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14화 (14/193)

메이즈시티(1)

아침에 일어난 앨런은 모텔 창문을 열었다. 메마르고 따뜻한 바람이 햇살과 함께 내부로 몸을 들이밀었다.

현재 앨런이 있는 장소는 ‘베가’라는 국가의 사막 근처에 있는 도시였다.

1년 내내 서늘한 편인 랑카에서 자랐기에 무더위에 정신을 못 차릴 만하지만, 더위에 대한 적응은 아로마아에서 끝냈기에 괜찮았다.

아로마아는 적도 부근에 위치해서 이곳과 온도만큼은 비슷했다. 오히려 그쪽의 습도가 높아서 더 무덥게 느껴지기도 했다.

적도를 기준으로 굳이 따지자면 남반구에 가까운 아로마아와 달리 베가는 명백히 북반구에 있었다.

솔도스 연방 역시 북반구에 있으며, 남쪽 국경을 베가와 맞대고 있었다.

앨런의 시선이 북쪽으로 향했다. 국경선은 지형에 막혀 보이지 않지만, 가고자 하는 장소로 자연스럽게 머리가 돌아가는 법이었다.

다시 가까운 곳으로 시선을 돌려서 도시의 사람들과 소리들을 관찰하고 있는 도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비토가 들어왔다.

“역시 일어나 있었네.”

“그냥 들어올 거면 노크는 왜 합니까?”

“아직 자고 있으면 깨우려고 했지. 오늘 아침에 병원 가기로 했잖아.”

핑계는 좋았다. 앨런이 속으로 웃으며 짐을 챙기고 있으니 비토가 왼쪽에서 기웃거렸다.

“뼈는 예전에 회복했고, 왼팔 근육도 원래대로 돌아왔네.”

“다행히 잘 회복했습니다.”

“깁스를 2달이나 할 줄은 몰랐어.”

“뼈가 잘게 부서져 있었으니까요. 의사는 분쇄골절이라고 했었죠.”

의료마법이 발달하고, 앨런도 마력수련법을 배워서 자연치유력이 향상된 상태였기에 2달밖에 안 걸린 것이다.

물론 더 빨리 치료하는 방법도 있었으나, 빈털터리였던 앨런에게는 의사가 요구하는 금액을 지급할 여력이 없었다.

그 후 근육 회복까지 1달, 총 3달이 지나자 앨런의 나이도 어느덧 성인인 18세가 되었다.

앨런은 랑카와 바다뱀 군도가 있을 방향에 한 번씩 눈길을 주고 모텔을 빠져나갔다.

발걸음이 닿은 장소는 병원이 아니라 깨끗하게 청소된 어떤 뒷골목이었다. 병원은 이곳에도 있었다. 면허증 없는 의사가 주인이긴 했지만.

지하로 내려간 앨런은 철문을 두드렸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백발이 성성한 갈색 피부의 오크가 문을 열었다.

“꼬마들 왔구나. 어서 와라.”

의사이자 불법 클리닉의 주인인 오크는 요즘은 보기 드문 순수주의자였다. 매직웨어를 거부하고 날 때 그대로의 육체를 지녔다는 의미였다.

진료실에 들어간 오크는 안경을 끼며 의자에 앉았다. 앨런은 서서 그의 설명을 기다렸다.

오크는 모니터를 켜서 뇌가 찍힌 사진을 가리켰다. 마나공명영상 스캐너, 일반적으로 MRI라고 부르는 검사의 산물이었다.

“저번의 검사 결과네. 어때 보이나?”

“촉수 같은 것들이 뇌를 휘감고 있습니다. 인공 안구의 시신경이 굉장히 길군요.”

“그래. 내가 이래서 매직웨어를 멀리하는 걸세. 내 몸 하나 통제하기도 어려운데, 멀쩡한 몸을 버리고 외부 물질을 끼워 넣어?”

평소의 지론을 설파하던 오크는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 헛기침을 했다. 의사인 자신이 환자 앞에서 중심을 잃으면 안 됐다.

“험. 계속 보자고. 왼쪽의 인공 안구에서 뻗어 나간 신경이 보이는 대로 뇌 구석구석에 손을 뻗었지. 제거하고 싶으면 두개골을 열고 조심스럽게 수술해야 할 텐데, 나는 못 해.”

의사는 그렇게 말하며 플라스틱 물병을 쭉 들이켰다. 알코올 냄새가 희미하게 나는 걸 보니 내용물은 술이었다.

앨런의 시선을 눈치챈 의사가 씩 웃었다. 너무 당당해서 할 말도 없었다.

“내 삶의 활력소지. 술 좀 먹고 수술했다고 면허를 박탈하다니. 내가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말이야.”

“그럼 어디에서 할 수 있습니까?”

“뭘? 아, 수술 말이지? 수도에 있는 병원이나 솔도스 연방의 큰 병원을 찾아야지. 그런데 뇌 쪽은 민감한 부분이라···.”

확신은 없다는 뜻이었다. 사실상 제거하기 힘들다는 말이었지만 앨런은 침착했다. 노박이 제 몸 상하게 할 물건을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고, 무엇보다 지금은 폭탄목걸이에 시달리던 시절과 달리 자율성이 보장되었다.

앨런이 뇌 사진을 뚫어지게 보고 있으니 의사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알려 줄 수 있나? 하얀 가운을 입고 30년을 생활했지만 좀처럼 보기 힘든 사례라서.”

“눈을 잃고 오파츠를 사용했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오파츠. 미궁에서 얻을 수 있는 ‘시대를 뛰어넘은 유물’을 일컫는 단어.

마법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해할 수 없는 능력으로 무장한 오파츠에 대한 연구는 자연스럽게 현대문명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오파츠는 미궁을 탐험하는 사람들의 목적 그 자체였다. 마정석도 있긴 하나, 오파츠와 비교하면 중요도가 낮았다.

물론 오파츠라고 무조건 사람에게 유익한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앨런과 비토가 사전의 논의한 가짜 설명을 들은 의사는 쉽게 수긍했다. 실제로 노박이 오파츠를 기반으로 손본 물건이라 완전 거짓은 아니었다.

“저주받은 물건인 줄 몰랐구만. 젊은 사람들이 그리 조심성이 없어서야. 혹시 변화를 알고 싶으면 다음 달에도 오게. 나도 궁금하니 가격을 좀 깎아주겠네.”

“괜찮습니다.”

“그럴 줄 알았지. 내 연장자로서 충고 하나 보태면, 젊을 때 몸을 최대한 아껴야 나중에 고생하지 않는 법이야.”

“요즘은 매직웨어로 갈아 끼우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문제야. 여분이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몸을 함부로 다루게 되고, 궁극적으로 인체나 목숨의 존엄성에 대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요즘 뉴스나 사회 통계를 보면 사망자와 자살자가 많이 늘어났는데, 그게 전부 매직웨어 때문에 자기애를 잃고···.”

앨런은 비토와 눈빛을 교환하고 얼른 클리닉을 빠져나갔다. 진단은 끝났고, 다시 올 일도 없기에 굳이 연설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이 다니는 대로로 빠져나오자 비토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저 의사. 함부로 떠벌리고 다니진 않겠지?”

“주정뱅이긴 한데 실력과 신뢰는 확실하잖아요. 그러니 지금까지 뒷골목에서 버텼겠죠. 전부 알아보고 골랐잖아요. 어차피 노박은 죽었고, 카르텔이 의리를 지킬 리도 없죠.”

“맞아. 그런데 눈은 진짜 괜찮겠어?”

“네, 문제없습니다.”

노박을 처치하고 잠시 폭주했던 때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작은 마정석을 구하기도 했고.

앨런이 괜찮다고 했는데도 비토는 계속 옆에서 고민했다.

“함부로 제거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모든 지식이 모이는 메이즈시티에서는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예 안정화를 끝마쳐서 제가 그냥 사용하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죠.”

“그리고 넌 마력과다증도 있으니···. 음···.”

“남들보다 기대수명이 짧죠. 잘 알고 있습니다.”

“치료를 잘 받으면 남들처럼 살 수 있잖아. 아니면 좋은 마력수련법을 찾든지. 솔도스는 베가와 비교할 수 없는 강대국이고, 메이즈시티는 큰 도시···.”

‘큰 도시’라는 단어가 잠시 앨런의 옛 기억을 불러왔다. 판잣집 안에서 자신은 따뜻한 품에 안겨있었다.

‘사람은 일단 큰 나라, 큰 도시에 가서 배워야 한다. 힘이 있으면 남이 함부로 못 해. 우리 랑카를 봐라. 작고 힘도 없으니 시시때때로 나쁜 새ㄲ···사람들이 쳐들어오잖니.’

‘당신, 앨런은 이제 5살이에요. 어려운 말은 그만하고 모처럼 고기를 샀으니 식기 전에 먹어요’

따뜻했던 추억처럼 사람은 능력이 있어야 했다. 그건 무력일 수도 혹은 권력이나 금력일 수도 있었다.

어떤 길을 걷든지 지금보다는 선택지가 훨씬 많아질 것이다. 그러면 몸을 치료하고, 눈을 자세히 살필 기회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리라.

공용주차장에 도착한 앨런은 SUV 조수석에 올라탔다.

마법공학자는 어디에서든지 환영받는 직업이어서 신분증이 없어도 먹고살기 어렵지 않았다. 치료비나 차도 그렇게 구했다.

비토는 차를 도시 밖으로 몰았다. 그가 향하는 방향은 북쪽, 정확히는 솔도스-베가 국경이 있는 곳이었다.

앨런은 조수석 창문을 열고 팔을 걸쳤다. 신기한 풍경이나 생물을 발견하면 왼쪽 눈은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시야를 확대했다.

노박을 처치할 때 보였던 형형색색의 점, 선, 면은 보이지 않았다.

‘완성되지 않은 눈을 억지로 착용했기에 발생한 폭주 현상이겠지. 그런 일이 또 발생하면 마정석으로 안정화하면 되고. 아니면 마정석 자체가 완성으로 가는 열쇠일 수도···.’

눈은 시야 확대 말고 다른 기능도 있었다.

조수 시절에 사용했던 계측 기기처럼 마력의 흐름이나 회로의 이상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력을 소모하지만, 추가적인 장비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마법공학자용 인공 안구 중에는 최상급 라인에만 이런 기능이 있다고 했으니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평소와 달리 조용한 비토는 국경검문소가 보이자 다른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여권이나 신분증이 없는 앨런은 당연하게도 저길 통과할 수 없었다. 가능하다 해도 온갖 검사를 받아야 할 테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소모해야 할지 몰랐다.

이럴 때를 위해 밀입국이라는 행위가 존재했다. 한참을 달린 SUV는 날이 어두워질 무렵, 산악지대에 도착했다.

앨런과 비토는 오른손을 맞잡았다. 온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내가 더 고맙지.”

“함께 탈출했으니 비겼다고 합시다.”

“그래. 너답다. 메이즈시티에 가면 조심해. 도시가 크고 사나워서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하니까. 농담 아니야. 줏대 없이 흔들리지 말고 중심을 지키란 말이야. 물론 네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조언 감사합니다.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난 원래 베가 사람인데 어릴 때 납치당했거든. 도시 이름은 기억나니 가서 가족들을 찾아봐야지.”

“그럼 빨리 가시지 그랬습니까.”

“너 가는 건 봐야지. 들었던 대로 저기에 모이네. 빨리 가봐.”

밀입국 브로커의 설명처럼 사람들이 우글댔다. 약한 물고기가 포식자에게서 살아남는 방법은 뭉치는 것이고 이들의 전략 역시 똑같았다.

일명 ‘나만 아니면 돼.’ 작전.

비토와 작별한 앨런은 그들의 외곽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무기를 들고 등장한 브로커들이 국경 장벽에 큼지막한 구멍을 뚫었다.

앨런은 국경을 넘기 전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에서 비토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앨런 역시 화답하며 발을 내디뎠다.

어둑한 산길을 걷던 앨런은 왜 뭉쳐야만 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다그닥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심지어 점점 가까워졌다.

휘잉! 펑!

하늘에 조명탄이 터지며 일대가 순식간에 대낮처럼 변했다. 조명탄 역시 마법공학의 산물인지 광원은 태양처럼 주변을 비췄다.

동시에 한 무리의 기병이 밀입국자들을 덮쳤다. 솔도스 연방의 국경순찰대였다.

그들이 탑승한 말은 유니콘이나 바이콘의 유전자를 일반 말과 섞어서 태어난 교잡종이었다. 성격은 드세지만 원본이 되는 두 환수보다는 까다롭지 않았다.

다양한 지형을 오가야 하기에 그들은 차보다는 말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밀입국자의 이동 경로는 지금처럼 험지이기 때문이었다.

순찰대원들은 카우보이처럼 올가미를 빙빙 돌리며 밀입국자들을 몰아쳤다.

“사, 살려!”

올가미가 고블린을 낚아챘다. 붙잡힌 고블린의 몸이 위로 솟구치더니 하늘을 나는 커다란 가오리의 입으로 쏙 들어갔다.

진짜 잡아먹은 건 아니고 저런 식으로 밀입국자를 수납해서 베가에 그대로 넘겼다.

말발굽에 짓밟히거나 산비탈에 굴러서 죽는 사람도 있었지만, 순찰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랴! 이랴! 달려라!”

“제발 통과시켜주세요!”

“닥쳐! 너희들은 전부 추방이다!”

“일자리를 얻고 싶어요! 돌아가면 굶어 죽을 거예요!”

“우리가 자원봉사자인 줄 알아? 그건 그쪽 나라에 요구해!”

뒤에서 걷던 앨런은 [동화]가 적힌 천을 뒤집어썼다. 동화는 여러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지금 같은 경우에는 주변의 풍경에 녹아드는 능력이 필요했다.

룬문자는 같은 단어라도 누가 새기느냐, 어떤 의지를 지니고 그렸냐에 따라서 효과가 달라지는 신비한 문자였다.

순찰대와 밀입국자들이 어지럽게 섞이는 진흙탕 속에서 앨런은 유령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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