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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환생 검황-91화 (91/122)

91화.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다 (4)

콰아아!!!

월영검으로 쳐낸 화염탄 두 개가 차례로 벽에 부딪혀 폭발했다.

권강과 격돌한 화염탄이 허공에서 폭발하고,

내 어깨에 닿은 마지막 화염탄이 호신강기에 가로막혀 폭발했다.

“성주님을 해치디 말라!”

보위대장놈이 결연하게 외쳤다.

니들이 날린 화염탄, 내가 안 쳐냈으면 너네 성주님 이미 뒈졌…….

파앗! 팟!

폭발의 혼란을 틈타 닫힌 문으로 돌진하던 세 명의 보위대원이 탄지공(彈指攻)에 격중당해 순간적으로 멈칫거렸다.

찰나의 순간 솟구친 내 몸이 문 앞에 착지했다.

“어허. 여기가 어디라고.”

공주님이 문 안에 계신다.

두 아이를 달래는, 공주님의 떨리는 목소리가 아까부터 이 문 안에서 간헐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공주님 모시고 가는 게 메인 퀘스트다.

서브 퀘스트로 한수길은 처리했고.

‘보위대 박살’이라는 새로운 서브 퀘스트가 생긴 셈이다.

선두의 보위대장을 중심으로 아홉 명의 보위대원이 우르르 들어와 나를 포위했다.

어젯밤 미리 세상과 작별한 한 놈을 제외한 보위대 전원이 이곳에 모여 있다는 소리다. 즉,

‘계획대로 됐네.’

보위대장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계룡검룡. 맞는가?”

“잘 아시네요. 벌써 내가 유명해졌네.”

“…다시 만나면 내래 책임을 묻겠다 했었디.”

“난 오케이한 적 없는데.”

나는 새끼손톱으로 귀를 파며 놈의 말을 경청했다.

놈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자기수양이 된 놈이었다.

“계룡문이라 했디. 자네 젊은 혈기에, 조선성과 계룡문이 악연으로 연결되기를 바라나.”

“에이. 설마요.”

“우리 조선국이 타국을 침략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만약 공주님께 위해를 끼티면…….”

알지.

괴물 들끓고 각성자가 날뛰는 이 세상에서 30년 동안 안 망했는데 당연히 강하겠지.

그래서 나도 어지간하면 척을 지지 않으려 했다.

근데 어떻게 하냐고.

니들은 나쁜 놈이고.

내 엄마의 뜻을 지켜온 남지윤이 혁명당이고.

김강산 그놈의 쉥키가 자신이 계룡문이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내버렸는데.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다.

그리고 내 약점은, 계룡문이다.

혈귀단은 내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닌, 계룡문을 공격의 타겟으로 삼았다.

‘처음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어린 애들이 열심히 하는 게 귀여웠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아무리 빡세게 훈련을 시켜도 불평…

은 좀 있었지만.

‘언제부터였을까. 계룡문이 이리 소중해진 것이.’

약해빠진 놈들이 나를 따라서 다른 사람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모습에는 화도 났지만, 좀 감동적이기도 했다.

혈귀단의 습격에서 계룡성민이 아무도 희생되지 않았던 것은 계룡문 애들이 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소중한 여섯 목숨을 잃었다.

장벽을 넘어 온 뒤로 나는 계룡문이라는 내 약점을 숨기려 했다.

하지만 조선국 사람들의 입에서 ‘계룡문’이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내 의도는 이미 실패했다.

아니, 사실 내가 더 이상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강하게 만들어야지.’

어중이떠중이들이 대한길드를 공격하지 않듯.

그 누구도 파천궁을 습격하지 않듯.

아니, 그보다 더 강하게.

어느 누구도, 감히 생각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나는 검을 들어 올리며 비스듬히 웃었다.

조선국의 위대함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던 보위대장이 슬며시 입을 다물고는 나를 주시했다.

“성주님을 어띠한 간.”

아. 아직도 이놈 멱살을 잡고 있었네.

“어쩌긴. 이렇게 하지.”

성주놈을 내던지자 보위대 하나가 통나무처럼 굳은 몸을 받아들었다.

“그건 시간 지나면 자연스럽게 풀릴 거야. 괜히 해독하겠다고 약물 넣어서 애 힘들게 하지 마.”

나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믿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러면 너네 손해지.

이 전투에 인질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나는 오늘 네놈들에게 내 무위를 보여줄 생각이거든.

“자.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

내가 입술 끝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마력이 느껴디디 않는다고 방심허디 말라. 대단한 고수다.”

보위대장이 진중하게 애들을 단속했다.

아주 마음에 쏙 드는 태도다.

최선을 다한 전투에서 패배해야 실력차를 절감하기 마련.

“야. 안 들어와? 나 기다림에 취미 없거든?”

시간은 충분히 끌었다.

공성희가 이끄는 탈출조가 순찰단에 잡혀 있던 포로들을 탈출시키고,

김강산과 서은창이 방위단의 이목을 끄는 사이 잠입한 2진도 지금쯤이면 혁명당원들의 가족들을 데리고 성벽을 넘었을 터.

‘내가 늦게 가면, 걱정하는 애새끼가 있어서 말이지.’

보위대장놈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놈들의 마력이 단번에 증폭했다.

이 정도야 이미 예상…….

‘두 배… 아니, 세 배?’

하하.

하하하.

정말 최선을 다하네. 그래, 노리던 바이기는 한데…….

‘나 어제 아침부터 한숨도 못 자고 졸라리 굴렀다고. 이 인간들아.’

밤샘과 과로가 건강에 얼마나 안 좋은데.

내가 젊어서 망정이지.

한숨을 꼴딱 삼키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단전에서 출발한 진기가 기맥을 타고 올라,

단번에 월영검을 희게 빛냈다.

그 순간.

오른편에서 쌍검이 날아들었다. 불길을 휘감은 검날의 목적지는 내 어깨.

왼발을 깊숙이 디디며 두 자루 검을 회피하자 기다렸다는 듯 바닥에 구덩이가 파였다.

조금 전까지 바닥이었던 시멘트가 강철검으로 화해 내 온몸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캉! 카캉!

호신강기에 부딪힌 강철검이 허무하게 바닥으로 떨어져 흙과 모래로 돌아갔다.

허공답보로 구덩이를 빠져나오는 나를 향해 철퇴와 흑도, 검이 쇄도했다.

‘역시 합이 잘 맞기는 한데.’

경지가 달라서 말이지.

한 번 더 허공을 걷어차자, 속도가 붙은 내 몸이 합공을 빠져나왔다.

철퇴가 흑도를 내리치고, 흑도가 검을 가로막았다.

허공에서 몸을 반 바퀴 돌린 내 발이 높은 천장을 걷어찼다.

한눈에 들어오는 놈들의 열한 개 대가리를 향해 내가 월영검을 휘둘렀다.

퍽. 퍽. 퍼벅. 퍼버버버버벅. 퍼어억.

대가리를 후려 맞은 놈들이 철퍽철퍽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오직 한 놈만이 내력이 담긴 후려치기를 버텨냈다.

버텨낸 대장놈이 이를 악물며 달려들었다.

매서운 검격이 허리를 노리며 공간을 가로로 갈랐다. 검을 휘감은 파르스름한 불길이 검날보다 먼저 몸에 닿았다.

호신강기도 불태우는 청염(靑炎).

검을 둥글게 휘두르자 희게 빛나는 검막(劍膜)이 불길을 가로막았다. 단번에 손목을 비틀어 검의 방향을 바꿔 약해진 불길 사이로 월영검을 찔러 넣었다.

파앗.

다급하게 세운 화염벽을 가볍게 통과한 월영검이 놈의 가슴팍을 스쳤다.

‘제법이군.’

꿰뚫을 생각이었는데, 그걸 피했다.

힘과 반응 속도, 마력과 검술이 썩 괜찮은 놈이다.

놈이 물러서며 생긴 공간에 내 발이 가볍게 착지하고,

다시 쇄도했다.

우하향으로 비스듬히 휘두른 월영검을 놈의 검이 가로막았다.

검과 검이 부딪히고, 단번에 떨어졌다.

놈의 검에 일렁이던 푸른 불길이 살아 있는 듯 일렁이며 나를 덮쳐들었다.

‘이런 방식으로도 청염을 사용할 수 있네.’

쏟아부은 진기에, 월영검을 빛내던 검기가 순식간에 증폭했다.

검을 수직으로 내리긋자 푸른 불길이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그 속으로 짓쳐들며 검을 수평으로 내질렀다.

파슉!

검기의 끝을 타고 솟아오른 검기가 놈의 오른쪽 무릎을 꿰뚫었다.

“어허. 거기는 출입금지라고.”

가볍게 날린 권강(拳剛)이 문을 향해 뛰어들던 보위대원의 등줄기에 격중했다. 짧은 비명과 함께, 놈이 개구락지처럼 철푸덕 나자빠졌다.

‘죽을까봐 신경 썼더니. 좀 약했고만.’

대가리를 후려 맞은 보위대 놈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슬금슬금 일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의 기세는 완전히 잃었다.

아직까지 눈알에 힘을 주고 있는 놈들은 절반 정도.

나머지 놈들은 엉덩이가 뒤로 빠진 꼴이 바지에 똥이라도 지린 모양새다.

보위대장이 목소리를 높여 애새끼들을 독려했다.

“13보위대! 죽음으로 공주님을 지킨……!”

어이. 어이.

공주님은 안전하게 모셔갔다가 편안하게 돌려보내 드릴 거라고요. 뭐 그런 거에 목숨을 걸어.

찔러 들어간 검날이 대장놈의 문장을 잘랐다.

피를 흘리는 오른쪽 무릎을 절름거리며, 놈이 검을 내질렀다.

아까에 비해 속도와 힘이 모두 줄었다.

어깨를 노린 검을 어깨를 뒤쳐 회피하며 검등으로 놈의 목을 후려쳤다.

가까스로 쓰러지지 않고 버텨낸 놈을 향해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등줄기에 얼음 화살이 날아왔다.

재빨리 몸을 회전해 월영검으로 화살을 쳐냈다.

수십 개의 화살이 조각나 기화했…….

카앙!

“아이고야. 여기 무섭네.”

월영검이 대장놈의 검을 가로막았다.

대장놈의 검날이 향한 방향은 내가 아니었다.

박살난 문을 향해 내빼려던, 부하놈의 대가리 위였다.

대장놈이 차갑게 내뱉었다.

“오주락이 참 넓수다레. 남쪽 동무들은 모다 그러하나?”

“모두는 아니고, 내가 좀 그래.”

그 검 아래 부하놈은…….

…야. 너 오줌 지렸지.

어린애다.

덩치는 산만하지만 열둘도 넘지 않은 듯했다. 얼굴에 솜털이 보송했다.

마치, 처음 보육원에 왔을 때의 김강산처럼.

“오늘은 피를 보지 않기로 결정했거든.”

조선국과의 악연은 어쩔 수 없겠지만 굳이 최악의 관계로 내달릴 필요는 없다.

검과 검을 맞댄 채로, 대장놈이 어금니를 악물며 마력을 집중했다.

단번에 불길을 휘감은 검이 엄청난 힘으로 월영검을 내리눌렀다.

검날을 타고 쏟아지는 청염은 덤.

하지만.

‘강한 힘에 힘으로 맞설 필요는 없지.’

손목에 힘을 빼고 검을 비스듬히 눕히자, 놈의 검이 검날을 타고 흘러내렸다.

검받이와 검받이가 부딪히기 직전.

단번에 손목을 뒤틀어 놈의 가슴팍을 찔렀다.

놈이 다급하게 검을 끌어당겨 방어를 시도했지만,

스파앗!

채 검이 회수되기 전에 월영검의 검날이 놈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검을 비틀어 뽑아내자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휘청이면서 휘둘러진 놈의 공격을 검등으로 가볍게 쳐내고, 다시 월영검을 내질렀다.

이번에는 반대쪽 어깨.

그리고, 두 군데 무릎.

마지막으로, 마혈을 짚었다.

이내 피곤죽이 된 보위대 대장놈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오널은 피를 보디 않기로 했다더니……!”

“수사적 표현이지. 몰라?”

이 정도 해놨으니 한동안 쫓아오지는 못할 테고.

나는 검을 어깨에 걸치며 남은 보위대원들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놈들은 이제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너네. 이대로 돌아가면 죽을 걸.

“대장님 박살나는 꼴을 보고만 있을 거냐? 검을 들었으면 찔러야지, 멍청이들아.”

“으아아!!!”

“죽여!! 죽이라우!!!”

고함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와 함께 모든 놈들이 한꺼번에 쇄도했다.

그리고, 곧.

대장놈과 같은 신세가 되었다.

***

똑. 똑.

“공주님. 들어갑니다.”

물론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월영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서은창에게 그리 얘기했지만, 나 역시 일반인 납치가 그리 즐겁지는 않았다.

‘생이라는 게 그렇지. 언제는 원하는 것만 하면서 살았다고.’

쓴웃음을 삼키며 월영검을 한 번 더 휘두르자, 나무문이 네모지게 잘려나갔다.

나는 쓰러진 문을 밟고 방으로 들어…

“문이 안 잠기었는데 어띠 망가뜨립… 웁! 우웁!”

가려다가 멈췄다.

똘망한 눈의 아이가 검지로 나를 똑바로 가리키며 호기롭게 지껄였다. 여자의 손바닥이 다급히 아이의 입을 막았다.

아이는 여자의 품에 안겨 잠시 웁웁거리다가 이내 검은 머리카락에 이마를 파묻었다.

“죄송, 합네다… 어르나라… 저이 당장 귀하럴 따라가겄으니 제발 아이들은 놔주시라우…….”

여자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방울방울 눈물을 떨어뜨렸다.

아. 여기 분위기 갑자기 왜 이러냐.

감히 어떤 새끼가 무엄하게 이 지랄이냐고 날뛰면 그나마 마음이 편할 텐데.

‘그러니까, 얘가 여섯 살이고.’

공주 엄마의 등 뒤에서 나를 빼꼼 보고 있던 아이가 시선이 마주치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엄마의 뒤로 숨었다.

‘쟤가 네 살이라고.’

음. 으음.

이마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손바닥으로 땀을 닦아보니 붉은색이었다.

땀이 아니라 보위대 놈들의 피였다.

아니, 어쩌면 애들 아버지의 피일지도.

…아무래도 나 지금, 되게 나쁜 사람 같은데.

‘소화야. 이거는 앞뒤 상황을 알아야 한다. 너도 이해는… 좀 어렵겠지?’

협행멸악(俠行滅惡) 구약보세(求弱保世)를 문훈으로 삼는 월악문의 개파시조이자, 지키는 검이 되겠다 약조한 계룡문의 대표로서 깊은 자괴감이 몰려왔다.

나는 애써 자괴감을 짓누르며 양쪽 입꼬리를 인정사정없이 끌어올렸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눈꼬리를 접었다.

“공주님. 해치지 않아요. 저 무서운 사람 아니에요.”

피떡칠을 한 채 납치하러 온 사람이 지껄이기에는 좀 앞뒤가 맞지 말이다. 나도 알기는 알…….

“동무는, 천사임매?”

…응? 이건 무슨 신박한 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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