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새로운 능력 (2)
레벨이 무려 330에 달하는 특수 몬스터와의 전투는 처음이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현재 우리의 전력은 단순히 레벨만으로 판단해선 안 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룡 오귀스트가 펫으로 합류하게 되지 않았는가.
때문에 저 멀리 자리하고 있는 레벨 330의 카오스 드래곤이란 녀석도 어렵지 않게 토벌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더구나 언령과 테라의 반지 등 새로 얻은 힘도 있으니까.’
그렇게 전투에 앞서 적을 관찰하던 중.
뒤늦게 무언가를 눈치챈 나의 시선이 오귀스트에게 향해졌다.
“뭐야? 왜 그래?”
[마룡 오귀스트 / 레벨: 320]
이어서 나는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의문을 표하는 녀석에게서 시선을 돌려 지금부터 상대하게 될 적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카오스 드래곤 타르칸 / 레벨: 330]
“…….”
덕분에 나는 미간을 좁혀야 했는데, 그 이유는.
“에이, 뭐야. 레벨 320의 마룡이라 엄청 특별해 보여 길들였는데, 천경에 들어오니 더 높은 레벨의 드래곤이 바로 나오네?”
“아! 그렇네!”
“레벨 10 손해 봤네요.”
이런 내 반응에 시에나와 윌리아도 뒤늦게 오귀스트와 저 멀리 있는 드래곤의 레벨을 비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이렇게 대놓고 비교질을 당할 거라 생각 못 했는지, 아니면 요 며칠 동안 함께 다니면서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건지, 마룡 오귀스트가 당황하며 말했다.
“자, 잠깐! 지금 나보다 저놈을 동료로 삼았어야 한다는 거야!?”
“지구와 마경, 마계의 드래곤이 씨가 말라서 널 너무 귀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내 말에 그녀는 자존심이 상한단 표정으로 발끈했다.
“나 초대 제로원과 함께 모험한 마룡인데?”
“천경과 천계의 정보는 초대 제로원의 기록을 복사하면 되는 거잖아? 그럼 전투력이 최고지.”
“너희들도 레벨보다 월등히 강하잖아. 몬스터라고 해서 다를 거 없어. 레벨이 강함의 전부를 표현하는 건 아니라고.”
녀석의 말은 사실이다.
실제 몬스터들도 레벨보다 네임드냐, 보스냐, 엘더냐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니까.
“흐음, 그런가?”
하지만 드래곤은 그 격차가 크지 않아 보인다는 게 문제다.
과연 마룡이란 존재가 카오스 드래곤과의 레벨 10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일까?
“젠장, 너흰 가만히 있어, 저런 놈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으니까.”
“무리하지 말고.”
“무리 아니거든?”
이쯤 되니, 놈도 자존심 때문에 물러서지 못하고 홀로 나섰다.
그러고는 오귀스트의 모습이 은발의 미인에서 거대한 잿빛의 용으로 변모했다.
-쇄애애액!
곧이어 무시무시한 속도로 튕겨지듯 날아간 오귀스트가 자신보다 레벨 10이 높은 카오스 드래곤과 마주하게 되었다.
-크르르르르.
핏빛의 눈동자와 뿔을 제외하면 드래곤의 표준적인 모습을 한 오귀스트와 리저드맨처럼 이족 보행을 하고, 새까만 바탕에 LED등처럼 새파랗게 빛이 나는 줄무늬를 가진 카오스 드래곤이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그 기세가 어찌나 흉포한지 둘의 마력이 충돌하며 거대한 미궁 곳곳에 크고 깊은 상흔이 새겨졌다.
“오, 진짜 기세에서 안 밀리네? 백호야 팝콘 있어?”
“잠시요.”
머지않아 두 드래곤이 충돌하고.
-콰아아아앙!
대기가 울리고, 지면이 흔들리는 거대 괴수 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우린 그 광경을 팝콘을 먹으며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오! 녀석이 마냥 허풍 떤 게 아닌 거 같은데요?”
“그러게요.”
전투는 오귀스트가 호언한 대로 레벨 차이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호각지세였다.
아니, 오귀스트가 조금 유리해 보여 드래곤이라고 다 같은 드래곤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단순히 카오스 드래곤이 약한 거 아님?”
이 와중에 팝콘을 와그작 먹으며 초를 치는 대사를 잊지 않는 금발 포니테일 아가씨 시에나.
하지만 그녀의 말과 달리, 카오스 드래곤은 우리가 지금껏 상대한 어느 드래곤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인 위용을 선보이고 있었다.
여기선 카오스 드래곤이 약한 게 아니라 마룡 오귀스트가 강하다고 판단해야 맞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드래곤의 전투에서 큰 차이를 만드는 건 노련함이었다.
전투를 운영하는 능력과 순간의 판단력 모두 오귀스트가 카오스 드래곤을 크게 상회했다.
-콰콰콰쾅!
-쇄애애액!
오귀스트는 마룡의 헬파이어 브레스 같은 큰 공격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등급이 낮은 스킬을 사용하기도 하고, 몸통 박치기 및 꼬리 치기 등 육탄 공격도 적절히 섞어 싸웠다.
그에 반에 카오스 드래곤은 자신의 파워를 자랑하듯 큰 공격을 펑펑 날리니, 위협적으로는 보여도 실속이 없는 전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시험은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네요.”
솔직히 앞서서 오귀스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건 반쯤 장난이기도 하면서 시험을 목적에 두고 있었다.
녀석의 전력을 확실하게 확인해 보기 위해 말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목적을 달성했으니, 우린 전투를 끝내고자 개입을 하기로 했다.
“심검.”
나는 바로 투과 효과를 지닌 12자루의 심검을 소환하며, 신의 날개를 펼쳐 소닉붐을 일으키며 튀어 나갔고, 그런 나의 뒤를 동료들이 뒤따라 날아왔다.
“제법 잘 싸우던데?”
[하하하! 그럼 내가 허풍을 떤다고 생각했냐!?]
나는 오귀스트를 칭찬했고, 그 칭찬을 들은 녀석은 단순하게 좋아하며 웃음을 흘렸다.
오귀스트 혼자만으로도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전투.
거기에 우리 파티 전원이 참전을 하니, 균형의 추가 순식간에 기우는 건 당연했다.
[크윽, 이럴 수가…… 대체 너흰?]
머지않아 이족 보행 드래곤의 거대한 덩치가 바닥에 쓰러지고, 자신의 패배가 믿기지 않는다는 익숙한 대사를 내뱉었다.
“레벨 올리러 온 사람들.”
그에 나는 당연하단 태도로 답을 하고는, 심검을 조종해 웬만한 아파트 둘레에 버금가는 놈의 목을 날려 버렸다.
* * *
시간은 흐르고 흘러.
서백호가 천경에 입장하고 3개월이 흘렀다.
그사이 지구는 대재앙 이후 두 번째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대재앙 직후 찾아온 첫 번째 겨울에 수많은 사람이 추위를 버티지 못하고 얼어 죽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번에는 대비가 잘 되어 동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덕분에 다음 전쟁을 대비해 위험한 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레벨을 올리는 주력 사냥꾼들과 달리,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문명의 이기를 만끽하던 대재앙 이전의 안락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한 차례 종말과 같은 큰 위기를 겪어 봤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안정적으로 삶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사실.
대재앙 전과 비교해 편리함이 부족할 뿐이지, 현재의 삶도 나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으나, 대표적으로 어떠한 병이나 부상이든 극복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회복 물약을 사서 마시거나, 고레벨 회복 스킬을 가진 사냥꾼에게 부탁을 하거나, 레벨을 올리면 이전의 장애조차 극복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또한 웨이포인트 덕에 전 세계의 거리 구분이 없어지고, 안전 구역 내 시스템 상점에선 코인으로 식량을 무제한으로 살 수 있으니, 인도나 아프리카 등 일부 국가에선 오히려 대재앙 덕분에 기아를 극복한 케이스도 있었다.
더불어 발전의 대가로 공해에 시름겹던 자연이 회복되고 있었다.
대도시에 살던 사람들조차 전에 없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니 대재앙이 인간들을 올바른 세상으로 인도하기 위한 시스템의 안배라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사람들이 안정을 되찾은 건 좋지만, 너무 평화에 찌들어 가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
하지만 절대다수를 이루는 일반인들과 쉬지 않고 전선에서 싸우며 레벨을 올리고 있는 주력 사냥꾼들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으며, 위기를 제일 빨리 체감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폐하의 말씀에 의하면 천족들이 천경에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하신다. 아마도 탐색이 목적인 것 같다고 하시더군.”
“탐색이라면?”
“뭐겠어, 지구와 마계에 대한 탐색이지.”
“허…….”
“놈들이 시스템을 멋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건 아닐 것 같아. 이쪽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는 게 분명하다.”
철원 중립 지대, 대한제국 황성.
서백호에게 전달받은 정보를 주력 사냥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맡은 강이솔의 이야기에 데이비드와 헤르만이 앓는 소리를 냈다.
서백호가 천경에 들어서고 3개월이 지난 지금 둘의 레벨은 270에 다다른 상태였다.
“폐하께선 아직 천경의 탐사가 충분하지 않은 만큼, 자신이 모르는 지구와 연결된 천경의 문이 있지 않을지, 그리고 천족들이 그걸 발견해서 지구 진입에 성공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많으셔.”
서백호의 걱정이 괜한 거면 좋겠지만, 냉정히 판단해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그에 데이비드와 헤르만 파티의 레벨을 5개 차이를 두고 바짝 쫓고 있는 윤시아가 말을 받았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하나네. 휘하 사냥팀들을 풀어 대대적인 탐색을 진행해 보는 것.”
“맞아. 그게 폐하께서 내린 지시기도 하지.”
현재 황성에 모인 대한제국의 주력 사냥꾼들은 각국 사냥꾼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들.
이들의 명령이면 신속하게 탐색팀이 꾸려지게 될 터이다.
서백호의 지시란 말에 각국 대통령들보다 귀하게 여겨지는 이들 사이에서 어떠한 불만도 이견도 나오지 않았다.
“오케이, 그럼 모두 지시에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을게.”
다들 그저 당연하단 표정으로 알겠다며 일제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대회의가 3일 뒤인데 그건 어떻게 되는 거야? 예정대로 진행돼?”
그때, 미국인 제임스가 한 손을 들고 물었다.
그에 다른 사람들도 궁금하단 표정을 지었다.
대회의란 두 달 전부터 시작된 대한제국의 큰 행사로 서백호까지 참석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대회의의 목적은 월초에 한 달의 계획을 모두가 함께 세우는 것.
생략하기로 하면 얼마든지 생략할 수 있는 행사긴 하지만, 최근 얼굴을 보기 힘들어진 서백호를 공식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였기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날이기도 했다.
서백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신격화되어 가 사냥꾼 중 그를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예정대로 진행하실 생각인 것 같아. 대회의는 지금의 지구에서 가장 큰 행사기도 하고, 폐하를 뵙기 위해 일반인들도 대거 몰려드는 일종의 축제와 같아졌으니까.”
“그렇긴 하지. 갑자기 대회의가 취소되면 많은 사람이 혼란스러워하긴 할 거야. 큰 사건이 벌어지는 거 아니냐고.”
“쯧…… 나는 폐하께서 굳이 대중을 배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서백호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기쁘지만, 괜히 전투에 큰 도움도 되지 않는 일반인들 때문에 그가 무리하는 거 아니냐며 걱정하는 클로에의 모습에 강이솔은 헛웃음을 흘렸다.
서백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건 좋지만, 의외로 대한제국 내에 그녀와 같은 성향의 사람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폐하께서 열심히 싸우고 계신 건 모두를 위한 거기도 하잖아.”
“후우, 실언했네. 미안.”
강이솔의 지적에 클로에는 순순히 물러났지만, 표정만큼은 불만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불만스러워 보이는 표정도 서백호를 만나게 되면 부드러운 미소로 변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