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계룡검룡이라는 이름 (2)
사기꾼이 사기를 치는 이유가 무엇이냐. 다 애새끼들 등쳐먹으려고 그러는 거다.
사칭범이 사칭을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그런 놈이 이런 기회를 안다면 들이대지 않을 리 없다.
그 앞에 대기줄이 꽤나 길어 보이기는 하지만…….
‘제 힘 믿고 나대는 놈들 정신교육 시키면 그것도 좋지.’
그야말로 일석이조에 일거양득에다 일타쌍피다.
나는 연신 나를 힐끗거리는 시선들을 모른체하며 느긋하게 꼬치를 씹고 맥주를 마셨다.
맥주도 맛있더니 꼬치는 아주 끝내줬다. 계룡의 일호꼬치도 맛있다고 여겼는데 그와 비할 바가 아니다. 대체 무엇으로 양념을 했는지 일미호 특유의 누린내는 온데간데없다. 겉은 바삭, 속은 촉촉. 그야말로 겉바속촉 그 자체….
아. 맛집탐방 온 게 아닌데.
하마터면 장르 바뀔 뻔했다.
나는 꼬치 다섯 그릇을 해치우고 빵빵한 배를 두들기며 주점을 나섰다.
바깥에는 여전히 굵은 빗줄기가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세 놈의 각성자가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은 내가 주점 뒤 으슥한 골목으로 막 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어이.”
빗소리를 뚫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외면하며 빠르게 발을 뗐다. 세 걸음도 떼지 않아 곧 완벽한 사각에 도착했다.
“야, 이 프롤 새끼….”
퍼버버버버버벅.
연달아 일곱 번 연격을 얻어맞은 놈이 빗길에 나자빠졌다.
“어… 이 새….”
놈의 동료가 얼빵하게 말을 더듬다가 첫 번째 놈 곁에 나란히 누웠다.
마지막 남은 한 놈이 간신히 검을 빼 들었다.
판단이 빠르고 동작이 간결했다. 물론 절대적으로는 전혀 아니고, 앞에 두 놈들에 비하면 그렇다는 의미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놈의 검을 향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3미터가 넘는 긴 얼음창으로 변한 검을 내지르며 놈이 쇄도했다.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움직일 필요도 없거든, 이 정도는.
내뻗은 얼음창의 창날이 단번에 가까워지고,
내리던 빗줄기가 모두 얼음송곳이 되어 사방에서 날아들었으나.
펑! 퍼엉! 퍼버버벙!
끌어올린 호신강기에 부딪힌 얼음송곳이 허무하게 박살나 다시 빗줄기로 화했다.
쇄도하던 얼음창의 창끝이 거세게 떨리기 시작했다.
쯧.
이렇게 평정심을 지키지 못하는 놈이 무슨 강도짓을 한다고.
“죽….”
“이지는 않을게.”
놈은 짧은 일갈도 끝내지 못했다.
어깨를 비틀어 가볍게 창날을 회피한 내가 월영검의 검등으로 놈의 대가리를 후려쳤기 때문.
나는 놈의 말을 받아 친절하게 문장을 마무리해 주었다.
이내 괴성을 내지른 놈이 자신의 두 동료 옆에 나란히 누웠다.
“끝났어?”
마력을 누른 채 무너진 빌라 사이에 숨어 있던 김강산이 풀썩 뛰어나왔다.
“끝나기는.”
골목 바깥 대로변에서 나를 찾는 이들이 속닥이는 목소리들이 빗소리 사이로 은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널브러진 놈들을 가볍게 걷어차며, 김강산이 말했다.
“야. 무릎 꿇고 손들어. 안 뒤진 거 알거든?”
세 놈이 주섬주섬 손을 들다가 행동이 굼뜨다며 김강산에게 대가리를 후려 맞았다. 찰진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물방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역시 대가리도 맞아 본 놈이 잘 때린다.
“잘 데리고 있어라.”
“옙. 형아.”
나는 다시 골목 바깥으로 향했다.
역시 몇 걸음 걷지 않아 내가 기다리던 놈들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곧, 같은 신세가 되었다.
.
.
.
“참 순천성도 큰일이다, 큰일.”
나는 팔짱을 낀 채 무릎을 꿇고 앉은 놈들을 한 바퀴 훑었다.
열하나. 십일. 일레븐.
내가 주점을 나오자 내 뒤를 따라와 나를 덮친 놈들의 숫자다.
주점의 인간들이 서른 남짓이었으니 1/3이 넘는 놈들이 일반인의 가방을 털려고 들이댔다는 의미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다음부터는 절대로 이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정말로 잘못했습니다. 사무치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집에 굶주리는 딸이 있어서 눈이 뒤집혔습니다. 선생님, 형님, 이번 한 번만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면 결코!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 악!”
말들이 많은 놈들이었다.
김강산이 말 많은 놈들의 대가리를 리드미컬하게 후려쳤다.
“됐고. 너.”
나는 그중에 가장 말 많은 놈을 짚었다.
“계룡검룡이 순천성에 있다던데. 이 중에 그놈이 있냐?”
놈이 단춧구멍같이 작은 눈깔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그분께서 이런 짓을 하실 리가 없… 악!”
“헛소리 말고. 있냐, 없냐.”
“저는 한 번도 뵌 적이 없어서…….”
한 놈이 슬그머니 팔을 들었다.
놈이 슬몃슬몃 김강산의 눈치를 살폈다.
“말해.”
“지금 이 근방에는 안 계십니다. 제가 사흘 전에 검룡님을 뵈었습니다.”
“어디서?”
“상사댐이 터져서 주암호가 범람했습죠. 제 집이 그 근처라… 주암호에 서식하던 메두사가 나타나 하마터면 마을이 전멸할 뻔했는데 계룡검룡님께서 나타나셔서…….”
대충 들어보니 그 사칭범이 메두사 커플을 박살내고 마을 사람들을 구했다는 미담이었다.
오늘 오전에 성을 돌아다니며 주워들은 이야기들과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순천성에 도착해 오전 내내 거리를 헤매며 계룡검룡이 있는 곳을 아느냐고 물었으나,
-저희 같은 사람들이 검룡님께서 계신 곳을 어찌 압니까.
-아이고야… 아시게 되면 저한테도 꼭 가르쳐 주십시오. 구해주신 은혜를 갚지도 못했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리고, 뭐랄까.
-…사칭범 주제에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다니네?
-형. 뭔 소리야. 그래봐야 사칭범이지!
놈의 행적은 좀, 꽤, 많이 기묘했다.
그 사칭범은 바로 오늘 낮에도 순청성을 관통하는 동천의 천변에 무리지어 나타난 나가 떼를 박살내고 인근을 지나던 일반인들을 구출했다고 했다.
다른 이름도 아니고 계룡검룡을 사칭했으니 선행을 하기는 해야겠지. 내가 워낙 그쪽으로도 이름이 높으니까.
그래놓고 분명 뒤로는 남들 등쳐먹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귀찮아 뒈지겠는데 순천까지 행차하게 만든 값은 톡톡히 받아가야겠다고 이를 갈았는데.
설마 진짜로 내 이름을 사칭해서 선행을 저지른… 아니, 선행을 베풀었다고? 사칭범이?
하. 하. 하.
그럴 리가. 그런 놈이 사칭을 하고 다닐 리가.
“그래서, 그 새끼가 뭘 요구하디?”
“…요구요?”
“메두사를 잡아주는 대가로 뭘 요구했냐고. 돈? 곡식? 아니면, 여자라도 내놓으라고…….”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놈이 덥석 내 말을 잘랐다.
쭈뼛쭈뼛하던 놈의 얼굴색이 바뀌어 있다. 주눅 들어 있던 목소리에 날카롭게 날이 섰다.
“어디에서 무슨 개소문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으나, 계룡검룡님께서는 그럴 분이 아니시라는 거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압니다. 계룡성에 야인들을 받아들이시고, 보령성을 구원하시고, 또한 그 혈귀단의 마수에서….”
응. 알어.
그거 내가 했거든.
김강산의 입술이 실룩실룩 움직였다. 치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힘겹게 붙잡느라 김강산이 얼굴을 괴상하게 일그러뜨렸다.
다른 놈들도 얼굴을 굳히고 나를 은근히 노려보는 꼴이 계룡검룡을 꽤나 존경하는 모양이다.
그런 놈들이 돈 많이 가진 일반인 뒤통수를 치고 지랄이니.
존경을 했으면 배워야지.
나는 팔짱을 끼며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계룡검룡이 아주 대단하신 분인 거 나도 알지.”
“그럼요! 이제야 말이 통하네요. 제가 얼마나 검룡님을 존경하는데요! 제 롤모델이십니다! 검룡님께서는 절대로 뭘 요구하고 그러는 분이 아니… 으악악! 끼아우악!”
놈이 눈알을 까뒤집으며 빗물 위로 철푸닥 엎어졌다.
“너나 잘해, 이 새끼야. 연약한 일반인 털려고 뒤통수 깐 주제에, 뭐? 검룡을 존경해? 로올모데엘?”
골목에서 바깥의 인기척을 확인하고 있던 김강산이 작게 투덜거렸다.
“형. 솔직히 연약한 일반인은 개구라… 넵. 닥칠게요.”
그 재빠른 전환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앉은 놈들이 고개를 숙이고 킬킬거렸다.
분위기 파악이 영 안 되는 놈들이다.
“강산아. 애새끼들 교육 좀 해라.”
“예압, 형님!”
김강산이 신이 나서 경례를 올려붙였다.
“…강산? 김, 강산? 계룡…좌…?”
손들고 앉아 있던 한 놈이 문득 중얼거렸다.
놈의 황망한 눈동자가 김강산과 나 사이를 어지럽게 오갔다.
“…검룡…님……?”
참 일찍도 알아본다, 이놈들아.
나는 깊숙이 눌러 썼던 캡을 벗어 검지에 끼고 놈들을 휘둘러보았다.
인간이 놀랄 때 보이는 모든 표정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곧 놈들이 비명을 지르며 엎어지다가 김강산에게 시끄럽다고 타박을 들었다. 그리고 비명을 삼키며 엎어졌다.
이놈들은 이 정도면 됐고.
이제 선행 저지르고 다니는 사칭범을 잡아야겠는데 말이지.
단순히 계룡검룡 팬질하는 또라이인지.
아니면 착한 척 잔뜩 하면서 뒷구멍으로 구린 짓을 꾸미고 있는지.
전자라면 대가리 후리고 끝내겠지만, 후자라면 철저히 박살내야 한다. 그래야 또 같은 생각 하는 놈이 안 생기거든.
팔을 잘라서 순천성문에 내걸을까. 아니면 다리를 잘라서 순천성을 끌고 다닐까. 아니면…….
‘뭐. 일단 잡고 나서 생각하자고.’
***
마혈과 아혈이 눌려 골목 안에 널브러져 있는 놈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칭범은 꽤나 오지랖이 넓고 선행을 저지르는 놈이었다.
내 캐릭터 분석을 열심히 했는지 그 행적이 확실히 나랑 비슷하기는 하다.
그렇다면 내가 시나리오를 잘못 짰다.
돈 많은 일반인 설정이 아니라, 연약한 일반인이 각성자에게 겁박당하는 장면을 연출했어야 하는데.
그래서 이번에는 사칭범의 취향에 맞춰 핀포인트로 세팅을 했다. 나에게 맞춰 세팅을 한다고 생각하니 아주 손쉬웠다.
“형. 진짜지? 나중에 대가리 후려치기로 돌아오는 거 아니지?”
“내가 그렇게 작은 마음의 인간이냐.”
“어.”
“이놈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김강산이 재빨리 회피하며 왼손으로 제 정수리를 방어했다. 그리고 히죽거리며 사라졌다.
나는 검은색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비 오는 거리를 천천히 산책했다.
넓은 호수 공원을 옆에 끼고 있는 순천 제일의 번화가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순천성의 공식 방위조직이라는 팔마회의 본부가 멀지 않아서 그런지 각성자들이 꽤나 많이 눈에 띄었다.
잘 관리된 4차선 도로 양옆으로 무기 상점과 방어구 상점, 가죽 갑옷 상점과 주점 따위가 늘어서 있었다.
계룡만큼은 아니지만 순천성도 꽤 살기 좋은 동네 같았다.
원산성에서 흔히 보이던, 삐쩍 마른 아이들이 손을 내밀고 구걸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
‘무등길드가 성 방어에 열심이라고 했지.’
무등길드의 적극성은 다른 여타 길드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유성길드도 이만큼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무등길드의 전대 길드장도 재앙 주작(朱雀)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그때 주작이 공격한 성은 무등길드의 본성인 광주성이 아닌, 전주성이었다.
그 이후로도 공격적인 원정을 자주 펼친 끝에 무등길드가 관리하는 전라 지역은 꽤 살기 좋은 동네가 되었다.
계룡문과 가는 길이 비슷하다. 길드장인 무등쌍협도 나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고.
‘시간이 나면 한 번 방문해 볼까.’
다른 조직과 관계를 돈독히 해 두어 나쁠 것은 없다.
더군다나 드넓은 호남평야와 만경평야에서 나오는 품질 좋은 쌀은 남한 전체의 각성자들에게 탄수화물을 제공하는 원천….
“야.”
불쑥 튀어나온 덩치 큰 사내가 생각에 잠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붉은 머리카락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렸다.
날카로운 인상의 거도를 맨 사내…….
김강산이다.
다른 연기에는 영 소질이 없었는데 양아치 연기가 아주 찰떡이다.
짝다리를 짚고 선 김강산이 건들거리며 검지를 까닥였다.
“너 말이야.”
“네? 저요?”
내가 화들짝 놀라며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자, 김강산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김강산이 지껄이기 시작했다.
“프롤 새끼가 돈벼락을 맞았다지. 목숨 건져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해도 모자랄 판에 돈을 들고 주점에 들어와? 그 돈 내가 맡아 주지. 좋게 말할 때 가방 내려놓고 꺼져.”
김강산의 커다란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모였다. 몇몇 이들은 바삐 옮기던 걸음을 멈추고 연약한 일반인을 겁박하는 각성자의 악행을 주시했다.
‘진짜 계룡검룡처럼 굴고 싶다면 이걸 그냥 넘기면 안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