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10화 (10/193)

교환(1)

항구도시 아로마아는 매우 아름다운 장소다. 새파란 하늘은 사파이어처럼 반짝이고, 바다 역시 그에 질세라 옥빛 물결로 화답한다.

부두는 드나드는 어선과 화물선으로 활기가 넘치고, 그만큼 유통업이 발달했기에 트럭과 사람이 개미 떼처럼 우글거렸다.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피곤함을 지녔지만, 그에 못지않게 웃음도 머금었다. 노력하면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거란 희망이 있었다.

멀리에서 보면 한 폭의 그림 같은 도시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빛에 가려진 그림자가 스멀스멀 흘러나온다.

부두 근처의 어두운 골목, 험악하게 생긴 덩치 두 명이 드워프의 팔을 붙잡아서 질질 끌고 나왔다. 눈 밑이 퀭하고 침을 질질 흘리는 드워프는 저항도 못 하고 쓰레기처럼 던져졌다.

머리부터 떨어진 드워프는 아프지도 않은지 덩치들을 향해 손을 허우적댔다.

“으으···.”

“돈 없으면 꺼지라고 했지? 오늘 내민 돈으로는 어림없으니까 더 모아와.”

“제발, 몸이 너무 떨린다고···. 딱 한 번만. 이번만 넘어가 주면 안 될까? 다음에는 몇 배로 낼게.”

바닥을 기어온 드워프가 다리에 매달릴 기색을 보이니, 대머리 덩치가 허리춤에서 묵직한 권총을 꺼내 들었다.

“끝까지 해보자고?”

“미, 미안.”

“그동안의 정이 있어서 봐준 줄 알아!”

헐레벌떡 도망가는 드워프의 뒤통수에 소리친 덩치는 총을 집어넣으려다가 접근하는 무리를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또 뭐야?”

“노박 클리닉에서 왔습니다.”

“좀 많이 어려 보이는데. 수염도 제대로 안 난 놈은 처음이고.”

그와 동시에 덩치의 안구가 파란빛을 내뿜었다. 통신으로 앨런의 말이 맞는지 확인하는 행위였다. 뇌 확장과 인공 안구 시술을 동시에 받은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대화를 주고받거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도 있었다.

“웬 꼬마가 왔는데 맞아? 아니, 사진을 보내줬으면 나한테도 알려줘야 내가 전화를 안 하지. 알았으니까 그만 끊어.”

덩치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고 초점이 앨런과 총으로 무장한 일꾼들에게 모였다. 그들은 흠칫 놀라며 손잡이를 강하게 쥐었지만, 오히려 덩치는 코웃음을 쳤다.

“니들 방아쇠는 당길 줄 아냐? 어차피 우리 구역인데 뭐하러 무겁게 들고 다니는지···.”

“얼마 전에 습격이 있었잖아요.”

“······습격?”

“네. 저희 쪽 조수들과 일꾼들이 외부에서 들어온 강도에게 당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아. 이제야 기억나네. 일단 따라와.”

덩치는 휙 몸을 돌리더니 따라오라고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앨런은 뒷모습을 잠깐 쳐다보다가 천천히 따라갔다.

골목 내부는 생각보다 깨끗했다. 물이 고인 흔적이 없고, 그 흔한 담배꽁초도 보이질 않았다.

‘자기들 소굴이라고 애지중지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앨런은 덩치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덩치가 두꺼운 철문 앞에서 아까처럼 눈빛을 뿜어내니 드르륵거리며 통로가 개방되었다.

클럽 영업시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내부는 생각보다 고요했다. 가끔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니는 카르텔 조직원들의 발소리만이 통로에서 울렸다.

덩치는 입구 근처에 있는 방으로 앨런을 안내했다. 내부에는 사각 탁자 하나만 있어서 매우 단출했다.

“여기에서 기다리면 필요한 애들은 알아서 올 테니 적당히 시간 보내다가 돌아가.”

“점검 안 받으시나요?”

“너희 같은 꼬마들의 방문은 수리가 아니라 검진 목적이 클 텐데. 어차피 제대로 된 수리는 클리닉 가서 사장에게 받으면 돼.”

“여기에서도 수리할 수 있으면 귀찮게 클리닉까지 갈 필요는 없잖아요. 왼쪽 팔꿈치 부위가 거슬리실 것 같은데···.”

“오, 어떻게 알았지?”

“소리가 이상해서요.”

“거참. 그것만 듣고도 알면 실력에는 자신이 있단 얘기겠지.”

헛웃음을 터트린 덩치는 거의 나갔던 몸을 돌려서 탁자 앞에 앉았다. 그리고 왼쪽 팔을 위에 올려놨다.

“신기한 놈이네. 그럼 어디 해봐.”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것들은 꼭 여기에 있어야 하냐?”

덩치는 일꾼들을 노려봤다. 그들은 앨런의 수리를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서 눈동자를 빛냈지만, 그 행위가 덩치에게는 거슬렸던 모양이다.

“아니면 내보내지? 밥 기다리는 우리 집 개새끼 같구만. 그런 부담스러운 시선은 하나면 족해.”

권유 같지만 명령에 가까웠다. 일꾼들은 아쉬운 얼굴을 숨기며 밖으로 나갔다.

앨런에게는 지금 상황이 좋았다. 안 그래도 일꾼들을 어떻게 내보내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덩치가 사유를 만들어준 것이다. 그 이유는 자유를 위한 준비 때문이었다.

앨런은 가지고 온 수리 도구로 덩치의 인조피부를 벗기고, 의수를 순식간에 해체했다.

“워. 빠른데.”

사람을 해체하는데 이골이 난 덩치가 그 속도를 보고 감탄할 정도였다.

앨런은 송곳으로 마력회로를 살살 긁어냈다. 회로는 보통 구리에 마석가루를 섞어 만들며, 기본이 금속이기에 마도구에 새겨진 룬문자의 수명이 늘어나고, 마석은 효과를 증폭했다.

은이나 진은(眞銀)을 사용하면 마력전도율이 훨씬 좋겠지만, 그런 비싼 재료를 사용한 마도구를 두목도 아닌 카르텔 조직원이 사용할 리가 없었다.

“송곳으로 뭐 하는 거야? 그거 괜찮아?”

“사용하다 보면 먼지 같은 오물이 끼기 마련이죠. 이렇게 세심하게 정비를 해줘야 수명이 늘어나고, 급박한 상황에서도 제대로 작동합니다.”

앨런은 태연하게 진실 섞인 거짓말을 하며 붓으로 의수 내부를 쓸어냈다. 먼지와 회로 가루가 탁자에 조금씩 쌓였다.

무표정한 얼굴과 차분한 태도는 묘하게도 덩치에게 믿음을 줬다.

“어릴 때 동네 약국 운영하는 노인네가 꼭 너 같았지. 대충 보고 처방한다고 욕했는데 알고 보면 꼭 들어맞더라.”

“감사한 말씀입니다.”

앨런은 관절 부위의 나사를 조이며 대답했다. 마력회로를 긁어냈으니 의수의 수명은 극히 짧아졌겠지만, 어차피 그때면 여길 떠났을 테니 아무 문제 없었다.

덩치는 다시 말끔해진 팔을 굽혔다 폈다 하며 수리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했다.

“팔꿈치 굽힐 때마다 이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젠 괜찮아졌네. 덕분에 시간 아꼈네. 고맙다.”

“천만에요.”

오히려 고마운 쪽은 앨런이었다. 덩치가 소문을 퍼트렸는지 예상보다 많은 조직원이 방을 찾아왔고, 그럴수록 앨런이 챙기는 가루는 많아졌다.

클리닉으로 돌아온 앨런은 휴지통이라 불리는 창고로 향했다. 챙겨온 가루를 카트리지에 담아서 만년필처럼 생긴 도구 뒤에 꽂았다.

‘룬펜’이라 불리는 도구였다. 손에 쥐고 마력을 불어넣거나 버튼을 누르면 카트리지에 담긴 물질이 녹아서 펜촉을 따라 흘러내렸다.

앨런은 얇은 철판에 [화염]의 룬문자를 새기고, 정찰 골렘을 이용해서 환풍구 곳곳에 뿌려놨다.

동력실의 마력발전기나 마나배터리에도 룬문자를 새기고 싶지만 그러려면 한 사람을 설득해야 했다.

바로 비토. 앨런이 마나배터리를 충전할 때, 몸속에서 변화하는 마력의 흐름을 측정하는 일은 여전히 그의 담당이었다.

“뭐 하는 거야?”

마침 비토는 창고로 가는 앨런을 따라왔다.

“요즘 휴지통에 자꾸 가네.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만들어? 시도하는 애들이 예전에는 몇 있었는데 요즘은 전부 사라졌지. 버려진 마도구는 이유가 있으니까.”

“장난감이라···. 좋은 표현이네요.”

“날 속일 생각은 하지 마.”

비토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며 속삭였다.

“다른 애들이라면 그렇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너는 아니야. 분명 무언가를 꾸미고 있겠지.”

“···.”

“내가 예전에 한 말 잊었어?”

“목걸이를 자력으로 풀려던 병신은 전부 죽었다고요.”

“그래. 그렇게 잘 기억하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비토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앨런을 바라봤다. 여전히 어두운 낯빛과 초점 흐린 눈동자 때문에 그 무엇도 알아낼 수 없었다.

“빌어먹을 포커페이스. 웃는 게 뭔지는 알아?”

“예전에는 알고 있었죠. 요즘은 그럴 일이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안타까워하는 사람의 표정이 전혀 아니었다. 비토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의 가슴을 퍽퍽 때렸다.

“원하는 게 뭐야? 일부러 티를 내서 나를 부른 이유가 있겠지?”

“이걸 봐주세요.”

앨런은 [화염]이 새겨진 철판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비토는 그걸 보더니 어깨를 움찔거렸다.

“화염? 불나면 어떻게 하려고?”

“일정 이상의 충격이 가해져야 불이 붙으니 괜찮아요.”

“아니, 잠깐. 언제부터 룬문자를 다룰 수 있게 된 거야? 내가 예전에 물어봤을 때는 모른다고 했잖아. 하, 그래. 네가 순순히 말할 리가 없지.”

“이제 알게 됐네요. 회로나 도구에 하나는 새길 수 있습니다.”

“하나면 졸업할 수 있잖아. 아니, 졸업생들도 너만큼 완벽하게는 못 새겼을 텐데···. 사장님에게 잘 말하면 목걸이를 풀어주지 않을까?”

앨런은 비토의 질문에 질문으로 응답했다. 그러면서 품 안에 있는 단말기의 전원을 켰다.

“룬문자 하나가 졸업의 기준인 이유를 아십니까?”

“···?”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나 같은 표정을 짓는 비토의 앞에 단말기 하나가 불쑥 내밀어졌다. 단말기는 한 영상을 재생했고, 흥미롭게 지켜보던 비토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화면에서는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고 알려진 조수가 마력의 출력을 이기지 못하고 가루가 되는 장면이 그려졌다.

비토의 눈이 똥그랗게 커졌다. 단말기의 전원을 끄더니 말을 더듬으며 앨런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괴물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주변을 휙휙 살피기도 했다.

“이, 이건···. 진짜야? 조작 아니지?”

“···.”

앨런은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비토는 머리를 쥐어뜯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이건? 내가 착용한 목걸이에는 폭발기능이 없잖아. 어차피 잡아 죽일 거면 기능을 유지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너무 궁지에 몰아넣으면 쥐도 고양이를 물죠. 우리는 쥐보다 훨씬 위협적인 사람이고요.”

“···.”

사실 비토도 내심 이해하고 있었다. 단지 여태 부정했던 의심이 형체를 갖춰서 수면 밖으로 펄떡 뛰쳐나온 것이다.

“시발······.”

만감이 교차하는 단어와 표정이었다. 비토는 왜 졸업의 기준이 룬문자 하나인지 이해했다.

신분 상승을 꿈꾸는 노예들에게 룬문자는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였지만, 노박에게는 열매가 무르익었다는 의미였다.

비토는 머리를 짚으며 벽에 기댔다. 다리와 팔이 마구 후들거렸다.

“안력과 뇌를 강화하는 마력수련법을 가르쳐줘서 좋아했더니, 자비가 아니라 비료를 주는 거였네.”

“저번에 습격당했다던 조수와 일꾼들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뭔가 들은 이야기라도 없나요?”

앨런의 말에 비토가 고개를 홱 들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도주를 논의했다. 자신의 귀에도 들려올 정도였으니 노박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의심이 전부 맞아떨어졌다. 클리닉은 노박의 양식장이었고, 주인은 물고기들을 자유롭게 풀어둘 생각이 없었다.

“그러면 이럴 게 아니라 다른 놈들에게도 알려야···. 소용없겠네. 죽은 애들도 누군가가 일러바쳐서 그렇게 됐겠지.”

비밀은 여럿이 알게 되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언제나 배신자는 내부에서 나오는 법이기도 했고.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앨런은 혼란스러운 비토의 귓가에 질문을 던졌고, 그의 결정은 빨랐다.

“좋아. 나는 뭘 하면 되지?”

“운전할 줄 아시죠?”

“당연하지. 그 밖에는?”

“동력실에도 철판들을 숨겨둘 겁니다. 마력발전기에 직접 새기기도 할 거고요.”

“그래서 일부러 나를 불러낸 거구나.”

앨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비토는 쉽게 설득되었다.

“가능하면 지하 2층의 장비를 조금씩 빼돌려주세요. 회로 조각, 부품 파편 등 무엇이든 좋아요. 그리고 이 주 동안 준비할 겁니다.”

“그때까지 기다린다고? 아, 그때 지역 유지들과 파티가 있다고 했지. 잠깐, 폭탄목걸이는 어떻게 하게?”

“노박에게 열쇠를 받아야죠.”

“무슨 방법으로?”

비토는 눈썹과 입가가 크게 일그러졌다.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앨런은 차분히 대답했다.

“노박이 내 목숨을 인질로 잡았으니, 나도 그의 인생을 담보로 잡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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