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장벽 너머의 땅 (2)
“나도 생각을 해봤거든, 림이 형.”
“…네가? 생각을?”
김강산 녀석이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이고는 말을 이었다.
“계룡문 위험할 일도 없을 것 같은데? 거기 유성길드도 있고, 빙화신녀도 계속 계룡에 머물겠다 했고.”
“그래도 역시 산이 네가 필요하지.”
“림이 형.”
“그래.”
“나 솔직히 말할게.”
이 새끼가 왜 무게 잡고 지랄이니. 사람 무섭게.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계룡 좋아해. 근데, 내가 계룡 좋아하는 건 형이 있어서거든? 형 없는 계룡은 솔직히 내 알 바 아니라고.”
“이 새끼가 할 말 못할 말이…….”
“뭐. 진짜 레알 팩트인데 뭐 어쩌라고. 나 떼어놓고 가도 절대 계룡에 안 돌아가고 혼자서 형 찾아다닐 거니까 알아서 하셔. 그러다가 두억시니라도 만나서 뒈지면 다 형 책임… 악!”
이 녀석, 이거 진심이다.
나는 희미한 기대를 안고 서은창을 돌아보았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단호한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사형. 혈귀단은 제 어머니의 원수입니다. 저는 혈귀단 놈들과 끝장을 보겠습니다. 그 녹귀대주 놈 모가지를 제 손으로 안 따면 잠을 못 잘 것 같습니다.”
“언제는 네 어머니께서는 복수를 바라지 않으실 거라며?”
“사형을 만나고 이 사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건…….”
“아니, 됐어. 말하지 마.”
“그건, 월악의 진정한 제자는 타인의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고 그 무엇보다 먼저 그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 즉… 악!”
“니 꼴리는 대로 하겠다는 말을 뭘 그리 돌리고 지랄이냐.”
“헤헤헤.”
저절로 한숨이 났다.
이 녀석들은 누굴 닮아서 이리 고집이 세냐.
***
“북한이라고요.”
“예. 갑자기 들이닥치셔서 북한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셨습니다. 드릴 정보가 많지 않아… 크게 분노하셨지요. 하마터면 지부가 통째로 날아갈 뻔했습니다.”
김영호는 그날을 떠올리며 창백한 낯빛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계룡에서 자취를 감췄다던 검룡이 파천궁 서울지부에 들이닥쳤을 때, 김영호는 사혼삼살의 사망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던 중이었다.
사혼삼살이 검룡을 찾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당부하기 위해 은밀히 계룡에 내려갔었다.
검룡은 자신의 당부를 귓등으로 듣지도 않았다. 오히려 검룡은 사혼삼살을 박살내도 파천궁과 문제가 생기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지나칠 정도로 자신만만한 이.
검룡의 행적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오만하다고 판단하겠지만 김영호는 그리 여기지 않았다.
그동안 은밀히 검룡의 뒤를 좇은 결과물이 35개 파일, 서랍 세 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으니까.
김영호는 서울로 돌아오며 곧 사혼삼살과 관련된 비보를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렇게 금방일 줄은 미처 몰랐다.
더군다나 계룡을 습격한 사혼삼살은 혼자가 아니었다. 혈귀단과 함께였다.
검룡은 현재 남한의 가장 큰 테러조직과 손잡고 계룡을 습격한 사혼삼살을 사망처리하고, 혈왕의 목까지 베어냈다.
‘이게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그럴 리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김영호 자신이 잘 알았다. 파천궁의 서울지부는 무력은 부족해도 그 정보의 양과 질은 대한길드보다도 우위였다.
그 정보력으로도 혈귀단의 본거지를 찾지 못했는데, 검룡은 그럴 필요조차 없이 혈귀단을 거의 완벽하다시피 풍비박산냈다.
먼저 습격했던 적귀대주는 진작 목이 잘렸고, 이번 공격으로 혈왕과 청귀대주, 흑귀대주도 사망했다. 500여 명의 혈귀단원들 중 살아 도망친 것은 고작 스무 명 남짓.
그 생존자 중에는 녹귀대주가 포함되어 있었다.
녹귀대주의 처리를 두고 검룡이 은영단과 큰 갈등을 빚고, 홧김에 계룡을 떠났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는 중이었다.
계룡검룡이 계룡문에 영영 돌아오지 않으리라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김영호는, 계룡검룡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어떤 일을 저질러도 놀라지 않아야지. 그랬다가는 내 수명이…….’
딸꾹.
딸꾹.
김영호는 들고 있던 펜을 떨구며 딸꾹질을 했다.
잠겨 있었던 3층 창문을 어떻게 열었는지, 검룡이 자신을 향해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지부장님, 잘 있었죠? 내가 물어볼 게 좀 있어서요. 북한 알지? 장벽 너머 말야. 응? 왜 말을 못 해? 뭐? 정보원을 보내면 소식이 끊긴다고? 이게 말이야 방구야. 파천궁이 고작 이거밖에 안 돼?
갑자기 쳐들어와 무슨 북한 타령인지.
김영호는 얼마 없는 북한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하고 나서야 겨우 검룡에게서 풀려났다.
-아, 지부장님. 화장실 어디 있어요?
-나가셔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쭉 가면 안내판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다시 왼쪽으로…….
-응, 내가 찾아볼게요.
김영호는 한숨을 내쉬며 검룡을 따라온 두 사람에게 그제야 시선을 보냈다.
이번에 새로 은영단이 되었다던 새 얼굴, 서은창.
그리고, 좌룡.
두 사람은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검룡의 뒤에 얌전히 서 있었다.
그리고 검룡이 문밖으로 사라지자마자,
-진짜 이게 다냐? 일부러 숨기는 거 아냐?
단번에 표정을 바꾼 좌룡이 싸늘한 얼굴로 김영호에게 바싹 다가왔다.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저는 검룡님과 한 배를 탔습니다!
자신을 위아래로 훑는 차가운 시선을 느끼며 김영호는 꼴깍 긴장된 침을 삼켰다. 방금 전까지 초점 풀린 눈으로 검룡의 뒤에 서 있던 맹한 남자는 온데간데없었다.
마치 한 자루 날카로운 검이 자신을 겨누고 있는 듯한.
-림이 형은 너를 믿는 모양인데, 나는 아냐. 림이 형은 마음이 여리지만, 나는 아니라고. 만약 네가 장난질을 쳐서 우리 형이 위험에 빠진다면…….
좌룡의 오른손이 천천히 대도를 움켜쥐었다.
도는 여전히 도집 속에 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염을 두른 대도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듯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검룡이 돌아오자,
-김강산, 뭐하냐? 살기 풀풀 날리면서.
-…사알기? 에이, 설마.
그 날카로운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썹을 찡그린 검룡의 의심스럽다는 시선을 받으며 좌룡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잘못한 강아지처럼 낑낑거릴 듯한 얼굴에 김영호는 속으로 억울함을 삼켰다.
-지부장님. 강산이가 뭐라 했어요? 애가 어려서 개념이 좀 없어요.
-아, 형! 그런 소리 좀 하지 말라고오.
마치 애교를 부리듯 늘어지는 대꾸를 들으며 식은땀이 돋았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장난질을 쳐서 계룡검룡이 위험에 빠지면? 어쩌겠다는 거지?’
좌룡에 대해서는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검룡과 같은 영웅을 따르게 된 운 좋은 각성자로만 여겼다.
하지만 지금 본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검룡보다 더 두렵고, 더 위험해 보였다.
검룡은 얼핏 보면 제멋대로 행동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절대 그렇지 않다. 김영호가 검룡에게 매료된 것도 약자를 지키면서도 자신의 힘을 마구 휘두르지 않는, 그 행적 때문이었으니까.
그러나 좌룡은…….
‘잘못 걸렸어.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걸렸어. 으아… 이놈의 계룡문!’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속으로 비명을 삼키는 김영호를 향해 최지수가 가볍게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혹 림이나 강산이가 결례를 저질렀다면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그 애들이 아시다시피 성격이 급한 부분이 있지요.”
“하하. 아닙니다. 제가 부족하여 검룡님을 만족시켜 드리지 못했습니다.”
김영호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자가 검룡이나 좌룡이 아닌 우룡이라 불리는 최지수라는 사실에 살짝 안심했다.
계룡문에서 가장 제정신인 사람.
어쩌면 혼자 제정신인 사람.
짧게 자른 짙은 밤색의 머리카락 덕분에 숱 많은 눈썹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각성자 중에서도 돋보이게 큰 몸집과 몸을 덮은 단단한 근육 탓에 겉보기에는 그저 전사로 보이지만 그가 검룡의 책사, 계룡우룡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이제 거의 없었다.
혈귀단의 습격으로부터 열흘이 지났다.
겸사겸사 계룡에 내려온 김영호는 놀라움 반, 감탄 반이었다.
유성길드의 건축단이 파괴된 마을을 재건하고 있었다. 보령회와 청주성방의 얼굴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복구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생명을 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던 이들은 곧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집, 가구. 밭에서 자라고 있던 배추, 논에 옮겨 심을 모판, 곧 수확할 수 있었을 애호박. 망가진 일미호 꼬치구이용 철판.
그런 자질구레하지만 중요한 것들이 상실되었다는 깨달음은 아쉬움이 되고 곧 불만으로 바뀐다. 그리고 쌓인 불만은 어딘가로 향하기 마련이다.
예전이었다면 정부.
지금은 자신을 보호하는 조직.
하지만 계룡에서는 그러한 불만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반인들은 각성자들과 힘을 합쳐 재건에 몰두하고 있었다. 다들 활기가 넘쳤다.
김영호는 자신이 계룡문에 대해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검룡은 확실히 대단한 사람이다.
그러나 검룡이 계룡문의 전부는 아니다.
“…지금쯤 림이는 장벽을 넘어갔겠군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최지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렇겠지요. 행동이 워낙 빠른 분이시니.”
가볍게 대꾸한 김영호가 최지수의 안색을 살폈다.
최지수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김영호는 그의 목소리에 염려가 묻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설마 검룡을 걱정하는 건가? 그 검룡을? 20년 동안 활개치던 혈귀단을 한 번 전투로 끝장내고 혈왕의 목을 벤 검룡을? 에이, 설마……?’
그 전투를 목격한 이들의 말을 모두 믿기는 어려웠다. 제대로 본 사람도 거의 없었다. 여하튼 검룡이 엄청난 무위를 보여주었음은 확실했다.
잠시 침묵에 잠겨 있던 최지수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식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전에 부탁드린 것은 언제쯤 받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 가지고 왔습니다.”
“빠르시군요.”
김영호가 둘둘 말린 종이를 꺼내 최지수에게 건넸다.
균열과 괴물 서식지의 위치와 규모, 180여 개의 성과 알려진 산적의 본거지와 각각에 소속된 각성자의 숫자들까지 총망라된 전국 상세 지도였다.
지도를 살펴본 최지수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일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겠습니다.”
“…계룡과 김제 사이에 통행로를 뚫겠다 하셨지요?”
“예. 도로를 정비하고 괴물 서식지를 소탕한 후 초소를 설치하여 통행로를 관리하려고 합니다. 통행세만 지불하면 누구나 오갈 수 있는 안전한 길을 만드는 것이지요.”
“…대단하신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곳에 괴물도 많고, 산적떼가 워낙 들끓어서…….”
“다 방법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래요.”
김영호는 감탄과 함께 고개를 주억거렸다.
교통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실행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뿐.
위험 요소를 모두 치워버리고 안전한 통행로를 완성하여 누구나 쉽게 성과 성을 오갈 수 있도록 만든다. 블랙데이가 오기 전처럼.
‘검룡의 생각일까? 아니면 우룡? 여하튼 대단한 곳이야. 이 계룡문은.’
김영호가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뒤, 홀로 남은 최지수는 닫힌 문을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장벽 너머라고. 대체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곳에…….’
최지수는 그날 서림이 일부러 분노한 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혈왕은 죽었다. 혈귀단의 알려진 무력대 역시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혈귀단 잔당의 눈을 속여, 그 본거지를 찾아내 후환을 제거한다.
최지수는 서림의 생각을 읽었고, 서림이 바라는 대로 대응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앞으로의 방책을 의논하러 수련실의 문을 열었을 때 그 방은 이미 비어 있었다.
최지수는 다급하게 김강산을 불러 서림을 쫓아가라 했다.
김강산은 무슨 일인지 되묻지도 않고 도를 집어 들고 뛰쳐나갔다.
‘림아. 그렇게까지 해야 했느냐. 회복되지도 않은 몸으로…….’
김영호의 이야기를 들으니 다행히 김강산이 서림을 만난 모양이었다. 서림과 함께 자취를 감춘 서은창도 함께 있었다고 했다.
서림의 몸이 어느 정도 회복하기만 했다면, 그들을 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것은 괜한 우려일 것이었다.
최지수의 오른쪽 눈썹이 어지럽게 실룩였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만들지는 말거라, 림아.’
최지수는 서림을 기다리며 자신의 일을 하기로 했다.
서림이 돌아왔을 때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안전하고 안락한 계룡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
“들어가자.”
“…림이 형, 진짜? 진짜 레알 팩트? 계룡문을 두고 진짜로 장벽 너머로 가자고? 계룡문 소식도 듣기 힘들 텐데?”
“아무래도 걱정스럽지. 내가 사형 잘 모실 테니 김강산 너는 그만 계룡으로 컴백하시지.”
서은창이 히죽이며 말을 보태자 김강산의 입술이 불만스럽게 실룩였다.
하여튼 애새끼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절대 안 돌아가겠다고 난리더니 이제 장벽 너머로 꼭 가야겠느냐고 법석이니.
…뭐, 한 놈이라도 돌아가면 좋지.
김강산이 입을 꾹 닫고 눈알을 데록데록 굴렸다. 내가 얼른 입을 열었다.
“그래, 김강산 너는 계룡으로 돌…….”
“으아! 간다, 가! 시발, 장벽 너머! 좆같은 북쪽!”
주먹을 불끈 쥐며 김강산이 외쳤다.
이놈은 뭐가 이리 비장해.
고작 10킬로미터 위로 가는 것뿐인데.
.
.
.
땅굴은 깊었다.
깊고, 길고, 좁고,
슬라임으로 가득했다.
물론 우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스팟!
서은창의 검이 낙화난무(落花亂舞)를 펼쳤다.
허초(虛招)를 모두 실초(實招)로 바꾼 극한의 쾌검이 녀석의 손에서 펼쳐졌다.
좁은 땅굴을 꽉 메우고 있던 슬라임이 아홉 조각으로 잘려 바닥에 떨어지고,
화르륵!
김강산의 손을 떠난 아홉 개의 황염구(黃炎求)가 미끄덩한 조각들을 단번에 불살랐다.
열일곱 마리째 슬라임이 소멸했다.
역시 애들을 키워놓으니 신간이 편하다.
스팟. 화르르륵. 스팟. 화르륵. 를 오십 번쯤 반복하자 드디어 땅굴의 끝이 보였다.
작은 틈 사이로 가느다란 햇빛 줄기가 배어 들어왔다.
바위로 땅굴의 입구를 막아 놓은 모양.
탓.
내 발이 바닥을 걷어찼다.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수평베기. 수직베기.
좌하향. 우상단. 우하향. 좌상단.
월영검이 종이를 자르듯 커다란 바위를 조각조각 잘랐다.
잘려나간 바위조각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리고,
눈부신 햇살이 어둡던 땅굴을 단번에 환히 밝혔다.
떨어지는 돌조각과 흙먼지를 뚫고 내 발이 땅을 디뎠다.
곧이어 김강산과 서은창이 연달아 땅굴에서 빠져나왔다.
“사형, 몸 살피면서 살살 하십쇼.”
서은창이 나를 돌아보며 검을 뽑아들었다.
탐색술로 이미 알고 있었겠지.
시선이 닿는 곳이, 모두 괴물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