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인도자 (1)
레벨이 341 이상인 천족의 지배 계층을 상대할 수 있다는 내 말에 일제히 감탄사가 터졌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 대단하십니다!”
대회의 참가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나는 초대 제로원의 자료를 포함해 천경과 천계의 정보를 모두 공개하고 있고, 그 결과 천족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계 돌파를 하면 레벨을 300 넘게 계속 올릴 수 있게 되는데, 나는 301~350 사이에 얻게 되는 레벨업 능력치 포인트가 약 12 정도일 거라 추측했었다.
지금까지의 상승률을 보면 그게 가장 합당한 수치였기 때문인데, 확인 결과 이는 정답이 아니었다.
‘내가 레벨 301을 달성하고 얻었던 능력치 포인트는 무려 20.’
예상보다 7할이나 더 높은 수치였다.
괜히 레벨 300을 넘기는 것에 ‘한계 돌파’란 거창한 명칭이 붙고, 레벨업을 위해 필요한 경험치가 기형적으로 높아진 게 아니었다.
고로 우리가 상대하게 되는 천족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능력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된다.
게다가 수준에 맞는 장비까지 충실히 갖추고 있다면 더더욱 위험할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지배 계층까지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하니, 모두들 기쁨을 표하는 게 당연했다.
“상대한다는 게 쓰러뜨릴 수도 있단 의미입니까? 아니면 그냥 상대하는 것만 가능하단 수준이라는 겁니까?”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듯 분할된 중국의 대표격 인물인 위즈잉이 자세히 물어 왔다.
그녀는 내 눈치를 보지 않고 확실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몇 안 되는 측근.
나는 확실히 답을 주었다.
“개체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아마 1:1로 전투를 치른다 해도 패하지 않을 겁니다. 제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면 동시에 두셋을 상대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그에 질문을 던졌던 위즈잉을 비롯해 대회의실의 분위기가 밝아졌다.
이런 게 가능한 이유는 바로 ‘신력’이란 새로운 스탯의 존재 덕이다.
권능이라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언령을 사용케 해 주는 이 수치는 괜히 능력치 항목에 편입된 게 아니었다.
신력은 실제로 전투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귀중한 능력치였고, 언령 사용이 익숙해지면서 상당한 레벨 차이마저 극복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레벨업 속도도 높일 수 있었지.’
천경에 입장하고 3개월이 지난 현재 내 레벨은 318.
마계의 황제파가 아직 레벨 310을 넘기지 못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엄청난 차이였다.
거기에 신력도 1,100이 넘었다.
신력을 포함한 능력치 총합을 따진다면 나보다 높은 천족이 있긴 할까?
근거 없이 천족 지배 계층과의 전투를 마냥 낙관적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천족의 지배 계층은 20명에 달한다고 들었습니다. 더구나 그중엔 우리의 예측을 크게 상회하는 괴물이 있을 수도 있고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
나 하나가 활약한다고 해서 지구가 유리할 리 없다는 것을 모두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그에 들뜬 대회의실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천계의 천경 탐색을 최대한 저지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제가 천경의 모든 지역을 커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언제 어떤 방식으로 놈들이 우리의 구역에 숨어들지 알 수 없습니다. 고로 이에 대한 대비를 확실히 해야 하죠.”
내 말에 누구 하나 토를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통의 목표가 있으니, 불필요한 정쟁이 없어서 좋다.
애초에 내게 불필요한 반항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게 지금의 세상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때문에 회의는 내 뜻대로 천계의 침입에 대비한 대응법을 결정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개중엔 재밌는 아이디어도 있었으나, 역시 정공법만 한 게 없었다.
감시 체계 구축 및 전문 조사팀 운영.
전 세계 비상 연락망 구축 및 신속한 보고 체계 형성.
식량 비축 및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비상 대피 훈련까지.
뻔하다면 뻔하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무리 뻔하다고 해도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지.’
때문에 다소 강압적으로 보이더라도 한동안은 황실에서 감사팀을 만들어 운용하기로 했다.
자칫 한곳이 방심하다가 뚫렸는데, 이를 뒤늦게 알아채면 최악의 참사로 이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황실 감사팀의 구축 및 운영은 강이솔 씨께서 맡아 주세요.”
“네, 페하!”
사안이 사안인 만큼, 해당 주제에 대한 회의는 신속하게 끝이 났다.
아무래도 천경을 계속 비워 두는 게 꺼려지니 빨리 마무리 짓고 돌아가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폐하. 천경에서 천족의 탐색팀을 어떤 식으로 저지하고 계신 겁니까?”
그래서 굵직한 문제는 빠르게 처리하고, 이후 자잘한 문제는 자체적으로 해결하라 지시한 뒤 빠르게 천경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눈치 없이 나를 붙잡나 싶어 봤더니 러시아의 신임 대통령이었다.
그의 질문에 헛웃음을 흘린 나는 뭘 당연한 걸 묻냐는 표정으로 짧게 답을 주었다.
“당연히 보이는 족족 죽이는 거죠.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 아니겠습니까?”
“……그, 그렇군요.”
괜히 친한 척해 보려고 질문 하나 던졌다가 겁을 먹고 물러나게 된 러시아 신임 대통령이었다.
* * *
뿔과 평균적으로 약간 큰 체구를 빼면 마족이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처럼 천족 또한 그러하다.
천족은 하나같이 하얀 날개를 갖고 있는데, 이 점을 제외하면 인간 같은 외모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피부도 하얗고 밝아서 얼핏 성스럽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내가 놈들을 처음 보고 느꼈던 감상은 ‘이질적’이란 부정적인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로봇에 인공 피부를 덧대 만든 듯한 모습이랄까?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외모지만, 놈들에겐 불쾌한 골짜기가 존재했다.
마족이 더욱 인간적으로 보일 만큼.
[천족 탐색병장 테른 / 레벨: 320]
[천족 탐색병 아론 / 레벨: 315]
[천족 탐색병 카텔 / 레벨: 310]
언제 봐도 불쾌하기 짝이 없을 만큼 밋밋한 면상을 가진 놈들을 발견한 나는 파티원들에게 손짓을 했다.
적은 10명으로 이뤄진 천족의 탐색병들.
전투력에선 당연히 우리가 우위에 있지만, 중요한 건 이쪽의 정보를 내주지 않고 녀석들을 쳐 내는 거였다.
때문에 빠져나갈 틈 없이 10명을 순살해야 했다.
[2번 작전으로 가죠.]
그래서 우린 마구잡이로 달려들지 않고, 사전에 짜 놓은 작전대로 놈들을 공격했다.
텔레파시로 내 의사를 전달받은 파티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나는 언령을 이용해 일대를 뒤덮는 짙은 안개를 만들어 냈다.
그러자 놈들은 흠칫 놀라며 각자의 무구를 꺼내 들었는데,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서걱!
“습, 컥!”
투과 효과로 인해 안개 속을 바람 한 점, 소리 하나 없이 파고든 윌리아의 마법 스킬과 내 심검 12자루가 놈들을 꿰뚫고, 토막 내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다음 차례로 이어지지 않고 전투가 마무리되면 최고지만, 10명이 모여 있으면 특출난 존재가 한두 명 정도 끼어 있기 마련이다.
“이익!”
감 좋은 천족 하나가 빠르게 총탄처럼 날아올라 도주를 시도했지만, 언령으로 안갯속을 손바닥 위처럼 살피고 있는 우리에게 즉시 포착되었다.
그 감 좋은 천족이 지면에서 겨우 2미터 정도 솟구쳤을까?
시에나의 신화급 장비인 공격 지원 모듈의 마력 브레스와 오귀스트의 지옥불 브레스가 교차하듯 날아들어 순식간에 놈을 증발시켜 버렸다.
곧이어 다켈프와 헬레나, 크기를 줄인 멍멍이와 룡룡이가 쓰러진 적들을 확실하게 확인 사살을 하면서 전투는 끝이 났다.
“언령 해제.”
내 짧은 명령과 함께 안개는 씻은 듯 사라졌다.
“역시 천족들이 짭짤하긴 해.”
시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유일 등급 아이템을 획득한 시에나가 그리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다.
레벨 300이 넘는 천경 지역에 도착하고 우린 매우 많은 유일 등급 장비들을 수집하고 있는데, 솔직히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보다 천족들을 사냥하는 게 낫다고 느낄 정도였다.
심지어 빠르게 처치하는 것치고 획득하게 되는 경험치도 만만치 않았으니 말이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죽인 천족 탐색팀의 수만 100여 명인지라, 얻게 된 유일 등급 장비의 수도 수백에 달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 투입되는 탐색팀을 끊어 먹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하지만 놈들도 머리가 장식은 아닐 테니, 머지않아 어떤 특단의 조치를 취해 오겠지.”
천족이 탐색을 시작한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의 적이 될 존재가 있다는 것을 사전 파악했기 때문.
제대로 생각이 박혀 있는 지도부라면 이쪽이 뭔갈 시도하려 하기 전에 저지하려 할 게 뻔하다.
꼴을 보면 아직은 이쪽의 수준을 몰라서 간만 보는 단계인 것 같지만, 당장 내일부터 적극적으로 병력을 투입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천계를 탐색해야 하는데.”
마계 때는 최소한 우리에게 사전 공작을 할 여유 시간과 나인포, 아론다이트처럼 시스템적인 보조가 있었지만, 천계엔 그딴 게 없다.
그래서 난도가 더 높은 상대로 여겨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레벨 격차는 마계를 처음 접했을 때가 훨씬 컸는데도 불구하고.
“뭐, 불평을 토해 봤자 바뀌는 건 없겠지.”
그냥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 * *
천족의 탐색팀 섬멸과 레벨업을 위한 사냥 활동.
우린 거대한 미로 형태의 미궁인 천경을 제집처럼 돌아다니며 활동을 이어 갔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런 활동에 제한이 생기게 되었으니.
“이, 이런…….”
바로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고위 천족 탐색부대장 아스텔 / 레벨: 330]
[고위 천족 지원부대장 레기아 / 레벨: 325]
[최고위 천족 탐색사령관 제노비스 / 레벨: 350]
천계의 대대적인 병력 파견이 시작된 것이다.
수백.
아니, 어쩌면 천 단위에 달할지도 모를 일반 천족은 물론, 관리 계층에 속한 수많은 고위 천족, 그리고 지배 계층인 레벨 350의 천족까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양쪽의 파워 밸런스를 생각했을 때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의 상황이다.
“어떡하죠?”
“어떡하지?”
나를 바라보며 윌리아와 시에나가 동시에 물어 왔다.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천족은 우리가 가장 바라지 않던 가장 최악의 수법을 써온 것이니.
가만히 서서 천계의 대규모 천경 탐색팀을 바라본 나는 깊이 심호흡을 하곤 말했다.
“제거해야죠. 혹시라도 놈들이 지구와 연결된 길이라도 발견하는 날엔 대재앙이 펼쳐질 테니까요.”
하나하나가 레벨 300이 넘는 강자들이다.
그런 놈들로 이뤄진 대규모 군대를 공격하자?
미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파티원들은 누구도 내 말을 부정하지 않고.
“한 번 공격하면 이전처럼 정체를 숨기는 건 불가능해진다는 거 알죠?”
“물론입니다.”
“싸운다면 게릴라전을 펼칠 수밖에 없겠네.”
“아무래도 그게 최선이겠죠.”
오히려 담담하게 이를 받아들였다.
윌리아와 시에나의 반응에 작게 웃음을 흘린 나는 이내 각오를 다지듯 말했다.
“남들이 보기엔 자살행위처럼 보이겠지만…… 저는, 아니 우리라면 충분히 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지금까지 치른 어느 전투보다 무모하고 위험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최악의 상황이라 평가했다시피, 잘하면 이와 같은 순간을 직면할 때가 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던 바이다.
그때마다 나는 수차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 봤고, 도전해 볼 만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아무런 대책 없이 죽으러 가는 게 아니란 뜻이다.
“솔직히 백호 님이 패하는 모습은 쉬이 상상 되지가 않긴 하죠.”
“맞아. 그리고 저놈들을 모두 죽이면 얼마나 많은 레벨업과 보상을 얻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라고.”
해내야 한다.
우린 강대한 적을 무너뜨렸을 때의 희열과 보상을 생각하며 전투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