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새로운 능력 (3)
12월의 첫째 주 주말.
세상이 한차례 멸망 직전까지 몰리면서 전부 제 살길을 찾아 분투하느라, 주말은 더 이상 휴일과 동의어가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바뀌어 버린 세상에 사람들이 적응하게 되고, 대한제국이 출범해 세계를 통일하면서 매달 첫째 주 주말은 모처럼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휴일이 되었다.
이날이 휴일이 된 이유는 의외로 황당하다.
세계의 대통령.
아니, 황제인 서백호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겐 전 세계 주요 사냥꾼들과 각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 대회의가 진행되는 날인데, 대한제국은 이를 서백호와 제국을 위한 이미지 메이킹 소재로 활용했다.
협력이란 이름 아래 각국 정부에 압력을 넣어 평소라면 먹지 못할 귀한 음식을 국민들에게 나눠 주게 하고, 황성은 볼거리와 놀거리를 제공했다.
덕분에 그날만은 거리 어디서든 가수들의 노랫소리와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가 울려 퍼지게 되었다.
황성의 계획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비록 수고스럽고, 정기적으로 깨지는 코인도 엄청났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황성과 서백호를 좋게만 여기는 게 아닌 만큼, 적개심을 줄이고 적합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공고히 다질 수 있었다.
“어? 눈이다.”
“첫눈이야.”
여의도 옛 국회의사당 앞 광장.
국회의사당 지하에 마계와 연결된 마경의 입구가 등장하면서 여의도는 한국의 고레벨 사냥꾼들이 몰려드는 주요 관리 지역이 되었다.
여의도는 대한제국이 사냥꾼 협회라 불리던 시절부터 꾸준히 관리해 온 지역인 만큼 매우 정비가 잘되어 있었는데, 지금 그곳엔 수많은 사람이 몰려 발 디딜 틈 없는 혼잡한 상황이 펼쳐졌다.
-웅성웅성.
바로 대회의가 이곳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만들어진 풍경이다.
국회의사당부터 옛 여의도 공원 사이에 있던 빌딩 숲이 싹 밀리면서 만들어진 광장은 100만 단위의 시민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면적을 자랑했다.
그런데 대회의에 참석하는 서백호와 유명인들을 보고자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람이 몰리는 바람에 여의도는 현재 지구에서 가장 인구 밀집도가 높은 지역이 되었다.
“아, 이런. 비 섞인 눈이잖아.”
“큰일인데? 애들 데려온 사람도 적지 않아 보이는데.”
이런 여의도에 느닷없이 눈송이가 날리는가 싶더니, 이내 비가 섞인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서백호 한번 보겠다고 여의도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의 미간을 절로 좁혀 들게 만드는 최악의 기상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크아아아아아!
그런데 그때.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공포심을 자극하는 서늘한 포효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저 멀리 하늘에서 시커멓고 거대한 무언가가 날아오는 게 보였다.
“드, 드래곤!”
“헉!”
그렇다.
그건 바로 지상 최강의 몬스터로 일컬어지는 드래곤이었다.
드래곤은 일반적인 몬스터와 달리 활동 범위가 매우 넓은데, 심지어 둥지가 여러 곳이라 일반인들에게 목격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드래곤은 등장하는 족족 서백호에 의해 청소가 되는 만큼,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여의도에서 보게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당연히 광장의 인파는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여의도를 찾아 주신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현재 여의도 상공에 모습을 드러낸 드래곤은 서백호 황제 폐하의 펫입니다.]
[해당 드래곤은 여의도 주변의 기상을 바꾸고자 등장한 것이니 당황하지 마시고 침착함을 유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때마침 스킬인지 확성기를 이용한 건지 모를 커다란 음성이 광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게 무슨?”
“저 드래곤이 펫이라고? 서백호의?”
덕분에 사람들은 크게 놀란 눈으로 다시금 하늘을 올려 봤다.
앞선 그 말대로 드래곤은 지상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콰콰콰콰콰콰콰!
무서운 속도로 하늘 높이 솟구친 드래곤이 입 안에 머금은 새파란 불꽃을 내뿜자, 부채꼴로 넓게 펼쳐지더니 일대의 하늘을 뒤덮은 것이다.
“으아악!”
그 모습이 어찌나 무시무시한지 사람들은 안내 방송을 듣고도 기겁해야 했는데.
그것도 잠깐.
머지않아 드러난 풍경을 보며 모두 입을 쩍 벌렸다.
진눈깨비를 뿌리던 회색 하늘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 것이다.
더불어 때에 맞지 않는 따뜻한 햇볕이 쏟아지니, 이를 본 사람들 입장에선 마치 기적을 마주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서백호 님이다!”
“저기 서 황제야!”
곧이어 저 멀리 드래곤의 뒤편에서 빛을 일렁이며 날아드는 일련의 무리가 보였다.
푸른색 빛의 날개를 제트 엔진처럼 분사하며 날아오는 남성과.
천사처럼 순백의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는 여성.
B2 스텔스 폭격기를 줄여 놓은 듯한 호버보드를 타고 묘기를 부리듯 이리저리 허공을 노니는 소녀까지.
바로 세계 제일의 파티, 서백호 일행의 등장이었다.
-와아아아!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여의도 광장의 사람들은 언제 경직되었었냐는 듯,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런 사람들의 환호성에 답을 하기 위해서일까?
마치 전투기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하늘을 가로질러 오던 서백호가 움직임을 멈췄다.
-파아앗!
그리고 지상에 자리한 사람들을 향해 손을 뻗으니, 푸르른 하늘이 더욱 밝아지며 황금색의 빛 가루가 광범위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내 그 빛에 닿은 사람들은 예고 없이 쏟아진 진눈깨비에 젖었던 몸이 뽀송뽀송 마르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어어? 몸이?”
“물기가 말랐어!”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광장을 가득 채운 백만 단위의 사람들에게 행해진 기적이었다.
‘허, 서 황제는 이런 것도 가능한가?’
‘저런 사람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깨끗이 목욕하고 난 직후처럼 상쾌한 느낌이 전신을 훑으니, 열성적이던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 격렬해졌다.
마치 단체 환각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신이 현신한다면 저런 모습일 것이다.’
최근 서백호를 신처럼 떠받들며 과한 믿음을 보이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상황.
누군가는 같은 인간을 지나치게 신격화하는 거 아니냐며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여의도 광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서백호의 새로운 추종자가 되고 말았다.
-파앗!
더불어 눈구름을 날려 버린 거대 드래곤이 빛과 함께 아름다운 은발의 여성으로 변해 서백호 파티와 나란히 서서, 대중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니 그야말로 완벽한 엔딩이라 할 수 있었다.
“허허, 이젠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 보이지가 않네.”
“당연하지. 저분은 특별하니까.”
그리고 이런 모습을 헤르만과 윤시아 등 지구의 주요 사냥꾼들 역시 한자리에 모여 지켜보고 있었다.
윤시아와 클로에 주 등, 원래부터 서백호를 열렬히 추종하던 이들은 엄청난 풍경을 마주하곤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양손을 모은 채 눈을 빛내고 있었고.
헤르만과 데이비드 등 나름 현실파라 할 수 있는 이들은 날씨를 바꾸고 저만한 수의 사람들에게 기적을 행사하는 서백호를 보며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폐하!”
“오셨습니까!?”
그런데 윤시아건 헤르만이건 서백호가 다가오자 총알처럼 달려 나가 맞이하는 건 같았다.
아무리 현실파라 하더라도 서백호를 존경하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펄럭!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들어서는 서백호의 등 뒤로 광장 곳곳에 자리한 대한제국 황실의 깃발이 펄럭였다.
전 UN(국제 연합) 로고에 태극 문양이 합쳐진 형태의 깃발이.
* * *
-와아아아아!
등 뒤에서 울려 퍼지는 그칠 줄 모르는 함성.
살아생전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는 날이 올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해 봤겠는가.
물론, 사람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게 만든 건 약간의 쇼를 섞었기 때문이지만, 어쩔 수 없다.
[신력 수치가 1 증가합니다.]
[신력 수치가 1 증가합니다.]
[신력 수치가 1 증가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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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한 추종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신력 수치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쇼 좀 하면 어떤가?
그로 인한 대가는 이리도 달콤한걸.
나는 대회의가 진행되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내부에 들어서며 슬쩍 시선을 내려 능력치를 살폈다.
[신력: 1125]
신력이 등장하고 단 3개월 만에 100이었던 수치는 현재 이렇게 되었다.
덕분에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언령의 힘도 더욱 강해졌고, 아까 광장에 있던 백만 단위 사람들도 한 번에 건조시킬 수 있었다.
기적이나 다름없는 이 힘에 누군가는 의문을 표할 법도 하지만.
내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젠 내가 뭐를 해도 놀라지 않겠다는 모습으로 담담히 받아들일 뿐이니 웃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단순하게 그들과 안부 인사를 나누면서 심력 소모 없이 대회의실까지 모셔졌다.
“내가 옆자리야.”
“무슨 소리, 내 차례라고.”
물론, 다들 나를 편히 대해 줄 뿐이지, 자기들끼리 평화로운 건 아니었다.
방금도 누가 내 오른쪽 자리(왼쪽 자리는 파티 몫)에 앉는가를 두고 거하게 다퉜으니 말이다.
결국 내 오른쪽을 차지한 건 독일인 헤르만이 되었고, 그는 윤시아와 클로에 주 등으로부터 살기 어린 시선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헤르만은 뻔뻔하게 웃을 뿐이었다.
“음음.”
나는 스윽 고개를 돌려 여의도 국회의사당 대회의실에 자리한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곳엔 무려 500여 명의 유명인사들이 모여 있었는데.
나를 중심으론 사냥꾼들이, 그 반대편엔 각국의 정치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 시선을 받은 이들은 두 가지였다.
황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사람과 흠칫 놀라는 사람.
이는 찔리는 게 있어서라기보다 단순히 나를 무서워해서 그런 거다.
내가 날뛰기로 마음먹으면 이 자리에서 막을 수 있는 무력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고, 손가락질 하나로 목을 치게끔 명령할 수 있는 무소불위 권력도 쥐고 있으니 정치인들 입장에선 꺼려질 만했다.
“오늘 대회의는 짧게 끝내도록 하죠. 아무래도 천경을 오래 비워 놓을 수가 없으니까요.”
“무, 물론입니다. 평화를 위해 바쁘신 와중에도 자리를 빛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내 말에 회의 진행을 맡은 미국 대통령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회의가 진행되었는데, 주된 내용은 내가 사전에 공지한 바와 같았다.
바로 천경에 등장하기 시작한 ‘천계의 탐색팀 문제와 그에 대한 대비’에 관한 것이었다.
천계의 탐색팀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들의 표정이 새까맣게 죽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지구에서 천족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줌밖에 안 되니까. 헤르만과 데이비드, 윤시아 등은 파티를 이루면 일반 천족까진 어찌어찌 상대할 수 있을 거야. 일반 천족의 레벨이 301~320이긴 해도 레벨 300의 드래곤보다 강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천계엔 일반 천족만 있는 게 아니다.
관리 계층인 레벨 321~340의 고위 천족과 그 위에 지배 계층인 레벨 341 이상의 최고위 천족도 있으니 말이다.
현재 지구에 고위 천족 이상을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은 나밖에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실례지만, 폐하라면 어느 정도 수준의 천족까지 상대하실 수 있는지요?”
그건 회의 진행을 맞은 미국 대통령의 물음이었다.
그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나는 짧게 생각을 정리하곤 곧 모두가 바라는 대답을 해 주었다.
“아마 지배 계층까지 상대할 순 있을 겁니다.”
“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