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3)
액셀을 한껏 밟으며 왕복 8차선 구간에 접어든 비토는 그제야 여유가 생겼는지 참았던 숨을 한 번에 몰아쉬었다. 그러면서도 불안한지 백미러를 자꾸 힐끔거렸다.
다행히 일반 차량만 돌아다닐 뿐, 아직 노박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동시에 적재함에 탑승한 채 여전히 뒤를 응시하는 앨런이 보였다.
비토는 거세 바람 때문에 혹시라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걱정하며 고함을 질렀다.
“왜 60초야? 그냥 바로 터트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너무 길면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실수가 없을 테고, 그렇다고 짧으면 포기하고 바로 쫓아올 테니까요. 그래서 1분이 적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금방이라도 가슴이 뻥 터져버릴 것 같은 비토와 달리 앨런의 음성은 차분함 그 자체였다.
“슬슬 시간이 됐군요.”
퍼엉!
마침 저 뒤에서 솟아오르는 화염이 어두운 도시의 일부를 밝게 비췄다. 옆에서 달리는 운전자들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코자 고개를 내밀어 살폈다.
앨런은 자신이 만든 작품을 감상했다. 생전 처음 보는 화려하고 웅장한 불꽃놀이였다.
‘룬문자를 새기느라 이 주 동안 제대로 잠을 못 잤지.’
실력이 모자라면 양으로 밀어붙이면 된다. 앨런은 저 폭발에 사용한 [화염] 철판의 수를 세려다가 포기했다. 게다가 화약이 되어줄 마석과 마나배터리는 얼마나 많았던가.
앨런은 덜컥거리는 차를 붙잡으며 잠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오르막길 꼭대기까지 오른 픽업트럭은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항구도시 아로마아는 산 위에 지어진 도시고, 바다가 보이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부유함 차이는 극명했다.
반대편과 달리 내리막길을 따라 지어진 건물들은 상대적으로 낡고 층수도 낮았다. 지나다니는 차들도 연식이 오래되거나, 찌그러진 차체를 수리 없이 그대로 끌고 다니기도 했다.
물론 앨런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지나온 길에서 계속 눈을 떼지 않았다. 특히 꼭대기를 통해 넘어오는 차들을 유심히 살폈다.
노박이나 그와 손잡은 카르텔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불안감을 쉬이 떨쳐내기 힘들었다.
앨런은 적재함에 실어둔 총기나 마도구를 사용하기 좋은 위치로 옮기며, 리어윈도우를 열고 비토를 재촉했다.
“더 빨리는 안 됩니까?”
“여기서 더 빨리? 내리막길에서 그러면 죽으니까 평지까지만 참자. 시외로 빠지면 차도 없고 도로도 일직선이라 괜찮을 거야.”
픽업트럭이 내리막길을 완전히 내려간 순간, 비토는 보란 듯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말했잖아. 그 늙은이는 사태를 수습하느라 엉덩이에 불이 붙었을걸. 파티에 빠진 이유도 설명해야 할 텐데, 클리닉에 폭발까지 발생했잖아. 어쩌면 약해졌다고 여기고 경쟁자가 목을 쳐줄지도 몰라.”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냥 가속페달이나 쭉 밟으세요. 신호 단속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걱정도 과하면 독이야. 내가 너보다 사회생활을 오래 한 선배로서 충고···.”
비토의 시답잖은 말은 앨런의 귀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모든 신경이 산비탈의 정상을 감시하는 눈에 집중되었다.
원근감의 적용을 받아 작아진 차들이 갑자기 옆으로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크고 붉은 바이크 한 대가 날아올랐다.
튀어 오른 바이크는 스키점프를 하듯이 다시 낙하했다. 내리막길이라 그 낙하 거리는 급격히 늘어났고, 앨런은 그대로 바이크가 박살 나길 기도했지만.
콰드득!
바이크는 불쌍한 승용차 한 대를 쿠션 삼아 짓밟으며 착지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멀리 떨어진 앨런의 귀에도 들렸다.
태연한 척하면서도 백미러를 계속 힐끔거리던 비토도 당연히 그 장면을 목격했다.
“미친···. 수습을 포기하고 우리부터 쫓아오잖아!”
“예상범위긴 했습니다. 일단 까발려진 무언가는 그게 진실이든 거짓이든 해명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립니다. 하물며 조수들도 조금은 의심하고 있었을 테니, 노박은 그쪽보다는 우리를 우선시한 겁니다.”
앨런은 망원경을 꺼내서 노박의 상태를 살폈다. 바람 때문에 뒤로 넘어간 머리카락에는 그을음이 가득했다. 양복도 군데군데에 시커먼 구멍이 뚫렸으나 그 내부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그래도 혼자 쫓아온 건 다행입니다.”
“그게 어떻게 다행이야?!!”
“노박이 조금만 이성적이었다면 카르텔에 연락해서 사람들을 끌고 왔을 겁니다. 게다가 급히 오느라 무장도 빈약하겠죠.”
차분한 설명에도 공포심을 숨기지 못한 비토는 가속페달을 미친 듯이 밟았고, 앨런의 몸은 크게 기울어졌다.
시외에 접어들어서 다행이었다. 차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서 앞길이 뻥뻥 뚫렸다.
그렇다고 노박의 바이크가 차들에게 가로막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레이싱 선수라도 되는지 차들 사이를 날래게 움직이며 거리를 좁혀왔다.
그럴수록 비토의 눈동자는 크게 진동했다.
“어떻게 하지···. 이대로면 곧 따라잡히겠어.”
막 시외 도로로 접어든 비토는 가속페달을 훨씬 강하게 밟았다. 밤공기가 날카로운 바람이 되어 앨런의 몸을 할퀴었다.
북쪽으로 향하는 길은 일직선이고 신호가 없어서 차가 달리기 좋지만, 그 이점은 당연하게도 누구에게나 적용되었다.
도시를 빠져나온 바이크는 장애물들이 없어지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빠른지 백미러에 맺히는 상의 모습이 점점 커졌다.
“준비한 물건들 있잖아. 전부 쏟아부어!”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운전에 집중해주세요!”
속도계가 가리키는 숫자는 150. 바람이 워낙 시끄럽기에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고함을 꽥꽥 질러야 했다.
앨런은 무언가가 덮여있는 천을 걷어서 도로 위에 흩뿌렸다. 조금이라도 방해물이 되어주길 원했지만, 천은 야속하게도 도로 옆의 초원에 떨어졌다.
아쉬움은 조금도 없었다. 언제는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갔던가. 내전, 해적, 폭탄목걸이···.
하지만 앨런은 그 연쇄의 고리를 끊어내고자 했다. 그래야만 진정 원하는 삶을 살고, 바라는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앨런은 묵직한 쇳덩어리를 적재함의 문인 테일게이트에 걸쳤다. 저격총의 양각대를 펼치고, 다리를 펴고 앉은 자세로 개머리판을 어깨에 단단히 받쳤다.
조준경 너머로 아직 풀리지 않은 사슬이 있었다. 저걸 끊어내야만 자신을 빨아들이는 지독한 늪에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
앨런의 집중력은 귀를 때리는 바람 소리를 잊게 해줬다. 일직선의 도로 위에서 조준하는 자신과 달려오는 목표만이 세계의 전부였다.
타아앙!
“맞췄어?!”
앨런은 비토의 물음도, 반동으로 인한 어깨의 통증도 무시하며 다음 탄환을 장전했다. 클리닉 공터에서 연습 삼아 돌격소총의 방아쇠를 몇 번 당긴 경험으로는 저격총을 온전히 다루기 힘들었다.
그래도 바이크 앞바퀴 부근의 도로를 맞췄으니 대충 영점은 잡은 셈이었다.
타앙!
이번에는 바이크를 맞췄지만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았다. 방어막이 탄환을 옆으로 빗겨내고, 미끄러지는 탄환은 마찰력 때문에 작은 불꽃 길을 만들어냈다.
앨런은 실망하지 않았다. 노박에게 저 정도의 대비가 없었다면 오히려 가짜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무심한 표정으로 방아쇠를 계속 당겼다.
탕!
불꽃이 크게 튀었다.
탕!
이번에는 노박의 머리 높이에서 불이 반짝였다.
탕!
바이크의 모습이 잠시 일그러졌다. 방어막이 출렁이며 형상이 왜곡된 것이다.
탕!
드디어 지긋지긋한 방어막이 사라졌다.
이제 맞추기만 하면 되나, 노박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바이크 앞바퀴 휠 양옆에 달린 총구가 어두운 도로에 수많은 섬광을 흩뿌렸다.
앨런은 적재함 바닥에 최대한 몸을 붙이고, 비토는 깨져버린 사이드미러를 보며 기겁을 했다.
첫 사격으로 영점을 잡은 노박은 더 정교하게 픽업트럭을 노렸다. 불행하게도 삐죽 튀어나온 저격총 총구가 박살 났고, 트럭이 크게 출렁이자 앨런의 몸도 흔들렸다.
“으아! 바퀴에 구멍 났나 봐! 뒤집힌다!”
비토는 꽥꽥거리면서도 용케 차를 몰았다. 좌우로 휘청거리면서도 속도를 조절하며 균형을 잡았다. 당연히 속도는 크게 줄어들었고, 바이크와의 거리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엎드려 있던 앨런은 머리를 빼꼼 내밀어서 거리를 가늠했다.
‘타이어만 노리나.’
어떻게든 사로잡아서 고통을 주려는 악의가 느껴졌다.
앨런은 그게 오만이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고물이 된 저격총은 아예 도로에 던져버리고 뭉툭한 녀석을 꺼내 들었다.
6연발 탄창을 지닌 유탄발사기였다. 카르텔에서 수리해달라고 맡긴 녀석을 슬쩍한 것이다. 앨런은 평범한 유탄 대신 [화염]을 새긴 유탄을 장전했다.
적군의 섬멸 혹은 괴수 사냥을 위해 만들어진 무기가 접근하는 바이크를 겨눴다.
‘통!’하는 가벼운 소리가 들렸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살상반경인 5m를 완전히 불바다로 만들었다.
부아앙!
그리고 노박의 바이크는 화염의 벽을 뚫고 내달렸다. 바이크의 도색이 벗겨져 나가고, 노박의 머리카락은 아까보다 훨씬 짧아졌다.
앨런은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그럴수록 바이크는 너덜거리고, 노박의 인조 피부도 떨어져나와 금속 골격이 언뜻언뜻 보였다.
끼기기긱!
바퀴가 있는 부근에서 들려오는 심상치 않은 소리와 사납게 튀는 불똥이 앨런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딱히 묻지 않았는데도 비토가 상태를 설명했다.
“바퀴가 완전히 주저앉았어! 운전대도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서 더 이상 달리기 힘들어!”
“아예 초원 쪽으로 빠지죠. 방어막 생성기도 준비하세요.”
픽업트럭의 머리가 도로를 이탈하며 홱 돌아가니 앨런의 몸도 거칠게 흔들렸다.
지금까지는 흥분과 호르몬 덕분에 버티고 있지만 긴장이 풀리면 어마어마한 고통이 다가오리라. 물론 그것도 살아남은 후에나 겪을 달콤함이었다.
앨런은 비포장 흙길의 울퉁불퉁함을 느끼며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몬스터의 껍데기를 불사르기 위한 화염이 초원에 옮겨붙었다.
불길을 피하고자 빙 돌아오는 바이크에서 다시금 총탄이 뿜어졌다. 이번에는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적재함과 운전석 쪽을 주로 노렸다.
차체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도중, 탄환의 송곳니가 앨런의 팔뚝에 상처를 남겼다. 운 좋게 살이 패인 정도지만, 그것만으로도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마침 언덕을 내려가며 조준에서 빠져나갔으나 그건 말 그대로 잠시일 뿐이었다.
게다가 트럭의 속도가 확 줄었다. 동력의 힘이 아니라 중력으로 인해 경사를 내려가고 있었다.
마침내 차가 멈추고, 비토가 뒤를 돌아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울기 직전인 아기와도 같았다.
“이제 저 위에서 총 갈기면 둘이서 사, 사이좋게 뒤지겠네. 그래도······, 덕분에 마, 마지막 운전은 짜릿했다.”
벌벌 떨면서도 원망은 접어둔 비토.
“실험체로 죽는 것보단 낫지. 운전석에 소총을 세워뒀는데. 저 밑에 박혀있네.”
“아직 안 끝났습니다.”
“그냥 편하게 가자. 아니, 이런 상황에서도 무표정이네. 너도 참 징그럽다.”
앨런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쿠르르릉!
마나엔진은 워낙 소리가 작기에 가상의 엔진음을 입힌다. 그리고 사용자의 취향이 듬뿍 담긴 픽업트럭의 엔진음은 우렁찼고, 여전히 초원의 밤하늘을 가득 메웠다.
그 소리는 언덕을 오르고 있을 노박에게도 들릴 터. 트럭이 달리고 있는 줄 알 테니, 아까 도시의 오르막길에서 그랬던 것처럼 속도를 줄이지 않고 높이 뛰어오를 가능성이 컸다.
앨런은 색다른 유탄을 장전하며 말했다.
“방어막 준비하세요.”
부아앙!
앨런의 예상대로 노박의 바이크가 높이 떠올랐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 유탄에 담긴 룬문자는 [비행]. 능력이 부족해서 방향을 정해줄 수는 없지만 높이 띄울 정도는 되었다.
공중에서 터진 유탄이 바이크를 위로 밀어냈다.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자 폭발력을 담은 유탄이 바이크의 밑 부분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콰아앙!
성대한 폭발이 머리 위에서 터졌다.
“와 너도 참 대단···. 살아 있잖아!”
시커먼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저대로 착지하게 놔뒀다가는 노박의 골렘 의수에 갈기갈기 찢기리라.
앨런은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 아니 가장했다. 왼쪽 손에 쥔 방어막 생성기를 가슴팍에 붙이고, 오른손으로는 방아쇠를 당겼다.
앨런과 노박. 둘 사이의 거리는 10m 이하.
그 안에서 불꽃이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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