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몬스터 웨이브 (3)
콰아아!!!
강기가 구미호의 가슴팍에 명중했다.
입에 물고 있던 누군가의 팔을 뱉으며, 구미호가 열여덟 개의 눈으로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순간적으로 구미호의 형체가 흐릿해지더니 이내 아홉 마리로 나뉘었다.
높이 3미터 길이 8미터에 이르던 완전체의 절반으로 줄어든 크기.
하지만 그 수는 아홉 배.
이거 반칙 아니냐고.
만약 진짜 신이라는 새끼가 있다면, 졸라리 불공평한 놈이 분명…….
“…지금 대사 치잖아!”
화륵!
아홉 놈이 동시에 나를 향해 쇄도하며 앞발을 뻗었다.
앞발보다 먼저, 불꽃이 도착했다.
특정한 위치가 아니라 대상 자체를 불태우는 살아 있는 불꽃, 활염(活炎).
대상이 완전히 재로 변할 때까지 꺼지지 않는다는 구미호의 청색 활염이 단번에 내 몸을 휘감았다. 뼛조각까지 녹일 듯한 뜨끈함이 응축된 호신강기를 타고 피부를 태우기 직전의 순간.
순간적으로 응축했던 호신강기가 피부의 표면에서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이건 아니고.’
삼반공의 3절을 기억해내기 위해 파고들고 또 파고들었으나 그럴싸한 결과는 얻지 못했다.
그 덕에 이런 잡기공을 몇 개 창안하기는 했지만.
이건 단순히 적(積)의 응용일 뿐. 새로운 기공도, 이름 붙일 만한 것도 아니다.
터져나가는 빛무리와 함께 활염이 소멸하고,
거의 동시에 열여덟 개의 앞발이 날아들었다.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땅에 스치듯 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검날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붉은 핏무리가 그려졌다.
아래를 노렸던 앞발 일곱 개가 바닥을 굴렀다.
그대로 허리를 젖히며 수직으로 올려 베자,
스팟!
한 놈의 가슴팍이 반으로 갈라졌다. 쩍 벌어진 상처 사이에 그대로 검을 찔러 넣었다.
치이익.
불길과 함께 놈이 소멸했다.
하지만 아직 여덟 마리 분신이 남아 있었다. 주변은 온통 괴물들이 득실대는 상황.
나는 검을 찌르고 빗겨 막고 놈들을 베어내며, 오른팔을 잃은 채 왼팔로 검을 옮겨 쥐고 삼미호를 상대하고 있는 녀석에게 물었다.
“너네 대장 어딨냐?”
“저기, 깃발, 이요!”
진짜로 네놈이 안 튀고 거기 있으면…….
‘오냐, 작전도 잘 풀렸는데 내가 오늘 인심 쓴다.’
***
빠각!
참룡보검이 부러졌다.
처철수는 절반 남은 검을 내던지고 팔을 뻗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달리 석벽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는 다급하게 바닥을 뒹굴었다.
히포그리프의 발톱이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등허리가 베인 듯 뜨거웠다.
바닥에 손을 짚고 막 몸을 일으키려는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를 깔아뭉개려고 들어올린 오우거의 거대한 발바닥이었다.
파마신검을 움켜쥔 채 그는 다시 한 번 바닥을 굴렀다.
그를 뒤따라 도약한 오우거의 발바닥이 다시 그의 시야를 잠식했다.
바로 그 순간.
스파앗!
흰 빛무리가 오우거의 기둥 같은 다리를 반으로 갈랐다. 발바닥으로 가려졌던 하늘이 보이고, 그 하늘에 얼굴 하나가 빼꼼 나타났다.
그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현재 충청 최고의 유명인사.
온몸에 온갖 색깔의 체액을 뒤집어쓰고서도 자체발광하는, 아마 한반도 최고의, 어쩌면 세계 최고의 미남… 이 한쪽 입술을 끌어올리며 여유 있게 웃었다. 지옥 같은 풍경과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다.
“처철수 씨? 이야, 꼴이 말이 아니네요.”
“…검룡님!”
검룡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검을 휘둘렀다.
날아들던 히포그리프의 날개 끄트머리가 그의 검에서 솟아난 흰 빛줄기에 잘려나갔다.
검룡이 오른손으로 연신 검을 휘두르며 왼손으로 주머니 두 개를 꺼내 내밀었다.
“얼빵하게 있지 마시구요. 이거 받아요.”
“…이게 뭐, 뭡니까?”
“빨간 건 힐포, 하얀 건 증폭제. 나중에 이자 쳐서 받을 테니까.”
“네?”
콰앙!
뒤에서 덮치던 오우거를 뒷발차기로 걷어찬 검룡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야. 적당히 하고 일어나라, 응?”
살아 있던 호위대가 두 종류의 환약을 들고 흩어졌다.
두 약은 모두 효과가 탁월했다. 그동안 유성길드에서 사 먹던 것보다 1.5배는 더 좋은 듯했다.
스팟!
부러지지 않은 파마신검이 기세를 되찾아 오우거의 재생된 다리를 다시 베어냈다.
“빙결술사들한테, 신호하면 강 얼리라고 해요. 그리고 돌진하는 거야. 알겠지?”
검룡이 오른손의 검을 휘둘러 희뿌연 막을 만들어내 화염박쥐의 불길을 막아내고 동시에 왼손으로 무엇인가 흰 구슬을 날려 그 박쥐들을 박살내며 말했다.
“야 이 시부럴 새꺄! 알았냐고!”
“…네, 넵!”
***
살얼음이 낀 강 건너편.
계룡문 애들이 지뢰지대로 날아들 듯 쇄도하기 시작했다.
유인조가 지뢰지대로 들어섰으나 지뢰는 터지지 않았다. 최지수와 유성길드의 탐색술사들이 지뢰의 위치를 탐색하여 그 사이로 설치해 둔 안전선 덕이었다.
수틀린 다른 성놈들이 저기에 손댈까봐 보초를 세워 가며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안전선을 따라 유인조의 선두가 지뢰지대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유인조의 꼬리에 따라붙은 괴물의 선두가 지뢰지대에 막 발을 디뎠다.
콰아앙!!!! 콰아아아아!!! 퍼엉!!! 펑!!! 콰지직!!! 뿡!!!! 뽀오옹!!!!
한낮의 불꽃놀이.
수천 개, 수만 개의 화염탄을 동시에 터뜨린 듯한 엄청난 폭발이다. 대인지뢰가 수천 개. 대전차지뢰만 해도 천 개 이상.
그 전쟁 중에 이 지뢰를 땅에 박아 넣은 이들의 목적은 아마 이루어지지 않았겠으나…….
‘덕분에 잘 씁니다요.’
앞선 괴물들이 어떻게든 멈춰보려 했으나 관성의 법칙을 이길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바닥에는 레드카펫 버금가는 얼음길이 부드럽게 깔려 있다.
흙이 튀고, 바위가 박살나고, 박살난 바위조각이 땅에 닿기도 전에 다음 폭발에 휘말려 가는 먼지로 부서졌다.
“준비됐습니다, 검룡님!”
“저쪽 지뢰는 끝났어요. 우리는 동쪽으로 도하합니다. 내가 선두에 설 테니 전속력으로 따라붙고 강이 끝나면 강변에 들어가지 말고 바로 흩어져요. 강변 너머는 바로 지뢰지대니까.”
“그러면 괴물은……?”
“내가 알아서 할게.”
사용할 예정에 없던 구역이다. 따라서 안전선도 설치하지 않았다.
저 정도 폭발 속에서 살아남을 각성자는 김강산이나 지남천 정도일까.
‘적어도 얘네들 중에는 없지.’
강 건너 계룡문 애들은 이제 마지막 단계에 돌입하고 있었다.
괴물 무리의 꼬리에 벽 세우기.
우리에 갇힌 신세가 된 괴물들은 자신의 속도와 무게에 밀려 하염없이 지뢰 지대로 달려 들어가 폭사당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난전을 벌이던 청주성방이 일제히 동쪽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강가를 지났을 때는 유인하는 청주성방도, 따라붙는 괴물들도 꽤나 속도가 붙어 있었다.
‘이 정도면……!’
“신호해!”
처철수가 쏜 신호탄이 하늘을 반으로 갈랐다.
살얼음 낀 강이 단단한 얼음다리로 변하고, 기세를 되찾은 청주성방이 단번에 방향을 바꿔 강을 향해 쇄도했다. 바닥을 걷어찬 내 몸이 그들의 선두에 섰다.
100여 미터 강을 순식간에 건너갔다.
등 뒤에서 산개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속도를 늦춰 계속 달렸다. 괴물들이 질러대는 소리, 그들이 내뿜는 뜨끈한 콧김이 등줄기를 간지럽혔다.
높이 뛰어오른 내 몸이 정점을 찍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한 번 허공을 걷어찼다.
허공답보(虛空踏步)의 수.
허공(虛空)이라 일컬어도 실제로는 공(空)이 아니다. 단지 그 농도가 한없이 옅을 뿐, 공중에도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먼지, 공기, 자연의 기(氣).
기운을 운용하여 하체를 가볍게 하고, 허공의 티끌을 디디는 것이 허공답보의 묘리.
하지만 영원히 떠 있을 수는 없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정점의 높이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내 발이 다시 한 번 허공을 격했다.
‘소화야. 이 정도면 나도 썩 힘닿는 데까지 구했다고 할 수 있…….’
콰앙!! 콰아아!!! 퍼엉!!! 펑!!! 콰앙!!!!!
등 뒤에서 지뢰가 폭발했다. 나를 쫓아온 괴물들이 지뢰지대에 진입한 것.
폭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발끝에 닿은 공기가 거세게 흔들리고, 소용돌이치듯 휘몰아치며 터져나갔다.
순간적으로 디딜 곳을 잃어버린 발이 중력에 이끌려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발아래는 폭발, 폭발, 온통 폭발하고 있는 땅.
어휴. 내 인생이 이렇지.
어쩐지 쉽게 끝난다 했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기운이 기맥을 타고 돌았다. 손이 권강으로 하얗게 빛났다.
허공에서 반 바퀴 몸을 회전시키려는 찰나.
“대표니이이임----!!!!!!”
지뢰지대 바깥에서 은영단 애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동시에, 허공에 얼음판이 생성되었다.
바위가 날아들고 또 얼음판이 생성되고 또 바위가 날아들고…….
“내 꺼 밟아요, 대표님!!!”
“아니다, 림아! 바위가 튼튼하다!!!!”
하하민과 최지수, 박명칠과 조은조가 경쟁하듯 발판을 쏘아 올렸다.
박명칠이 만들어낸 얼음판이 조은조가 내던진 바위에 박살났다. 하하민의 얼음창이 최지수의 바위를 조각냈다.
…너네 지금 뭐 하니. 김강산 너랑 이바름 너는 왜 억울한 표정인데.
타앗.
허공에 가득찬 발판을 밟으며 몸을 솟구쳤다.
그리고 안전하게 착지.
예술점수 만점, 기술점수 만점. 김연아도 울고 갈 펜타악셀.
10점 만점에 100점.
***
유성길드 경호대 2팀장 백희찬은 이번 작전에 2팀이 길드장을 수행하기를 내심 바랐다.
몬스터 웨이브를 몰이사냥의 기회로 삼다니. 계룡검룡이 아닌 그 누구도 떠올리지 못할 생각이었다.
‘…그 사이 보령에서 또 한 건을 해치우셨다지.’
석민혁의 계략에 휘말려 계룡문의 부대표 최지수가 마력억제제를 맞아 정신을 잃은 날.
백희찬은 그날 새벽 연인의 장례식에 참석했었다.
그가 죽기 전날에도 백희찬은 그와 함께 밤을 보냈다.
그의 연인은 와이번의 습격을 막다가 그 발톱에 심장을 꿰뚫려 즉사했다.
그의 연인은 죽은 이는 30명의 동기들 중 여섯 번째로 사망한 동료이기도 했다.
연인의 관이 화장터에 놓였다.
생전 가장 친했던 화염술사가 화장을 시행하는 전통에 따라 백희찬이 화장을 진행했다.
나무관 안에는 다리 하나뿐이었다. 그게 남은 시체의 전부였으므로.
그가 만들어낸 불길이 나무관을 에워쌌다.
이내 매캐한 냄새가 풍겼다.
백희찬은 그것을 들이마셨다.
그저 그뿐, 조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슬픔이라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 옅은 감정.
백희찬은 울지 않았다. 눈물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모인 이들 중 누구도 울지 않았다.
모든 죽음마다 슬퍼하기에는 죽음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린 이들은 이미 먼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백희찬이 목격한 검룡은…….
‘울 것 같았지.’
거침없이 움직이는 입술이 길드의 실수를 조목조목 짚었다. 그의 검이 시멘트 바닥을 찰흙처럼 뭉갰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백희찬의 기억에 남은 것은 그 순간 검룡의 표정이었다.
핏기가 가신 창백한 얼굴.
잘게 떨리던 손.
계룡문 부대표 최지수는 마력억제제를 맞고 잠시 의식을 잃었을 뿐이었다.
검룡 정도의 인물이라면 호흡과 심장 박동이 모두 멀쩡하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지 마력의 흐름이 정체된 것뿐이라는 사실도.
검룡은 이성을 잃은 사람 같았다.
제대로 된 사고가 정지된 사람 같았다.
‘단지 동료가 의식을 잃었다는 것만으로…….’
이어진 격렬한 전투로 그 순간의 놀람과 당황은 잊혀졌다.
석민혁이 끝내 반역을 일으켰고, 길드 본부를 무너뜨렸다.
짧은 만남이 불쑥 떠오른 것은 길고 지친 전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가슴 속에서 불쑥 뜨끈한 것이 북받쳤다. 코끝이 얼얼해지고 화염에 휩싸인 듯 눈이 뜨거웠다. 곧이어 눈물이 흘렀다.
그는 자신이 줄곧 상실이 두려워 오히려 상실을 외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로 누군가를 상실했을 때 너무 슬프지 않도록.
‘계룡문과 유성길드 연합 괴몰 소탕 작전’이 시행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백희찬은 그 누구보다 열렬히 찬성했다.
그리고 그의 간절한 바람대로, 경호대 1팀이 대전에 남아 대전성을 방어하고 경호대 2팀이 길드장을 경호해 작전에 참여한다고 결정되었다.
작전은 빈틈이 없었다. 또한 계룡문도들의 실력은 예상보다 뛰어났다. 그리고 계룡검룡은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청주성방을 구해내고, 지뢰지대로 괴물을 유인하고, 폭발 속에서 날아오르는 검룡은 인간이라기보다는 마치 신처럼 보였다.
상실이 두려우면 잃지 않도록 강해지라고, 그래서 지키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백희찬은 지남천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검룡을 힐긋거렸다.
검룡은 숨이 조금 가쁜 듯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 그의 주위로 몰려들어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 은영단이 조금, 아니, 많이 부러웠다.
“계룡문은 피해 상황이 어떤가?”
“가벼운 부상자들이 몇 명 있지만 중상자는 없습니다.”
“허허. 역시 참 대단하군. 우리가 이번 작전에서 많이 배웠네.”
“아닙니다. 길드장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저희 계룡문만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제 거의 끝나가는 불꽃놀이를 보며, 최지수와 지남천이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부대표님은 겸손이 지나치시네. 검룡님만으로도 다 쓸어버리시겠던데.’
“검룡 자네 덕분에 유성길드가 잃어버린 유성을 되찾았군.”
“이거 지수 형이 하자고 한 건데. 나는 별로 안 내켰어요.”
“허허. 그래, 우리 부대표님께 내 이리 감사하네.”
“아이고, 길드장님, 허리 펴십시오. 제발…….”
‘동료에게 공을 돌리시기까지. 저 인품 어쩔.’
고요한 강변에서 무엇인가가 꿈틀거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형체를 알 수 없도록 박살나 흩어진 조각들.
가루가 된 뼈와 으깨진 근육과 찢겨나간 가죽이 잘려나간 슬라임 조각처럼 꿈틀거리며 모여들고 있었다.
“…저게, 다…….”
머릿속에서 소리가 울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계룡검룡을 찔러라.]
[계룡검룡을 찔러라.]
[계룡검룡을 찔러라.]
[계룡검룡을 찔러라.]
돌림노래처럼 되풀이되는, 부드러운 목소리.
따라야만 한다. 이 목소리의 주인의 명을 따라, 계룡검룡을 찔러……!
‘계룡검룡을 찔러?’
백희찬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흘렀다. 약한 통증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돌아왔다.
하지만.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더 크고, 더 강대해졌다. 따라야 한다. 이 목소리의 주인의 명을 따라야……?
일렁이는 촛불. 향긋한 향. 턱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부드럽고, 강대하며, 단단하고, 축축한 목소리.
[조각난 시체가 땅을 딛고 일어서면.]
[그때 너는 네 검을 뽑아]
[계룡검룡을 찔러라.]
[찔러라.]
[찔러…….]
백희찬의 눈에 초점이 사라지고,
손톱에 박혀 찢어진 손바닥이 검 자루를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