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6화 (6/193)

노박 클리닉(2)

오늘도 기상 시간보다 일찍 일어난 앨런은 어제 수레로 옮겼던 것을 떠올렸다. 펄럭이는 붉은 천, 목석같은 몸뚱이.

‘그나마 시체라 다행이지.’

랑카에서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가난한 나라가 그렇듯 많이 낳고 많이 죽었다. 게다가 내전, 살인, 아사, 실종 등의 요소도 죽음을 부추겼다.

앨런이 어렸을 때부터 자주 접한 광경이라 그나마 내성이 있었다.

‘만약 살아있었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앨런은 생각을 접었다. 지금의 상상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자그마한 목소리라도 내려면 힘이 필요했다.

눈을 돌려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불편한 감정을 밀어내려고 침대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조수인 비토가 1층 침대에 누워서 인위적으로 호흡하고 있었다.

조수가 되면 배우는 마나수련법이었다. 기초긴 해도 마나하트를 생성할 수 있기에 일꾼들은 전부 조수가 되고자 노력했다.

땡땡땡!

오늘도 어김없이 쇠 두드리는 소리가 일과의 시작을 알렸다.

동시에 몸을 일으킨 비토의 눈이 약하게나마 반짝였다. 조수가 배우는 수련법은 뇌를 활성화하고 안력을 강화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마법공학자에게 맞춘 듯한 특성이었다.

비토는 목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앨런과 눈이 마주치더니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일어났냐? 오늘은 무슨 날인지 알지? 8시 되면 동력실로 와라.”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놀란 고양이처럼 움찔했던 비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방을 나섰다.

혼자서 식사를 마친 앨런은 세면대에 걸린 거울을 바라봤다. 비토가 깜짝 놀라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메마른 눈동자가 앨런을 무심히 쳐다봤다. 뼈가 시릴 정도의 찬물로 세수를 해도 변화는 없었다. 부모의 죽음에 덤덤한 척해도 마음의 창이라는 눈에는 진실이 투영되었다.

지금 당장은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앨런은 얼굴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동력실이 있는 지하 1층 구석으로 향했다.

두꺼운 문 앞에 서자, 옆에 달린 보안시스템에서 기계 안구가 달린 케이블이 튀어나와서 방문객을 스캔했다.

삐삐삐. 띠링!

안구가 뿜어내는 피처럼 붉은빛은 곧 녹색으로 바뀌고, 철문이 옆으로 스르르 열렸다. 내부는 간단했다. 중앙에는 컨테이너 크기의 원통형 마력로, 왼쪽에는 비상용 마력로, 반대편에는 마나배터리가 쌓여있었다.

배터리 앞의 의자에 앉아있던 비토가 옆의 의자를 가리켰다.

“빨리 왔네. 이리 와서 앉아.”

“알겠습니다.”

앨런은 의자 위에 놓여있던 네모난 센서를 몸에 붙이고 착석했다. 동시에 비토가 바늘을 팔뚝에 찔러넣었다.

“눈 하나 꿈쩍 안 하네.”

“익숙해져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는 처음에도 별 반응 없었잖아. 오, 그래프 나온다.”

비토는 센서와 연결된 단말기를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앨런은 자연스럽게 가져온 책을 펼쳤다.

노박 클리닉에 도착한 날부터 마력추출은 일상이었다. 앨런은 부모처럼 멍든 팔뚝을 잠시 바라보다가 책에 집중했다.

[매직웨어와 마법사]

일반인도 마법을 사용하게 돕는 매직웨어의 보급으로 마법사의 지위가 위태해지리라 예상했지만, 역시 마법사는 마법사. 그들은 매직웨어에 간섭, 즉 해킹할 방법을 찾았다.

뛰어난 도구는 일반인보다 장인이 훨씬 능숙하게 다룬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한 것이다. 마법사의 지위는 훨씬 공고해졌고, 미궁은 이들의 행보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러나 세월에 따른 기술 발전은 놀라웠다. 매직웨어의 성능이 나날이 향상됨에 따라 고단한 학습에 염증을 느낀 수련생이 대거 사표를······. 오늘날 진정한 마법사의 수는 급감······.

“에잇!”

문자 하나하나를 뇌에 저장하던 앨런은 갑작스러운 소음 때문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간을 좁힌 비토가 단말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출력값이 저번보다 훨씬 불안정···.”

비토는 입을 다물었다. 너무 조용해서 잠시 잊었지만, 동력실 안에는 앨런도 있었다. 마침 둘의 눈이 마주쳤다.

“이건 내 일이니, 넌 책이나 읽고 있어.”

“저항 변경하고 샘플링 주기 좁혀보세요.”

“내가 알아서 한다고. 나보다 경험 많아? 아니면 조용히 마력추출에나 집중해.”

비토의 짜증에 앨런은 다시 책에 집중했다. 버튼 누르는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동력실 내부에는 웅웅거리는 소음과 책장 넘기는 소리만 남았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비토는 앨런의 눈치를 보다가 그의 말대로 단말기를 조작했다. 그러자 화면에 그려지는 그래프가 선명해졌다.

누구의 말이 옳았는지는 명확했다. 의자 위에 축 늘어진 비토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난 빨리 지하로 내려가고 싶다.”

“···.”

“듣고 있어?”

“네. 잘 들립니다.”

앨런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무미건조한 대답. 비토는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알랑거리는 일꾼들이나, 위에서 견제하는 조수 선배들을 대할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다.

“너는 나중에 고해성사 같은 거 하면 어울리겠다.”

“고해성사가 뭐죠?”

“어디 출신이길래 그것도 몰라? 아, 랑카라고 그랬지. 뭐···, 거기가 고향이면 그럴 수 있지. 아니, 그럼 마법공학 지식은 어디에서 배운 거야?”

관심사 외에는 전부 잊는 성격인가. 비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요점이 어긋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손을 휘저었다.

“아까 이야기나 계속하자. 난 지하로 내려가고 싶어.”

“왜죠?”

그 물음에는 많은 뜻이 함축되어있었다. 어제만 해도 수레로 운반한 시체를 지하 2층으로 운반하지 않았던가. 그곳은 비밀스러운 작업실이었다.

여태 시선을 피하던 비토가 앨런의 눈을 응시했다.

“나도 그곳이 도살장이라는 사실은 잘 알아. 어딘가에서 처리된 사람을 돼지처럼 해부하지. 왜 앞바다에서 물고기가 잘 잡히겠어?”

“···.”

“나라고 이 목걸이가 좋은 줄 알아? 그러니까 지하로 내려가려는 거야. 역겨운 장소지만 기회의 장소기도 하니까. 그곳에서 사장님의 눈에 든다면 선배들처럼 자신만의 가게를 차릴 수도 있을 거야.”

“선배요? 이곳을 나간 조수도 있나요?”

“조수 선배들 몇몇은 사장님의 투자를 받아서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기도 했어.”

비토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열의 넘치는 청년의 표본이 그곳에 있었다.

“그분들과는 친하시나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나만의 생각이었던 것 같아. 한두 달은 연락하더니 이제는 뭐···. 아니면 너무 바빠서 그럴 수도 있고. 아, 이게 아니지.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비토가 잠시 머리를 긁적였다. 귀도 살짝 빨개졌다.

“서로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가르쳐주지 않을래?”

“전 경험도 적고 지식도 모자랍니다.”

“아까 내가 했던 말은 신경 쓰지 마. 너 하는 거 보면 지식은 금방 따라잡겠지. 내가 너에게 배우고 싶은 건 직관이야.”

직관. 사전지식 없이 본능적으로 대상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한 달 동안 지켜보면서 대충 감이 왔어. 졸업한 선배 중에도 너보다 직관이 좋은 사람은 없을 거야.”

“직관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당연하지. 너는 마력이 왜 다른 속성으로 변화하는지 알아?”

“아뇨.”

“그래. 아무도 몰라. 그냥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아니까 활용하는 거야. 중간 과정은 모르고 결과만 아는 셈이지.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마땅히 그렇게 되겠다고 파악하는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거야.”

“직관이 가르쳐 준다고 배울 수···.”

“답답한 소리는 그만.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네 생각을 듣다 보면 흉내라도 낼 수 있겠지. 그래서 내 제안을 수락할 거야 말 거야?”

앨런은 침묵하고 비토는 기다리겠다는 듯 팔짱을 꼈다.

‘폭탄목걸이, 조수···.’

비토가 왜 실력향상에 집착하는지는 명확했다. 이곳의 조수와 일꾼은 노예거나 고아들이다. 사회의 실상을 알기에 클리닉 내부에서의 지위 향상에 목매다는 것이다.

‘카르텔에 합류해서 총질하다가 죽는 미래보다는 훨씬 좋은 기회니까. 잘 풀리면 마법공학자라는 직함도 얻을 수 있고.’

앨런은 자신의 목걸이를 쓰다듬었다. 노박이 관심을 가지는 장난감이라는 표식이 유달리 깊게 느껴졌다.

앨런은 마음을 정했다. 자신의 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져 있는지 모르지만, 견문을 넓히면 대처할 방법도 많아지리라.

“제안···.”

드르륵.

앨런과 비토의 고개가 동력실 문 쪽으로 향했다. 거대한 체구의 노인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마침 여기에 있었군.”

“사장님, 오셨습니까.”

“그동안 수고했다. 비토는 이제 쉬러 가고, 너는 나를 따라와라.”

노박은 비토에게 건네받은 단말기의 데이터를 확인했고, 앨런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클리닉에 도착하고 단둘이 남은 건 처음이었다.

검은 가운을 입은 노박은 1층 구석에 있는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이곳 생활은 어떻느냐?”

“좋습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지 말고 편하게 말해봐라. 괴롭히는 사람은 없고?”

“없습니다.”

폭탄목걸이를 채워놓고 편하게 하라고 하면 누가 듣겠는가. 게다가 앨런은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었다. 노박도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 보였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2층에서 멈췄다. 굉장히 넓은 공간에는 불투명한 비닐 천으로 둘러싸인 작업대가 여럿 있었다. 환풍기와 공기정화기가 곳곳에 있는데도 비릿한 냄새가 심했다.

노박은 앨런을 데리고 2층 구석으로 향했다. 벽인 줄 알았던 문이 열리며 새하얀 실험실이 나타났다.

기계들의 버튼을 누른 노박이 가운데에 있는 수술대를 가리켰다.

“저기에 누워라.”

앨런은 잠시 멈칫했다. 수술대 옆의 카트에는 흉흉한 날을 번뜩이는 도구가 매우 많았다.

“한 달 동안 덜 배웠느냐? 이곳의 규칙 첫 번째. 내 말에 무조건 따를 것.”

노박의 손가락이 위아래로 까닥거렸다. 전기충격이 앨런을 고문하진 않았다. 대신 천장에서 기계 팔이 튀어나와서 사지를 붙잡고 억지로 수술대에 눕혔다.

노박은 약병 몇 개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수술대 옆으로 다가왔다.

“설마 내가 죽이기라도 할까 봐?”

“···.”

“마력과다증이 네 몸을 해치지 말라고 주기적으로 마력도 뽑아주는데 이렇게 신뢰가 없어서야···.”

마력과다증은 마나를 너무 많이 생성, 흡수하기에 생기는 병으로, 통제를 벗어난 마나가 오히려 몸을 해쳤다.

마력을 꾸준히 소모하거나, 비싼 비용을 지급하며 치료 및 투석을 받거나, 절세의 마력수련법을 익혀서 수명을 늘려야 했다. 뒤에서 언급한 방법일수록 효과가 좋았다.

“그동안 내가 바빠서 신경을 못 썼으니 이제라도 노력하마.”

노박은 친절한 의사처럼 말하며 앨런의 몸에 알 수 없는 액체를 주입했다. 눈에 이상한 액체를 떨어트리기도 했는데, 강한 통증을 느껴도 개안기가 억지로 눈꺼풀을 벌려놔서 눈을 감지도 못했다.

“옳지. 일어나 봐라. 지금 기분이 어떻지?”

“눈이 너무 아픕니다.”

“그런 사소한 것 말고 체내 마력을 묻는 거다. 뭐, 수련법도 안 배웠으니 어쩔 수 없나. 이번에는 저기에 누워라.”

노박이 가리킨 곳에는 폭이 좁은 침대가 있었고, 도넛과 비슷하게 생긴 원통형 기계가 머리맡에 있었다.

앨런은 기계 팔이 나왔던 천장을 한 번 노려보며 그쪽 침대에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가 원통 안으로 쏙 들어갔다.

노박은 실시간으로 입력되는 데이터와 출력되는 그림을 보며 짧은 수염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마나공명영상 스캐너는 제대로 작동하는군. 마력과다증의 체내 마력회로라···. 곳곳에 상처가 심한데 폭은 굉장하군. 좋은 참고자료가 되겠어.”

모든 검사가 끝나자 기력을 잔뜩 소모한 앨런은 비틀거렸다. 노박이 얼른 몸을 부축해줬다.

“이런, 조심해야지.”

“감사, 합니다.”

매우 가증스러운 행위였으나 지금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앨런은 고개를 숙이면서 칼을 가는 숫돌을 상상했다.

노박은 그답지 않게 지하 1층까지 앨런을 배웅했다.

“비토에게 내가 시켰다고 말해서 수련법을 배워라. 마나하트를 생성할 수 있으니 도움이 될 거다.”

앨런은 말없이 꾸벅 고개만 숙였다. 문이 완전히 닫히고 나서야 몸을 돌렸다. 아직도 온몸이 화끈거렸다.

‘도움?’

앨런은 코웃음을 쳤다. 자신을 보는 노박의 눈빛은 랑카 국민을 보던 솔도스인과 똑같았다. 아니, 더 음험했다.

마침 식사시간이었는지 일꾼들은 공용식당으로 우르르 모이고 있었다. 앨런은 그들을 지나쳐 방으로 향했다. 혼자 있던 비토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을 열었다.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