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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환생 검황-122화 (122/122)

122화. 내 취향이 문제 (2)

파아아아아아.

잠수함이 쏘아낸 미사일처럼 어둑한 물을 가르며 날아오는 독침은 이제 지척에 닿아 있었다.

나는 물속에 두둥실 뜬 채 쇄도하는 독침을 노려보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내력을 실은 손을 둥글게 휘젓자, 몸이 오른쪽으로 크게 휘었다. 내 생각보다 더 빠르게 내 몸이 물살을 갈랐다.

‘더 섬세하게.’

놈들이 쏘아낸 세 방의 독침은 나에게서 30센티 가량 떨어진 지점을 통과해 바다 저 멀리로 잠기어 갔다.

그 뒤를 따라, 다섯 마리 청상아리가 쇄도했다.

‘더 부드럽게.’

첫 번째로 달려든 청상아리의 아가리가 정수리 위 바닷물을 거세게 깨물었다.

‘더 예리하게.’

단전에서 출발한 진기가 태종혈(太鍾穴)과 조해혈(照海穴)에 가득 들어찼다.

경공을 시전할 때와 유사한 운용.

지상에서의 경공이라면 조해혈에 진기를 모으고, 지표면과 발바닥이 닿는 순간 연곡혈(然谷穴)을 통해 소량의 진기를 발출한다.

소모하는 내력이 적고 운용이 간단할 뿐 경공이란 결국 한 걸음 한 걸음이 작은 기공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물속에서는 발출한 진기가 닿을 지표면이 없다.

그렇다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지.’

나는 두 발을 가볍게 휘저었다. 기억에 남아 있는 자유형의 발차기를 흉내낸 모양새.

두어 번 더 발을 휘젓자, 단번에 속도가 붙었다.

연곡혈의 주위로 형성한 진기의 막.

마치 상어의 지느러미처럼 얇은 막이 내 발의 움직임에 따라 물살을 누르고 밀어냈다.

곧, 내 몸이 빠르게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진기를 발출하지 않는다. 그저 머물고, 펼칠 뿐.

내 몸이 유연하게 회전하고,

두 번째로 쇄도한 청상아리가 첫 번째 놈과 마찬가지로 허무하게 물을 깨물었다.

‘감 잡았고.’

관성을 이기지 못한 두 청상아리가 나를 지나쳐 깊은 물속으로 파묻혔다.

물론 곧 해맑게 컴백하겠지만,

‘그전에 먼저 하나.’

빠르게 가까워지는 세 번째 청상아리를 곁눈으로 확인하며 나는 두 손을 길게 뻗었다.

가느다란 빛줄기가 손바닥 위로 뾰족하게 솟아올랐다.

검기(劍氣)가 아닌, 기(氣)를 유형화한 기검(氣劍).

손바닥 크기만큼 짧고, 철침처럼 가느다랗다.

단검(短劍)이자, 세검(細劍)이다.

‘상처 부위는 적을수록 좋다 이거지.’

내 대가리를 한입에 삼키려다 실패한 놈이 빠른 속도로 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두 발을 휘저어 놈의 아랫배에 따라붙어 단번에 기검을 내질렀다.

날카로운 기검의 뾰족한 첨단이 놈의 두꺼운 가죽을 파고들고,

끄트머리마저 남지 않고 모두 처박혔다.

그리고.

파아아, 고요한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폭발이 일어난 곳은 놈의 몸 안.

두꺼운 가죽에 남은 상처는 기검이 파고든 미세한 상처뿐.

작은 구멍을 타고 흘러나오는 괴독의 양은 많지 않았다. 나는 권강을 발출해 괴독을 흩으며 다시 다리를 휘저었다.

곧, 내 몸이 남은 네 마리의 청상아리를 향해 한 줄기 흰 선을 그리며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잠시 후, 다섯 마리 청상아리는 모두 배를 까뒤집고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모두 뒈졌다는 얘기다.

“아오! 숨 막혀!”

수영이고 괴물이고 나발이고,

산소가 부족해 뒈질 뻔했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뱉었다.

또 들이쉬고, 또 내뱉었다.

스무 번 남짓 반복하고 나서야 가쁜 호흡이 잦아들었다.

턱까지 찼던 숨이 목구멍 정도로 내려갔달까.

급한 불을 끄니 잠시 잊었던 양범진이 떠올랐다.

“이 새끼. 어디 있냐.”

내가 분명 바다는 처음이라고 말을 했는데 말이지.

오늘은 연습이고, 자신이 옆에서 살필 테니 천천히 익숙해지라던 놈이 중간부터 사라져서 보이지도 않았다.

역시 사칭범 새끼 습관 어디 안 가지.

나를 바다에 몰아넣고 뒤통수치려…….

“검룡님!”

기감의 그물을 펼쳐 놈을 찾으려는데 때마침 먼 바다에서 양범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목소리가 들린 남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희끄무레한 수평선을 가리며 파르라한 섬들이 늘어선 고즈넉한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물속에서 벌어지는 사투는 제 알 바 아니라는 듯 파도가 들이치는 해변은 평화롭기 그지 없… 는 듯 보였었었었는데.

“…저게 뭐냐.”

섬과 섬 사이에 조금 전까지 없던 새로운 섬이 생겨 있었다.

불쑥, 새로 생겨난 섬의 한가운데에서 양범진의 대가리가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

내 위치를 확인한 양범진이 섬을 둘로 가르며 빠르게 헤엄치기 시작했다.

섬이 아니다.

섬처럼 보인 그 거대한 푸르름은 배때지를 드러내고 누운 수백 마리 청상아리의 시체였다.

“청상아리들이 꽤 몰려왔네요. 괜찮으시죠, 검룡님?”

“꽤?”

이걸 ‘꽤’라는 간단한 단어로 표현해도 되는 거냐고.

“이 정도면 약간이라고 해야겠지요, 역시.”

“약간?”

“혹시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검룡님?”

순식간에 내 코앞까지 다가온 양범진은 정말로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이 정도 규모의 괴물이 바다에서는 보통인 거다. 이런 놈들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나타난다는 거다.

후퇴할 성벽도 없고 마력 회복도 소주천도 제대로 못 돌리는 그런 상황에서 바다를 건너야 한다는 거다.

하하하.

하핳핳핳핳핳!

미친 짓이다.

역시 다른 사람들이 포기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이제 물에 익숙해지셨으면 출발할까요?”

“야. 나 지금 바다에 몸 담근 지 한 시간도 안 되었거든.”

“그러면 저녁 먹고 출발할까요?”

그리고,

미친 짓을 하는 인간은 미친놈이다.

내가 이 간단한 진리를 깜박 잊었다.

‘과거의 나놈아! 제발 나대지 좀 말라고오오!’

***

그리고, 일주일 후.

따가운 여름 햇볕이 팔랑이는 수면 위에서 반짝이며 빛났다. 서늘한 바람이 웃옷을 벗은 맨가슴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순풍을 받은 돛은 잔뜩 부풀어 있었다.

아주 평화로운 여름의 한낮…

일 리가 없지.

이놈의 괴물놈들.

길이 15미터짜리 작은 범선의 이물에서 방향타를 잡고 서 있는 양범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림아?”

“알어. 안다고.”

“내가 갈까? 너 바다에서 나온 지 5분도 안 지났는데.”

“됐어. 그러다가 길 잃으면 더 피곤하다고.”

실제로 그랬다.

양범진이 나한테 방향타 맡기고 괴물 잡으러 들어갔다가 방향이 꼬이는 바람에 바다 위를 이틀간 헤맸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처음 와 본 길, 지도도 없는 바닷길을 어떻게 아냐고.

내가, 긴 삶 속에서 운전은 해본 일이 없어서.

“다녀올게, 형.”

“림아, 조심해. 바다는 언제나 죽음의 입을…,”

“예, 예. 알겠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죽음의 입을 벌리고 있지요. 그렇지요.”

나는 휘적휘적 손을 저으며 고요히 바닷속으로 잠수했다.

아.

그 사이 양범진 녀석과 말을 텄다.

일주일 동안 함께 황천길 문턱을 여덟 번 밟고 나니 자연스럽게 말을 트게 되더라. 말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틀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양범진이 아니었으면 여덟 번 중 세 번은 문턱 너머로 들어갔을 거다. 물론 저놈을 안 만났다면 바다를 건널 일도 없었겠지만.

새로 개발한 수중용 기감의 그물을 펼치자 실처럼 가느다란 진기가 흐르는 물을 타고 내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물살에 얹혀 흘러간 기감의 그물이 예민하게 마기의 흐름을 잡아챘다.

은신을 사용했는지 형체가 흐릿했다.

세꼬리악어놈일 가능성이 97.88퍼센트다. 컴컴한 바닷속에 은신한 채 사냥감을 졸졸 따라다니며 기회를 살피다가 이때다 싶으면 덤벼드는 비겁한 새끼.

닷새 전 가시성게와 혈투를 벌이는데 저놈이 갑자기 뒤에서 덮쳐 바다 한가운데서 뒈질 뻔했다. 때맞춰 양범진이 도우러 와 다섯 번째 사망을 겨우 피했지만.

‘이제는 아니라고.’

그 사이 때려잡은 해양괴물이 수백 마리를 훌쩍 넘는다.

해저면의 바닥에 마력을 숨기고 바위처럼 웅크려 있던 외눈문어도,

발광하는 수십 개 촉수로 내 몸을 움켜쥐려던 거대해파리도,

해저면의 어두운 바위그늘에서 툭 튀어나와 내 뒤통수를 노린 온갖 물고기를 닮은 이름 없는 괴물들도,

모두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다.

깨닫고 보니 수중 전투 역시 육상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괴물을 죽여, 놈들을 세상과 작별하게 만들면 그만일 뿐.

범선의 50여 미터 뒤를 따라오고 있는 은신한 세꼬리악어는 꽤나 거대한 놈이었다.

흐릿한 형체로 추측하건데 그 본신의 몸체는 30미터는 훌쩍 넘을 터.

확실히 먼 바다로 나오니 괴물들 사이즈가 커졌다.

사이즈만이 아니다.

어지간한 중급 괴물의 가죽이 진강처럼 단단하고 괴독은 어찌나 짙은지 말도 못한다.

하지만, 그래봐야 괴물이다.

그리고 상대가 까다로울 때야말로 더욱,

‘선빵필승이지.’

팔을 휘젓자 물속의 몸이 빙글 돌았다.

머리가 바다의 바닥을 향하고, 발이 배의 밑창에 닿았다.

구부렸던 무릎을 펼치며, 가볍게 밑창을 밀었다.

내 몸이 물살을 헤치며 총알처럼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50미터 거리가 30미터가 되고,

30미터가 다시 10미터가 되었을 때.

콰가가가가가가!!!

양손으로 쏘아낸 두 방의 적(積)이 해수를 가르며 쏘아져 나갔다.

회피를 위해서는 은신을 풀어야만 하는, 급작스러운 공격.

흘러다니던 마기가 한곳으로 뭉치고, 흐릿하던 형체가 단번에 선명해졌다.

적(積)은 놈의 등허리와 주둥이에 격중했다.

물론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일주일 동안 바닷속에서 이 괴물 저 괴물과 부비적대며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다.

그 첫째, 해양괴물의 가죽은 육지괴물의 그것보다 훨씬 두껍다는 것.

그중에서도 세꼬리악어의 가죽은 열 손가락에 꼽혔다.

‘네놈 가죽이 찢어지면 나도 곤란하거든.’

괴독과 해수독이 만나 만들어내는 환장할 콜라보를 경험하는 일은 한 번으로도 충분하니까.

등 뒤로 젖힌 손바닥이 나란히 적(積)을 쏘아내자,

잠시 느려졌던 몸이 다시 속력을 더했다.

내 몸이 순식간에 놈을 향해 쇄도하고, 놈이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렸다.

나를 한입에 꿀꺽 하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입.

내가 한껏 호신강기를 끌어 올린 왼손으로 놈의 상악을 올려치는 순간.

콰가가가가!!!

놈의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회전했다. 그곳을 중심으로 해수가 거칠게 요동쳤다.

순식간에 내 몸이 그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의 중심은 수십 개 가시가 박힌 놈의 세 개 꼬리. 아마 뼈도 남지 않고 곤죽이 되겠지만.

‘갑작스런 초대는 사양합니다.’

연환퇴(連環腿)로 물길을 걷어차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며, 오른팔을 놈의 벌린 입속을 향해 깊숙이 뻗었다.

파앗.

오른손에 쥔 세검(細劍)이 놈의 혓바닥 속에 부드럽게 내리꽂혔다.

양범진의 충고를 받아들여 순천성에서 구입한, 철침처럼 가느다란 세검이다. 매번 기검(氣劍)을 생성해 공격하는 비효율적인 짓을 할 이유는 없으니.

의지의 부름에 따라,

단번에 기맥을 타고 오른 진기가 세검의 검날을 통과해 검끝에 맺혔다.

거세게 회전하는 기의 덩어리가 놈의 몸속 밀도 높은 마기와 충돌하고, 곧,

콰직!

고요히 폭발했다.

삼반공의 6절, 침(沈).

…이라고 이름은 붙였으나.

그저 적(積)의 변형일 뿐이다.

회전력을 높이고 폭발의 범위를 극도로 줄인, 해양괴물놈들을 위한 맞춤형 기공.

‘내가 원래 적응이 좀 빨라서.’

네 번 죽고 다섯 번 태어나 봐라. 너도 이렇게 될 걸.

입안에 침(沈)이라는 침(針)을 맞은 세꼬리악어가 거칠게 몸을 뒤챘다. 나는 적(積) 한 방을 벌린 아가리 속 목구멍 깊숙이 던져 넣고 그 반동을 이용해 놈의 입 속에서 빠져나왔다.

입속에 두 방 기공을 얻어맞고도 놈은 배를 까뒤집지 않았다. 역시 맷집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세꼬리악어답다.

그 대신, 놈은 광분했다.

아주 오래간만에 마주친 먹음직스러운 간식거리가 눈앞에서 알짱거리니 안 그래도 거의 없는 이성이 날아가는 것은 당연지사. 제주도지사.

스촤아아앗!

날카로운 수천 개의 가시를 매단 놈의 날카로운 꼬리가 순식간에 20여 미터 길이로 늘어났다. 험악한 모양의 세 가닥 꼬리가 거칠게 물살을 갈랐다.

기다리던 순간이다.

꼬리에 마력이 집중되는 찰나, 진강에 버금가던 강도의 가죽이 일순간 약해지니까.

한순간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내가 놈을 향해 매끄럽게 유영했다.

작살처럼 뾰족한 꼬리가 어깨 옆을 스치고, 두 번째 꼬리가 내 등줄기 위를 지났다.

호신강기를 끌어올린 왼손으로 세 번째 꼬리를 막아내며, 놈의 배때지를 향해 세검을 내지르자.

스파앗!

가느다란 세검이 놈의 두터운 가죽을 꿰뚫었다.

조금 전이라면 스치지도 않았을 가죽 속으로 파고든 세검의 검끝을 따라 솟아오른 검기가 놈의 가죽 속 살점을 깊숙이 헤집었다.

그리고,

파스스스스슷!

그 끝이 마핵에 닿고,

침(沈)이 놈의 안에서 고요히 폭발했다.

그리고,

끝. 디엔드.

두둥실 떠오르는 놈의 시체를 앞질러 나는 물살을 가로질러 내 소중한 범선의 갑판에 올라섰다.

수평선을 내다보던 양범진이 재빨리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세꼬리악어였어?”

“어.”

“다친 데는?”

“보시다시피.”

“고생했다.”

잠시 나를 응시한 양범진의 시선이 다시 수평선을 향했다.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가 있었다.

“림아. 저기 봐라.”

파르라한 수평선 한중간에 푸른 섬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마터면 찔끔 눈물이 날 뻔했다.

한지혁일 때 수학여행을 왔을 적에도 이렇게까지 반갑지는 않았었는데.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바다를 벗어나 육지를 밟는다는 생각에 나는 감개무량했다.

양범진의 목소리도 축축했다.

“다들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거야. 장로님들이 얼마나 기뻐하실지…….”

글쎄.

‘과연 그럴까.’

양범진이 제주를 떠난 지 반년이다.

호랑이 사라진 산에서 대장 노릇 하던 여우가 호랑이의 귀환을 반기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지.

‘뭐, 반긴다면 좋고. 아니라면…….’

순풍이 돛을 부풀리고, 바람이 배를 밀었다.

검은 바위에 파도가 부서지는 해안이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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