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4화 (4/193)

해적(2)

앨런의 시야가 마구잡이로 섞였다. 아니, 사실 눈을 뜨기도 힘들었다. 물속이 아니다 싶으면 짧게 호흡하는 게 고작이었다.

“흡. 흡. 흡.”

어인도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려운 해역이었다. 몸치에 약하기까지 한 앨런의 육체는 해류에 붙들려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물은 변덕스럽고 폭력적이었다. 앨런은 성난 물이 자연재해 중 하나로 책에 적힌 이유를 몸소 체험했다.

수압과 수류가 온몸을 쥐어짰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까딱하기도 힘들었다.

겨우 팔을 뻗어보지만 잡히는 건 형체 없는 바닷물뿐이었다. 암초에 부서진 배의 잔해들이 남을 법하지만, 잡을 지푸라기조차 없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추를 발목에 매단 것처럼 육신은 점점 아래로 향했고, 육체의 상태에 영향을 받는 정신 역시 아득해졌다.

시간은 야속했다. 앨런이 고통에 힘겨워할수록 길게 늘어났다. 죽는 순간에 옛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하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너무 아프잖아.’

그 순간, 앨런의 정신에 불 하나가 켜졌다. 통증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자신은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이대로 포기하면 편하겠지만, 그렇다고 물고기 밥이 될 수는 없었다.

세탁기 속의 빨래처럼 나부끼던 앨런이 손을 뻗었다. 미세한 각도로 출발한 직선이 나중에는 한없이 멀어지듯이, 지금의 하찮은 노력이 구명의 실마리가 되길 바랐다.

다행히 노력이 쓰레기통에 처박히진 않았다. 앨런은 무언가와 강하게 부딪쳤다. 고통을 무시하고 온몸으로 껴안았다.

오히려 통증이 점점 잦아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앨런은 암초를 붙들고 수면 위로 향했다. 폐를 채워줄 공기가 그곳에 있었다.

“푸하!”

앨런은 입안의 물을 뱉어내며 짠내음 가득한 공기를 흡입했다. 어디에서 이런 힘이 솟아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앨런은 평소처럼 호기심에 빠져들지 않았다. 지금은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었다. 망설임 없이 고개를 물속으로 처박았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 했으나 너무 어려웠다. 다시 숨을 들이켜고 머리를 담갔다. 한 손으로 눈꺼풀을 잡아당겼다.

‘윽···.’

너무 아프고 쓰라렸지만, 부모님을 찾는 일이 먼저였다. 무조건 찾아야 했다. 시력이니, 상처니 하는 걱정은 저 멀리 밀려 나갔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거친 해류는 밑바닥에서 진흙과 펄을 빨아올렸고, 사방으로 퍼트려서 시야의 범위를 극히 제한했다.

‘안 돼. 제발···.’

앨런은 계속 머리를 바닷속으로 집어넣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점점 횟수가 늘어날수록 마음에 추가 매달렸다. 안타까움, 탄식, 슬픔 등으로 만든 추는 형체가 없어도 너무 무거웠다.

기대감이 심해로 처박히고, 불안감은 수면으로 부상했다. 두 가지 감정이 앨런의 정신을 혼탁하게 만들었다.

다시 한번 시도하려는 순간, 앨런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 위기가 잠재능력을 개화시켰다는 등의 꿈같은 상황이 아니었다.

앨런의 몸이 소용돌이 밖으로 움직였다. 그 방향에는 해적선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라도 제대로 건져라!”

“집중하니까 닥쳐!”

해적, 그중에서도 검은색 헤드기어와 닮은 헬멧을 착용한 남자가 앨런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그의 팔이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앨런의 몸도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팔을 빠르게 흔들면 몸도 그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고블린 해적 하나가 그 모습을 보고 킬킬거리며 웃었다.

“저 새끼 하는 거 보이냐? 허공에 대고 허우적대고 있네.”

“아가리 다물라니까.”

“그러니까 매직웨어(Magictechwear)는 비싸더라도 좋은 놈으로 사야지. 염동력을 쓸 때는 손가락만 까딱거리는 편이 가오도 살고, 적이 위압감을 느끼지. 지금 니 꼴을 봐라. 저기 잡혀 오는 애새끼도 속으로는 웃고 있을걸.”

“돈이 없는데 어쩌라고. 보태줄 마음 없으면 구경이나 해. 확 바다에 빠뜨려버릴라.”

협박이 통했는지 고블린이 입을 다물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해적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앨런을 갑판 위에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커헉!”

낙법이 뭔지도 모르는 앨런은 등부터 떨어졌고, 폐부를 관통하는 충격 때문에 숨을 꺽꺽거렸다.

“완전 통나무잖아.”

“꼬락서니 보니까 그물도 필요 없겠는데. 땅딸보랑 싸움 붙여도 지겠어.”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을 귓구멍에 쑤셔 넣어야 그만둘래? 나는 자랑스러운 고블린 왕국의···.”

“닥치고 두목이나 불러와. 연료값이라도 건지려고 왔는데 허탕 같네.”

앨런의 반항을 기대하던 해적들은 김이 빠졌는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앨런은 그들의 관심이 멀어진 사이 난간을 붙잡고 일어났다. 아기가 걸음마를 처음 시작하는 것처럼 위태로운 동작이었다.

“아···.”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소용돌이뿐이었다. 탐욕스러운 괴물은 어선의 잔해를 모조리 빨아들였다. 부모까지도.

가슴이 찢어졌다. 앨런의 표정에는 심금을 애틋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가득했다.

당연히 해적들에겐 알 바 아니었다. 덩치 큰 해적 하나가 오금을 걷어찼다.

앨런이 신음을 내뱉기도 전에 볼락 머리의 어인이 뾰족한 바늘을 어깨에 꽂았다.

“움직이면 죽는다.”

강압적인 목소리였다. 어인이 등장하자 해적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생겼다. 공장 관리자를 본 노동자의 그것과 비슷했다.

잠시 후, 어인이 들고 있는 직사각형 기계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형편없는 놈이면 상어 미끼로 쓰려고 했더니···.”

“어떻습니까?”

“마나하트도 없는 놈인데 체내 마력농도가 왜 이리 높지? 이거 진짠가?”

“기계가 고장 난 거 아닙니까? 아니면 속임수를 썼든지.”

“아냐. 이거 속일 수 있는 놈이면 우린 벌써 다 죽었어. 연료값 이상은 충분히 벌겠는데.”

어인의 기분이 좋아 보이자 해적들 사이의 긴장도 살짝 풀렸다. 여태 입을 다물고 있던 해적들이 웅성거렸다.

“신기하네. 마나하트가 없는데 저 정도라고?”

“날 왜 보냐? 난 마나하트 있는데.”

“예, 예. 그러니까 에비(artificial brain) 착용하고 마법도 쓰겠지요. 야, 저놈 붙잡아!”

다시 비틀거리며 난간에 달라붙던 앨런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염동력에 목덜미를 잡혀서 몇 바퀴를 데굴데굴 굴렀다.

신음을 흘릴 힘도 없는 앨런이 정신을 잃자, 어인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맥을 살폈다.

“살살 다뤄야지, 새꺄! 그러다가 아파서 값 떨어지면 책임질래? 말 나온 김에 니가 책임지고 감시해.”

“선장님. 신입들도 있는데 제가···.”

“보너스 준다.”

어인의 말에 해적은 희희낙락하며 앨런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갑판 아래로 내려가서 제일 깨끗한 우리에 수확물을 집어넣었다.

기절했던 앨런은 불쾌한 오물 냄새 때문에 정신을 차렸다. 사실 랑카에서도 자주 맡았기에 내성은 있는 편이나, 이상하게도 지금은 견디기 어려웠다.

오히려 고향을 떠올리자 괴로웠다. 가끔 신기한 물건이 나오던 쓰레기장, 새벽에도 기적을 울리는 기차, 바람에 흔들리는 판잣집.

그리고 두 사람의 따뜻한 그림자.

“흑···.”

앨런은 입을 손으로 막았다. 마법을 사용한 해적이 천장에 매달린 해먹에 누워 자고 있었기에 큰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공허했다. 희망이 빠져나간 자리를 대신 채운 절망이 유독 크게 느껴졌다.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던 앨런의 시야가 암전했다.

잠에서 깨어난 앨런은 꿈을 되새기려고 애썼다. 배가 부서지기 전의 기억, 그중에서도 유달리 선명한 로빈슨과 메리의 마지막 입 모양.

‘포기하지 마라.’

‘사랑한다.’

앨런은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았다. 대신에 에너지를 다른 곳에 소모하기 시작했다. 먼저 배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조용해.’

탈출할 때 탔던 어선의 엔진소리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였다.

‘순수 마나엔진이겠지.’

내연기관처럼 연료에 불을 붙일 필요가 없기에 구동모터 자체가 놀라울 정도로 정숙했다. 게다가 마나 자체의 에너지 변환 효율은 화석연료 따위는 가볍게 압살했다.

이제는 청각 대신 시각을 이용했다. 이곳은 퀴퀴하고 더러운 선창이었다. 우리 바닥에는 갈색 얼룩이 가득했다.

앨런의 눈동자가 창살에 닿았다. 가볍게 당겨봐도 묵직함이 느껴졌다. 트롤이면 몰라도 평범한 인간이 구부릴 물건이 아니었다.

마침내 시선이 해적에게도 닿았다. 앨런은 멍하니 앉아있는 해적을 불렀다.

“마법사님?”

물론 해적이 바로 알아차리진 못했다. 갑판 아래에는 우리가 여러 개 있었고, 앨런처럼 잡힌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솔도스의 말에서는 랑카의 억양이 강하게 느껴졌다.

‘우리 가족처럼···. 가족···.’

앨런의 생각이 잠시 굳었다. 잠시 멍하게 있다가 고개를 강하게 털어냈다. 눈가를 꾹꾹 누르기도 했다.

‘···내전을 피해 탈출하던 사람들이구나.’

해적은 그들을 보며 닥치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우는 소리가 심해지면 염동마법을 이용해 뺨을 후려치기도 했다.

“마법사님?”

“응?”

앨런의 재시도에 반응이 돌아왔다. 해적이 고개를 휘휘 젓더니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 나에게 한 소리냐?”

“네. 마법사님 맞으시죠?”

“하! 보는 눈이 있네.”

때가 탄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앨런의 단어 선택과 공손한 태도가 그의 인정욕구를 자극한 탓이었다.

“다시 우는 소리 나면 허벅지를 회 떠서 입에 처박아버릴 거다. 장난 아니니까 알아서 입 닥치고 있어.”

사람들에게 으름장을 놓은 해적이 실실거리며 앨런이 갇힌 우리 앞에 쪼그려 앉았다.

“바쁜 마법사를 부른 이유가 뭐지?”

“마법사를 이런 곳에서 볼 수 있을 줄 몰랐거든요. 진흙 속의 진주 같아요.”

해적이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앨런은 혹시 심기를 건드렸나 싶어 눈치를 봤다.

“진주라···.”

다행히 기우에 불과했다. 해적은 그 단어가 마음에 드는지 몇 번이나 곱씹었다.

“너 마음에 들어. 신입으로 받고 싶은데 아쉽게도 상품이라 어쩔 수 없네.”

“아, 상품···.”

“너무 걱정하지마. 좋은 주인 만나면 잘 먹고 잘살 수 있어. 너는 비싼 가격이 매겨질 테니, 그만큼 부자들이 사겠지.”

사로잡을 해적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앨런은 조용히 들었다. 그가 내뱉은 말 하나하나가 정보였다.

그 결과 해적이 착용한 헤드기어의 쓰임새도 알게 되었다. 매직웨어는 몸에 착용하거나 박아넣는 부품과 장비로 헤드기어는 그중 하나였다.

정확한 명칭은 에비(artificial brain). 그야말로 인공두뇌이자 마법사가 아닌 사람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장비였다.

앨런은 미친 사람처럼 질문에 몰두했고, 나중에는 질린 해적이 귀를 막고 무시했다.

낮과 밤을 알 수 없는 장소에서 체감상 아득한 시간을 보낸 앨런은 배가 정박했음을 알아차렸다.

해적들은 사람들을 소시지처럼 줄줄이 묶어서 밖으로 내보냈다. 익숙한 광경인지 항구의 일꾼들은 눈길조차 보내지 않았다.

꽤 커다란 항구였다. 우측에는 물류창고의 군집이, 좌측에는 높이 쌓인 컨테이너들이 있었다.

해적들은 납치한 사람들을 데리고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공급자가 있으면 당연히 수요자도 있는 법. 이번 수요자는 노예상인이었다.

앨런은 떠나가는 해적들을 끝까지 눈에 담았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절대 얼굴을 까먹지 않도록.

“복수하게?”

담배를 뻑뻑 빨던 배 나온 엘프가 꽁초를 바닥에 버렸다.

“꿈 깨.”

“···.”

“모르쇠로 일관하겠다? 여기 잡혀 온 놈들 생각이 다 똑같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흩어져. 싫어도 그래야지. 죽기 싫다면.”

엘프는 보란 듯이 건물 외벽에 달린 배수관에 손을 올렸다. 잠깐 만졌을 뿐인데 손가락 모양의 자국이 생겼다.

“이랬는데도 모르면 어쩔 수 없고.”

히죽 웃은 엘프가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자 부하들이 나타나서 노예들을 지하로 끌고 갔다.

앨런은 상품으로서 취급되었다. 특이 체질이라는 딱지가 붙어서 다른 노예보다는 대우가 좋았다.

‘특이’라는 단어는 구하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구매자는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24시간이 흐르기도 전이었다.

양복을 입은 회색 머리카락의 노인이었다. 주름진 얼굴과 다르게 허리가 꼿꼿하고 덩치가 컸다.

그는 앨런의 몸을 직접 만져보더니 묵직한 주머니를 엘프에게 바로 건넸다. 앨런은 새로운 주인을 따라 골목을 걸었다.

“운이 좋아.”

갑자기 노인이 뒤로 돌았다. 아까와 다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멍청한 놈들이 식견도 모자라서 제값을 못 매기는군. 덕분에 좋은 물건을 싼값에 구했어. 앞으로 사장님이라 불러라.”

“네, 사장님.”

앨런의 즉답에 사장의 짧은 콧수염이 위로 살짝 올라갔다.

“마력과다증에 걸린 사람은 뇌가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넌 아닌 것 같군.”

“마력과다증이요?”

“모르나? 바다 건너 대륙에서는 절맥증이라고 부르지. 아, 잊을 뻔했군. 선물이다.”

사장은 앨런의 호기심을 해소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신 우악스러운 손으로 어깨를 붙잡고 목에 시커멓고 굵은 목걸이를 채웠다.

“마음에 드나? 싫어도 그래야 할 거다. 떼려고 쓸데없는 짓을 하면 폭발하니까 주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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