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첫 번째 의뢰 (3)
보령성을 나오는 은영단의 분위기는 들어갈 때와 정반대로 착 가라앉아 있었다.
온갖 환대를 받으며 들어갔다가 쫓겨나다시피 나왔으니 그럴 수밖에.
“사람 죽이는 게 별거야? 나쁜 새끼는 죽어도 싸지. 안 그래, 림이 형?”
그 와중에 김강산만이 눈치 없이 떠들었으나.
“그래도 부모님은 다르죠.”
“부모? 지 애새끼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는 부모도 부모야?”
“그 부모가 낳아주지 않았다면 선배님은 지금 존재하지도 않았을 걸요!”
전에 없이 날카로운 하하민의 대꾸와 최지수의 따가운 눈총에 얼마 못 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보령성의 동문을 나선 우리는 터벅터벅 걸었다. 그리고 꼬리에 따라붙었던 보령회의 인기척이 모두 사라졌을 때 서북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산마루를 넘고 개울을 지나 마주치는 구울과 고블린 따위 하급 괴물들의 대가리를 빠개가며 서북쪽으로 한 시간가량 걸어가자 곧 목적지가 나왔다.
텅 비어 있는 염전 마을.
염전 연합 주민들이 그렇게 알부자라더니 과연 작지만 깨끗한 마을이었다.
잔디가 깔린 마당의 한 켠에는 사과며 배 따위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과일 나무가 자랐고, 또 한 켠의 나무 그늘 아래에는 테이블과 의자 따위가 놓여 있었다.
잘 관리된 깔끔한 석조 주택이 스무 채가량. 부서진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10여 미터 높이의 방벽이 마을 주변을 빙 두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 마을에서 머물며 열흘 후로 잡힌 이바름의 재판이 열리기를 기다릴 예정이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보령회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뻔했다.
보염련에서 우리와의 계약을 취소했으니, 이제 그들은 보령회에 숙이고 들어가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보령회가 바라는 대로 된 것.
보령회는 다음 순서로 우리가 하려던 일, 즉 염전을 습격하는 괴물 무리를 소탕하러 나설 것이다. 금밭에서 금을 캐려면 금밭에 일꾼이 나가서 일할 수 있는 안전이 담보되어야 하니까.
우리가 나가 한 무리를 소탕했으나 여전히 한 무리의 나가와 몇 무리의 세이렌이 근방에 더 남아 있었다.
김강산이 사과 하나를 따서 나에게 건넸다.
사과는 달달하고 향긋했다.
“와아. 이게 사과라는 거? 시발… 끝내주네.”
일 분도 안 되어 사과 한 개를 다 먹어치운 김강산이 사과 꽁다리를 우적우적 씹었다.
그 사이 오밀조밀 둘러앉은 은영단 애들을 향한 최지수의 상황 설명이 이어졌다.
보령회는 염전 근방의 괴물 서식지를 모두 소탕한 후에 그 원인을 해결해야만 한다.
괴물들이 이사를 오는 이유는, 기존의 서식지에 무엇인가 문제가 생겼기 때문.
이럴 때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첫째로, 대규모 원정대가 공격해 들어온 경우.
하지만 섬에 원정대가 들어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상급 괴물이 그놈들의 서식지에 자리를 잡은 거다. 아마 괴물을 먹는 잡식성… 두억시니나 구미호겠지.”
김강산이 알겠다는 듯 무릎을 쳤다.
“아하, 보령회 새끼들이 상급 괴물 사냥할 때 그 새끼들 뒤치기 하자고? 역시 림이 형. 완전 미친 굿 아이디… 악!”
김강산이 뒤통수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뒤치기는 개뿔. 지금 계룡문이 깡패소굴 소리 듣고 있는데 사실확인 시켜줄 일 있냐?”
힘으로 해결될 문제였으면 뒤치기까지도 필요 없다. 곡사파를 박살냈듯, 당장 가서 보령회 본부를 깨부수고 회장놈 모가지를 날리면 되니까.
하지만 보령회는 곡사파가 아니다.
보령성을 삼십 년 동안 지켜온 조직. 회장 김선규는 특출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전반적으로 평이 좋은 인물이었다.
“아이 씨. 그럼 뭐냐고.”
“도와줘야지. 보령회가 위험에 처했을 때.”
고개를 갸웃거리던 하하민이 번쩍 손을 들었다.
“부단장님! 위험한 일이 없으면요? 손 털고 돌아가요?”
최지수가 애매모호한 얼굴로 대꾸했다.
“하민아. 너 지금 얼굴이… 꼭 림이 같다.”
“무슨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영광입니다!”
“보령회의 위기를 아주 기대하는 것 같아 보인다는 소리다.”
“어… 그러면 안 되나요?”
안 될 건 또 뭐가 있겠어.
저놈들에게 아주아주 큰 위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야만 저 바다의 금밭, 염전의 생산량 30퍼가 내 손아귀에 떨어질 수 있…….
“림아. 넌 또 표정이 왜 그러냐.”
“왜. 내가 뭘.”
“…아니다.”
최지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
보령회는 괴물 소탕 속도는 아주, 아주 느렸다.
나라면 한나절만에 해치웠을 염전 근처의 서식지를 소탕하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그리고 그 후 하루의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 저녁에 군산제일검 차예련과 서산이괴 안수한, 안수현이 도착했다. 하하민이 흥분한 어투로 설명한 바로는 모두 인근에서 나름 이름을 떨치는 자들이라고 했다.
거의 백 명으로 늘어난 원정대는 석벽과 얼음벽으로 임시 다리를 만들어,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서해의 섬들을 하나씩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미행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일주일째였다.
“대표님. 우리 허탕이지요? 저 정도 규모의 원정대가 위험할 일이 생기겠어요? 만약 생긴다고 해도 우리가 어떻게 그걸 해결해요?”
“림이 형, 지금이라도 대가리 갈기자. 지금 지수 형도 없으니까 딱 기회라고. 대가리 실컷 후드려 패면 지들이 뭐…….”
김강산의 개소리가 좀, 솔깃했다.
잔소리꾼 최지수는 오늘 미행에 따라오지 않았다. 그는 박명칠과 조은조를 데리고 이바름의 재판에 필요한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돈. 이놈의 돈.
나가 서식지를 소탕하고 받은 의뢰 보상으로 급한 불은 껐으나 앞으로의 재정 상황은 여전히 빨간불이었다.
‘진짜로 대가리 후려패서 말 듣게 하면? 아니, 아니지. 그게 사파 새끼들이랑 다를 게 뭐가 있어.’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앞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정신을 집중했다.
전방의 언덕 너머에서 점점이 흩어진 각성자들의 마력이 느껴졌다.
보령과 서천, 군산 연합 원정대.
일주일 째 미행하는 우리의 기척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오합지졸이다. 그래도 규모가 규모인 만큼 두억시니 정도의 아주 빡센 괴물과 마주치지 않는다면 무난하게 상급 괴물을 때려잡고 귀환할 것이다.
‘빡센 놈이 나타나기를 바라다니. 내가 쓰레기 같네.’
씁쓸한 기분으로 그들의 꼬리를 따라 천천히 전진했다.
섬 안은 듣던 대로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었다. 낮은 건물들은 죄다 부서졌고,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일군 논밭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기감의 그물에 갑작스러운 마기(魔氣)가 포착된 것은, 원정대가 언덕의 수색을 마치고 다시 우리를 향해 돌아선 순간이었다.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그물 바깥쪽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다. 한중간에, 갑자기, 마치 존재하는 거리를 사라지게 만든 것처럼…….
‘…순간이동?’
아니, 그럴 리가.
알려진 상급 괴물 중 어떤 종족도 순간이동을 할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는 존재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미지의 마기가 갑작스럽게 증폭했다.
뒤이어 원정대가 질러대는 비명과 외침이 귀를 파고들었다.
-…재앙이다!
멀리, 언덕 위 공중에 무엇인가가 떠올라 있었다.
옅은 푸른빛을 띤 흰색의 몸체.
호랑이의 몸에 용의 얼굴.
옆구리를 따라 돋아난 여섯 개의 거대한 날개.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내 눈이 제대로 박혀 있다면, 저건 분명 ‘그 백호’이다.
지난 네 번의 블랙데이에 서해의 섬들 모두를 무인도로 만든 거대괴수.
그 아래 바위와, 언덕마저 조그맣게 보일 정도로 거대한 몸체가 여섯 개의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하늘 중간에서 상승을 멈춘 놈이 가장 아래의 두 날개를 앞뒤로 휘저었다.
콰아아!!!!
바닥의 지반을 뚫고 수십 개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오래 자란 나무 둥치처럼 두꺼운 기둥.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슬러 역류한 억센 물줄기는 나타났던 대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물기둥을 따라 솟구쳤던 원정대원들의 몸이 땅바닥에 패대기쳐지고,
뒤이어 얼음송곳이 그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곧, 응전이 시작되었다.
얼음벽과 화염벽, 바위를 뜯어낸 방패가 백호의 공격을 방어했다. 그러나 오래 버티지 못할 게 분명하다. 저게 정말 그 재앙이라면……!
나는 뒤돌아서 김강산의 어깨를 짚었다.
김강산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역시 거대괴수 백호를 알아보았겠지.
김강산의 눈동자에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김강산. 하하민 데리고 최지수 찾아서 당장 계룡으로 돌아가.”
김강산이 꿀꺽, 침을 삼키고는 대꾸했다.
“…싫은데?”
이 새끼가?
“김강산. 너 저거 뭔지 알지? 정신 차리고, 당장 하하민 데리고……!”
“시발, 싫다고, 형.”
“이 새끼가. 너 여기 있다가 껌벅하면 뒈진다고.”
“그러는 형은? 형은 안 가?”
“가야지. 여기에서 시간 끌다가 곧 따라갈 테니까…….”
“구라치시네.”
어느새 김강산의 어깨에 떨림이 가셔 있었다.
그가 등 뒤의 도를 뽑아 쥐었다.
“림이 형. 내가 등신이야? 그 말을 믿게?”
나는 이를 악물며 하하민의 손목을 쥐었다.
“하하민, 보령성에 가서 최지수에게,”
“싫은데요. 대표님?”
…이놈들이.
대표고 단장이고 직함만 달면 뭐하냐고. 애새끼들이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데.
“형. 그렇게 멍하니 있으면 나랑 하민이랑 저 괭이도마뱀 다 때려잡는다? 와… 시발. 이제 나도 존나 멋있는 별명 생기는 거? 괭이도마뱀 사냥꾼?”
“선배님! 재앙종결자 어때요?”
“오, 그거 좋네.”
…설마 진짜 멋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예전에도 비슷한 개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생각해 보니깐 나쁘지 않아. 나도 중원에 이름 좀 날려 보려고요. 혹시 압니까? 마교놈들을 다 때려잡으면 나한테도 월악검협 같은 그럴싸한 별호가 붙을지.
설표는 짐짓 가볍게 말하고는 클클거리며 웃었다.
그의 진심을 나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보호받고 싶지만은 않았겠지. 그 역시 나를, 지키고 싶었을 터.
마교도의 검에 심장을 꿰뚫린 설표는 내 등에 업힌 채 숨을 거뒀다. 그때, 표는…….
-저 검에 맞았다면 아무리 사형이라도 죽었을 겁니다. 내가 사형을 구했어요. 내가, 사형을…….
-그래, 네가 구했다! 네가 나를 구했어. 그러니까 제발, 그만 말해라. 내가 길을 뚫겠다, 조금만 더 버텨라. 조금만 더……!
-…사형. 저는…….
등에 맞닿아 있던 심장이 멈췄다. 그의 마지막 얼굴에는 웃음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남겨진 나는…….
‘어쩔 수 없나.’
언제나 그랬듯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투닥거릴 여유는 없었다.
나는 검을 움켜쥐고 거세게 바닥을 걷어찼다.
잠시 멈췄던 몸이 다시 거대한 백호를 향해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허공에 떠오른 백호가 등에 돋아난 두 개의 날개를 휘저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언덕과 이어진 해변, 그 바깥의 바다가 불쑥 솟아올랐다.
10미터? 아니, 20미터?
최지수의 석벽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높이. 그 자체로 벽을 이룬 물의 덩어리가 섬을 향해 밀려오기 시작했다.
***
앞으로 뻗은 김선규의 팔이 후들거렸다.
‘…저게, 대체 왜?’
서해의 모든 섬을 무인도로 만든 존재.
3차 블랙데이에 인천의 제물포길드를 궤멸 직전까지 몰아넣은 거대괴수.
4차 블랙데이에 중국의 도시, 청도와 대련을 물바다로 만든…….
서쪽의 지배자, 백호.
김선규는 백호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보령성이 지난 몇 번의 블랙데이를 견딘 이유는, 단지 운이 좋아서라는 사실도.
서(西)의 백호(白虎).
남(南)의 주작(朱雀).
동(東)의 청룡(靑龍).
북(北)의 현무(玄武).
블랙데이마다 나타나 성벽을 파괴하고 한반도를 유린하는 네 거대괴수.
그들에게 사신의 이름이 붙은 것은 당연했다. 그들의 힘, 그 압도적인 존재를 괴물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으므로.
지난 4차 블랙데이에 무등길드의 패왕이 주작과 동귀어진한 후 한반도에 남은 사신은 이제 셋이었다.
‘하지만, 블랙데이가 아닌데!’
균열은 확실히 닫혀 있었다. 언젠가 다시 열리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김선규는 덜덜 떨리는 손을 힘주어 뻗으며 마력을 돋웠다.
투명한 얼음벽 위로 연신 얼음송곳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형태는 보통의 얼음송곳이지만 그 강도는 각성자의 그것과 완전히 달랐다.
술사들의 능력은 사실 거대괴수의 능력을 바탕으로 연구된 것들이다. 거대괴수, 재앙이라 불리는 이들은 그런 의미에서 속성능력의 원조라고 할 수 있었다.
퍼억!
하나의 송곳이 더 내리꽂히자, 그를 비롯한 몇몇 보령회 각성자들을 감싸고 있던 얼음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주변은 아비규환이었다.
그의 바로 옆에서, 보령회의 전사가 환도를 휘둘러 얼음송곳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그 발밑에 몇몇 보령회의 각성자들이 이미 시체가 되어 누워 있었다.
그가 간곡히 부탁해 특별히 원정대에 합류한 서산이괴는 백호가 나타나자마자 가장 먼저 달아났다.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허벅지가 꿰뚫린 군산제일검이 이성당의 술사를 보호하며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역부족이다.
블랙데이에 그토록 철저히 준비하고 성벽 뒤에서 방어전을 펼쳐도 막기 어려운 존재가 바로 재앙이다. 재앙과 맞서다가 무너진 성이 수십 개에 달했다.
여기 모인 이들로는 도저히…….
퍼억!
또 하나의 얼음송곳이 얼음벽 위로 내리꽂혔다. 두터운 얼음벽이 산산조각나 허공으로 흩어졌다.
다시 방어벽을 만들 마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김선규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옆구리에 찬 검을 뽑았다.
그는 전사가 아니었으나, 이곳에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보령회의 핵심 전력을 모두 이끌고 나온 원정. 보령성의 방어는 비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저 재앙보다 먼저 보령성까지 돌아가기는 불가능하다.
이곳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 이 섬에서 가장 가까운 성이 바로 보령성이다. 저 재앙이 이곳을 떠난다면 가장 먼저 향할 곳도 아마…….
“보령회는 이곳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검을 치켜든 그의 뒤를 따라 보령회의 각성자들이 제 무기를 움켜쥐었다.
몇몇 이들이 도망쳤으나 아직 절반 이상의 전력이 남아 있었다.
보령성으로 믿을 만한 전령을 보냈다. 곧 봉화가 올라갈 터.
‘불패도 님께서 보령성을 구하러 달려오실 거다.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여섯 시간, 아니, 일 분이라도 더……!’
그가 검 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얼음송곳 하나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김선규가 검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 순간.
퍼억!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내리꽂힌 얼음송곳이 흙바닥과 충돌해 움푹한 구덩이가 파였다.
“시발, 피해야지 그걸 막고 있냐? 대가리는 폼이냐?”
그의 굳어버린 몸을 번쩍 들어 올린 누군가가 그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김선규는 멍한 시선으로 자신을 구해준 이를 우두커니 응시했다.
붉은 빛 머리카락. 뾰족하게 솟은 두 눈썹. 날카로운 입매. 한 손으로 거대한 도를 쥔…….
“…은영단?”
계룡검룡의 왼팔이라 불리는 거구의 사내는 그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바닥을 걷어찼다.
그리고.
콰아아아!!!!
허공에서 폭음이 일었다. 공기와, 땅이 뒤흔들리는 듯한 엄청난 폭음.
빗발치던 얼음송곳은 어느새 멎어 있었다.
김선규의 시야에, 허공을 향해 솟구치는 이의 등이 보였다.
그가 오른손에 쥔 검을 휘둘렀다. 초승달 모양의 흰 빛무리가 백호의 여섯 번째 날개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계룡검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