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MM 연구소 (3)
“이게 다, 진짜 마핵이라고……?”
마기가 강해진 블랙데이에, 극히 일부 상급 괴물의 사체에서 나오는,
마력을 단번에 몇 배로 올려준다는 각성자들의 영약.
…이라는 소문은 들었는데.
김강산의 벌어진 입에서 흘러나온 침이 턱을 타고 뚝 뚝 떨어졌다.
눈깔이 희번뜩거렸다.
오래전 무림에 약선(藥仙)의 무덤이 발견되었을 때, 숭산을 뛰쳐 내려온 소림의 방장 얼굴이 딱 저런 얼굴이었다.
나와의 비무에 패배하고 화가 뻗쳐 등선했다는 소문이 돌던 무당과 화산의 말코도사들도 비슷한 얼굴로 그곳에 나타났었지.
하지만 결국 그 신선단은 만 리 길을 달려간 내 손에 떨어졌다.
그리고 곧 우리 월악의 제자들의 내력으로 화해…….
히힛. 히히… 힛?
“야! 잠깐, 잠깐!”
나는 눈깔 돌아간 김강산을 향해 다급하게 팔을 뻗었다.
그러나 늦었다.
유리병 속에 들어 있던 투명한 액체까지 한꺼번에 삼킨 김강산이 끄어엌, 트름을 했다.
“그거 삼십 년 묵은 거라고! 상했으면 어쩔라고 그렇게 벌컥벌컥 처먹냐.”
물론 칠백 년 된 영약을 처먹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마핵이 고기냐? 상하게? 지수 형도 아니고 걱정도 팔자…….”
이 새끼 봐라. 간만에 맞는 말…….
을 마치지도 못하고, 김강산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목과 손, 발목도 마찬가지.
“어어. 어……!”
그의 몸이 단번에 화염에 휩싸였다.
곁에 선 나조차도 물러서게 만드는 열기.
술사들이 마력을 집중할 때처럼, 김강산의 마력이 폭발할 기세로 꿈틀거렸다.
너울거리던 붉은 불길에 점차 노란빛이 더해졌다.
노란빛이 점차 옅어지고, 새하얘진 불길에 푸른빛이 섞이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아주 짧은 시간.
몇 번이고 색깔을 바꾸던 불길이 일순간 파스슥, 사라졌다.
멍청한 얼굴로 서 있던 김강산이 가만히 손을 들어올렸다.
단번에 세 개의 화염구가 그의 왼손 위로 떠올랐다.
일렁이는 화염구의 빛깔은 황금빛이었다.
적염보다 훨씬 강하고, 훨씬 뜨거운, 황염(黃炎).
김강산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형아… 형아!!!!”
“악! 이 새끼야! 불 꺼! 끄라고!”
퍼벅.
김강산은 머리를 후려맞고도 히죽히죽 웃었다. 마력이 강해지더니 확실히 반탄력도 강해졌다.
그렇다면, 뭐.
내력을 더하면 되지.
퍼억.
“아프잖아… 형.”
김강산이 머리를 부여잡고 히죽히죽 웃었다.
우리는 열세 개의 방을 샅샅이 뒤지며 마핵과 온갖 연구 결과들을 쓸어 담았다.
마핵이 있던 옆방에는 마력증폭제와 힐링포션을 비롯한 온갖 약물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가장 안쪽의 방에는 몇 구의 백골이 놓여 있었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허연 뼈를 내려다보았다.
이 중에 혹여 소화의 환생자가 있었을까.
설표의 환생자가 있지는 않았을까.
혹은, 월악의 제자들일까.
그도 아니라면, 그저 대기업의 연구원일까.
나와 김강산은 누구인지 모를 뼈를 연구원의 앞마당에 묻어주었다. 작은 봉분 앞에 서서 나는 잠시 묵념을 했다.
그들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이 월악문과 연결되어 있음은 확실했다.
진법과, 월매.
그 둘만으로도 증거는 충분하므로.
두 번째와 세 번째, 네 번째 생의 흔적을 뒤지면서도 첫 번째 생의 흔적이 남아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런 기대를 갖기에는 너무 오래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월매가 가볍게 내 뺨을 쪼았다.
“아프다. 월매야.”
뀨륵!
월매가 기묘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 또 우는 거? 화염탄에 맞아도 멀쩡한 사람이 새 부리에 약한지는 몰랐네.”
“안 운다니까, 이 새끼가.”
내가 오른손을 들어올리자 김강산이 주춤거리며 물러나며 양손 엄지를 번쩍 들어올렸다.
“네가 최고십니다. 계룡폰 각하!”
“뭐냐. 그 거지 같은 이름은?”
“계룡의 그리폰, 계룡폰. 아니면 계룡의 와이번으로 와이계룡… 악! 아닙니다, 아녜요! 형님!”
월매가 김강산의 정수리에 다섯 번 연속으로 찹을 먹였다. 김강산이 머리를 움켜쥐며 비명을 질렀다.
“아 진짜 존나 아프네?!”
네 작명 센스를 원망하려무나.
***
서른 개의 마핵과 온갖 약물의 제조법과 각성자 기술 훈련법을 가지고 돌아온 날, 최지수는 울었다가 웃었다가 난리법석을 떨었다.
최지수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데에는 꼬박 반나절이 필요했다. 그제야 최지수에게 그 기록을 보여줄 수 있었다.
[魔神降臨之述]
마신강림에 관한 기록.
곧 부스러질 듯 낡은 종이의 첫 장에 적힌 필지는 분명 소화의 그것이었다.
두 사형이 십만대산에서 죽은 뒤, 소화는 중원으로 나와 세가 꺾인 마교의 뒤를 좇았다.
균열을 닮은 그 어둠의 소용돌이는, 다행히도 나와 함께 폭사한 모양이었다. 책에 그 어둠에 대한 기록은 없었으므로.
기괴한 마기.
납치된 아이들.
내전에 남은 강대한 폭발의 흔적과 형체를 알 수 없게 뭉그러진 시체들.
사형의 시신이라도 찾고 싶었던 사매의 오랜 슬픔이 낡은 종이에 오롯이 고여 있었다.
[행협멸악(行俠滅惡) 구약보세(救弱保世). 월악문은 마교와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지 않는다. 월악의 장문인은 내 뜻을 이어야만 한다.]
월악문의 2대 문주 주소화가 수명을 다해 월악에 잠든 뒤로도 월악의 문주들은 그 유지를 잊지 않았다. 잊을 수도 의심할 수도 없었다.
문주가 스물세 번 바뀌는 동안 월악을 지킨 월악의 영물이 언제나 그들을 지켜보았으므로.
시대를 거듭할수록 마교의 세력은 약화되고, 결국 소멸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를 거치며 월악의 세도 기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의병으로 봉기한 월악문은 결국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월악문은 광복 이후에도 명맥을 이어갔으나 그들의 무력은 과거에 비하면 턱없이 약화되었다. 많은 고수가 죽었고, 또 그만큼 많은 무공이 사라졌다.
중원의 다른 문파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급속도로 발전한 현대화기는 수십 년 수련한 강호인의 검강을 우습게 만들었다.
월악문은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광복 이후 월악문은 속세로 내려와 ‘월악약방’라는 이름의 약방을 열었다. 이후 성공을 거듭해 Moon-Mountain라는 이름의 제약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MM? 이거 그 연구소 이름이지?
-맞어. 일단 계속 읽어봐.
다국적 제약회사로 성장한 MM의 대표이사와 임원들이 한동안 잊고 있던 스스로의 뿌리를 떠올린 것은 전 세계에 균열이 나타난 후였다.
2대 문주께서 직접 작성하셨다고 전해지는, 월악문의 신표가 칠백 년의 세월을 뚫고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MM은 기업의 핵심 역량을 마교를 찾는 일에 투입했다.
하지만 마교는 청나라 말, 그 명맥이 완전히 끊겼다. MM은 포기하지 않고 균열을 소멸시킬 방법을 연구했다.
소득은 없었다.
마지막 장을 덮은 최지수가 조심스레 종이뭉치를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림이 네가 이 월악문의 마지막 제자라고.
-그래.
음. 사실은 마지막 제자가 아니라 개파시조(開派始祖)지만.
-저 매가… 월매고?
-엉.
-네가 말하는 그 내력 어쩌고가 여기 적힌 무공이고?
-아! 맞다니까! 같은 질문을 언제까지 할라고 그러냐! 김강산이 이랬으면 내가 진즉에 대가리를…….
최지수가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계룡문을 세워 놓고 사라졌던 것도… 이 월악문의 흔적을, 네 스승님을 찾으려고… 혼자서 그동안 얼마나 맘고생을…….
-…음. 뭐. 그렇지.
-내가 그것도 모르고 너를 원망… 끅! 끄으윽!
최지수가 울어대는 통에 어깨가 축축했다.
내 사부는 칠백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뭐.
전생의 부모나 스승이나, 크게 다르지는 않으니까.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다.
-나도 너를 도와 계룡문은 한 명도 죽게 두지 않겠다… 네 말대로 지키는 검이 되어… 흑! 흐으윽!
그 감동적인 컴백홈 이후 일주일.
지키는 검? 좋지.
월악의 흔적? 얼굴 모르는 시체라도 찾고 말 거다.
“대표님! 지원 요청이요! 서쪽3 구역입니다!”
근데 지금 계룡이 망하게 생겼다고, 계룡이.
***
“대표님! 이쪽이요!”
성벽에 배치된 술사들이 벌판의 오크 떼를 향해 화염구와 얼음창을 연달아 쏘아냈다.
그것에 명중당한 오크놈들이 괴성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하지만 남은 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 공격을 뚫은 선발대 여섯이 기어코 성벽을 기어올랐다.
나는 거세게 바닥을 걷어차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콰아아아!!!
술사가 다급하게 쏜 화염탄이 가장 앞에 선 대장놈에게 작렬했다. 뒤이어,
퍼버벅!
뒤에서 날아든 얼음창이,
내 등줄기를 후려쳤다.
“으악, 죄… 죄송합니다!!!”
예상치 못한 공격.
등줄기가 찌르르 울렸다. 호신강기를 두르지 않았더라면 척추가 부러졌을 터.
나는 어금니를 악물며 앞으로 전진했다.
콰가가가가!
대지술사가 만들어낸 석벽이 성벽 한가운데 솟아올라,
나를 가두었다.
“풀어! 당장!”
“허억! 죄송합니다!”
석벽이 와르르 무너지고 시야가 트였다.
화염탄에 맞은 좌하팔을 덜렁거리며 대장 오크가 술사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오르크! 오르크!
나는 몸을 솟구쳐 놈의 앞을 가로막으며 좌상으로 검을 휘둘렀다. 놈은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재빠른 동작으로 어깨를 뒤채 공격을 흘렸으나.
거대한 덩치 탓에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은 몸이 휘청거렸다.
휘두르던 검을 회수하여 역수로 쥐었다.
오른발을 강하게 내딛으며 공중으로 몸을 띄우고, 귀끝까지 당겼던 검으로 오른쪽 상단을 찔러 넣…….
퍼억! 퍼버벅!
얼음송곳이 내 어깨에 작렬했다.
“씹새꺄!”
“죄송, 죄송…….”
내가 잠시 멈춘 사이 대장놈이 네 개의 팔을 거칠게 휘둘렀다.
머리 위로 팔 하나가 스치고.
등줄기와 가슴팍으로 팔 하나씩이 스치고.
핏덩이가 엉킨 좌하팔이 코끝을 스쳐 땅에 내리꽂혔다.
콰앙!
권기를 두른 주먹도 아닌데 땅이 갈라지며 흙이 튀었다.
나는 풀썩 뛰어 거리를 두었다가, 다시 바닥을 걷어차며 달려들…….
화르륵!
시뻘겋게 불타는 화염벽이 놈과 나 사이를 가로막았다.
“…뭐 하나라도 더 던지면 다 뒈진다.”
타이밍을 놓쳤다.
놈이 네 개의 팔을 무서운 속도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나는 취원보를 운용해 놈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돌며 연신 검을 내질렀다.
파바바바밧.
다섯 번 연속 찌르기.
검기를 두른 검이 정확히 같은 지점을 연속으로 찔렀다. 강철 같은 가죽이 벌어지고, 그 틈으로 찐득한 녹색의 피가 엉겨붙었다.
놈이 네 개의 팔을 거칠게 휘둘렀다.
허리를 숙이고 어깨를 비틀어 그것들을 피하며 복부를 열세 번 더 찔렀다.
놈이 괴로운 듯 괴성을 내지르며 니킥을 시도한 순간.
손목을 뒤틀어 검의 방향을 바꾸었다.
콰직!
검끝이 놈의 무릎에 틀어박혔다. 놈의 힘에 내 힘을 더한 완벽한 카운터.
끌어올린 진기가 검날의 주변을 하얗게 에워쌌다. 그대로 검을 비틀어 단번에 뽑아냈다.
무릎에 주먹만한 구멍이 뚫렸다. 놈의 몸이 비스듬히 기울었다. 동시에.
카가가!
놈의 등 뒤에서, 두 개의 집게팔이 튀어나왔다.
1미터가 넘는 집게팔.
강철처럼 단단하고 검처럼 날카로운 집게팔이 유연하게 허공을 격해 내 머리를 향해 내리꽂혔다.
내가 기다리던 순간.
얼굴로 날아오는 우상팔을 금나수(擒拿手)로 잡아채고 좌상팔을 검으로 빗겨 막으며 상체를 깊숙이 숙였다.
두 집게팔이 허공을 가르고.
무릎 아래로 몸을 집어넣어 한 바퀴 땅을 굴렀다. 놈이 육중한 몸을 재빨리 돌렸으나.
‘이미 늦었거든.’
집게팔이 튀어나오는 순간에 오크에게는 약점이 하나 더 생긴다. 집게팔과 등이 연결된 지점.
검끝은 종이 한 장보다 얇은 지점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놈이 고통의 비명을 내질렀다.
검기를 잔뜩 머금은 검날이 희게 빛났다.
어깨를 뒤틀자, 검끝이 강철 가죽 속 여린 살결을 깊숙이 찔러 들어갔다.
검끝을 따라 솟은 검기가 질긴 막을 꿰뚫고, 마핵을 깨뜨렸다.
구멍에서 회녹색의 피가 꾸물꾸물 흘러나왔다.
마력을 잃은 목은 두부처럼 부드러웠다.
육중한 몸이 모로 쓰러졌다.
“니네 대가리 죽었어!”
내가 모가지를 번쩍 치켜들며 소리를 질렀…….
개판이었다.
뒤에서 날아든 화염구가 오크에게 돌격하는 전사의 어깨에 직격했다.
전사가 휘두른 검이 다른 놈이 휘두른 철퇴에 가로막혔다.
그 사이 중형오크 한 마리가 전사의 공격권에서 벗어나 술사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저 새끼부터 막아, 이 등신들아!”
내가 내던진 탄지공에 얻어맞은 오크가 멈칫하는 사이 뒤늦게 전사들이 술사를 보호하며 진형을 잡았다.
세 명의 전사들이 중형 오크 한 마리를 향해 합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검이 도를 막고, 도가 철퇴에 부딪히는 걸 합공이라고 불러도 될지 좀 애매하지만…….
아이구야.
“석벽 치워.”
술사가 마력을 거두자 석벽을 해제되며 갇혀 있던 소형 오크 세 마리가 오크오크거리며 튀어나왔다.
검을 우상단으로 휘둘러 내 목을 움켜쥐려 하는 팔 하나를 잘라내고,
수직으로 내리찔러 내 배를 후려갈기려 하는 무릎을 작살내고,
괴로움으로 상체가 숙여진 틈을 타 관자놀이에 검을 꽂아 후비자 녀석이 운명했다.
나머지 두 녀석도 곧 같은 신세가…….
“얼음벽을 왜 세워!”
“아… 죄송…….”
“앗, 뜨거!”
“대… 표님! 살려주십쇼!”
“죽인다… 기필코 죽여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