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2)
수조의 위아래로 어마어마한 수의 마나케이블이 붙어있었다. 거기에 표면을 가득 채운 마력회로와 룬문자는 계속 빛을 내뿜었다.
그 모습만 보더라도 노박이 수조를 얼마나 애지중지 아끼는지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평생에 걸친 연구 결과겠지. 누구에게나 염원은 있으니···.’
앨런은 수조 내부를 자세히 보기 위해 화면을 확대했지만, 골렘 드론의 품질 문제와 환풍구의 각도 때문에 자세히 살피기 힘들었다.
더 뛰어난 정찰 장비가 필요했다. 마침 한동안은 외부 수거 임무만 맡을 테니 지금이 물건을 구할 기회였다.
단말기를 끄고 있으니 화장실 내부로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앨런 님. 여기 계십니까?”
“지금 나갑니다. 너무 오래 있어서 걱정하게 했군요.”
“아닙니다. 그럼 저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앨런은 단말기를 품 안에 숨기고 일꾼들과 합류했다. 그러면서도 비밀 연구실의 목적과 해제 열쇠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 후로 앨런은 수거하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쓸만한 물건을 몰래 챙기고, 휴지통이라 불리는 창고에 몰래 숨겨뒀다. 다음 대청소는 8개월 후에 하기에 그곳이 무언가를 숨기기에는 제격이었다.
당연하게도 노박은 앨런을 2층 실험실로 계속 불렀다.
“자 눈을 떠봐라. 시료가 들어간 느낌이 어떻지?”
“첫 번째 증상은 간지러움입니다. 두 번째 증상은 체내의 마력 이동입니다. 특히 왼쪽 눈동자 근처로 모이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라.”
“마치 먹이를 포착하고 접근하는 상어 같습니다. 이것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표현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앨런은 자신의 몸으로 하는 실험에도 덤덤하게 반응했다. 노박은 그 모습을 보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시력이 많이 떨어졌을 텐데 내가 원망스럽지 않느냐?”
“괜찮습니다. 다른 조수들처럼 인공 안구로 대체하는 편이 마법공학자로 활동하기에는 훨씬 편하니까요. 물론 그 시기는 사장님이 정해주시겠죠.”
“하하. 그래. 이제야 쓸만해 졌구나. 때가 되면 신형으로 챙겨줄 테니 좀 기다리거라.”
앨런이 예전처럼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이자 노박은 기꺼워했다.
“그렇게 잘 아는 녀석이 지난번에는 왜 그랬지? 그들은 마법공학의 발전을 위한 거름일 뿐이니 신경 써줄 필요 없다고 내가 처음에 말했을 텐데.”
“어머니가 생각나서 그랬습니다.”
“흠, 고향이 랑카라고 그랬지. 그럼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은 랑카에 있나?”
“해적에게 전부 돌아가셨습니다.”
“오, 저런. 상심이 크겠구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년이 지난 일이라 지금은 괜찮습니다.”
앨런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면서도 노박의 표정을 잊지 않았다. 진짜로 안타까워하는 모습이긴 했지만,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입바른 소리에 불과하리라.
부모가 살아있었다면 마력과다증의 핏줄은 어떤 능력이 있는지 실험하기 위해 붙잡아왔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앨런을 묶어두기 위한 족쇄로 사용하거나.
실험이 끝나고, 앨런은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몸에 부착된 장비들을 본래 자리로 돌려놨다. 정리가 끝나자 데이터 측정 단말기의 기록을 옮겨 적기도 했다.
노박은 그 모습을 팔짱 끼고 쳐다봤다.
“자, 오늘은 이것으로 끝이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아, 잠깐. 내일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 부두 근처의 클럽에 방문해라.”
말이 클럽이지 실상은 카르텔의 소굴이었다. 그러니 노박의 말은 카르텔 조직원의 매직웨어와 마도구를 점검하라는 의미였다.
지하 2층에서 하는 일만큼 중요했다. 게다가 전투용 마도구를 살펴볼 수 있으니 조수에게는 그만큼 큰 기회기도 했다.
2층에서의 일 이후로 감정이 마모된 사람처럼 행동하며 고분고분 따랐으니 슬슬 신뢰가 회복된 탓이리라.
또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골치 아프니 아예 다른 장소로 보내려는 속셈이었다. 우수한 인력을 계속 놀게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했고.
지하 1층, 숙소 구역으로 돌아온 앨런은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는 척하며 창고에 방문했다.
저번보다 기능이 훨씬 향상된 쥐 형상의 정찰 골렘을 환풍구에 놓고,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시작해볼까.’
앨런은 콘택트렌즈를 끼우고 눈을 감았다. 눈꺼풀을 내렸음에도 환풍구 내부의 먼지 끼고 어두운 풍경이 보였다.
골렘은 앨런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마치 엎드려 기어가는 느낌이었다.
연구실까지 가는 방향은 알고 있기에 신속하게 도착했다.
고급 장비가 많은 연구실에는 환기 시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장비가 내뿜는 열을 그대로 놔두면 재료가 상할 확률이 높고, 그게 아니더라도 치명적인 가스가 분출되면 빨리 없애야 했으니까.
환풍구 안쪽에서 기웃거리던 앨런은 연구실 바닥 쪽을 살펴봤다. 볼펜 크기의 검은색 봉이 간격을 두고 붙어있었다.
‘바닥에는 감지 장비가 있으니···.’
앨런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다행히 골렘은 벽을 타는 기동이 가능했고, 천장에는 얇은 파이프들이 뿌리처럼 얽혀있었다.
환풍구 틈으로 잽싸게 빠져나간 골렘은 파이프 위에 올라타서 수조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까지 이동했다.
‘저건···, 눈?’
기포가 보글보글 솟아오르는 투명한 수조 중간에 눈알이 떠 있었는데, 그 뒤로는 시신경이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었다.
마나케이블을 따라 빛이 번쩍거릴 때마다 시신경도 조금씩 꿈틀거렸다. 다만 초점 없는 눈동자는 멍하니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앨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저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하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줄기 섬광. 앨런은 판잣집 바닥에 깔려있던 자신의 이불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그 아래에 숨겨놨던 ‘마법공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지닌 책이었다.
그 책은 귀중한 지식이 적혀있진 않은, 아이들도 흥미 위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었다. 그렇다 보니 뜬구름 잡는 이야기도 많이 적혀있었는데.
‘머리말에 그런 내용이 있었지.’
마법을 탐구하는 자들의 염원은 초월마도.
정령과 연을 맺는 자들의 꿈은 정령왕 소환.
연금술에 매달리는 자들의 소망은 현자의 돌.
무기를 다루는 자들의 이상향은 강기 혹은 심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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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 마법공학자에겐 무엇이 있을까. 다른 이들에 비해 역사가 짧은 우리에게도 도달점이 있으니, 그건 바로.
아카샤의 눈.
보는 행위만으로도 만물의 본질을 꿰뚫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도구에 부여하도록 도와주는 능력 또는 장비.
아카샤는 우주의 모든 일이 기록된다는 아카식레코드의 ‘아카식’과 똑같은 의미였다.
노박은 염색으로도 숨길 수 없는 백발을 지녔음에도 그 꿈을 좇고 있었다. 역사상 최고의 마법공학자라는 카탄도, 세계에 이름을 날리는 대기업들도 도달하지 못한 꿈을.
앨런의 눈에 자꾸 시료를 떨어트리는 실험도, 지하 2층에서 시체의 눈알을 끄집어내는 행위도 전부 이유가 생겼다.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는 알지만, 이해해줄 수는 없지.’
그의 꿈을 위해 죽어간 사람이 몇이던가. 노박이 이곳에 가게를 차린 지 20년이 훌쩍 넘었으니 희생자의 숫자를 세는 행위는 무의미했다. 게다가 지금 앨런의 왼쪽 눈도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노박의 앞에서는 인공 안구로 교체하면 된다고 무심하게 지껄였지만, 진짜로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는가.
무엇보다 흑갈색 머리카락을 어머니에게 물려받았다면, 밝은 갈색 눈동자는 아버지와 똑 닮았다. 그걸 타의로 빼앗긴다는 생각을 하니 심장이 빨리 뛰었다.
생각을 가다듬던 앨런은 수조 너머로 보이는 문이 열리는 것을 발견하고, 골렘을 조종해서 재빨리 구석으로 숨었다.
노박이었다. 언제나 조수나 일꾼을 부려먹는 그는 특이하게도 붉은 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
자루를 수조 근처에 내려놓고 어깨를 빙빙 돌리던 노박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영안실에 있는 그것과 똑같이 생긴.
먼저 혈색 없는 발이 나왔다. 마찬가지로 하얗게 변한 손과 얼굴이 차례대로 보였다.
‘저 사람은···.’
앨런은 그의 얼굴을 기억했다. 몇 달 전 노박의 후원으로 꽤 먼 도시에 지점을 차리러 떠난다던 조수였다.
노박은 그가 누워있는 바퀴 달린 침대를 수조 옆에 바짝 붙이고, 붉은 자루를 뒤집었다. 안에 들어있던 눈알들이 조수의 몸을 이불처럼 덮었다.
끔찍한 광경에도 노박은 아무렇지 않게 작업을 진행했다. 케이블 몇 개를 침대와 연결하고, 벽에 붙어있는 복잡한 기계 장치를 건드렸다.
수조에 주렁주렁 매달린 마력케이블을 따라 스파크가 튀었다. 영향을 받은 조수의 시체와 눈알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의 양이 많아질수록 수조에도 변화가 생겼다. 안에 담긴 눈알의 시신경이 문어의 다리처럼 꿈틀거리거나, 동공이 제멋대로 수축과 확대를 반복했다.
연기가 모두 사라졌을 때 침대는 텅 비어있었다. 제물이자 재료로 사용한 조수와 눈알이 출력을 버티지 못하고 먼지로 변했다.
앨런은 다시 수조를 응시했다. 생체조직인지, 아니면 마도구인지 모를 물건의 눈동자는 왠지 아까보다 생기있게 느껴졌다.
측정 장비를 만족스럽게 지켜보던 노박이 몸을 돌렸다. 가운이 살짝 벌어지며 안쪽 허리춤이 노출되었다.
허리띠에는 공간주머니로 추정되는 마도구가 매달려있었는데, 그 안에 폭탄목걸이 해제용 열쇠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비밀 연구실을 빠져나가는 노박. 늦은 시간을 고려할 때 그의 목적지는 침실이리라.
앨런은 골렘을 다시 환풍구 속으로 이동시켰고, 마침 침실 문을 여는 노박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문 옆에 달린 검은색 패널에 손을 대고 있었다.
‘마나패턴인증기.’
마나는 사람의 지문처럼 특색을 지녔기에 앨런이 인증기를 뚫을 방법은 없었다.
특급 마도구 혹은 대마법사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런 대단한 장비나 사람이 마침 운 좋게 나타날 리도 없었다.
‘힘으로 연다?’
당연히 어불성설이었다. 앨런이 지하 4층으로 내려간 순간 노박이 나타나 사지를 찢을 테니까. 아니면 경비 포탑이 나타나서 벌집으로 만들거나.
앨런은 아쉬운 마음을 숨기며 골렘을 복귀시켰다. 침실 내부를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아쉽게도 그쪽으로 연결되는 환풍 통로는 없었다.
‘후우···.’
정찰 골렘을 휴지통의 환풍구로 이동시킨 앨런은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비토가 해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한두 달은 연락하더니 이제는 뭐···. 아니면 너무 바빠서 그럴 수도 있고.’
졸업했다던 조수들은 바쁜 게 아니었다. 전부 노박의 실험체가 되어서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노박은 애초에 우릴 놔줄 생각이 없었어.’
왜 배우는 마력수련법이 뇌와 안력 활성화에 집중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클리닉은 그 자체가 고독이었다. 그 누구든지 수조에 들어있는 것의 먹이로 키워지는 것이다. 당연히 앨런도 예외는 아니리라.
‘이 사실을 퍼트리면···. 아니, 관두자.’
안 그래도 앨런의 실력을 질투하는 녀석들 천지인데 조금이라도 말을 꺼냈다가는 노박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일러바칠 확률이 높았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사람은 비토. 하지만 아무리 친분이 있다 해도 이번 발견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었다.
외부의 도움에만 기대는 행위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먼저 스스로 활로를 모색하고 방법이 정 없으면 이야기를 꺼내는 편이 좋았다.
‘그럼 다음은 열쇠.’
어떻게 떼어놓아야 할까. 지금으로선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 방법은 있다.’
잠에 빠진 일꾼들의 숨소리만 들려오는 방. 앨런이 갑자기 눈을 뜨며 목걸이를 붙잡았다.
‘인질에는 인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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