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박 클리닉(3)
비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1년, 앨런은 유례없는 속도로 조수가 되었다. 처음에는 허망해하던 비토도 곧 현실을 받아들이고 앨런과 적극적으로 교류했다.
침대 위에서 어제 비토와 토론하던 내용을 복기하던 앨런은 인기척에 눈을 떴다.
“앨런 님, 이번 달 일정표입니다.”
“수고했어요.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자유롭게 활용하세요.”
“알겠습니다.”
마나수련법을 종료한 앨런은 일꾼이 건넨 단말기를 찬찬히 훑어봤다. 휴일 없이 꽉 찬 일정이 앨런을 기다리고 있었다.
앨런은 새롭게 추가된 일정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다가 세면용품을 챙기고 방을 나섰다. 막 세면장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짙은 피부색의 덩치가 앞을 막아섰다.
“애비 없는 놈.”
“에비가 없긴 하죠.”
인공 안구나 골렘 의수로 신체를 대체한 덩치와 달리 앨런의 몸은 날 때 그대로였다. 조수가 되면 하나씩 받는 에비조차 없었다.
마력과다증의 신체와 마력회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고 싶다는 노박의 명령 때문이었다. 조수가 되었음에도 실험체의 지위 또한 유지했기에 폭탄목걸이 역시 그대로였다.
“그런데 똑같은 처지 아닌가요?”
“난 자처해서 왔으니 너와 다르지.”
“팔려오신 거로 알고 있는데···.”
“···.”
앨런은 일부러 표식이 새겨진 목걸이 근처의 피부를 가볍게 긁었다.
“아무튼, 바쁜데 비켜주실래요? 시간은 금이잖아요.”
“재수 없는 새끼.”
남들보다 월등한 능력을 보여주면 시기하는 부류가 생기기 마련이고, 덩치는 치졸한 본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래도 노박을 두려워해서 목줄 묶인 짐승처럼 으르렁거리기만 했다. 덩치는 어깨를 부르르 떨다가 몸을 돌렸다.
“장난감 주제에···.”
“좋은 아침 되세요.”
앨런은 사라지는 덩치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차라리 저렇게 솔직한 부류가 상대하기 편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접근하는 족속이 훨씬 위험했다.
평소에 데면데면하게 대하던 조수들이 갑자기 적의를 드러내는 이유가 있었다. 일정표에 적힌 ‘지하 2층’이라는 문구가 결정적이었다.
지하 2층은 시체를 해부하고, 빼낸 매직웨어를 세척 및 수리해서 파는 작업장이었다. 도축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끔찍한 장소지만, 누구나 그곳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매직웨어를 만지는 일이 많아지니 실력이 가파르게 향상될 테고, 조수 대부분은 그걸 기회라고 생각했다.
앨런의 견해는 다르지만, 노박의 명령이니 내려가긴 해야 했다. 목걸이가 방출하는 전기로 고문당하는 일은 충분히 겪어봤으니까.
준비를 마친 앨런은 일꾼들을 다른 작업에 투입하고 자신은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겨우 한 발을 내디뎠음에도 속이 울렁거리고 불쾌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공간 자체가 육체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시간을 맞추기 위해 벽을 짚고 움직이려는 순간.
“음···.”
저도 모르게 발을 헛디딜 뻔했다. 이번에는 원래부터 약한 몸이 문제가 아니라 왼쪽 눈이 범인이었다.
손바닥으로 양쪽 눈을 번갈아 가며 가리니 극명한 시력의 차이가 느껴졌다. 마력과다증이 초래한 결함은 아니었다.
‘노박···.’
노박에게 불려갈 때마다 눈에 넣어지는 액체 때문이었다.
‘왜 자꾸 시료나 촉매를 집어넣지? 눈의 마력회로 구조나 상태변화를 조사할 이유가 있다는 뜻인데···.’
앨런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느새 문 앞에 당도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소독실이 손님을 맞이했다.
푸슉!
앨런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고 입을 막았다. 완전히 방어할 수는 없어서 알싸한 향기가 콧속을 쿡쿡 찔렀다.
잠시 기다리니 공기가 빠지고 반대쪽 문이 열렸다. 에어커튼을 통과하니 소독약 냄새와 숨길 수 없는 악취가 어깨동무하고 다가왔다.
앨런이 불투명한 비닐 커튼으로 둘러싸인 작업대들을 보고 있으니, 먼저 와 있던 비토가 말을 걸었다.
“지금 인상 쓴 거야? 맨날 무표정인 줄 알았더니 얼굴 근육이 존재하긴 했구나. 난 얼굴 전체를 매직웨어로 개조하고 인조 피부를 덮은 줄 알았지.”
비토의 말대로 손가락을 얼굴에 가져다 대니 살짝 좁혀진 미간이 느껴졌다. 살살 문지르니 그것도 금방 사라졌다.
“이곳은 적응할 만합니까?”
“처음엔 역겨웠는데 몇 달 지나니 그럭저럭 참을 만하더라. 아, 내가 사장님께 같은 팀이 되게 해달라고 건의했어. 고맙지?”
“···.”
“별로? 무뚝뚝하긴. 저쪽으로 가자. 지금 보는 방향에서 왼쪽, 커튼에 3이라고 쓰여 있는 작업대가 우리 담당이야.”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로 조수들을 견제하는 비토는 앨런이 옆에만 있으면 유달리 말이 많아졌다.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로 여긴다는 증거였다.
커튼을 열고 들어가자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튼튼한 작업대가 보였다. 옆에는 수술 도구와 수술용 정밀 보조 의수인 히포크라테스가 있었다.
“저 의수는 너도 뭔지 알지?”
“네. 아무나 착용해도 문제가 없도록 외골격 형태를 준비했군요.”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선서와 고대의 치료 마법사로 유명한 인물의 이름이 붙은 의수가 이런 장소에서 쓰인다니.
엘런은 히포크라테스의 손가락에 달린 메스나 회전 뼈 톱의 날카로움을 감상하다가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작은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마치 앨런이 봐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리며 오늘의 물건이 누운 자세로 등장했다.
“야. 괜찮아. 뭐라고 안 할 테니까 일단 지켜봐.”
비토는 앨런의 비위가 상했다고 판단했는지 버튼을 눌러서 물건을 작업대 위에 올려놨다. 앨런은 물건의 창백함을 지켜보다가 잠시 시선을 위로 올렸다.
“카메라군요.”
“아, 저거? 신경 쓰지 마. 사장님이 우리 잘하고 있나 못하고 있나 지켜보시는 거니까. 이제 집중해.”
앨런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알고 비토도 알았다. 왜 저것의 이름이 ‘감시카메라’겠는가.
그 사이 비토는 스캐너를 꺼내서 물건의 상태를 점검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훑었다.
“매직웨어는 오른쪽 손 그리고 매직스틱이 전부야. 운이 좋네. 인공장기가 있었으면 시간이 오래 걸렸을 거야.”
“매직스틱이요?”
“아, 책만 봐서 은어인 줄 몰랐구나. 남자 아랫도리에 달린 그거 있잖아. 이 정도만 말해도 뭔지 알겠지?”
수술용 안경과 마스크를 착용한 비토는 순식간에 2개의 매직웨어를 몸에서 분리, 소독액에 집어넣었다가 기포가 생기자 집게로 두 가지 물건을 집어 들었다.
“시체는 엘리베이터로 올려보내···. 벌써 했네. 눈알은?”
“챙겼습니다. 기본적인 절차는 들어서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눈을 수집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나는 시키는 대로 하기에도 바빠서···. 그럼 시간이 좀 남을 것 같으니 매직웨어 좀 살펴볼까?”
비토는 먼저 손을 가리켰다.
“금속과 인조 피부로 만든 간단한 의수야. 피부는 싼 걸 사용해서 한눈에 봐도 가짜인 걸 알겠지? 기본적인 형태는 이와 같고,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내부 구조나 기능을 변경하기도 해.”
“가느다란 케이블은 신경 연결선이겠군요.”
앨런은 확대기능이 있는 수술용 안경을 썼기에 케이블이 크게 보였다. 소독액으로 푹 젖은 케이블은 손목 밖으로 길게 빠져나와 있었다.
“맞아. 진짜 신경에 연결하면 뇌의 신호나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의수를 통제하지. 반동 제어 기능도 있네. 카르텔 소속이었나보다. 아니면 적대 세력이었든지.”
“아, 그래서 총상이 있었군요.”
앨런은 심장 근처에 뚫려있던 동그란 구멍을 떠올렸다. 만약에 인공장기가 존재해서 피부를 갈랐다면 내부의 참혹함에 기겁했으리라.
항구도시 아로마아에 있는 가장 큰 마약 카르텔이 노박의 주요 고객이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속이 시커먼 것들끼리 거래하는 것이다.
그 후로 앨런은 비토에게 장비의 사용법, 매직웨어마다 존재하는 수리방법 등을 배웠다.
배우는 게 빨랐기에 앨런의 실력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조금이라도 일과를 빨리 마치고자 하는 심정도 지식 습득에 박차를 가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비토가 수습 기간이 끝났음을 알렸다.
“역시 빨리 배우네. 기본적인 수리는 거의 다 할 수 있겠어. 하긴 매일 물건을 만지는데 기술이 안 늘 수가 없지.”
“집적회로는 어떻게 수리하나요?”
“그건 나도 몰라. 사장님이라면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종류의 지식은 알려주시지 않거든. 우린 그냥 예비부품이 있으면 갈아 끼우거나 간단한 회로를 고칠 뿐이야. 너도 알다시피 그래도 작동에는 문제가 없거든.”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식은 돈이자 힘이었다. 진정 가치 있는 지식은 힘 있는 자들의 것이요, 인터넷이나 시중을 떠도는 뒤틀리고 가공된 정보는 눈먼 자들을 현혹했다.
앨런은 탄식하면서도 손을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하루의 할당량을 처리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시체라는 사실조차 잊으려고 최대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자기 암시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날, 물건을 확인한 앨런은 평소처럼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흐으으······.”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미약한 호흡을 이어가고 있었다.
앨런은 저도 모르게 엄마가 물려준 흑갈색 머리를 매만졌다. 작업대에 누운 아주머니의 머리카락은 똑같은 색이었다. 심지어 헤어스타일까지 엄마를 닮았다.
아직도 그날이 기억이 선명했다. 파도 때문에 떠오른 배 그리고 박살 나기 전에 엄마가 겨우 전했던 말.
‘사랑한다.’
한참이나 눈을 감고 있던 앨런이 히포크라테스를 팔에 장착했다. 스캐너로 내부는 이미 확인을 마쳤다. 손이 인공 폐에 박힌 총알을 제거하기 위해 저절로 움직였다.
마침 비닐 커튼을 열고 들어온 비토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단호하게 속삭였다.
“미쳤어? 이러면 안 돼. 사장님이 아시면 큰일 날 거야.”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나가세요.”
“이러다 네가 큰일 난다니까. 감시카메라 잊었어?”
앨런의 냉철한 판단력은 이러면 안 된다고 말리지만, 저도 모르게 손이 움직였다. 벌써 핀셋에 붙잡힌 총알이 구멍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탱그르르.
총알이 작업대 위로 떨어지며 시끄러운 소리를 발생시켰다. 그와 동시에 들려온 굵은 음성.
“지금 뭘 하는 거지?”
노박의 물음에도 앨런의 손은 상처를 봉합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주름 가득한 노박의 미간에 깊은 골이 생겼다.
“오냐오냐하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군.”
딱!
클리닉의 주인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앨런의 몸이 부들부들 떨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목걸이에서 뿜어지는 전기가 근육을 경직시킨 탓이었다.
“쯧!”
노박의 혀 차는 소리를 끝으로 앨런은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시야가 어두웠다. 어딘가의 틈으로 들어오는 빛이 희미하게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여기는···.”
주변을 확인하고자 몸을 돌리니, 손에 부딪힌 무언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려서 망가진 의수였다.
어둠에 적응한 눈은 아까보다 많은 정보를 뇌에 전달했다. 사방에 망가진 매직웨어가 널려있었다.
“휴지통이구나.”
앨런 역시 몇 번 방문해서 알고 있는 장소였다. 완전히 고장 난 매직웨어나 마도구를 버려두는 창고였다.
문손잡이를 잡아당기니 쇠사슬이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앨런의 밑에서 일하는 일꾼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앨런 님. 일주일 동안 반성하란 사장님의 명령입니다. 끼니는 시간이 되면 제가 가져다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이건 점심 식사입니다.”
문이 살짝 열린 틈으로 비닐봉지에 담긴 주먹밥 하나가 내밀어졌다. 봉지를 받아든 앨런은 후줄근한 세탁기 위에 앉았다.
일꾼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주변이 고요해졌다. 앨런은 밥을 입에 밀어 넣으며 주변을 살폈다. 작은 환풍구와 널브러진 마도구들이 보였다.
‘일주일이라.’
다른 조수였다면 한 달 넘게 갇혀있었으리라. 아니면 처분당하거나. 물론 노박이 자비를 베푼 이유는 상대가 앨런이었기 때문이다.
‘실험체의 건강까지 생각해주시고 참 친절하시군.’
찍찍!
앨런의 눈동자가 작은 생물을 쫓았다. 쥐들은 사람이 있는데도 겁도 없이 돌아다녔다. 개중에는 주먹밥 부스러기를 탐하는 녀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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