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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환생 검황-121화 (121/122)

121화. 내 취향이 문제 (1)

-검룡님께서는 바다를 헤엄쳐 본 적이 없으시다 하셨죠.

-저기요. 이 세상에 바다 수영 하는 사람 당신 하나일 걸.

-하하… 그러네요. 수영은 할 줄 아신다고요.

-응.

사실 수영 못 한다고 김강산을 쫓아 보냈지만 나도 이번 생에는 수영 안 해봤다. 한지혁으로 살 때 해봤지.

바다 말고, 1.5미터 깊이 실내수영장…이 전부이기는 하지만.

나름 잘했다.

한지혁이 9살 때 상급반을 넘어 펭귄반까지 승급했다. 그때 내가 어린이 수영클럽 에이스였다.

실내수영장이나 바다나 거기서 거기겠지 싶었는데.

‘완전 다르잖아!’

해수독과 해양괴물이 문제라 여겼지 수영에서 발목 잡힐 줄은 예상도 못 했다고.

환생 검황인 내가 고작 수영 따위를…….

…생각해보니 검황일 때도 수영 못 했네.

등평도수(登萍渡水)를 죽어라 익힌 이유도 물이 싫어서였으니.

하하.

하하하…… 하아.

콰아아!

거센 폭음이 귀를 강타했다.

연환퇴(連環腿)가 죄 없는 바닷물을 걷어찬 것.

이놈의 발이 수영을 하랬더니 공격을 하고 자빠졌다.

물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치고, 물방울이 비산하고,

잔잔하던 수면이 태풍 맞은 듯 요란하게 요동치고,

그 사이로 솟아오른 내 몸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공중을 날아올라,

출렁이는 수면 위로 우아하게 착지했다.

수면 위로 목을 빼꼼 내민 양범진이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물 위를 걷고 있으신… 와…….”

본능적인 감탄을 뱉어낸 양범진이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를 걸으시니 검룡님께서는 그렇게 제주까지 가시면 되겠군요. 그러면 굳이 수중 전투 연습하실 필요 없으실….”

“그게 되겠냐.”

이런 거 처음 보겠지.

허공답보(虛空踏步)에 이은 등평도수(登萍渡水). 돈 주고도 못 보는 상승 경공의 향연이기는 한데.

이걸로는 금강이나 건너지 장강도 못 건넌다. 내력이 어마어마하게 소모되거든.

연곡혈(然谷穴)과 조해혈(照海穴)에서 진기를 거두자, 두 발이 출렁이는 수면 속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발은 땅에 닿지 않았다.

수영이라는 거, 대체 어떻게 하는 거더라.

할 줄 알았었는데.

한지혁일 때에는 분명히 할 줄 알았었는데.

진짜 세상 일 쉬운 게 없다.

“수영할 줄 아신다더니 정말 잘하시네요?”

“뭐, 이쯤이야.”

나는 수면 속 팔다리를 1초에 30번씩 휘저으며 평온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물 위에 여유롭게 떠 있는 듯 보이는 오리가 사실 발에 땀나게 발차기를 하고 있다고 했었는데.

지금 내가 딱 그 꼴이다.

“그러면 저기 섬까지 가보실까요? 오는 길에 보니까 그 근처에 청상아리가 있더라고요.”

“청상아리? 그건 뭔데.”

“아하. 해양 괴물은 모르시죠?”

이놈.

눈빛이 묘하게 건방지다.

설마 이 감정이 자격지심이라는 것일까. 내 인생에 자격지심을 느끼는 날이 오다니.

“괜찮습니다. 제주 사람들도 몰라요. 말씀드린 대로 바다로 들어가는 사람은 저뿐이라서요. 덕분에 미친놈 취급도 많이 당했죠.”

“사람들이 보는 눈이 있네.”

놈이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아무튼 청상아리는 흔한 해양괴물입니다. 오크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꼬리에서 발사하는 독침은 마비독이고, 이빨이 매우 날카로우니까…”

나는 양범진의 설명을 귀담아 들었다. 거의 최지수 수준의 긴 설명이었으나 모두 모르는 얘기였다.

제주도민을 구하기는커녕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할 판이다.

“이제 가보실까요?”

“…그래.”

양범진이 상큼하게 뒤돌아 물속으로 잠수했다.

‘이걸 이제 와 물릴 수도 없고.’

나는 슬며시 올라오는 후회를 즈려밟으며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기도를 통과한 공기가 가슴팍을 부풀렸다.

허우적대며 물살을 휘젓던 팔과 다리를 멈추자,

내 몸이 천천히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한 번 간 길, 두 번째면 더욱 쉽겠지.’

몸이 기억하지 못하면 다시 쑤셔 넣어야지, 어쩌겠냐.

목에서 출렁이던 수면이 이마를 가로지르고, 곧 정수리까지 바닷물 속에 파묻혔다.

물을 통과하지 못한 불투명한 햇빛이 머리 위에서 흐릿하게 반짝였다.

‘일단 스페셜 아이템의 효능부터 확인해 볼까.’

해수독 중독을 막아준다는 청색초.

그 비슷한 풀이 있다는 이야기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만약 양범진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세계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한 발 나아갈 수 있을 터.

그리고 이걸 판매하면, 이걸 계룡에서 재배하는 데 성공하면…

‘부르는 게 값이겠지.’

소금은 댈 것도 아니다.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초 스페에에샬 아이템.

이미 양범진과 합법적이고 정당한 독점 계약도 맺어놓았다.

사칭범 따위와 계약이라니, 내가 참 점잖기는 하지.

구약보세도 하고, 아이템도 획득하고.

내가 선빵필승(先榜必勝) 다음으로 좋아하는 네 글자 단어가 일타쌍피(一打雙皮)라서.

일타쌍피 생각을 하니 절로 입에 침이 고였다.

나는 꼴깍꼴깍 군침을 삼키며 피부의 표면을 빠듯하게 채우고 있던 진기를 천천히 거두었다.

피부의 표면을 덮고 있던 호신강기가 조금씩 약해지고, 약해져서,

사라졌다.

‘…와우. 진짜네.’

해수독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보령의 해변에서 나가를 잡으면서 발에 물을 잠깐 담갔을 때도 소량의 해수독이 느껴졌었는데.

이제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는 일만 남았다.

이 바다를 건너가기만 하면…….

눈에 보이는 물속은 동 트기 전 새벽처럼 검푸른 빛이었다.

바닷물에 섞인 해수독 때문에 가시거리가 아주 짧다. 내 20여 미터 앞에서 헤엄치고 있는 양범진의 대가리가 겨우 보일 정도.

팔과 다리를 천천히 휘젓자 몸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해류가 앞을 가로막고, 물살이 제멋대로 등을 밀었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된 기분이다.

시각은 침침하고 청각은 둔중하다. 귀에 들어오는 모든 소리가 고장난 스피커를 통과한 듯 먹먹하게 울렸다. 방향과 거리도 제대로 감각되지가 않았다.

…고작 시각과 청각일 뿐이라고.

무인에게는 기감이라는 여섯 번째 감각이 존재하니까.

나는 물속에 기감의 그물을 넓게 펼…….

‘이거, 쉽지 않겠는데.’

진기가 생각만큼 뻗어나가지 않는다.

지상에서의 절반, 아니, 그보다도 좁다.

내 당황과 별개로 바다는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흐릿하게 보이던 해저면은 이제 짙은 바닷물에 가려 완전히 사라졌다.

모든 것이 막혀 있는 세계다. 사람들이 바다를 포기했던 것도 이해가 간다.

나는 옅은 위기감을 갈무리하며 주변을 훑었다.

‘양범진 이놈은 근처에 있겠다더니 어디 갔냐.’

바로 그 순간.

기감의 그물에 괴물의 마기가 감각되었다.

등 뒤에서 빠른 속도로 무엇인가가 접근하고 있었다.

검푸른 해수를 가르며 나를 향해 쇄도하는 푸르스름한 몸체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양범진이 얘기한 청상아리다. 내 해양사냥의 첫 번째 제물이 될 놈.

파아아아아!

먹먹한 귓속으로 둔중한 파열음이 새어들었다.

서늘한 물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놈이 쏘아낸 독침이 나를 향해 쇄도했다.

나는 거세게 바닥을 걷어차… 려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젠장, 바닥이 없잖아!’

물론 바닥이 없어도 방법은 있지. 하지만 괴물놈과 마주칠 때마다 이런 식으로 싸우다가는 근해를 벗어나기도 전에 내력 바닥나겠는데.

…일단 잡고 생각하자고.

훈련도 좋지만 중급 괴물이 쏘아낸 독침에 맞고 뒈질 수는 없으니까.

양손을 등 뒤로 길게 뻗으며 기운을 일으켰다.

기맥을 타고 오른 진기가 두손에 맺히고, 곧,

퍼엉! 펑!

발출된 권강(拳剛)이 두 줄기 물기둥을 만들며 물속에서 조용히 폭발했다.

그 반동으로 내 몸이 정면을 향해 총알처럼 쏘아져 나갔다.

수중의 폭발이 물의 흐름을 어지럽혔다.

날아오던 독침이 거세게 요동치는 물살에 빨려들어 어디론가로 쓸려가고,

순식간이 놈이 가까워졌다.

푸른빛으로 옅게 발광하는 나선형의 몸체. 크기는 대략 5미터 가량.

양범진이 말한 설명 그대로다.

내 코앞까지 짓쳐든 청상아리놈이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내 몸통을 단번에 삼킬 듯한 커다란 아가리에, 뾰족하게 돋아난 수십 개의 이빨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움직임이 자유롭지는 않지만 네놈한테 먹힐 정도는 아니라고.’

양손을 재빨리 휘젓자, 내 몸이 빙글 돌았다.

까---득----!

찢어질 듯 벌렸던 아가리가 바닷물을 거세게 깨물고,

천근추(千斤錘)로 몇십 배 무거워진 내 오른발이 놈의 다물린 콧등에 격중했다.

콰아아아!

어떠냐.

내 천근추(千斤錘)와 당랑각(螳螂脚) 콤보가.

‘……어이, 이 콤보를 맞고 멀쩡하다고?’

오크라면 대가리를 바닥에 박고 그 충격으로 꽤나 비틀거렸을 텐데. 운 좋으면 바로 관자놀이 일격으로 저 세상 보냈을 텐데.

‘물속이라 충격을 잘 흡수하는군.’

깊은 해저면을 향해 내리꽂혔던 청상아리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은 듯했다.

급격하게 방향을 바꾼 청상아리가 긴 몸통을 유연하게 구부렸다.

두 갈래로 갈라진 꼬리 사이에서 파득, 두 번째 독침이 쏘아져 나왔다.

연환퇴(連環腿)로 물살을 걷어차자 몸이 오른쪽으로 빙글 돌았다.

날아오던 독침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가슴팍 앞을 지나치고,

독침의 뒤를 따르듯 청상아리가 쇄도했다.

발사된 총알처럼 일직선을 그리며 정직하게 달려든 놈이 내 대가리를 단번에 삼키려는 듯 큰 입을 쫘아악 벌렸다가,

스파아아앗!

단번에 잘려나갔다.

월영검의 검날에 잠시 맺혔던 거뭇한 놈의 체액이 물살에 휩쓸려 흩어지고,

‘젠장. 사람들 말을 좀 들을 것을.’

곧, 피부를 뚫고 침투했다.

아주 짙은 마비독이다.

나는 있는 대로 호신강기를 끌어올리며 삼매진화로 기맥을 파고든 독을 불태웠다.

피부의 표면부터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가는 느낌이 선명했다. 독이 스미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

까지는 아니었으나.

중급 괴물의 괴독이 이 정도라면 상급 괴물의 괴독은 대체 얼마나 독할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현무의 극독, 혹은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상처 부위는 적을수록 좋습니다. 바다의 해수독과 괴물의 괴독이 결합하면 독성이 증폭하거든요.

-청색초 있잖아?

-괴독은 청색초로 못 막아습니다. 청색초는 해수독 중독만 막아 줍니다.

아무래도 전투 방식을 몽땅 바꿔야 할 성 싶…

‘아, 또 뭐냐고!’

은은하게 물을 가르는 소리가 멍멍한 귓가를 파고들었다.

나는 삼매진화에 진기를 몽땅 쏟아붓느라 잠시 거두어 들였던 기감의 그물을 서둘러 펼쳤다.

내 주위를 빙글빙글 맴도는 마기의 덩어리들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하하하.

하핳핳핳핳.

곧, 세 개의 독침이 내 몸통과 허리와 머리를 노리며 쏘아져 나왔다.

아직 몸은 물에 완전히 익숙해지지 못했다.

물은 생각보다 무겁고, 해류는 예상보다 빠르게 방향을 바꾼다.

하지만,

내가 누구냐고.

내가 쉽지 않다고 포기하는 사람이었다면 각성하지 못했던 그날 터덜터덜 희망보육원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그랬다면 내 계룡문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터.

‘해수독? 해양괴물? 얼마든지 박살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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