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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60화 (260/273)

260화 변화하는 세계 (2)

중년의 부모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화 주제가 있다.

그건 바로 ‘자식 자랑’.

과거라면 자식의 성적이나 학벌, 직업 등이 자랑의 주요 소재가 되었겠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이 부분에 큰 변화가 생겼다.

“내 딸이 얼마 전에 레벨 100을 넘겼다더군.”

“뭐? 그게 진짜야? 와, 김 씨 인생 폈네. 그럼 황도로 이사 가게 되는 거 아냐?”

“크흠, 나는 목숨 걸고 싸우는 딸아이의 덕을 볼 생각 없네.”

“하지만 레벨 100이면 60~70렙 사냥터에서만 활동해도 안전하게 떼돈 벌 수 있잖아?”

“그 아인 계속 위로 올라가고 싶다고 하거든.”

“그래? 대단하네. 안주할 법도 한데 계속 나아가다니. 그런데 딸아이의 레벨이 언제 그렇게 올랐대? 이제 보니 최 씨가 아들 레벨이 50이라고 자랑하던 건 아무것도 아니구만?”

“운 좋게 황성의 눈에 띈 덕이지. 정예 양성원에 있거든.”

“저, 정예 양성원? 완전 엘리트 코스잖아? 이러다가 황성 직할 사냥팀의 간부가 되는 거 아냐?”

“흠흠, 그럴지도?”

지금의 세계는 레벨이 곧 권력인 시대.

때문에 배우자나 자식, 형제 등 가족 사이에 고레벨의 사냥꾼이 있다면 덩달아 그 가족들의 대우도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몇몇 이들은 이를 가리켜 과거 귀족을 중심으로 한 계급 사회의 재래라 비판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냥꾼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자들이었고, 그들 덕택에 싸우지 않는 대부분의 일반인이 안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레벨 100만 해도 까마득한데, 레벨 200이 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거든? 그게 사실이야?”

“서 황제 말인가?”

“아니, 사람 이야기를 하는데 왜 천상계 존재를 들먹이는 거야?”

“아…… 하하. 윤시아 파티 말하는가 보군?”

“그래 맞아. 윤시아 파티. 그 사람들 레벨이 200 넘었다던데, 맞아?”

“넘은 건 꽤 됐지. 지금쯤이면 레벨 220대 중후반 아닐까?”

“허? 진짜?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레벨을 올릴 수 있지? 최 씨 아들은 열심히 레벨 올리고 있는데도 석 달째 50대던데?”

“재능과 노력이 더해진 결과 아니겠나. 전 세계적으로 레벨 200 이상인 사람이 100명이 넘은 거로 알고 있어. 독일과 미국의 연합 파티인 헤르만, 데이비드 팀은 윤시아 파티보다 레벨이 10 정도 높고, 윤시아 파티와 비슷한 게 4팀, 그 뒤를 쫓고 있는 게 12팀 정도라더군. 이 중 한국인이 5할이니, 대단하긴 해.”

“맙소사, 그 정도면 레벨 인플레이션이라고 해도 되겠는데?”

“전 세계 인구가 10억이 넘는데, 그중 100명 정도가 레벨 200대인 거야. 약 1,000만분의 1이라고. 이게 어떻게 레벨 인플레이션이겠어?”

“그, 그런가?”

“그래. 전 세계에서 레벨 100 이상인 사람이 1만 명이 조금 넘는다고 하는데, 이것만 해도 10만분의 1이지 않은가.”

“오오, 그렇게 따지니까, 자네 딸이 진짜 대단하긴 하네? 10만분의 1에 속하는 사람이라니.”

“흠흠, 그건 그렇지.”

이야기가 돌고 돌아 결국 자식 자랑으로 돌아온 두 중년인의 대화.

그들은 최근 정부에 여유가 생기면서 문화생활을 위해 각 생존 구역에 조성하고 있는 공원에서 조경 일을 하는 인부들이었다.

딸의 레벨이 100이라면 아버지는 놀고먹어도 될 텐데, 이런 막일을 한다는 건 대단하다 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있던 다른 동료들이 다가와 말했다.

“김 씨, 나중에 최 씨 보거든 자네가 한마디 해 줘. 관리자라고 목에 힘주고 다니는 것도 꼴 보기 싫은데, 툭하면 아들의 레벨이 50이라, 별 볼 일 없는 우리의 미래와 자신의 미래는 다르다고 지껄인다니까?”

“그렇게까지 말한다고?”

“그래! 얼마나 꼴불견인데.”

“알았어. 내가 말조심하라고 해 봄세.”

그런데 이런 인부들의 열띤 대화를 엿듣고 있는 사람이 또 있었으니.

멀지 않은 벤치에 앉아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남성이었다.

그 역시 중년인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인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쓰게 웃고 있었다.

“잘난 자식이라…….”

잘난 자식이라면 그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 남성은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의 부모들을 한자리에 모아 자식 자랑 월드컵을 치른다고 해도 어렵지 않게 우승을 차지할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자식은 다름 아닌 황제였으며, 바로 인부들이 앞서 거론한 천상계의 존재였다.

“가서 일이나 하자.”

그렇다.

벤치에 앉아 있던 중년인은 대한민국 정부의 실세이자 ‘서백호의 아버지’인 서인호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다.

그는 자식이 드래곤을 잡는다고 했을 때 레벨을 물어본 이후론 확인하질 않아 현재 레벨이 몇인지 모르고 있다.

다만 드래곤을 잡고 2개월이란 시간이 흐른 데다가, 정체기 한번 없이 스트레이트로 성장해 온 서백호이기에 어쩌면 레벨이 300 근사치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뿐이었다.

레벨 100만 되어도 주변에서 저 난리인데, 레벨 300이라니.

그냥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우리 이만 돌아가세.”

공원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그는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 숨어 대기하고 있던 정장 차림의 남녀들이 다가와 서인호를 에워쌌다.

누가 봐도 사냥꾼으로 보이는 인물들을 호위로 달고 다니는 모습은 자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었고, 이런 존재와 엮여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방금까지 열을 올리며 대화를 하던 인부들은 애써 서인호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이는 서인호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상황이었기에 태연하게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와글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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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호는 머지않아 청와대 앞 광장에 다다랐다.

구 사냥꾼 협회에서 조성한 도시에 비하면 규모도 작고, 시설도 좋다 할 수 없지만, 청와대 생존 구역도 나름 갖춰진 곳인지라 입구 쪽에 자리한 광장은 수많은 인파로 붐볐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발걸음이 청와대에 들어서기 전에 멈추고 말았는데.

이유는 광장 한곳에 떡하니 자리한 그의 아들, 서백호의 동상 때문이다.

[인류의 구원자이자 수호자이며 선구자]

높이 20미터의 제법 큰 그 동상의 발아래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서백호가 세운 업적은 경이롭기 그지없었으니 말이다.

“…….”

그런데 역시 살아 있는 자식을 본뜬 동상을 보면, 부모로선 마음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를 경호하는 사냥꾼들은 동상을 바라보며 가슴에 손을 얹기까지 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경건한지, 마치 태극기를 향한 경례를 보는 것 같았다.

점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아들의 존재감이 무서울 지경.

이러다 진짜 승천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안보실장님, 오셨습니까?”

그렇게 복잡 미묘한 감정 속에 청와대로 돌아오니, 한 인물이 서인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바로 대한민국 소속이라기보다 대한제국 소속이라 칭하는 게 맞을 강이솔이었다.

“황도의 재상께서 어쩐 일이신가?”

황도는 황성이 자리한 중립 도시 철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거대 계획 도시를 뜻한다.

많은 국민이 입주하길 희망하는 그곳은 변화한 권력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데, 그 도시의 재상이라 칭하는 건 그가 대한제국의 실세임을 뜻하는 호칭이나 다름이 없었다.

“황도의 재상이라뇨. 제발 그만둬 주십시오.”

강이솔은 하늘과 같은 서백호의 아버지가 자신을 그리 부르는 걸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크게 손을 내저으며 자세를 더욱 낮췄다.

서인호는 그런 강이솔의 태도에 너털거린 웃음을 흘리고는 그의 어깨를 짚으며 직접 자리를 내어 주었다.

“실은 이번에 마계와 지구의 동맹 기념행사가 진행될 예정이거든요. 아무래도 안보실장님의 위치가 위치인 만큼 참석해 주셔야 할 것 같아서요.”

강이솔은 최근 더욱 견고히 자신의 입지를 다졌는데, 그 계기를 마련한 게 바로 마계와의 동맹이었다.

대한제국의 전권 대사로서 협상단을 이끌고 ‘세계 간 외교’라는 유례없는 일을 무사히 성사시켰으니, 높은 평가를 받는 게 당연했다.

“그래? 백호가 아버진 저렙이니 마계엔 건너갈 생각도 말라고 했었는데?”

“하하, 폐하께서도 그 자리에 참석하시니, 안전상 문제가 없을 테죠.”

원래대로라면 대한제국의 외교를 담당하는 건 서인호 안보실장이었다.

하지만 서백호는 안전을 이유로 아버지를 대신해 강이솔을 전권 대사로 마계를 보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마계의 행사에 참여해 달라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폐하께서 안보실장님께 이것도 보내셨습니다.”

이어서 서인호는 강이솔에게 한 뭉텅이에 달하는 종이 묶음을 건네받았다.

“이건?”

“성장의 탑 10단계 교환권입니다.”

성장의 탑은 레벨 100 이전의 사냥꾼들이 자주 이용하는 공간.

몬스터를 사냥하고 보상으로 얻은 교환권을 경험치나 코인 등, 입맛에 맞는 것으로 바꾸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10단계 교환권이라면 성장의 탑 최상층에서 얻을 수 있는 귀한 물건인데, 그걸 한 뭉텅이나 내놓다니.

“폐하께서 안보실장님이 그걸 이용해 레벨을 올리길 바라십니다. 아마 그 정도 양이라면 무리 없이 레벨 100을 넘기실 수 있을 테죠.”

“허…… 이 많은 걸 어찌 구했나?”

“샀습니다. 물론, 폐하의 자금으로요.”

코인으로 안 되는 게 없는 시대라지만, 설마 잘난 아들 덕에 사냥 한 번 안 해 보고 레벨 100을 찍게 될 줄은 몰랐다.

“백호 덕분에 슈퍼맨이 되겠어.”

“하하, 아무래도 마계가 위험한 만큼 이 정도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신 거죠.”

서인호는 아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이는 앞으로도 자신이 마계와의 외교에 나서게 될 확률이 높다는 뜻을 의미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는 벌써부터 뒷방 늙은이로 물러날 생각이 없는 그에겐 바라 마지않는 상황으로, 다른 세계인과의 만남은 서인호로서도 꽤나 설레는 것이었다.

그렇게 서인호는 강이솔과 하하 웃으며 자식의 이야기를 공통의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때.

[한국인 서** 님께서 최초로 레벨 300을 달성하셨습니다.]

[세계 최초로 레벨 300을 달성한 업적은 명예의 전당에 기록이 됩니다.]

[모두 한국인 서** 님을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둘의 앞에 무시무시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 이건?”

“허…… 참.”

역시 상식을 가볍게 초월하는 그의 아들다웠다.

“어째 이놈은 최초 업적 메시지로 소식을 전해 오는 경우가 많단 말이야.”

서인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항상 앞으로 나아가며, 지구의 모든 사람을 이끄는 리더.

그런 아들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어찌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마음 같아선 길 한복판에 서서 ‘내가 바로 서백호의 아빠다!’라 외치며 무한 자랑을 하고 싶지만, 자식의 명예를 위해 자제할 뿐이었다.

* * *

마계와의 동맹은 매우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팬드래건 제국이 마왕을 잃은 반팬드래건파의 나라들을 흡수하고 나니, 예상대로 두 세계 간의 동맹을 방해하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 영웅 에잇투 대공이 알고 보니 지구의 황제였단 소식이 전해지며, 난리가 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동맹 중에 발생한 해프닝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레벨업에 몰두할 수 있었고, 팬드래건 제국의 정복 전쟁이 끝나고 두 달 만에 레벨 300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경험치 필요량이 무식할 정도 많긴 했지만,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어.’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파티는 지금보다 장비도 안 좋았던 레벨 270대 때부터 최강의 몬스터인 드래곤을 사냥해 왔다.

때문에 이후로도 마계의 불모지와 마경의 중심을 탐색하며 드래곤급의 몬스터를 사냥 다녔고,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생각보다 이른 기간에 레벨 300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근데 이게 만렙인가?”

호버 보드를 탄 백색 가죽 갑주의 발키리.

아니, 시에나가 레벨 300 달성을 기뻐하며 축배를 드는 파티를 향해 그리 물었다.

이에 “적셔!”를 위치며 높이 들었던 샴페인 잔을 도로 내려놓은 나는 턱을 짚어야 했다.

“확실히 그게 궁금하긴 하네요.”

레벨 300을 달성하자마자 바로 파티를 시작한 지라 이 부분을 아직 확인하지는 못했다.

과연 지구인들도 마계인들처럼 레벨 상한이 정해져 있을까?

지금은 축배를 들기보다 이걸 확인하는 게 먼저란 생각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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