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빈국의 아이(2)
결과적으로 앨런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오히려 마나배터리에 마력을 빨렸을 당시가 며칠 후보다 훨씬 생기 넘쳤다.
아들의 말대로 되자 부부는 공장의 관리자에게 말을 전했고, 그는 진작 말하지 그랬냐고 성화를 부렸다.
당연했다. 생명체라면 모두 마력을 품고 있지만, 생명 활동 요구치 이상으로 생성, 저장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으니까.
심지어 앨런은 배터리를 살짝 만졌는데도 충전했지 않은가. 타고난 마나가 풍부하다는 의미였다.
첫 출근 날, 메리는 아들의 옷에 묻은 흙과 먼지를 최대한 털어냈다. 그러면서 당부의 말을 전했다.
“공장에서는 네가 제일 어려. 그러니 어딜 가든 누구를 만나든 존댓말을 해야 해.”
“네. 그렇게 할게요.”
“공장에서는 누구를 만날지 모르니 더 조심해야 해. 그리고 예의는 첫인상에 가산점을 주는 요인이란다.”
“네.”
“네 엄마 말이 맞다. 낮은 위치에서의 예의는 윗사람의 심술을 줄이고, 높은 위치에서의 예의는 다른 사람들의 호의를 사기 쉽다.”
공장에 도착하자, 부부는 마나배터리가 부착된 조끼를 착용 후 제자리로 향했고, 앨런은 관리자를 만났다.
깐깐하게 생긴 오크가 안경알을 빛냈다.
“네가 앨런이군.”
“안녕하세요.”
“일단 여기 앉아봐라.”
관리자는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가리켰다. 앨런이 착석하니 등에 손바닥을 댔다. 얼마나 큰지 과장 좀 보태서 등이 거의 다 가려질 정도였다.
“난 불필요한 말을 싫어하니 딱 한 번만 설명하겠다.”
“네.”
“지금 너에게 가르칠 운용법은 기초 중의 기초다. 하지만 자연회복보다는 마력생성이 빠르지.”
앨런도 부모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운용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것을 가르쳐서 자연의 마력을 흡수하게 한다고 했다.
마력 활동의 시작과 끝인 마나하트 생성 과정이 배제된, 오직 회복에만 집중한 운용법이었다. 물론 그것마저도 쥐꼬리보다 못하지만.
“먼저 운용경로는···. 음.”
“등이 좀 간지럽네요.”
“말하지 마라. 경로는···.”
마치 개미가 등을 기어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건 잠깐이었다. 앨런이 벽에 걸린 거울을 힐끔 쳐다보니, 난처해하는 관리자의 모습이 보였다.
“어제 잠을 안 잤더니···. 잠깐만 기다려라. 오늘 컨디션이 영 별로군.”
불필요한 말을 싫어한다는 관리자는 창문을 열고 스트레칭을 하더니 다시 등에 손을 얹었다.
아까보다 훨씬 강력한 자극이 전달되었다. 심장, 왼쪽 옆구리, 배꼽 아래, 오른쪽 옆구리, 간, 심장 순으로 화끈해졌다. 어린아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경로가 간단했다.
“후우. 이 정도는 가뿐하지.”
거울 속의 오크는 앨런이 몸을 돌리기 전에 빠른 속도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 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입을 열었다.
“운용법의 문구는 공장 곳곳에 적혀있으니 일할 때는 항상 암송해라. 7일마다 한 번씩, 앞으로 세 번 방문하고. 운용경로를 외우는 데 도움을 줄테니.”
“여기에서 일하는 분들은 모두 운용법을 익혔나요?”
“아니. 100명이라면 5명 정도? 그 다섯도 마나하트는 당연히 없지. 그러니 너무 매달리지 마라. 나머지 요령이나 규칙, 임금 계산 등은 부모에게 배워라.”
관리자가 손을 휘휘 저었다. 앨런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아빠와 엄마를 찾았다. 바닥에 앉아있는 둘은 마나배터리와 연결된 주삿바늘을 팔뚝에 꽂고 있었다.
“아빠도 운용법 알아요?”
“그럼. 덕분에 아빠와 엄마는 남들보다 충전 속도가 빨라서 일당도 높지. 일단 여기 앉아라. 주의할 점은 하나야. 머리가 핑 돌면 그날은 꼭 쉴 것.”
“왜요?”
“마력이 부족하면 배터리가 생명력도 빨아먹어서 그런단다.”
고개를 끄덕인 앨런이 바늘을 집어 들자 메리가 만류했다.
“잠깐. 손만 대도 충전이 가능하면 굳이 그럴 필요 없어.”
앨런은 잠시 공장 내부를 둘러봤다. 모두 팔뚝에 바늘을 꽂은 상태였다.
“바늘을 사용하면 더 빠르잖아요. 그러면 배터리 충전도 많이 할 수 있으니 돈도 그만큼 많이 받고요.”
“돈보다는 네가 우선이야. 그러니 이번에는 엄마 말을 들어주렴.”
메리의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그 부드러움에 감싸진 앨런은 고집을 꺾었다.
“네.”
그날, 앨런은 늦게 작업을 시작했음에도 부모와 똑같은 양을 충전했다. 마력이 쑥쑥 빠져나가는데도 머리가 아프기는커녕 몸이 가벼워졌다.
앨런 역시 마나하트는 만들지 못했다. 운용법이 너무 허접했고, 무엇보다 야생마처럼 날뛰는 마력이 고삐를 거부한 탓이었다.
그래도 아쉽진 않았다. 앨런은 공장에 취직한 후로 오히려 몸이 건강해졌고, 남들보다 2~3배는 많은 배터리를 충전했다.
배터리공장의 에이스 노동자가 됐기에 식탁은 풍족해졌고, 책을 구매할 수 있었다. 물론 원하는 책을 구할 수는 없었지만, 새로운 지식을 쌓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이 채워졌다.
앨런은 여전히 틈이 나면 쓰레기장을 방문했다. 타국인의 관점에서는 쓰레기라도 앨런이 보기에는 쓸만한 장비를 가끔 발견했다.
타국인이 공장을 방문할 때도 있었다. 솔도스 연방의 사람과 노동자의 외견은 태양과 반딧불이를 연상케 했다.
그들은 낙후 국가를 견인하고, 빈곤층을 위해 봉사한다고 떠들었다.
하지만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그들은 랑카의 실질적 지배자요, 가난한 섬나라의 국민은 보이지 않는 사슬로 묶인 노예였다.
솔도스인이 사라지자 로빈슨이 앨런의 귀에 속삭였다. 동료들도 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였다.
“혹시 랑카에서 탈출하고 싶니?”
“항해금지령은요?”
항해는 물론이고 출국도 금지였다. 랑카의 국민은 죽을 때까지 섬을 벗어날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단다.”
로빈슨은 다시 배터리에 집중했다. 하고 싶은 말이 남았는지 입술이 실룩거리긴 했지만.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흐른 어느 날, 내전이 발발했다는 소식이 쫙 퍼졌다.
표면상으로는 부패에 물든 독재자를 심판대에 올리고, 힘겨워하는 국민을 해방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으나.
“그놈이 그놈이지.”
“솔도스에 대항하는 나라는 어디래?”
“어차피 똑같은 강도 새끼들인데 뭐하러 관심 가지냐? 씨빨. 심심하면 남의 땅에서 쌈박질이야.”
진짜 이유는 랑카의 천연자원을 탐내는 다른 강대국이 솔도스 연방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다.
키가 한층 커진 앨런은 오늘의 할당량을 끝내고 관리자를 포함한 어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이제는 죽고 없는 쓰레기장의 노인처럼 내전의 피해자는 곳곳에 있어서 전쟁의 부정적인 면모와 경험담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배터리 충전하는 고급인력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래. 우리 같은 사람을 어디에서 또 구하겠어. 저번 내전에도 우리는 안 끌려갔잖아.”
너무나 희망적이고 근거 없는 발언에도 모두가 동조했다. 불안하면 원래 이성을 잃기 마련이고, 떨쳐내고자 헛된 소망에 마음을 의탁하기도 했다.
웅성거림이 커지자 관리자가 일꾼들을 해산시켰다.
“자, 자. 잡담 그만하고 다시 일해. 놈들도 생각이 있으면 고급 노동자를 함부로 데려가진 않겠지.
고급이라는 단어는 랑카만 두고 따지자면 맞는 말이나, 솔도스 연방의 인사가 듣는다면 콧방귀도 안 뀔 소리였다.
그날 밤, 정체 모를 무장세력이 기차를 통해 움직였다. 철로 옆 판잣집의 거주자들은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솔도스 연방에서 고용한 용병들은 정부군을 도와 반란군을 축출하는 게 목적이었고, 반군도 이에 질세라 뒷배를 통해 전쟁 용병을 고용했다.
내전은 점점 격화되었고, 나라 전체가 고통에 신음했다. 저번 내전과 달리 장기화의 조짐이 하나둘 나타났다.
쿠웅!
앨런이 거주하는 도시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다. 사실 도시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고혈을 빼먹는 공장들이 즐비해서 면적만은 외국의 작은 도시와 견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불안에 떠는 와중, 징집관이 이곳에도 나타났다.
“아이고! 나으리. 저는 눈 한쪽이 없습니다.”
“총만 쏠 수 있으면 된다.”
“저는 왼팔이 불구입니다.”
“근성만 있으면 된다.”
무거운 짐을 나르거나, 농장에서 돌을 골라내는 일 등 단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부터 끌려가기 시작했다. 신원확인도 없이 데려가는 예도 있었다.
막무가내식 징집에 모두가 벌벌 떨었다. 소문은 심상치 않았고, 평소에는 거들먹거리는 폭력조직도 전부 사라졌다.
밤바람에 흔들리는 판잣집, 깜빡이는 마석등의 불빛 아래에 가족이 모였다. 로빈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원래 갱단 같은 쥐새끼들이 위험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법. 놈들은 정부 고위층과도 커넥션이 있으니 이런저런 소식을 들었을 거요.”
“그 말은···.”
“양아치들이 숨었다는 뜻은 곧 닥치는 대로 끌고 간다는 의미겠지. 여기에 있다가는 뿔뿔이 흩어지고,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게 될 거요. 그러니 떠납시다.”
로빈슨은 지식을 못 배웠을 뿐 지혜가 모자라진 않았다. 부부의 행동은 신속했다. 필수품만 더플백에 챙기고 집을 나섰다.
너무 많은 사람이 징집되었기에 거리에는 인기척이 아예 없었고, 눈먼 포탄에 무너진 집들이 곳곳에 널려있었다.
나뉘어서 도시를 빠져나온 가족은 도시 근처 해안으로 향했다. 로빈슨이 절벽 아래를 가리켰다.
“교묘하게 가려진 동굴에 배가 있다.”
부모의 수입을 생각하면 판잣집쯤은 벗어날 수 있는데 왜 계속 거기에서 사나 했더니 돈을 모아 탈출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밧줄을 잡고 조심조심 내려가야 한다.”
앨런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막상 파도가 부서지는 아래를 보고 있으니 머리가 핑 돌았다.
“정신 차려라. 먼저 시범을 보이마.”
앨런은 아빠가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다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불빛을 발견했다. 해안 순찰대였다.
두려움이 싹 달아난 앨런은 어디에서 솟았는지 모를 힘으로 절벽을 내려갔다.
“순찰대예요.”
작은 선박에 올라탄 앨런은 사정을 짧게 설명했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로빈슨이 조타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한참을 끙끙대던 로빈슨이 평소답지 않게 조타실 벽을 걷어찼다.
“빌어먹을. 분명 저번에는 제대로 됐는데···.”
마나엔진에는 마력을 방출할 수 없는 사람을 대신해서 마력을 방출하는 시동 장치가 있는데 그곳이 고장 났는지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제가 해볼게요.”
앨런은 부모와 다르게 마력 방출이 작게나마 가능했다. 시동 장치에 손을 올리고 버튼을 누르자 이번에는 반응이 있었다.
부르릉.
“됐니?”
“당신, 앨런이 집중하게 조용히.”
로빈슨이 메리의 어깨를 잡았다.
부르릉! 부우웅!
이번에는 배의 엔진과 순찰대 차량의 엔진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잡히면 총살이었다. 배를 몰아 무조건 이곳을 탈출해야 했다.
“제발.”
로빈슨과 메리가 함께 기도하는 사이.
두다다다!
마침내 선박의 엔진이 요란한 굉음을 내뿜었다. 순수하게 마력만 사용하는 엔진은 훨씬 조용하거나 무소음이겠지만, 가난한 나라까지 흘러온 하이브리드 엔진에 그런 성능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배가 물 위를 거칠게 움직였다. 타륜을 잡은 로빈슨의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배가 총알을 버텨주길, 가족이 무사하길 바랄 뿐이었다.
탕!탕!
순찰대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배 주변의 물이 거칠게 튀었다.
메리는 자신보다 커버린 아들의 등을 덮으며 벌벌 떨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시간이 길게 느껴졌고, 심장은 터져버릴 것 같았다.
“됐다!”
여태 엎드려서 꼼지락거리던 앨런이 소리를 질렀다.
우웅.
탕!
동시에 두 가지 소리가 겹쳐 들렸다.
하나는 당연히 총성이요, 나머지는 푸른 장막이 펼쳐지는 소리였다. 푸른 방어막이 조타실을 둘러싸고 있었다.
메리는 다리에서 힘이 풀린 나머지 풀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시선은 장막 위를 미끄러지는 총알을 따라갔다. 방어막이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머리에 구멍이 뚫렸으리라.
방어막은 총알이 두 번 닿자 깨졌지만, 덕분에 충분한 거리를 벌렸기에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순찰대도 차를 돌려 해안에서 멀어졌다. 놓쳤다고 보고해서 상급자에게 깨지느니 차라리 못 본 척하는 편이 훨씬 편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운전하는 로빈슨을 대신해서 메리가 아들의 손을 붙잡았다.
“방금 뭐니?”
“쓰레기장에서 주운 방어막 생성기인데 쓸만하네요. 그런데 이젠 완전히 고장 나서 못 쓰겠어요.”
“어떻게 배운 거니?”
지금 아들은 마도구를 수리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고급 지식은 랑카에서 배울 수 없었다.
“별거 아니에요. 조그마한 회로가 끊겼을 뿐인데 버렸더라고요. 주운 인두로 그 부분을 지졌어요. 임시방편이라 금방 타버렸지만요.”
앨런의 눈이 슬슬 감기기 시작했다. 예전보단 나아졌다지만 몸이 약한 건 여전했다.
메리는 옷을 둘둘 감아서 만든 베개로 누운 아들의 머리를 받쳤다. 그리곤 아기를 재우듯이 등을 토닥였다.
“잘 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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