한 극상급 스킬 정도는 흠집도 내지 못하겠지만.

[큭…….]

우리의 집중 공격이 이어질 때마다 놈의 입에선 신음이 흘러나오고, 사방으로 피와 살이 튀었다.

맨몸으로 버텨 내기엔 우리의 공격은 지나치게 강력했다.

특히 투과 효과를 지닌 윌리아의 마법은 놈에게 악몽과 같을 터이다.

-스스스스.

‘뭐, 이딴 미친 몬스터가 다 있어?’

그러나 우린 공격이 통하고 있다며 순순히 좋아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크크큭! 제법이구나. 하지만 네 놈들의 공격력이 내 회복 능력을 웃도는 수준은 아닌 것 같군.]

바로 저 미친 몬스터가 트롤은 귀여워 보이게 만들 정도의 엄청난 재생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단순 재생 능력뿐이라면 이리 당혹스럽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재생 능력마저 웃도는 공격을 퍼부을 수 있으니까.

문제는 재생 능력에 더불어 전신에 입은 피해를 단숨에 회복하는 스킬까지 보유하고 있단 것이었다.

놈의 회복 능력을 보면 심장을 날려도 우습게 회복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인내심 싸움이 되겠군.’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놈이 아무리 막강한 회복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 회복력의 근간이 되는 건 마력이니까.

즉, 놈의 마력을 모두 소모시키면 언젠가 이 지랄 같은 전투도 끝을 맞이할 것이다.

‘그런데 꼴을 보니 한두 시간 정도론 마력이 고갈될 거 같지가 않아. 우리 파티니까 이 정도로 버티는 거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잡으라고 만든 몬스터인지 모르겠네. 시스템아, 이거 밸런스 패치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잘하면 유례없는 장시간의 전투가 이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우린 대량의 마력 포션을 비롯해, 장시간 전투에도 문제가 없는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전투가 길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져 손발이 꼬이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

‘뭔가 다른 수는 없을까?’

나는 주력 무기가 된 엑스칼리버를 오른손에 쥔 채 휘두르고, 제3의 손에는 바리사다와 성검 칼립소 등의 무기를 스위치해 가며, 거대한 드래곤의 육신을 때리고 또 때렸다.

그와 동시에 몸을 움직이면서도 적을 관찰하고, 생각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강한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데에는 전투력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하나의 센스가 전황을 뒤집기도 하고, 패턴 적응을 얼마만큼 잘하는지에 따라 전투 난이도가 천차만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레스를 뿜기 전에 고개를 흔드는 버릇 있으니까, 잘 확인해 주세요!]

[날개 부분과 뒷발 아래가 사각입니다!]

[새로운 패턴 나왔어요! 혹시 모르니 거리를 벌리세요!]

다행이라면 뛰어난 전투 감각과 적을 분석하고 약점을 궁리하는 건 특기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내 파티는 지시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잘 훈련되어 있는 상태.

싸움만 잘해서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게 아니었다.

우린 단번에 상황을 뒤집지는 못해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다.

[투과 마법을 난사하는 저 마법사 년이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네 놈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구나.]

그리고 이 점을 가장 잘 느끼는 게 적인 드래곤이었다.

놈은 전투의 핵심이 제일 많은 대미지를 주고 있는 윌리아가 아니라 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덕분에 공격 패턴에 변화가 생겼지만…….

나는 그 변화마저 빠르게 캐치해 적응해 내며, 쉬이 위기를 만들지 않았다.

“뭣!?”

그런데 그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우리 파티를 공략하는 것만으로 전투의 우위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놈이 뜬금없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대한제국 주요 사냥팀을 시선에 담았기 때문이다.

-콰콰콰콰콰!

다행히 기습과 같은 놈의 브레스를 개벽 스킬로 막아 내 관전자들을 지켜 냈지만, 설마 전투 중 다른 사람들을 인질로 삼을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역시 드래곤 정도 되니, 지능이 보통 몬스터와 급이 다르네.’

때문에 관전자들은 얼른 자리를 벗어나 인근 안전 구역으로 도망쳐야 했다.

자신들이 남아 있어 봤자, 방해밖에 되지 않으니 말이다.

드래곤은 관전자들을 공격하면서 모두의 신경이 그쪽에 쏠린 틈을 노렸지만, 우리 파티는 이에 넘어가지 않아 위기랄 건 발생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상대를 살피며 머리를 굴리는 건 나뿐만이 아니란 것을 명심해야 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어.’

다행인 건 주변엔 더 이상 인질로 삼을 사람이 없다는 거다.

공청단의 리더 위즈잉이 해당 도시와 인근 도시의 주민들을 대피시킨 상태니까.

누군가가 위즈잉의 조치가 과한 거 아니냐고 투덜댔었는데,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이놈!]

태산처럼 거대한 덩치를 가졌음에도 쓸데없이 민첩한 드래곤이 몸을 회전시키며 꼬리를 휘둘러 왔다.

마치 주변에 태풍이라도 일어난 듯 대기가 요동치고, 검붉은 기운이 압박해 오며 단순한 꼬리치기조차 극상급 스킬을 상회하는 공격으로 만들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몸을 피하거나, 그 꼬리를 쳐 내는 것으로 대응을 할 터.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뭐야 이게? 떼어 달라고?”

무시무시한 파괴력이 담긴 그 꼬리조차 공격 대상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우린 놈의 공격에 공격으로 대응을 했고.

바리사다의 투과 능력과 윌리아의 투과 마법, 비록 투과는 없어도 압도적인 공격력을 지닌 엑스칼리버와 나머지 일행들의 공격이 더해지니, 순간적인 공격 출력이 드래곤의 그것을 압도했다.

-파앗!

[무식한 놈들…….]

덕분에 드래곤의 꼬리가 뜯겨 나갔다.

역시 최선의 방어는 공격임을 보여 준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파앗!

하지만 드래곤의 말도 안 되는 회복 능력에 꼬리가 피콜로의 팔처럼 금세 돋아났다.

그래도 놈의 공격 패턴 하나를 없앤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결코 손해는 아니었다.

이렇게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우린 이득을 취하며 전투를 이어 갔다.

드래곤과의 전투는 지구전이 될 테지만, 버티기만 해선 승기를 가져갈 순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급해지는 건 드래곤이 될 것이다.

* * *

마계 엘리언트 전선, 팬드래건 제국 진영.

제로원 황제는 자신의 막사에서 귀족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제로투 대공과 한가로이 술잔을 기울이며 모처럼의 휴일을 즐겼다.

최근 전쟁으로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일까?

예상치 못한 휴일에 황제의 얼굴엔 미소가 만연했다.

“에잇투 대공이 휴가를 달라고 했다죠?”

“그렇네.”

“전쟁 중에 휴가를 달라는 에잇투 대공도, 그 휴가를 허락한 황제 폐하도, 정상적이지 않다는 건 잘 아시죠? 내색은 안 해도 전선 지휘관들 사이에선 이에 대해 꽤나 불만이 클 겁니다.”

감히 제로원 황제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는 마계에서 제로투 대공뿐이다.

제삼자가 듣는다면 다소 무례라 여겨질 그 말에도 황제는 화를 내지 않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짐은 지극히 이성적이라네.”

“진짜요?”

의심 가득한 제로투 대공의 모습에 황제는 도리어 너털웃음을 흘렸다.

“뭐, 누군가는 짐이 외부인이었던 에잇투 대공을 지나치게 편애한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랫사람들의 반응을 일일이 신경 쓸 필요가 있겠나? 전쟁의 승패는 어쨌든 우리와 같은 마왕급 존재들의 손에 달려 있는데.”

병사와 지휘관들이 들었다면 서운할 수밖에 없는 특권 의식.

하지만 황제를 오랫동안 보아 온 제로투 대공은 황제의 말이 단순한 오만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로투 대공은 언제 방자하게 굴었냐는 듯 표정을 바꿔 조심스레 물었다.

“뭔가를 보신 겁니까?”

주어를 빼먹은 물음.

그러나 황제는 어렵지 않게 그 말을 이해하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에잇투 공작이 하고자 하는 것을 방해하면 안 되네. 그의 존재는 우리 팬드래건 제국에 큰 덕이 될 터이니.”

“흠…… 그렇군요. 폐하께서 그를 지나치게 편애하시는 게 예지안의 영향일 거라 예상하긴 했습니다.”

예지안.

이는 서백호가 가진 빛의 마안(눈깔빔)처럼 황제 가진 마안이다.

그 마안은 예지몽처럼 미래의 일부를 엿볼 수 있는 이식형 아이템이다.

다만 이 예지안은 완벽한 게 아니어서, 볼 수 있는 미래가 매우 단편적이었고, 자체적인 해석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완전하게나마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특혜.

서백호에 대한 황제의 편애도 이 예지안 때문이란 이유를 대면 간단히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폐하의 예지안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저와 황태자 전하를 포함해 극소수일 뿐입니다. 아무리 전쟁이 마왕들 중심이라 해도 결국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건 아랫사람들이니, 적당히 그들을 다독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지 관리를 좀 하란 건가?”

“네, 폐하는 그걸 너무 신경 안 쓰십니다.”

“뭐, 알겠네. 그러도록 하지.”

제로투 대공은 황제가 독선적으로 보여도 결국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부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건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제로투 대공이 아무리 충신이라 해도 개인적인 궁금증까지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에잇투 대공이 무슨 일을 벌이는 겁니까?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 저한테만 귀띔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제국을 위해 잔소리를 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양손을 합장하듯 모으며 고개를 조아리는 제로투 대공을 보며 황제는 피식 실소를 흘려야 했다.

“좋은 소식일수록 모르는 게 나아. 괜히 미래가 바뀌면 곤란하니 말이지.”

아쉬울 수밖에 없는 황제의 대답.

덕분에 제로투 대공의 어깨가 축 처졌다.

* * *

[드래곤과의 전투가 시작되고 3시간째.]

이 빌어먹을 드래곤의 방대한 마력통은 아직까지 바닥을 보일 기미가 없다.

양측이 노리는 건 명확하다.

우리 파티는 드래곤의 마력통이 바닥을 드러내길 바라고 있고.

드래곤은 우리 파티의 수를 하나씩 줄여 가면 결국 승리를 가져가게 될 테니, 끊임없이 빈틈을 노려 왔다.

하지만 우리 파티에 빈틈 따윈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꽤 지나면서 드래곤이 자신의 회복력을 맹신해서인지, 스스로 빈틈을 만들어 내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투는 제법 팽팽했지만, 우리가 약간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드래곤과의 전투가 시작되고 6시간째.]

드디어 드래곤의 마력통이 줄어들고 있단 징조가 드러났다.

마구 스킬을 난사하던 드래곤이 조금씩 효율을 따지기 시작한 게 겉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한껏 고무되어 더욱 드래곤을 몰아붙였는데…….

알고 보니 이 망할 녀석은 대기 중의 마력을 흡수하는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린 놈이 마력을 흡수하려고 하면 온갖 필살 기술을 때려 박으며 저지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의 방해에도 드래곤은 꾸준히 마력을 흡수했고, 전투 시간이 예정보다 더 길어질 수 있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절망해선 안 된다.

장기전에선 먼저 포기하는 쪽이 지게 되어 있으니까.

[드래곤과의 전투가 시작되고 12시간째.]

이제는 몸이 거의 기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을 내가 컨트롤한다기보다, 적의 패턴에 대응하는 패턴이 프로그램처럼 작동하는 느낌이랄까?

심지어 윌리아와 시에나는 서로 대화를 나누고, 이것저것 먹으면서도 빈틈없이 공격을 가하니, 아무래도 다들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분명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모두 움직임이 신속해, 드래곤으로 하여금 질린다는 반응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질리긴 우리가 더 질리지. 저 새끼 저거, 반드시 잡고 만다.’

나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피곤함보단 오기가 강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드래곤과의 전투가 시작되고 24시간째.]

이쯤 되니, 지치지 않는 게 이상하다.

몸은 적의 공격에 반응해도 정신은 몽롱했다.

하지만 검을 타고 전해지는 감각은 묘하게 생생해서, 마치 검이 나 자신을 장악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게 심검합일인가.’

현실은 무협이 아니니 개소리일 테지만…….

원래부터 뛰어나다 자부하던 검 실력이 더욱 높아진 것 같단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그리고 우리 파티뿐만 아니라 이젠 드래곤도 지친 게 눈에 띈다.

아무래도 끝이 멀지 않아 보인다.

[전투 시작 30시간째.]

드디어 전황에 변화가 생겼다.

드래곤이 더 이상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고 빌빌 기며 난투를 벌여 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린 여전히 마력 포션에 여유가 있었다.

[이 지독한 놈들. 졌다. 졌어. 나 그냥 죽을래.]

결국, 머지않아 드래곤의 멘탈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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