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특공대 (1)
팬드래건 제국의 황제에겐 나름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내 능력을 높게 산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만류하는데도 꾸준히 지위를 높여 주어 결국엔 마왕급 신분인 대공위와 국가 규모의 영지를 하사해 주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나는 마음 편히 지구를 위한 마계의 전력 깎기에 열중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하고 있는 전력 깎기는 팬드래건 제국의 반대편에게만 해당하는 만큼 황제도 나로 인해 본 이득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솔직히 의문을 가졌던 적이 꽤나 많다.
‘이 사람은 나에 대해 의심도 없는 걸까? 아무리 능력 우선주의 성향을 갖고 있다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굴도 모르던 사이였는데.’
나야 편하니 좋지만, 솔직히 마음속으론 일말의 찜찜함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모두 내가 헛짚고 있었나 보다.
“뭘 그리 심하게 놀라고 그러나. 말 꺼낸 사람 무안하게.”
태연하게 차를 마시며 지구에서의 내 이름을 물은 황제의 모습은 무척이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내가 지구인이란 사실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어떻게? 마계에서 접할 수 있는 지구의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인데?’
나는 긴장하며 주변을 살폈다.
현재 나는 황제와 널찍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독대 중이다.
그리고 약 스무 걸음 떨어진 거리의 응접실 입구 쪽에 제로투 대공과 황태자, 윌리아, 시에나가 황제의 지시를 받고 물러나 시립해 있었다.
아무리 상대측에 이쪽보다 레벨이 높은 마왕급 존재 셋이 모여 있다곤 해도, 전투가 발생한다면 밀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면 황실의 지원 병력이 밀고 들어올 테니,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니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전투보단 도주를 우선시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근래 들어 가장 크게 놀란 것 같습니다.”
“하하. 그러한가?”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일지 고민하던 나는 일단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던 어깨에서 힘을 뺐다.
상대에게 전투 의사가 없어 보이니, 일단 장단을 맞추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런 내 행동에 금방이라도 튀어올 것처럼 몸을 움찔거리고 있던 윌리아와 시에나도 진정했다.
‘내색은 안 하고 있지만, 윌리아와 시에나도 들은 걸, 제로투 대공과 황태자가 못 듣진 않았겠지.’
황제처럼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제로투 대공과 황태자 역시 내 정체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을 더 불러들이지 않은 건 나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일 터이다.
“지구에서의 제 이름은 서백호입니다.”
“서백호라……. 꽤나 부르기 힘든 이름이군.”
“마계가 지나치게 간편한 겁니다.”
성도 쓰지 않고, 달랑 숫자만 이름으로 쓰는 경우가 많으니 좀 심플한가.
내 대답에 황제는 그건 그렇다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아신 겁니까?”
“짐은 양쪽 눈 두 개가 모두 마안이라네.”
마안이란 말에 눈깔빔으로 불리는 내 빛의 마안이 지잉거리며 반응했다.
그리고 황제는 내가 묻지 않았음에도 의외로 순순히 마안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오른쪽 눈은 위기안일세. 말 그대로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을 가진 마안인데 꽤나 폭넓은 활용이 가능하지. 이 마안 덕에 내겐 어떤 함정도, 기습도 통하지 않아. 그리고 상대의 거짓말도 구분할 수 있게 해 주니 참으로 황제란 지위에 어울리는 마안이 아닐 수 없지.”
아무래도 그 마안 탓에 내 정체가 들통난 게 아닐까 싶다.
‘거짓말을 판가름할 수 있다면, 대화나 유도 질문을 통해서 내 정체를 유추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테니까.’
따로 기억나는 대화는 없지만, 황제와 여러 차례 독대를 해 온 만큼 나도 모르는 사이 정체가 밝혀질 만한 이야기를 나눴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나는 씁쓸히 뒤통수를 긁적여야 했다.
하지만 이어진 황제의 이야기에 그 행동 그대로 굳고 말았다.
“그리고 왼쪽 눈은 예지안이지. 한정적이나마 미래를 볼 수 있는 마안일세.”
미래를 보는 마안이라고?
아무리 한정적이라곤 해도 완전한 밸런스 파괴템이 아닌가?
내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짓자 황제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이 예지안을 통해 본 미래는 두 개인데, 그게 무엇인지 자네는 예상되는가?”
“그, 글쎄요?”
예지안이란 마안에 너무 놀란 나는 말을 버벅거려야 했는데, 이어진 황제의 말은 이미 놀라고 있는 나를 더욱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중 하나는 자네의 검에 의해 마계가 파괴되고 팬드래건 제국이 몰락하는 미래일세.”
솔직히 내 입장에선 나쁠 게 없는 미래.
지구와 마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결과적으로 지구가 승리한다는 뜻이지 않은가?
이곳도 사람이 사는 세계인 만큼, 마계에 악감정은 없지만,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지구를 우선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눈앞의 황제에겐 받아들일 수 없는 최악의 미래인 셈.
때문에 나는 억지 미소를 지어야 했다.
“그렇……군요.”
“꿈속에서 본, 지구의 선봉장인 자네는 괴물 그 자체였지. 각종 보물과 최고의 스킬을 갖고 있었음에도 손에 쥔 칼 하나로 모든 것을 베며 달려들더군.”
눈앞의 황제가 괴물이라 표현할 정도면 꿈속의 나는 지금보다 더욱 강해진다는 거다.
꽤나 기쁜 사실이지만…….
나는 더욱 좌불안석, 억지로 띤 미소 위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다른 하나의 꿈에선 전혀 다른 미래가 그려졌지.”
피식 실소를 흘린 황제는 비어 있는 내 잔에 직접 차를 리필해 주며 말을 이었으니.
“자네와 내가 악수를 나누고, 지구인과 마계인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그런 세상의 모습이었네.”
아무래도 이게 본론인 것 같았다.
“다행입니다.”
나는 안도했다.
적어도 이 자리를 박차고 튀진 않아도 될 것 같으니 말이다.
더불어 황제와 제로투 대공, 황태자가 어째서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게 되었는데, 이들은 두 개의 미래 중 후반의 것을 바라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저를 도와주신 것이?”
“그래, 자네의 손에 모든 게 파괴되는 미래가 아닌, 함께 웃을 수 있는 미래를 지향하기 위함이었지.”
황제가 가진 예지안이 그린 미래가 파멸과 공생, 이 두 개뿐이라면 이들로선 공생밖에 선택 사항이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음? 뭔가 이상한데?’
나는 황제의 이야기에서 한 가지 의문점을 깨달았다.
그건 바로, 왜 이 이야기를 굳이 내게 해 주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쪽이 아무것도 몰랐으면, 황제가 원하는 대로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알려 주다니.
그럼 선택권이 이쪽에 넘어오게 된다.
앞서 말했듯 황제가 후자의 미래를 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 나는 두 개의 미래 중 원하는 것을 입맛대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독 승리를 택하느냐, 아니면 두 세력의 공존을 택하느냐.’
만약 내가 여기서 마계를 굴복시키는 단독 승리 엔딩을 택한다면 황제의 이 행동만큼 경솔한 게 없었다.
‘솔직히 함께 미래를 그려가는 공존 엔딩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시스템의 방식을 보면 쉬이 허용될 것 같지도 않단 말이지.’
냉정히 말해 내 입장에선 단독 승리 엔딩이 리스크가 적어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싸움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낫긴 하다.
하지만 황제의 행동에서 나는 뭔가 다른 의도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겉으로 내뱉지 못하고 있는 이런 내 생각을 황제도 눈치챘는지,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네. 원래 짐도 이런 내용을 자네에게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거든.”
그럼 그렇지.
그게 정상적인 판단이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꺼낸 데는 내 판단대로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네가 휴가를 가 있는 동안 새로운 미래가 떠올랐네.”
“네?”
예지안이란 거 꽤나 편리하지 않은가.
다양한 미래를 그려 주고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원하는 대로 선택하면 되는 것이니.
“아니, 정확하겐 앞서 말한 두 미래의 뒷이야기라 해야겠군.”
잠깐 뜸을 들이는 황제.
그러나 이전의 평온한 태도와 달리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본 순간, 나는 사안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즉시 깨달을 수 있었고.
이내 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지구와 마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 그 전쟁에서 자네들이 성대한 승리를 거둔다고 해서 끝이 아니네. 다음 전쟁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니.”
“……네?”
마계와의 전쟁이 끝이 아니라, 또 다음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최악의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승리자인 자네는 절망하게 되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 절망을 딛고 일어서며 다시금 전쟁을 준비하게 되지. 그리고 그때 상대하게 되는 적은 마계와 차원이 달라. 바로 시스템을 관리하고 수호하는 천계이니.”
“하하.”
마계 다음은 천계.
심지어 그 천계는 시스템의 관리자이자 수호자.
솔직히 ‘만에 하나’라는 식으로 생각한 적이 있긴 하다.
마계란 장소가 나왔으니, 다음엔 천계가 나오는 거 아니냐는.
그런데 그게 진짜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말씀하신 미래는 마계가 저와 지구에 의해 패배한 후의 것이군요.”
하지만 오래지 않아 정신을 다잡았다.
나는 지구를 대표하는 지도자였으니 말이다.
“마계와 지구가 공존을 택한 이후의 미래도 보신 거죠?”
내 물음에 황제는 순순히 답했다.
“결과는 다르지 않아. 천계와의 전쟁에 대비하는 미래일세. 그럼에도 앞의 이야기와 다른 점이라면, 자네의 곁에서 함께 싸우는 사람들 틈에 나를 비롯한 마계인들이 포함되는 거지.”
나 혼자 싸우는 미래와.
황제와 내가 같이 싸우는 미래.
그림 상으론 당연히 후자가 나을 수밖에 없었다.
즉, 황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거다.
“저희에게도 선택 사항이 있는 건 아니란 의미군요.”
“그래. 지구와 마계는 함께 공존하며 천계에 대항해야 해.”
이쯤 되면 황제가 선택을 강요하기 위해 천계란 존재를 지어 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아니, 차라리 그런 거면 좋겠네.’
아쉽게도 그가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될 정보를 오픈했다는 점에서 이 말은 진짜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심지어.
‘진실의 눈이 잠잠하네.’
거짓말을 판별하는 능력은 그만 가진 게 아니었으니까.
내게도 진실의 눈이란 스킬이 있는 만큼, 굳이 귀찮게 이것저것 잴 필요가 없다.
“후우.”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팬드래건 제국의 황제 앞에서 한없이 공손한 나였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야 제로원 황제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피차 황제란 직함을 가지고 있는 한 세계의 대표였으니까.
“그래서 제가 뭘 해야 하는 거죠?”
“이해가 빨라서 좋군.”
나는 그의 행동에서 부탁할 게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챘다.
“지구와 마계가 공존하기 위해선, 마계가 단일 국가 체제가 되어야 하네. 이 점은 자네도 이해하겠지?”
“그렇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고로 마계 역시 단일체제로 통일되어야 지구와 의견을 일치시키기 편하다.
아마 황제가 통일 전쟁을 일으킨 이유도 이 때문이겠지.
“자네는 지금까지 마계의 전력을 깎아 먹는 데 열중했지만, 이제부턴 그러면 안 되네. 최소한의 피해로 마계를 통일해야 미래를 대비하기 좋으니까.”
“그 말씀은?”
“우두머리들만 깔끔하게 쳐 내야 하네.”
당연히 우두머리라는 건 반 팬드래건 제국파의 마왕들을 의미한다.
“특공이 필요하겠네요.”
“그래, 그래서 자네에게 이 이야기를 꺼낸 거지.”
그가 생각하는 특공 멤버는 황제 본인과 황태자, 제로투 대공, 나, 윌리아, 시에나였다.
휴가에서 복귀하자 적진에 쳐들어가 마왕들만 제거하는 특공 임무라니.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천계 다음엔 뭐, 신계가 등장하는 거 아니겠죠?”
“에이, 아니겠지. 불길한 말 하지 말게.”
황제는 천계가 시스템을 관리하고 수호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승리하게 된다면 시스템을 장악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으니, 아무래도 그 이후는 없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