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한계 돌파 (2)
전투가 벌어져도 꺼릴 것 없다는 내 태도.
이게 허세가 아님을 주변 사람들이 더 잘 안다.
덕분에 황제가 슬쩍 다가와 곤란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이곳이 파괴되면 안 되는데.”
그에 나는 어쩔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싸움이 벌어져도 저 문과 재단만은 지켜 볼게요.”
“끙…… 충돌은 막을 방법은 없는 건가?”
“놈이 계속 잠들어 있었다면 모를까, 깨어난 지금은 방관이란 선택지가 없어졌습니다. 제거하든가 길들이든가 두 가지 방법뿐이죠.”
아무리 지능이 높고, 초대 제로원 황제의 펫이었다고 해도 지금은 몬스터 신세.
무슨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를 위험한 놈을 귀중한 시설 한가운데에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깨어난 이상 놈은 이곳에서 치워져야 한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그래서 어떻게 할래? 순순히 펫이 되겠다면 이쪽도 편해서 좋겠는데.”
나는 다시금 마룡 오귀스트에게 시선을 주었다.
과연 레벨 300의 드래곤과 320의 드래곤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진다는 생각 따윈 없었다.
이런 자신감이 겉으로 드러나서일까?
위협적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던 마룡이 스윽 물러나며 헛웃음을 흘렸다.
[가끔 태생적 신분이 좋아 레벨이 높은 게 자신의 진짜 실력인 줄 착각하는 놈들이 있지.]
마계에 한해서 말이지.
나는 뜬금없이 뭔 개소리냐며 어깨를 으쓱여야 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나는 마계 출신이 아니니까. 처음부터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지금의 위치까지 성장한 게 내 자부심이거든.”
[…….]
나를 내려 보던 놈은 이내 현 제로원 황제에게 시선을 옮겼다.
마치 진짜냐며 묻듯이.
자신이 모시던 주인의 후손이니 거짓말은 안 할 거라 생각하는 걸까?
“사실이오. 심지어 레벨 250일 때부터 마왕 때려잡고 다니던 존재이기도 하고.”
[흐음…….]
마룡이란 무시무시한 종족명을 갖고 있음에도 의외로 신중하게 고민하는 모습.
나는 길게 재고 따질 것 있냐며 피식 웃어 보였다.
“뭐, 한번 맛보면 결정하기 편하겠지.”
그리고 웨폰 체인저를 이용해 엑스칼리버를 꺼내 쥐고, 신화급 스킬인 인챈트를 이용해 아스칼론에서 드래곤 슬레이어 옵션(용족을 향한 스킬 공격력 200% 상승)을 뽑아 엑스칼리버에 부여했다.
더불어 블레싱(능력치 50% 상승)을 비롯해 우리 파티의 각종 버프가 내게 쏟아졌으며, 승리의 깃발(능력치 10% 상승)을 흔드는 것을 시작으로 나 또한 자체 강화를 진행했다.
현신 스킬(1분간 능력치 50% 상승, 스킬 사용 시 마력 소모를 없앤다).
폭주 스킬(1분간 능력치 50% 상승).
혼돈력(근력과 순발력 20% 상승).
몰아 일체(검술 보정, 집중력 향상, 약점 포착).
사고 가속(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분신 스킬(1분간 내 능력을 복사한 분신을 만든다).
심검 스킬(내 검술 능력을 그대로 카피한 12개의 투과 검을 소환한다).
처음부터 이렇게 단번에 모든 힘을 쥐어짜 낸 건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순식간에 능력치가 뻥튀기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보조 스킬이 더해진 덕에 내 전신에선 다양한 색상의 기운이 불타오르듯 솟구쳤다.
덕분에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것만으로 유적 곳곳에 균열이 발생했다.
-척.
곧이어 나는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러자 엑스칼리버에서 성화와 혼돈력이 승천하는 두 마리의 용처럼 솟구쳐 수중 유적 천장을 꿰뚫어 버렸다.
-고고고고고고!
-쿠웅! 콰콰쾅!
유적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비명을 내지르고, 옆에 있는 황제도 기겁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단번에 눈앞의 마룡을 압도한다.’
이번에 레벨 300을 달성하면서 얻게 된 장비 강화권으로 신화급이 된 이능의 날개엔 제3의 손뿐만 아니라 제4의 손이 추가로 생겨났는데, 두 개의 손엔 각각 성검 칼립소와 바리사다가 자리한 상태다.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듯한 자세를 취한 나의 곁엔 못지않게 무시무시한 기세를 뿌리는 분신이 생성되고, 자율 무기인 프라가라흐와 브라흐마스트라가 심검과 함께 명령을 기다리며 주변을 배회했다.
나는 마룡을 향해 말했다.
“버텨 낼 자신이 있는 거겠지?”
[…….]
나를 가만히 지켜볼 뿐, 말 한마디 않고 있는 마룡 오귀스트.
과연 최초의 마왕이자 마신이라 불린 존재의 동료다운 위엄이었다.
그런 놈의 모습에 나는 불쾌함을 드러내긴커녕 오히려 씨익 웃어 보였다.
그리고.
-콰아아앙!
도움닫기를 하는 것만으로 폭탄이 터진 듯 커다란 크레이터가 발밑에 생긴 그 순간.
[제로원?]
드디어 놈이 입을 열었다.
지금 마룡이 입에 담은 제로원은 내 곁에 있는 황제가 아닐 터이다.
아무래도 나를 통해 과거의 주인을 겹쳐 보고 있는 모양.
그도 그럴 게 나를 바라보는 놈의 시선에서 불신과 경악, 그리움과 같은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감상 따윈 필요 없다.
놈이 내게 굽히거나 싸우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지만 있을 뿐이니.
-쇄애애애액!
동시에 내 몸은 강력한 추진력을 품고 날아오른 미사일처럼 솟구쳤고, 곧 한 줄기의 빛이 되었다.
[자, 잠깐! 항복! 그거 맞으면 길들이건 뭐건 뒈진……!]
-빠가각!
[커억!]
결국 놈에게서 항복을 받아 내는 데 성공했다.
아무리 놈이라도 모든 걸 쏟아부은 내 기세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모양.
하지만 항복을 외치는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
그래서 마룡 오귀스트는 한 대 거하게 얻어맞아 유적 한구석까지 폴폴 날아가 처박혔다.
“마지막에 힘 뺐어.”
[크으윽! 젠장. 이게 힘 뺀 거라고?]
덕분에 놈에게선 더 이상 앞선 위엄을 찾아볼 수 없었다.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의 길이가 100미터를 가볍게 넘는 녀석이 작은 인간의 공격에 날아가는 꼴이 퍽이나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다.
[마룡 오귀스트가 드래곤 라이더 반지에 귀속됩니다.]
-드래곤 라이더 반지의 효과로 오귀스트는 동행 가능한 펫의 수에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마룡 오귀스트의 역소환 및 소환이 가능합니다.
놈을 펫으로 삼는 데 성공한 나는 제로원 황제를 향해 따봉을 날렸다.
하지만 제로원 황제는 제대로 싸운 것도 아니건만 거대한 수중 유적이 금방이라도 붕괴될 듯 아슬아슬하게 변모한 것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터무니없는 놈이다. 너는.]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다가오는 드래곤 펫, 마룡 오귀스트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러게 순순히 날 따랐으면 됐잖아.”
[웃긴 소리. 감히 이 마룡이 아무나 따를 리 없지 않나.]
“거물인 척 군 것치고 별것도 없더만.”
[거물인 척이라니…….]
마계의 역사 속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놈이니 실제로 엄청난 거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오귀스트는 이제 내 펫인지라 필요 이상으로 떠받들어 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내 말에 오귀스트의 전신이 갑자기 빛에 휩싸였다.
-파앗!
“뭐, 뭐야?”
그리고 이어진 상황에 나는 기겁해야 했는데, 강렬한 빛의 크기가 점차 줄어들더니.
은발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웬 엄청난 미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마룡이 인간으로 변했어.”
“맙소사.”
세로로 갈라진 파충류 특유의 핏빛 눈동자 덕에 그 여자가 오귀스트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지만, 설마하니 인간으로 변신할 거라고 생각 못 했던 나는 깜짝 놀라 입을 벙긋거려야 했다.
윌리아와 시에나는 물론, 주변에 있던 마계 사람들 모두가 그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역시나 괴수형 거대 몬스터가 인간으로 변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닌 모양이다.
[어째서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건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보니, 네 놈을 만나기 위해서였나 보군.]
나는 알몸으로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녀석의 민망한 자태에 급히 인벤토리에서 남는 망토를 날려 염력으로 입혔다.
워낙 크게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했지만, 오귀스트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로 제 할 말만 했다.
[넌 초대 제로원의 환생체인가?]
그런데 이어진 말이 결코 무시 못 할 것이어서 나는 정신을 차리며 미간을 좁혀야 했다.
“그게 뭔?”
황당하단 내 반응과 달리 놈의 그 말은 무시 못 할 파장을 만들어 냈다.
갑자기 어수선해지기 시작한 주변 상황에 나는 그럴 리가 있겠냐며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생각한 근거는?”
[음, 분위기가 비슷해서?]
“이 새끼가?”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애초에 내가 제로원일 리도 없지만, 확인할 방법도 없는 말을 대책 없이 내뱉은 놈이 이내 상관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넌 의심할 여지 없이 제로원의 동류라 할 수 있는 자. 그런 녀석을 따라 모험을 이어 가는 게 내 운명이란 뜻 아니겠나.]
자기도 뭔 상황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초대 제로원처럼 특별해 보이니, 일단 따르겠다는 말 같다.
[그러니 이 몸을 잘 모시도록. 하하핫!]
괜히 쓸데없는 사족을 붙여 괜히 머릿속으로 온갖 소설을 쓰게 만든 녀석에게 나는 결국 꿀밤을 날렸다.
[악!]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그건 바로 눈앞의 마룡이 위엄 넘치던 첫인상과 다르게 실은 시에나와 동류에 속한다는 거다.
단지 시에나보다 몸만 클 뿐인 그런 존재 말이다.
* * *
[천경에 입장하셨습니다.]
[300의 레벨 제한이 해제됩니다.]
나는 불필요하게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재단에 보유하고 있던 용의 심장을 바치고 천계를 잇는 길목인 천경에 입장했다.
마경을 처음 발견했을 땐 끝 모르고 펼쳐진 숲과 산림이 반겨 주었는데, 천경은 그와 전혀 달랐다.
사방이 대리석처럼 보이는 매끈한 돌로 둘린 반듯한 길목이 길게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폭과 높이는 100미터 정도?
과거 지구가 온전했던 시절에도 감히 본 적 없는 엄청난 규모의 실내 시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엄청난 규모의 길목이…….
초거대 미로의 아주 작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부분밖에 보지 못했지만, 이 미궁이 엄청나게 거대하단 것만큼은 쉽게 알겠어.”
그렇다.
마경이 숲과 산림 등 자연환경 중심의 광활한 땅이라면, 천경은 존재 자체가 인위적인 초거대 미궁이었다.
사람을 절로 주눅 들게 만드는 거대 시설 속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나는 언제나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일단 바라던 문제 하나를 해결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레벨 제한이 풀렸으니 다시 광렙을 하자고!”
시에나가 파이팅을 외치자 나와 윌리아도 그에 호응해 주었다.
하지만 은발의 미인으로 변모한 마룡 오귀스트는 이런 우리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너희 300부터 레벨 올리기가 얼마나 힘든 줄 모르는구나?”
그에 나와 윌리아, 시에나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향했다.
그러자 오귀스트는 슬쩍 움찔거리고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는 레벨업을 할 때마다 필요한 경험치가 전 레벨의 두 배씩 불어나거든.”
“뭐?”
“복리의 무서움이 레벨업에 적용된다는 거야.”
그리고 듣게 된 300 이후의 레벨업 경험치 요구량에 우리는 당황해야 했다.
“조금만 있으면, 내 레벨인 320이 얼마나 높은 건지 깨닫게 되겠지. 하하핫!”
미친 듯 웃어 재끼는 녀석 덕분에 나는 천계 놈들의 레벨이 301~350 정도에 머물러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계를 돌파했지만, 올리고 싶어도 쉽게 올릴 수가 없으니 그런 모양이다.
“그럼, 더 강한 놈을 잡아서 레벨 올리면 되는 거 아닌가? 그만큼 레벨 300 이상인 몬스터는 경험치를 더 주겠지.”
하지만 놈의 말에 흔들리는 건 잠깐뿐이다.
이미 별의별 일을 겪으면서 우리의 멘탈은 매우 굳건해진 상황이니 말이다.
이럴 때일수록.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좋은 생각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것이 있으니.
[최초로 천경에 입장하셨습니다. 해당 업적은 명예의 전당에 기록이 되며,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혹시 제로원 때문에 못 받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최초 업적 보상은 지구인 한정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