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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64화 (264/273)

264화 한계 돌파 (3)

내가 천경에 최초 입장을 하면서 받은 업적 보상은 바로 이것.

[정령왕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4대 속성의 반지(신화 등급) 중 하나를 보상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땅 속성

-불 속성

-바람 속성

-물 속성

무려 신화 등급의 강력한 4대 속성 반지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는 권한이다.

귀중한 액세서리가, 그것도 신화 등급으로 주어지는 건 더할 나위 없지만, 나와 일행은 자연히 미간을 좁히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 함께하게 된 ‘마룡이’, 오귀스트가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물었더니.

“그냥 네 성향에 맞는 걸 고르면 되는 거 아냐?”

“성향?”

“정령왕의 힘이 깃들었다고 말할 정도의 장비면 해당 속성을 원하는 대로 다룰 수 있게 될 가능성이 크잖아. 그럼 어느 힘이 너한테 가장 유용할 것 같은지 생각해 보는 거지.”

“음…….”

물론, 그녀의 말이 맞는다고 100% 보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충분히 일리 있는 조언이기에 참고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속성을 원하는 대로 다루게 되면 가장 좋을 것 같은 거라.’

나는 잠시 고민해 보았다.

각 속성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지.

덕분에 머지않아 1차로 답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니까, 땅 속성과 물 속성이 좋아 보이네.”

“어째서?”

“전투 외에도 쓸 수 있을 것 같잖아. 땅 속성을 다룬다면 성벽이나 농지를 만들 수도 있을 거 같고, 물은 생존의 근간이 되는 거니 길게 설명할 필요 없지. 지금의 지구는 꽤나 척박하니까.”

내 말에 윌리아와 시에나도 동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네요. 불과 바람은 고정된 것이 아니니, 전투 외엔 쓸모가 없어 보여요.”

“그렇게 따지면 땅 속성이 좋아 보이는데? 신화 등급 장비들의 위력을 생각해 보면 건물도 세울 수 있는 거 아닐까? 심지어 물도 원한다면 지하수를 퍼 올릴 수 있을 것 같고.”

“그게 가능하다면 지금의 지구에 더없이 필요한 기능이긴 하네요.”

그리고 활용의 다양성을 떠올려 보니 물도, 땅 속성에 비할 수준은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정보가 한정적이니 모두 뇌피셜로 떠들어야 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

내 말의 끝을 시에나가 완성시키면서 결국 나는 땅 속성을 택했다.

[테라의 반지를 획득했습니다.]

나와 일행은 얼른 반지의 옵션을 확인했다.

은발의 미인으로 변신한 오귀스트도 아이템 정보가 궁금한지 은근슬쩍 다가왔다.

[테라의 반지 / 등급: 신화]

-대지의 정령왕 테라의 강력한 힘이 온전히 깃든 반지다.

-마력 소모 없이 직경 10미터의 대지를 원하는 대로 조종하여 변형시킬 수 있다.

-대지 속성 스킬의 위력이 2배 증가한다.

-파괴 불가

-마력+30

-자체 스킬 1: 땅 속성 광역 조종

-자체 스킬 2: 대지의 분노

-자체 스킬 3: 중력 붕괴

[땅 속성 광역 조종 / 극상급 / 액티브]

-초당 마력 1을 소모해 직경 100m의 대지를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다.

-마력 소모량이 1씩 증가 할 때마다 조종할 수 있는 대지의 면적이 직경 10m씩 증가한다.

-해당 스킬을 이용해 시설을 만들 경우 높은 강도를 갖게 되며, 외부의 공격에도 쉽게 붕괴되지 않는다.

-기본 마력 소모: 초당 1

[대지의 분노 / 극상급 / 액티브]

-강력한 지진과 함께 직경 1km의 지면을 단번에 뒤집는다.

-비교적 적은 마력을 소모하여 대규모 살상 및 도시를 파괴할 수 있다.

-마력 소모: 10

[중력 붕괴 / 신화급 / 액티브]

-블랙홀을 연상시키는 강력한 중력장을 발생시켜 지정한 장소를 중심으로 직경 100m의 공간을 압축한다.

-마력 소모: 30

그리고 해당 장비의 옵션을 본 나는 마른침을 삼켰고 일행들은 감탄사를 흘렸다.

“대박인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강력해 보였다.

바라던 대로 지형을 대규모로 변경할 수 있는 데다가, 공격적인 부분에서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특히 공간을 압축시킨다는 중력 붕괴 스킬은 설명만으로도 무시무시해 보였다.

‘도시를 만들 수도, 없앨 수도 있는 장비네.’

나는 이 장비를 누구에게 배정할까 고민하다가, 이내 내 손가락에 끼웠다.

이 반지는 경우에 따라 큰 책임을 필요로 하는 일에 쓰일 수도 있는 만큼, 윌리아와 시에나보단 내가 착용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중력 붕괴 스킬은 위험해 보이는 만큼, 근거리에서 전투를 벌이는 내가 타이밍을 재면서 사용하는 게 맞아 보여.’

뭐, 나중에 가서 주인이 바뀔 수도 있지만, 당장은 내가 착용하는 것에 윌리아도 시에나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내가 장비 욕심 때문에 아이템을 독차지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두 사람이 제일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자, 그럼…….”

그렇게 업적 보상의 확인을 끝낸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 미로의 초입이 눈에 들어왔다.

미궁 형태의 지형을 가진 천경이었다.

“새로운 선물도 받았고, 새로운 꼬붕도 얻었겠다. 이제 슬슬 천경을 둘러볼까요?”

“꼬붕? 설마 이 몸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내 말에 동료들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새로운 펫인 오귀스트만큼은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반발했다.

덕분에 나와 동료들의 시선이 오귀스트에게 향했다.

“왜, 왜?”

거슬리는 단어에 반발해 봤지만, 우리가 어려운지 오귀스트는 어울리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오귀스트의 얼굴이 아닌 몸으로 향해 있었다.

그 이유는 그녀가 바바리맨처럼, 맨몸에 망토만 걸치고 있단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너 장비는 없어?”

내 물음에 오귀스트는 언제 쫄았냐는 듯 양팔을 허리에 걸치며 크게 웃음을 흘렸다.

진짜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네.

“이 몸은 존재 자체가 살인 병기나 다름없지. 장비 따윈 필요하지 않아.”

그러면서 손을 앞으로 내밀자 가녀린 여성의 손 위로 잿빛의 비늘이 갑옷처럼 돋아났다.

녀석의 레벨과 특별함을 생각하면 아마 웬만한 유일 등급 방어구를 걸친 것보다 훨씬 튼튼하지 않을까 싶다.

“흠…….”

“지, 진짜 필요 없는데? 이상한 걸 입어 봐야 오히려 움직임에 방해만 된다고.”

대충 방어구가 필요 없다는 건 알겠지만…….

역시 인간의 관점에서 이 꼬라지로 끌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지구에선 나름 위엄있는 위치를 갖고 있었으니, 취향을 의심받는 짓은 하지 않는 게 낫지 않겠는가.

“아!”

그러다가 나는 문뜩 인벤토리 한구석에 잠들어 있는 아이템을 떠올렸다.

‘어딨더라? 처분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등급은 그리 높지 않지만 움직임에 방해를 주지 않을 최고의 방어구를 말이다.

‘찾았다! 우리 파티의 근본 of 근본 아이템!’

그건 바로 서큐버스의 전투복이다.

수영복 형태를 가진.

나는 이 정도면 타협이 가능하지 않냐며 서큐버스의 전투복 상하의를 던졌고.

그것을 받아 든 오귀스트는 나쁘지 않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알몸보단 낫지만, 변태 같아 보이는 건 여전하네. 망토 안에 수영복이라니.”

“뭐라고?”

시에나가 못 말린단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자, 오귀스트가 발끈했다.

하지만 윌리아는 다른 반응을 보였는데, 왜 저걸 아직도 갖고 있냐는 눈빛이었다.

“인벤토리가 하도 많아서 구석에 처박아 두고 잊고 있었네요. 하하.”

지구인들에게 인벤토리는 기본으로 5칸이 주어진다.

하지만 사냥을 하다 보면 보상으로 인벤토리를 얻는 경우가 많은데, 각종 최초 보상과 업적 보상을 싹쓸이해 온 내 인벤토리는 1천 칸이 넘었다.

처음엔 윌리아가 장비했던 아이템이라 기념 삼아 갖고 있었지만, 나중엔 완전히 잊고 있었던 거라, 틀린 변명은 아니었다.

“아, 아직 출발을 안 했구만.”

그리고 때마침 우리보고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 했던, 마계의 황제가 황태자와 함께 천경의 문을 열고 등장해 주었다.

나는 애써 윌리아의 서늘한 시선을 피하고는 제로원 황제에게 다가갔다.

“저흰 이제부터 탐색을 시작하려 하는데, 두 분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천경에 입장하기 위해선 용의 심장이 필요했다.

다행히 우리에겐 충분한 양의 용의 심장이 있었고, 우호의 증표로 황제와 황태자의 몫까지 두 개의 심장을 마계에 배정해 주었다.

“우린 우리대로 활동할 터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그러시군요.”

혹시라도 제로원 황제가 눈치 없게 파티에 끼워 달라고 하는 거 아닌가 했는데, 그렇진 않았다.

난 펫과 NPC에게 경험치를 분배해야 하기에 두 사람이 파티원으로 늘어나는 건 그다지 바라는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그럼 저흰 가 보겠습니다.”

“아무쪼록 조심하게나.”

초대 제로원 황제가 집필한 천경과 천계에 대한 자료는 그들 손에 쥐어져 있는 상태.

그걸 복사해도 좋지만, 당장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초대 제로원 황제와 직접 천경과 천계를 누빈 경험자, 오귀스트가 있었으니 말이다.

“혹시라도 폐하의 눈이 또 다른 미래를 포착한다면 꼭 알려 주세요.”

“내 반드시 그러겠네.”

제로원 황제는 전투력이 마계 제일이지만, 가장 귀중한 그의 능력은 미래를 보여 주는 마안이다.

때문에 나는 새로운 미래가 보이거든 꼭 알려 달라 당부를 전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천경엔 마계와 달리 웨이포인트가 없어. 대신 게이트웨이란 비슷한 이동 수단이 존재한다고 하지. 그걸 가장 먼저 찾아 놓는 게 나을 거야.”

천경 가이드 오귀스트의 말에 우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린 천경의 탐험을 시작했다.

* * *

[천경의 문이 열렸습니다.]

[새로운 세계의 등장으로 지구와 마계 사이에 예정되어 있던 세계 간 전쟁이 중지됩니다.]

지구와 마계, 두 세계 사이의 동맹은 시스템적인 보조를 받는 게 아니다.

때문에 두 세계의 전쟁이 예상대로 진행되면 사전에 지정한 서로의 영토를 순서대로 뺏고 빼앗기는 식으로, 최대한 시간을 끌기로 합의를 했다.

하지만 서백호와 제로원 황제가 천경에 입장하게 되면서 쓸데없는 연기를 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지구와 마계의 세계 간 동맹이 활성화됩니다.]

마치 인심 쓰는 것처럼 제3의 세계(천계)를 상대로 잘해 보라는 듯, 시스템이 지구와 마계의 동맹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줬기 때문이다.

당장의 전쟁이 없어져 다행이었지만, 해당 메시지는 전체 공지였다.

덕분에 지구와 마계의 국민 모두가 두 세계의 연합 없이는 상대가 되지 않을 강적의 등장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이로 인해 두 세계는 어수선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를 기회 삼아 정치적 안위를 꾀하고자 나서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사람들을 선동하는 반대한제국 세력?”

“네, 황제 폐하의 방침은 전쟁의 규모를 키울 뿐이라고, 레벨과 전투 우선 방침을 없애고 평화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대의보다 제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기주의, 아니 반사회적 분자라 할 수 있는 이들은 그럴싸하게 포장된 논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위에 군림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런 행동도 시대의 흐름을 잘 보고 진행해야 성공 가능성이 있는 법이다.

“얼마나 대단한 신념을 가진 분들인지 확인해 봐야겠네. 선동꾼들 잡아다 지하 감옥에 가 둬, 그리고 매질 후, 보름 동안 물 한 모금 주지 마.”

“알겠습니다.”

아무리 지구의 각 정부가 제 기능을 하고 있지만, 엄연히 그 정부 위에는 대한제국 황성이 군림하고 있다.

대의라는 명분으로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모두 강이솔 선에서 커트가 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폐하께서 마음 놓고 싸우실 수 있게 본진을 안정화시키는 것.’

강이솔은 서백호가 이 세상의 구원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강이솔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세상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서백호를 향한 굳건한 믿음과 신뢰를 잃지 않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고.

이는 예상치 못한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 새로운 능력치가 생성됩니다.]

바로 서백호의 능력치 창에 근력, 순발력, 마력에 이어 알 수 없는 새로운 스탯이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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