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스타팅 포인트 (2)
타앗.
솟구친 내 몸이 큼직한 나무 위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들이 내 몸을 숨겨주었다.
기감을 돋워 근처에 괴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등 뒤의 백팩을 열었다. 속주머니에서 낡은 종이를 꺼냈다.
근처의 지형과 괴물의 서식지가 그려진 지도.
감독관이 잠시 펼쳐놓았던 것을 엿본 최지수가 후딱 그려낸 것이다.
-정확도는 구십프로는 될 거다. 림이 네 얼굴만큼은 아니지만 내 머리도 뛰어난 편이니까.
어울리지도 않는 농담과 함께 최지수가 지도를 내밀었다.
무엇인가를 걱정할 때마다 그렇듯 오른쪽 눈썹이 어색하게 실룩거렸다.
내 머리가 최지수의 반만, 아니, 한지혁의 반만 되었더라도 좋았을 텐데.
현실은 쓰잘데기 없는 얼굴 몰빵이다. 각성도 못 하는 몸뚱아리까지.
하지만, 내가 쉽게 포기하는 인간이었다면 전생에 검황의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터.
검황이던 시절 중원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돌며 장문인과 방장과 방주와 가주와의 비무 끝에 갈취… 아니, 선물 받은 온갖 영단들이 월악산에 한가득이다.
월악문.
칠백 년 전, 나와 설표, 소화가 세운 문파.
사부는 마적에게 부모를 잃은 나를 거두었다. 소화와 설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부가 병들어 세상을 떠난 뒤 우리는 백두의 오두막을 떠나 발길 닿는 대로 강호를 떠돌았다.
은영신녀(隱影神女) 주소화.
질풍검(疾風劍) 설표.
그리고 나, 검황(劍皇).
십 년 동안 중원을 주유하고 돌아온 우리는 개파(開派)하여 제자를 키우기로 의견을 모았다.
‘만약 그때 소화의 말대로 구월에 자리했거나 표의 말대로 묘향으로 갔었더라면….’
영단 냄새도 못 맡고 다섯 번째 생을 마감했을 뻔했다.
현재 북한은 살아 있는 사람이 얼마나 남았는지조차 의문인, 괴물의 땅이었으므로.
내가 월악에 자리한 이유는 그저 그 풍광 때문이었다.
억센 듯 부드러운 산세, 소담스러운 폭포.
그 중 백미는 봉우리에 걸리는 흰 달이다.
달이 영봉을 지나는 한밤, 산등성이에 지은 은영정(隱影亭)에서 마시는 갓 거른 술의 맛이란. 캬아.
고속도로가 산을 관통하고, 괴물들이 봉우리를 박살낸 지금 그것들이 얼마나 제자리에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확인해 봐야지.”
희망보육원의 위치는 계룡의 북쪽 끄트머리.
영단을 숨겨둔 비동(秘洞)은 월악문 장문인의 거처 바로 뒤에 자리한 수정폭포 뒤 암혈.
지도상으로는 멀지 않다. 직진한다면 내일 해 뜨기 전에 도착할 수도 있는 거리다.
‘직진이 불가능해서 문제지.’
위험 표식이 지도에 가득했다.
오크 군단, 고블린 둥지, 대규모 균열, 오미호 군락지, 또 균열…….
아까 멀리에서 두억시니가 식사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10미터가 넘을 듯한 덩치가 한 손으로 인간의 발을 거꾸로 들고 입을 벌렸다. 머리를 아작아작 씹어 삼킨 두억시니가 뒤이어 몸통을 통째로 입에 넣었고, 피가 뚝 뚝 흐르는 두 다리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런 상급 괴물들은 지도에 그릴 수도 없다. 서식지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마주치는 이들 대부분이 죽었으니까.
그러므로 결론은,
‘전속력으로 돌파한다.’
***
데구르르르르르르르--- 포오오오----
작은 돌조각이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주먹만한 조각은 아주 오랫동안 떨어져 내렸다. 바닥에 닿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까마득한 절벽.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내가 지금 매달려 있는 곳이다.
‘또 죽을 뻔했네.’
하루 내내 죽을 고비를 얼마나 넘겼는지 헤아리기도 어려웠다.
내공이 바닥나서 기감이 둔해진 틈에 비겁하게 뒤를 덮친 오우거에게서 도망칠 때는 정말 죽을 뻔했다.
슬라임이 기척도 없이 다가와 그 미끄덩한 표피로 내 발목을 잡아채고 경화했을 때도.
히포그리프 세 마리가 아가리에서 독무를 뿜어대며 달려들 때는 이제 다섯 번째 죽음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채로.
칠백 년 만에 마주한 풍경은 기억 속 산세와 많이 달랐다.
있던 바위가 모래가 되어 사라졌고, 없던 절벽이 새로 생겼다.
소화와 표와 더불어 풍광과 주향(酒香)을 즐기던 은영정(隱影亭)이 자취를 감춘 것은 당연지사.
한때 수백 명 문도가 가득하던 월악문의 건물들은 주춧돌도 찾을 수 없었다.
그만한 세월이 지났다. 씁쓸함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폭포가 없어지는 건 반칙 아니냐고.”
내 비동의 입구는 물론 그 폭포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영단 코앞에서 또 목숨을 거는 중이다.
‘대체 어디 있는 거냐. 분명 이 어디쯤인데.’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 땀이 회색 트레이닝 바지의 허리춤을 축축하게 적셨다.
절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을 때 서쪽으로 기울어지던 붉은 태양은 이제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내력은 진작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오늘은 내려갔다가 내일 다시 절벽을 오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즈음이었다.
‘뭐지?’
사람 머리통 하나 겨우 디밀 만한 좁은 구멍.
그 크기에 비해 바람이 강했다. 왼팔로 절벽의 단단한 바위를 붙든 채 오른팔을 뻗어 구멍 주위를 가볍게 두들기자,
투웅. 투우웅.
속이 빈 수박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작은 바위를 부수고 주변의 자갈을 쓸어내니 반쯤 허물어진 동굴이 나타났다.
동굴은 좁아졌다 넓어지기를 반복하며 끈질기게 이어졌다. 나는 무너진 흙을 파내고 검으로 바위를 베어가며 조금씩 전진했다.
그렇게 얼마를 기었을까.
내 손가락도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을 뚫고, 어디선가 빛이 비추이기 시작했다.
야명주의 빛이다. 내가 가져다 둔.
동굴은 더욱 좁아져서 더 이상 길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검을 꺼내 쥘 수조차 없었으므로 나는 맨손으로 흙을 파내며 빛을 향해 기었다.
그리고, 피 묻은 주먹으로 단단한 바위를 깨뜨리는 순간.
그 아래 깔려있던 야명주가 환한 빛을 내뿜었다.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야명주는 원래의 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분명히 함도 근처에 있을 터.’
야명주의 희뿌연 빛에 기대어 나는 끈질기게 땅을 헤집었다.
검지의 끝이 무엇인가에 닿은 것은, 내가 들어온 통로가 바닥에서 파낸 흙으로 거의 막힐 무렵이었다.
“있다. 있었어…! 이쁜 놈!”
무당의 상징인 태극이 아로새겨진 작은 강철함.
-이거 말고. 너네 그거 있잖아. 만년한철로 만든 거.
-아, 거, 검황이라는 분이 남의 살림을 다 쓸어가려 하시는구려.
-처음부터 그렇게 걸고 비무했는데. 대 무당파 장문인이 응, 한입두말(一口二言) 초식을 시전하시네?
-허허허. 무량수불…….
내 자비심을 발휘해서 무당 장문인이 내주는 강철함을 그대로 들고 오길 참 잘했다. 만년한철이었다면 지금 내력으로는 함을 열지도 못하고 빛 좋은 개살구가 될 뻔했다.
근처의 땅을 한참 파헤친 끝에 두 개의 함을 더 발굴했다.
매화가 아로새겨진 화산의 함과, 암녹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당문의 함.
소림의 대환단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쉬움을 갈무리하며 세 개의 함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래. 이 정도도 어디냐…….”
나는 가만히 숨을 들이마시며 함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리고 잠금쇠를 열…
려고 했다.
그러나 잠금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굴에서 견디느라 녹슨 잠금쇠는 원래 하나였다는 듯 단단했다.
영단 하나 먹기가 이렇게 힘들 수가.
내력을 있는 대로 끌어 모아 바닥을 파내고 바위를 부수자 겨우 검을 뽑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바싹 잡은 검에 진기를 흘려 넣고, 상자의 윗부분을 수평으로 조심스레 베어냈다.
있다. 진짜로 영단이 있다.
은은하게 푸른빛을 띄는 흰색의 영단.
7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익숙한 향기가 콧속으로 들이닥쳤다.
무당의 말코도사가 그토록 자랑하던, 물 향기 같기도 하고 흙 내음 같기도 한 맑고 투명한 향기.
유통기한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이게 다 몇 개야.”
하나, 둘, 셋…. 일곱.
최상급 태청단이 일곱 개다.
거기다가, 고급지게 붉은 빛을 뿜는 자소단이 열한 개.
그리고 당문의 독환과 해독환이 세트로 열두 개.
이 정도 태청단과 자소단이면 환골탈태(換骨奪胎)에 만독불침(萬毒不侵)까지 단번에 도달할 수 있을 터.
잘 묵힌 영단 하나면 열 각성자 안 부럽다.
그럼, 안 부럽고말고.
하하하.
하하하!
***
무인(武人)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자세는 인내이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하고, 견디고, 버티고, 그럼으로써 나아간다.
하지만 끈질기게 수련에 매진한 무인이 모두 천하제일인이 될 리는 없다.
나는 일찍이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인내는 그저 필요조건. 그리고 충분조건은…
자질과, 기연과, 영약.
내가 검황이던 생이야말로 그러했다.
사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내 무인으로서의 자질은 흙 속 진주처럼 묻혔을 터.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는 않다.
병든 사부를 위해 약초를 캐러 갔던 골짜기에서 세 덩이의 만년하수오를 캐내지 못했더라면 나는 동방의 그럭저럭한 칼잡이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처럼 세력 가진 놈들이 그리도 영약이며 영단에 눈이 뒤집히는 것이다.
자질과 기연은 운명의 영역.
결국 문파의 세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영단만한 게 없으므로.
내가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를 두루 돌며 영단을 갈취… 아니, 수집한 데에는 다 그러한 연유가 있었다.
월악문이 원 히트 원더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우리 애들 먹이려고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중원을 돌았는데.
‘이걸 내가 다 먹고 앉았네.’
그곳에서 내가 죽을 줄은 몰랐다.
마교의 기세는 내 예상보다 훨씬 흉흉했다. 조금이라도 예감했더라면, 소화에게 진작 비동의 위치를 알려두었을 터.
-중원에 강자들이 그리도 많은데 꼭 걸음 해야 하겠습니까? 사형께서 가신다 한들, 저들이 이 고마움을 기억하겠습니까? 만 리 밖 그곳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우리 월악문은…
설표의 쟁쟁거리는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표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나의 사매, 소화의 말 역시 옳았다.
-백성들의 고통에 국경이란 무의미하지요. 사형들께서 떠나시지 않겠다면 저 혼자라도 떠나겠습니다.
-소화야. 너는 월악을 지켜야 한다. 모두 네가 데려온 아이들이지 않느냐. 내가 가겠다. 나 역시 너의 생각과 다르지 않아.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표 사형이 남으시오.
-아니다. 소화야. 표와 너 둘 다 갈 필요 없다. 내 가서 마교놈들을 모두…….
-사형! 사매! 꼭 이렇게 나만 나쁜 놈으로 만드실려우? 나도 갑니다! 나도 간다고요!
‘그렇게 떠나서 나와 표가 죽었으니, 그 여린 아이가 얼마나 제 탓을 했을까.’
나는 고개를 흔들어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기억들을 끊어냈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어 앉은 자세를 바르게 세웠다.
내 머릿속에는 실로 수백 가지의 내공심법이 들어 있었다.
사부에게 배운 것.
이후 강호를 쏘다니며 익힌 것.
많은 심법 중 이번 생의 초입에서 내가 선택한 심법은, 삼재혼원공(三才混原功).
검의 끝을 마주한 후 스스로 창안한 심법이다.
‘삼재’라는 이름대로 삼재공을 기반으로 하지만, ‘혼원’에서 알 수 있듯 근본이 다른 여러 기운을 쉽게 합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삼재혼원공의 가장 큰 장점은 초반에 내공이 쌓이는 속도가 빠르다는 점.
그 덕에 8년 적공(積功)만에 하급 괴물들을 수월하게 때려잡는 경지에 도달했으나.
일류 이후 경지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만약 이게 없었다면 말이지.”
나는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태청단 하나를 조심스레 입에 넣었다.
혀에 닿자마자 녹아내린 기운이 몸의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바람 잔 호수처럼 고요하고 맑은 기운.
조심스레 명문과 기해를 열자 단전을 휘돌던 기운이 임맥과 독맥으로 밀려들었다.
기맥의 곳곳에서 태청단의 외기(外氣)가 삼재혼원공의 내기(內氣)와 맞부딪쳤다.
수문이 열린 댐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거침없고.
태풍이 이는 바다처럼 활달한.
두 종류의 기운이 고삐 풀린 말처럼 채 임독양맥을 마구 내달렸다.
진기의 흐름이 이내 날카로운 통증이 되어 전신을 강타했다.
뇌를 깨부수는 듯한 격통이 몰아쳤다.
여기에서 정신을 잃으면 주화입마 급행탑승…
이기는 한데.
어디까지나 초심자에게나 해당되는 소리.
영약도 먹어 본 놈이 잘 먹고, 환골탈태도 해 본 놈이 잘 한다.
막으려 애를 쓰면 혈이 터지고, 억지로 열어젖히면 맥이 찢어지는 법.
기운은 자연스러운 길을 따라 흐른다.
그저 그 기운이 지나치지 않게, 부족하지 않게 돌보는 것이 인간의 도리(道理)이자 무학의 도리(到理).
나는 고요히 호흡하며 기운을 감각했다.
너른 강처럼, 넘실거리는 바다처럼,
좁은 혈을 넓히고,
막힌 혈을 뚫고,
없었던 길을 만들어내며,
전신의 기맥을 타고 기운이 휘돌았다.
독맥에서 임맥을 뚫어낸 혈이 충맥과 대맥으로 흘러들었다.
뒤이어 양교맥과 음교맥으로…….
양유맥과 음유맥을 차례로 돈 진기가 12경맥을 따라 줄기줄기 흘러들었다.
언제부터 통증이 사라졌는지 깨닫지도 못했다.
느끼지 못하는 사이 사라져 있었다.
한 바퀴.
다시 한 바퀴.
다시 또 한 바퀴.
다시 또…….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나는 운공에 열중했다.
배가 고프면 동굴을 기어나가 괴물을 잡아먹었다. 운공으로 괴물 고기에 깃들인 독성을 빼내고, 삼매진화(三昧眞火)로 남은 괴독(怪毒)을 불태우며, 다시 운공을 했다.
동굴을 넓혀 몸을 눕힐 자리를 만들어 졸리면 자고, 깨면 운공을 했다.
낙엽이 쌓여 있던 땅이 얼어붙었다.
얼어붙은 땅에 눈이 내렸다.
그 눈이 다시 녹을 무렵.
비로소 철함 하나가 비었다.
일곱 알의 태청단을 완전히 나의 내력으로 흡수한 것.
‘됐다.’
가볍게 주먹을 쥐고 진기를 일으키자,
단숨에 기맥을 타고 오른 기운이 팔을 타고 올라 오른손에 맺혔다.
손등과 손끝 주위로 흐릿한 빛무리가 고였다.
권기(拳氣).
열여섯에 권기를 형성하는 경지는 검황조차 도달하지 못했었다.
“그럼, 확인해 볼까.”
본격적으로 기운을 끌어 올리자 빛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안개처럼 흐리던 빛무리가 형광등처럼 새하얗게 빛났다.
기가 거세게 소용돌이쳤다.
팔꿈치를 한껏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내질렀다.
주먹의 끄트머리가 동굴 벽에 닿았다.
아주 찰나의 순간.
손끝에 응축된 기를 단번에 터뜨렸다.
콰아아아아!!
흙이 날아가고, 통로를 받치던 바위가 산산조각 났다.
앉고, 눕는 게 고작이었던 좁은 공간에 순식간에 작은 방이 생겨났다.
‘와…. 이게 되네?’
권기(拳氣)가 이 정도인데, 검기(劍氣)는 또 얼마나 날카로워 졌을지.
각성자가 되었더라도 반 년 만에 이 정도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직 일곱 알의 태청단의 기운만 흡수했을 뿐이다.
여기에 자소단 열한 개의 내력과, 당문의 독환까지 내 것으로 만들면.
만독불침(萬毒不侵)은 물론이요, 단번에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할 터.
물론 보육원의 감독과 원장을 손보는 데에는 지금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이제 보육원에 돌아가 그들에게 책임을 물…
물?
머리 위로 또옥 또옥 물방울이 떨어졌다.
“이건 또 뭐…!”
우르르. 쏴아. 콰캉!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동굴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하하.
이렇게까지 안 해도 나가요. 나간다고요.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내지른 권격이 흙을 튕기고, 바위를 부쉈다. 좁은 통로가 단번에 넓어졌다.
쏟아지는 햇볕을 향해, 내 몸이 총알처럼 튕겨져 나갔다.
한 손으로 영약이 든 철함을 꼬옥 끌어안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