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57화 (257/273)

257화 특공대 (2)

마계는 단일 대륙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대륙엔 12개의 국가가 존재했다.

하지만 얼마 전, 마계 제일 국가 팬드래건 제국이 정복 전쟁을 선포하면서 5개의 왕국을 패망시키며 흡수하였고, 이로써 현재 남아 있는 국가는 7개로 크게 줄고 말았다.

이런 팬드래건 제국의 팽창에 대항하여 나머지 6개 국가들이 연합하여 맞서고 있지만, 전황은 솔직히 그리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젠장! 내가 그렇게 팬드래건 제국이 남침을 시작했을 때, 연합하여 확전을 억눌러야 한다고 했건만! 바보같이 방관하다가 이 무슨 재앙이란 말인가!”

남부의 대국 디아즈 왕국의 마왕 일레븐이 그곳에 자리한 나머지 5명의 마왕들에게 버럭 언성을 높였다.

그에 중부의 대국이었던 알피던스 왕국의 신마왕이 고개를 내저으며 마왕 일레븐을 진정시켰다.

“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거론해 봤자 득 될 거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이후의 대응이겠죠.”

비록 전대 국왕이 팬드래건 제국의 황제에게 목숨을 잃긴 했지만, 다행히 알피던스 왕국은 강국인 만큼 국토 전부를 빼앗기진 않았다.

그리하여 왕태자였던 제로세븐 2세가 새롭게 신마왕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지위만 이어받았을 뿐, 아직 레벨과 전투 능력은 마왕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그로 인해 마왕들 사이에서 은근히 무시를 받고 있는 입장이었으나, 제로세븐 신마왕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그리 말했다.

“하! 그걸 누가 모르겠느냐! 패전국의 반쪽짜리 마왕 주제에 누굴 가르치려 드는 게야!”

그러나 마왕 일레븐은 오만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제 잘난 맛에 사는 인물.

아무리 국가의 위세가 줄었다고 해도, 한 나라의 지도자인 그에게 해선 안 되는 폭언을 쏟아 냈다.

덕분에 반팬드래건 제국 일파 회의실의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싸우자고 이 자리에 모인 게 아니지 않나. 그만하게.”

“후우, 빌어먹을.”

“제로세븐 마왕도 너무 마음에 담지 말게나, 그만큼 상황이 답답하여 저러는 것이니.”

그래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무법 도시 엔탈론이 속한 케일론 왕국의 마왕이 끼어들어 중재에 나섰다.

하지만 폭언을 당한 제로세븐 신마왕은 일레븐 마왕의 폭언을 쉬이 넘길 수 없었다.

“내 당장의 레벨은 여러분보다 낮지만, 근간은 마왕이자 대왕국 알피던스의 지도자입니다. 지금껏 선배들을 존중한다는 마음으로 날 선 태도도 이해하고 넘어갔으나. 자꾸 이딴 식으로 행동하면 곤란합니다. 팬드래건 제국보다 당신들에게 환멸을 느끼게 되지 않겠습니까?”

얼굴에 한껏 냉기를 머금은 제로세븐 신마왕이 차갑게 말했다.

너무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

그로 인해 내키는 대로 성을 내고 봤던 일레븐과 나머지 마왕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는 반팬드래건 제국파 마왕들이 갖고 있는 착각을 깨기 충분한 말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팬드래건 제국에 맞서 싸우는 것만 있지 않다는 것을.

‘지금 상황에서 알피던스 왕국이 팬드래건 제국에 숙이고 들어간다면 가까스로 이루고 있던 균형의 추가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알피던스 왕국이 한차례 패배를 경험했다고 하지만, 원래 팬드래건 제국의 뒤를 잇는 전통적 강국이다.

심지어 방금 언성을 높인 남부의 대국 디아즈 왕국을 상회하는 국력을 가지고 있던 만큼, 영토 일부를 빼앗겼다고 만만히 보아선 안 되었다.

“제, 제로세븐 마왕. 진정하시게.”

“그간 나로 인해 서운한 일이 있었다면 사과하겠네.”

“일레븐 마왕도 너무 답답해서 그랬던 거지, 부디 젊은 자네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군.”

마왕들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런 이들의 모습에 제로세븐 신마왕은 만족감을 드러내긴커녕 속으로 크게 실망했다.

이런 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아버지가 솔선하여 전쟁에 나섰다가 죽은 것이냐며…….

“후우, 알겠습니다.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머리에 피가 쏠리는 바람에 선배들께 무례를 저질렀군요.”

“크흠.”

제로세븐 신마왕은 자신의 감정을 더 이상 드러내지 않고 한발 물러났다.

그에 일레븐 마왕도 이전처럼 막말을 내뱉진 못하고 헛기침을 내뱉어야 했다.

덕분에 상황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비로소 회의다운 회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마신의 오브가 적진에 넘어간 게 뼈아프군. 그게 누구에게 배정되었는지 확인되었나?”

“안 그래도 마침 그에 대한 정보를 얻었소이다. 에잇투 대공이 자신의 펫에게 배정했다는군.”

“뭐? 펫에게 줘? 허, 본인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리 오만해서야…….”

이들 진영의 마왕이 6명이지만, 제대로 된 마왕급 전력은 제로세븐 신마왕을 제외한 5명이라 보는 게 맞다.

그런 의미에서 팬드래건 제국의 신규 대공들도 마왕급으로 치부하기 힘들었는데, 딱 하나.

에잇투 대공인 서백호만은 예외로 치부되었다.

‘에잇투 대공이라…….’

제로세븐 신마왕은 전쟁이 시작되고 자주 들려오는 그 이름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에잇투 대공도 마왕급 신분을 손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레벨을 온전히 갖추지 못했으나, 마신의 오브를 지닌 마왕을 쓰러뜨리면서 이곳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는 자신과 완전히 달랐다.

“무시하면 안 된다네. 놈의 펫은 상당히 강력하니까.”

“하긴 나도 들었어. 레벨도 상당하고, 유일 등급 장비로 떡칠하고 있다지?”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서백호의 펫에는 다켈프와 헬레나뿐만 아니라, 윌리아와 시에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계에는 NPC 동료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계에선 신분에 따라 레벨 상한이 정해져 있는데, 애석하게도 윌리아와 시에나에겐 작위가 부여되지 않았다.

그런데 서백호의 레벨이 오를 때마다 윌리아와 시에나의 레벨도 함께 오르니, 변명거리가 펫밖에 없었다.

“참나, 보통 미친놈이 아니군. 펫을 유일 등급 장비로 떡칠하고 있는 것도 기가 차는데, 마신의 오브까지 배정해 줘? 그걸 황제가 허락했다는 건가?”

“마신의 오브는 에잇투 대공의 것이니, 참견하지 않는 거겠지.”

마왕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보.

마법 공격 하나하나에 투과 능력을 부여할 수 마신의 오브라면, 아무리 펫이 쥐고 있어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 테니 말이다.

“마왕의 숫자와 전력은 비등하거나 우리가 약간 우위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펫 때문에 흔들릴 수도 있겠어.”

“그건 그렇군.”

이들은 팬드래건 측에서 온전한 마왕급 능력을 지닌 게 황제와 황태자, 제로투 대공, 에잇투 대공, 이렇게 넷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들의 질이 높다고 해도 이쪽은 숫자가 더 많으니, 희망 사항을 더해 약간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마신의 오브라는 사기급 장비를 가진 펫이 끼어들면서 복잡하게 되었다.

‘음…….’

이에 제로세븐 신마왕은 잠시 고민했다.

실은 그에겐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않은 비장의 패가 있었고.

그 패를 깐다면 마왕들의 반응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이곳에 남는 게 나을까? 아니면 모두 내려놓고 팬드래건에 붙는 게 나을까?’

마음속으로 저울질 중이던 그는 오래지 않아 결정을 내렸다.

역시 엄포를 놓긴 했지만, 조상님들이 일군 나라를 타국에 팔아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한 게 있습니다.”

“음? 뭔가?”

“아버지께서 자신이 죽을 경우를 대비해 제게 물려주신 게 있거든요. 그게 있다면 우리가 마왕급 전력에서 밀릴 이유는 없을 겁니다.”

“전임 제로세븐이 물려준 것? 미안하지만 자세한 설명을 부탁해도 되겠는가?”

“바로 마신의 목걸이입니다.”

“마신의 목걸이? 헉…… 그, 그거 설마?”

“네, 맞습니다. 마신의 오브와 함께 구전 동화에서 많이 회자되곤 하는 ‘3신기’ 중 하나죠.”

마신의 오브와 동격의 아이템.

만약 그걸 제로세븐 신마왕이 갖고 있다면, 그는 결코 다른 마왕들에게 무력으로 밀릴 이유가 없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던가?

이런 패를 숨기고 있었다니, 역시 팬드래건 제국의 뒤를 잇는 대국 알피던스였다.

“설마 마신의 목걸이가 알피던스 왕국에 있었을 줄이야.”

“마신의 목걸이는 착용자의 능력치를 크게 높여 주니, 선배님들과 저 사이의 레벨 차이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더불어 검술과 관련하여 극강의 전투력을 부여해 주는 만큼, 팬드래건의 신성인 에잇투 대공에게도 밀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오.”

이제 회의장에서 더는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깨달은 것이다.

그를 잘만 이용하면 전쟁을 완전히 뒤집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아깐 미안했네.”

“뭐…… 알겠습니다. 사과를 받도록 하죠.”

이쯤 되니, 마왕 일레븐도 자존심을 꺾고 굽혀야 했다.

승리를 위해서 말이다.

“그래, 잘들 풀었네.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 불필요한 감정은 미리 떨쳐 내는 게 낫지.”

“이거 잘만 하면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어. 하하하!”

덕분에 회의장의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더없이 화기애애해졌다.

-쾅!

“폐하!”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다른 마왕들이 함께인 자리에서 이 이게 무슨 무례란 말인가!?”

현재 회의는 마왕 일레븐이 다스리는 디아즈 왕국의 한 밀실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밀실의 문이 허락도 없이 열리며 신하 하나가 들어서자 마왕 일레븐은 호통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그게! 기습입니다!”

“뭐?”

“팬드래건 제국의 황제와 황태자, 대공들이 쳐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보고에 마왕 일레븐의 얼굴에서 엄한 표정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그들의 목적은…….”

“여기를 노리는 거겠지.”

그리고 마왕 일레븐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다급함이 아니었다.

바로 황당함과 조소였다.

“그놈들이 죽고 싶은 건가?”

그도 그럴 게 마왕 전력에서도 자신들이 우위에 있음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 이곳은 반팬드래건 제국 파의 홈그라운드라 할 수 있으니, 적들의 행동이 무모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잘되지 않았는가.”

“그래, 수고를 덜었군.”

다른 마왕들의 생각도 일레븐과 다르지 않은지, 얼굴 위로 비릿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자, 모두 손님 맞을 준비를 하세나.”

반팬드래건 제국파 마왕들은 신속하게 전투를 준비했다.

‘뭐지?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거야.’

제로세븐 신마왕도 자신의 무기를 점검하며 팬드래건 제국의 황제파를 맞이할 준비를 했는데, 그는 쉬이 납득이 되지 않는 기습에 비웃음을 흘리긴커녕, 불길함을 느껴야 했다.

-콰아아앙!

그리고 잠시 후.

디아즈 왕국 왕성의 벽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며 침입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보고를 받은 대로 그곳엔 황제와 황태자, 대공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두 대공 중 인간족인 에잇투(서백호)의 곁으로 두 명의 미인이 함께인 것을 볼 수 있었다.

“하하핫! 팬드래건 제국의 황제가 드디어 미쳤구나! 기껏 펫들을 끌고 기습이라니!?”

그 미인들은 윌리아와 시에나.

바로 서백호의 펫으로 알려진 존재였다.

기세등등한 일레븐의 외침.

그에 황제는 도리어 코웃음을 쳤고, 그런 황제의 곁에 서 있던 서백호가 일레븐의 말을 대신 받았다.

“혓바닥이 기네.”

이어서 서백호의 검이 일레븐을 포함한 반팬드래건 일파 마왕들에게 겨눠지더니.

엑스칼리버의 개벽이 사용되었다.

“보고받은 적 있는 스킬이군!”

하지만 그건 이미 파악하고 있는 공격.

덕분에 일레븐을 포함한 마왕 셋이 동시에 하늘을 향해 가장 강한 스킬을 쏘아 보내며 공격을 상쇄하려 했다.

그런데.

“투과 연격.”

“드래곤 브레스.”

펫으로 치부하며 비웃던 윌리아와 시에나의 신화급 장비들 역시 불을 뿜자,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화력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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