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잊은 것, 잃은 것 (3)
넓은 방은 살풍경했다.
커다란 목조 탁자 위에 서류 더미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나무 창문의 틈새 사이로 새어 들어온 바람이 책상 왼쪽에 세워진 병풍을 나지막하게 흔들었다.
탁자 양쪽에 놓인 촛불이 어둠을 밝혔다.
거대한 어깨를 웅크리고 서류를 읽던 남자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파천궁주(破天宮主) 조량.
뚫을 듯한 그의 눈길이, 등소민의 얼굴에 쏟아졌다.
등소민은 움찔거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여 백호의 뒤를 추적하기 위한 백망대주가 대원을 이끌고 한반도의 해변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백호는 소멸한 후였습니다.”
‘이른 개화‘는 5차 블랙데이를 대비하기 위한 작전 중 하나였다.
블랙데이마다 나타나 큰 피해를 입히는 거대괴수.
블랙데이가 오기 전, 잠든 괴수의 둥지를 찾아내어 강제적으로 그들을 깨워 소멸시키려는 작전이 바로 ‘이른 개화’였다.
마력을 충분히 보충하지 못한 거대괴수의 힘이 기존보다 약화되어 있으리라는 연구진의 추론을 바탕으로 수립된 작전이었다. 혹여 성공한다면, 거대괴수 없는 블랙데이를 맞이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터.
그 첫 번째 대상이 황해 인근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동북(東北)의 백호(白虎)였다.
청도 인근의 동굴 속 둥지를 발견하고 보호막을 파괴해 둥지 속에 잠들어 있던 백호를 깨운 데까지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백호는 깨어나자마자 강력한 빙결공격을 연이어 쏟아내고는, 순간이동으로 포위를 벗어났다.
그 시점에서 이미 개화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른 개화’는 이르게 깨어난 재앙이 순간이동과 정신계 공격을 시전하지 못하리라는 전제하에 성립될 수 있었다.
만약 대비하지 못한 주변 성에 재앙이 들이닥친다면 블랙데이 때보다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
이후 자취를 감춘 백호의 흔적을 사방으로 추적했으나…….
“계룡검룡이라고.”
“예. 4세대 각성자라 하옵니다.”
등소민은 깊숙이 허리를 숙인 채 손바닥에 돋아난 땀을 닦아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식을 그의 앞에서 제 입에 담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지난 블랙데이에 천여 명 청도성방을 무력화하고 청도성을 파괴한 그 백호가, 각성한지 고작 5년 된 신출내기에게 소멸했다고?
백호의 위치를 탐문하기 위해 사방으로 파견했던 백망대의 대원 중 하나가 그 소식을 들고 왔을 때 등소민은 헛소리 말라고 일갈하며 그를 나무랐다.
그러나 여러 다른 루트로 확인할수록 그 소식이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백호의 기세가 이전보다 약해졌던가?”
“갓 깨어났던 시점에는 기존 대비 70퍼센트 가량의 마력을 회복했다 하옵니다.”
“우리 무력대가 입힌 피해는?”
“…미미하옵니다.”
등소민은 소매로 이마에 돋아난 식은땀을 닦아냈다.
톡.
톡.
느릿느릿 움직인 남자의 검지가 두꺼운 나무 탁자를 두들겼다.
일렁이는 촛불의 그림자가 남자의 얼굴에 이따금씩 짙은 그늘을 만들었다.
등소민은 가만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그의 주군의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어떤가. 군사가 보기에는.”
“무슨 말씀이신지……?”
“쓸 만한 패가 되겠느냐는 말이야.”
그의 주군, 조량의 입매가 살짝 움직였다.
다른 이라면 눈치 채지 못했을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등소민은 그 움직임의 의미를 이해했다.
“소인의 짧은 소견으로는 감히 아뢰기 황송하오나…….”
“혀가 길군.”
“…누군가의 말이 될 만한 자가 아니옵니다.”
“그 누군가가 나, 파천궁주라고 해도?”
등소민은 한때 자신의 동료였던 사내, 이제 그의 주군이 된 사내가 갈가리 찢어진 대륙을 통일할 유일한 인물임을 믿었다. 그리고 그 꿈은 이제 목전에 있었다.
그러나…….
‘변수 자체인 자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이는 지금껏 들어본 일이 없다. 심지어 그 속성조차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다.
그의 주군만 해도 각성한 뒤 5년 되었던 시점에는 홀로 오크를 잡는 수준이 고작이었다. 허베이 성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냈던 각성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조량조차 홀로 거대괴수를 소멸시킨 것은, 각성한지 20년이 지난 4차 블랙데이가 처음이었다. 그조차도 온전한 몸으로는 힘들었다. 자칫하면 폭주할 뻔했고, 다리 하나를 잃어 회복하는 데에 보름이 걸렸다.
그런데, 아무리 ‘이른 개화’에 의해 깨어난 거대괴수라 하더라도, 아무리 그 힘이 이전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4세대 각성자가 그 괴수를 홀로 소멸시켰다는 것은…….
톡.
톡.
궁주의 검지가 재촉하듯 탁자를 두들겼다.
“궁주님께서는 누구보다 강하시옵니다. 패가 필요하지 않으시지요.”
“군사의 뜻이 내 뜻과 다르다는 의미로 들리는군.”
“외람되오나… 이후 궁주님의 행보에 방해물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사옵니다. 차라리 지금 처리하는 편이…….”
등소민은 조심스레 단어를 골랐다.
그의 주군은 폭군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군사가 그렇게까지 말하다니. 소국에 귀인이 났군.”
“…하명하옵소서.”
“흑암단을 파견하여 쓸 만한 패인지 살펴보도록.”
그의 주군의 판단은 등소민의 그것과 달랐다. 등소민은 주군의 판단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잘 알았다.
압도적인 무력과 타당한 자신감.
그의 주군을 대륙의 절반을 지배하는 위치에 올려놓은 그것.
그러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가 굴러 떨어진 역사 속 많은 강자들의 눈을 멀게 한 것도 결국 그 자신감이다. 타당한 자신감이야말로 발밑을 어둡게 만든다.
자신은 바로 지금과 같은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
궁주님께서 더 높은 곳으로 오르시도록. 중원을, 나아가 세계를 다스리고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원하시도록…….
발밑의 장애물을 치우는 손.
어린 싹을 즈려밟는 발.
등소민은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궁주님. 그자는 패로 쓰기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길드장 중 하나와…….”
그러나 그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주군이 톡, 톡, 탁자를 두들겼기 때문이다.
뒤이어 주군이 그에게 하문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나.”
꿀꺽. 등소민이 마른침을 삼켰다.
듣기 좋은 문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하는 등소민을 향해 재촉이 떨어졌다.
“나는 혀에 든 설탕처럼 구는 군사를 둔 적이 없다.”
자신의 마음을 읽은 듯한 말에 등소민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자의 행보가… 젊은 시절의 궁주님을 빼닮았습니다. 야인들을 성 안으로 들이고, 범인들을 구하고, 명성을 높여가는 모습이…….”
차마, 궁주님의 그 시절을 뛰어넘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등소민이 말끝을 흐리며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그의 군주가 입꼬리를 추켜올린 채 웃고 있었다.
명백한 즐거움의 표정.
그리고…….
그의 주위로 마력이 소용돌이쳤다.
이전보다 몇 배, 아니, 몇 십 배 강력한 마력이 몰아쳤다.
숨이 멎을 듯한, 감히 이 앞에서 숨을 쉬는 것조차 불경하게 느껴지는…….
마치, 폭풍우 치는 바다에 내동댕이쳐진 듯.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 한가운데에 조난당한 듯.
아득하고 막막한 느낌에 등소민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언제, 이런 경지에…….’
폭풍우처럼 몰아치던 마력이 거짓말처럼 소멸한 뒤, 등소민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분부대로 시행하겠습니다.”
***
-분부대로 시행하겠습니다.
허공에 뜬 동그란 거울 속 화면이 두 인간을 비추었다.
두 인간 중 한 인간이 깊숙이 허리를 굽히며 뒷걸음으로 방에서 빠져나왔다.
“흑암단? 저건 또 뭐냐. 아무튼 멸망하는 세계들이란… 다 저 모양 저 꼴이지…….”
거울의 맞은편, 용의 등뼈로 만든 딱딱하고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노인이 중얼거리며 호리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쫄쫄쫄.
마지막 술을 삼킨 그가 병을 가볍게 던졌다. 허공을 한 바퀴 돈 호리병은 바닥에 닿기 직전 사라졌다.
노인이 손을 휘젓자 낮은 탁자와 새로운 호리병이 생겨났다.
그는 새 호리병을 입으로 가져가려다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이질적인 존재를 느꼈다.
노인이 눈을 껌벅였다.
거울이 비추는 장면이 바뀌었다. 뒤이어, 일렁이던 공간이 소용돌이치며 모여들더니 이내 작은 구멍이 생겨났다.
구멍에서 빠져나온 회색 망토가 노인의 앞에서 공손히 접혔다.
“방문 요청을 수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원관리자 32337호입니다. 먼저 본인확인부터 하겠습니다. 만취한 주정뱅이. 본인 맞으십니까?”
“알면서 뭘 묻고 지랄이야. 온 김에 한 잔 받어.”
언제 생겨났는지, 회색 망토의 끄트머리에 작은 술잔이 쥐어져 있었다.
32337호는 그것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망토의 윗부분이 가볍게 휘날리며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근무 중의 음주는 위법입니다.”
“그놈 참 딱딱해. 그래, 무슨 일로 오셨어?”
“만취한 주정뱅이님께서 초월자 규약 제3조 38항을 위반한 혐의가 있습니다. 조사에 협조하여 주십시오.”
“내가? 무슨 규약?”
“규정된 절차를 밟지 않고 필멸자의 세계 HM#87602에 현신하여…….”
“그건 내 계약자가 깨어났기 때문이야. 빌어먹을 필멸자들이 편하게 쉬고 있는 내 계약자를 강제로 깨웠거든. 그대로 두면 용 새끼인지 호랑이새끼인지 어쨌든 내 계약자가 뒤지게 생겼는데 현신이 아니라 현신 할애비라도 해야 했다고.”
32337호도 당연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가 관리하는 HM#87602 세계는 여러 모로 예외적인 경우가 많았다. 이번 사태도 그 중 하나였다.
필멸자들이 나서서 숨겨진 둥지를 찾아내고, 문이 닫혀 있는 동안 둥지를 보호하는 보호막을 파괴하여 잠자는 괴수를 깨우는 일은, 확실히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정원관리사와 마찬가지로, 32337호 역시 규칙과 틀에서 어긋난 모든 예외를 혐오했다.
이번 MT#87602의 멸망은 특히 예외의 연속이었다.
그는 종종 이미 계획된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단번에 멸망의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규칙과 규정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정원관리사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최초신의 뜻에 반하는 행위였다.
“말씀하신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도 밟아야 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먼저 비상근무 중인 관리사를 호출하여 비상사태임을 알리고 세계선 통과 허가를 받은 후에…….”
“그놈의 허가! 그 허가 받는 사이에 내 계약자 뒤져버리면? 내가 이 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격은 그걸로 끝이라고. 네가 그거 보상해 줄 거야? 어? 내가 손가락만 쪽쪽 빨면서 다른 초월자 새끼들 이름이 저 세계 지성체들에게 회자되는 꼴을 지켜보라고?”
주정뱅이의 손바닥이 탁자를 내리쳤다.
부서진 탁자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탁자가 생겨났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네 마리 용이 탁자의 네 귀퉁이를 받치고 있었다. 소박했던 이전의 탁자에 비해 훨씬 화려한 모양새였다.
32337호는 주정뱅이를 조사하기에 좋은 타이밍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의 눈앞의 초월자는 규범을 어기면서까지 세계에 현신했으나 결국 자신의 계약자를 잃었다.
MT#87602의 멸망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는 앞으로 그 세계에서 다른 초월자의 계약자들이 이름을 날리고, 그 세계의 지성체들의 입에서 그 이름이 회자되고, 그로써 다른 초월자들의 격이 높아지는 과정을 지켜봐야만 할 것이다. 그의 말대로, 손가락을 쪽쪽 빨면서.
“알겠습니다. 해당 사항에 대해서는 따로 날을 잡아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날짜에 조사국으로 출두하시기 바랍니다. 이유 없이 조사에 불응할 경우 격의 손상이 생길 수 있음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노인이 휘휘 손을 휘저었다.
그 모습은 32337호가 보기에도 꽤 ‘인간’다워 보였다. 16개의 팔과 16개의 다리를 버리고 굳이 ‘인간’이라는 종족의 형상으로 지내는 눈앞의 초월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초월자들은 어차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선험적으로 주어진 격을 초월함으로써 마련된 멸망으로부터 탈출한 자들.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날 뵙겠습니다.”
노인은 일곱 번째 호리병의 입구를 쥐며 32337호가 서 있던 곳, 아지랑이처럼 흐릿해진 공간을 흘깃거렸다.
이내 정원관리사의 기척이 그의 영역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노인이 남은 술을 홀짝였다.
‘이걸로 약속은 지켰다, 이놈아.’
***
“검룡님! 여기 봐주세요! 제발!”
“잘생겼다!”
“꾸웨에에엑!!!!! 검룡님이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라 닫았다.
이중창 너머로 들려오는 소음으로 어느 정도 짐작은 했으나 바깥에 모인 인파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걸을 수 있는 보령성 사람은 모두 모였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 정도로 놀라면 곤란해, 림이 형. 염전 마을에 형 동상 세운다던데?”
“아주 돈이 썩어나네.”
“지금 광장에서 동상 이름 주민투표하고 있어.”
“설마 김강산 너도 했냐?”
“당연하지, 형. 내가 투표한 ‘도마뱀을 잡아먹은 용’이 지금 1등이라고.”
김강산이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잠시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내 한약 냄새가 방에 자욱하게 퍼졌다.
김강산이 생성한 화염구 위에서 냄비가 끓고 있었다.
곽선우가 보내온 정력탕이라나 뭐라나. 이러고 있을 시간에 집에 돌아가서 대환단을 챙겨먹고 운기조식을 하는 게 훨씬 회복에 도움이 될 텐데.
그래도 50대의 수레 위에 그득그득 쌓이고 있는 온갖 선물들은 썩 마음에 들었다. 챙길 수 있는 건 싹 다 챙겨야지. 여기서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내가.
문제는…….
“야. 내가 어떻게 했다고?”
내가 어떻게 괭이도마뱀을 때려잡았는지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
저기 테이블 위에 턱하니 올려져 있는 커다란 마핵을 보니 때려잡기는 한 모양인데.
“형 진짜 생각 안 나냐?”
“내가 뭐하러 너한테 구라를 치겠냐.”
기억은 정확히 ‘정신계 공격에 당해 석상처럼 굳은 김강산이 입을 헤 벌린 멍청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광경’에서 끝났다.
이 새끼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다음은…….
암전. 블랙아웃.
무려 사흘을 뻗어 있었다고 했다.
운기조식으로 확인한 결과 몸 상태는 엉망진창 개판이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선천진기.
선천진기를 꽤나 끌어다가 썼다.
나새끼가 뒈질려고 작정했나.
다행히 다 끌어내지는 않았으나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몇 달 콱 박혀서 죽어라 수련에 파묻혀야 하는 상태였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지, 이런 식으로 싸우다가는 다음에는 진짜로 죽는다. 진짜로.
‘…네 번 죽은 걸로도 충분하다고.’
정신을 차린 내 눈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팅팅 불어터진 김강산의 얼굴이었다.
뻗어 있는 동안 무슨 꿈을 꾼 것 같기는 한데. 어차피 개꿈일 테고.
김강산과 하하민의 침 튀기는 묘사를 들어보니 내가 들어도 내 무력이 어마어마했다.
검으로 찌르는 게 고작이었던 그 괴물의 몸통을 반으로 갈랐다니.
실로 엄청난 위력이다.
근데, 왜…….
‘생각이 안 나냐고! 나놈!’
내 대가리를 내리치는 내 손을 붙잡으며 김강산이 탕약을 내밀었다.
“형. 먹어.”
“싫은데. 그거 존나 쓰…….”
대충 대꾸했을 뿐인데 김강산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아, 먹는다고! 먹는다고!”
머리도 복잡한데 이놈이나 저놈이나 피곤해 죽겠다.
최지수에게 한참을 시달리다가 아프다는 핑계로 겨우 빠져나왔더니 보령회 회장놈이 병문안이랍시고 찾아왔고, 그 뒤에는 또 보염련 회장 곽선우가 사죄와 감사 인사를 하겠다고 찾아왔다.
둘 다 엉덩이를 붙인지 오 분도 지나지 않아 김강산에게 쫓겨났지만.
“미안해… 형아. 형 뒈지면 진짜 나도 뒈지려고 그랬다.”
퍼벅.
젠장. 김강산의 대가리를 후려쳤으나 내 손만 아프다.
아직 내상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해서 내력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
“한 번만 더 개소리 지껄이면…….”
“지껄이면?”
“…됐다. 약이나 내놔, 새꺄.”
벌컥벌컥 한약을 들이켰다.
쓰다. 더럽게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