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시티(2)
하얀 SUV의 조수석에 앉은 앨런은 창문을 들어오는 메마른 바람을 느끼며 외부로 시선을 돌렸다. 초록색이 드문드문 보이는 황무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굴곡진 지형이 많던 랑카와 달리 솔도스에서는 지평선 보기가 정말 쉬웠다.
그렇기에 일자로 쭉쭉 뻗은 도로가 많았고, 차들의 계기판 숫자는 100을 넘기기 일쑤였다.
“메이즈시티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땅이 워낙 넓어서 놀라더라고. 자네도 똑같구만.”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가 운전하며 말을 걸었다.
휴게소이자 숙소인 모텔에서 고장 난 마도구를 수리하고 삯을 받는데, 그 장면을 목격한 손님의 부탁으로 차의 내부를 살폈다.
다행히 앨런이 수리할 수 있는 고장이었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목적지가 같아서 아저씨의 차에 함께 탄 것이다.
아저씨는 굉장히 흡족해했다.
“수리받기 전에는 엔진이 늙은 말처럼 헉헉거리더니, 지금은 처음 탑승했을 때처럼 생생해졌네. 실력이 좋아.”
“감사합니다.”
앨런의 화답에 아저씨가 눈을 살짝 돌려서 무심한 얼굴을 한 번 살폈다.
“표정이 계속 똑같아서 나는 처음에 안드로이드나 인조 피부를 덮은 골렘인 줄 알았다니까.”
“종종 그런 오해를 받곤 합니다.”
“좀 웃고 그래야지.”
“그럴 일이 오면요.”
대화가 잠시 끊어졌다. 직감적으로 개인의 어두운 사정이 있음을 알아차렸지만, 이 아저씨도 보통이 아니라 끈질기게 말을 걸었다.
“그럼 그런 일을 만들어야지. 나이도 젊고, 실력도 있으니 금방 자리 잡을 거야. 그렇게 여유가 생기면 주위부터 차근차근 둘러보면서 소소한 기쁨을 찾아봐. 아니면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도 좋고.”
“조언 감사합니다.”
대화 중, 차의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꼭 군부대 입구처럼 생긴 검문소가 도로 한가운데를 떡하니 막고 있었다.
특수부대처럼 차려입은 직원이 아저씨의 신분을 확인하더니 앨런이 앉아있는 조수석으로 슬그머니 다가왔다.
“운전자는 신분 확인이 되는데 동승자는···. 여권이나 임시체류증 같은 증명서 없습니까?”
“아, 이걸 잊을 뻔했군요.”
앨런은 조수석 안으로 들어온 직원의 손에 돌돌 말린 지폐뭉치를 슬그머니 쥐여줬다.
“메이즈시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사람의 온정이 담긴 설득이 직원의 심금을 울렸고, 바로 통과 사인이 떨어졌다. 메이즈시티가 자치시여서 그런지 국경처럼 빡빡하지 않았다.
바리케이드가 다시 도로의 형태로 돌아오자 SUV가 그 위를 부드럽게 넘어갔다.
조금 달리니 태양광 마력발전단지가 주변에 모여있었다.
다른 곳은 구름이 껴서 햇빛이 적은데, 이곳만은 기후조종 마법으로 해를 가리는 구름을 모조리 몰아냈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한 광경이었다.
발전소는 이렇게 태양 빛을 모아서 전기속성의 마력으로 변환, 전선을 따라 도시로 옮겼다.
앨런이 시야를 확대하며 발전단지를 구경하고 있으니, 아저씨가 슬쩍 말을 붙였다.
“마법공학자면 헥스테크(Hextech)나 칠성(七星)에 입사하려는 건가?”
“아뇨. 미궁에 들어가려 합니다.”
“오···. 미궁탐험가 같은 험난한 직업을 골랐구만. 우리 집 아들놈도 한창 사춘기여서 틈만 나면 최강의 탐험가가 되겠다고 얼마나 설쳐대던지.”
“꿈은 클수록 좋죠.”
“에비로 사용하는 마법이 자신의 능력인 줄 안다니까. 외부의 물건 말고 본인의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어려서 그걸 몰라.”
아저씨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미궁탐험가는 현대문명을 견인하는 중요한 역할이나 당연히 위험했다. 사람들은 생명 수당을 간과하고, 그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사실에만 집중했다.
그러니 자식을 가진 아버지로서는 아들을 말릴 수밖에 없었고, 앨런에게는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어, 자네? 방금 웃은 것 같은데.”
“아닐 겁니다.”
“아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니까.”
마침 앨런의 시선에 원통을 세운듯한 건물들이 보였다. 외벽은 전부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어서 햇빛을 받기 좋은 구조였다.
앨런은 화제를 돌리고자 질문을 던졌다.
“저긴 수직농장 단지야. 굉장하지?”
수직농장은 사람을 아파트에 집어넣는 것처럼 농작물을 층층이 쌓아서 키웠다. 통제된 환경이기에 인공광원, 습도, 영양 등 생육조건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빌딩인 줄 알았습니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군요.”
“저것도 도시의 일부에 불과해. 메이즈시티가 얼마나 큰지 알겠지?”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직접 보니 확실히 다릅니다.”
세계에 여러 미궁도시가 있지만 메이즈시티의 미궁이 가장 거대했다. 그래서 이름도 대미궁이고, 도시의 크기 역시 비례했다.
유동인구가 너무 많고 불법체류자도 계속 몰려들기에 제대로 된 인구 집계도 힘들었다.
“그래서 치안이 좀 불안해. 장벽을 넘어서 몰래 들어오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물론 자네처럼 번듯한 직업이 있는 사람은 제외야. 꿈과 능력이 있어서 들어온 사람과 돈만 좇는 것들은 다르지.”
그렇게 말한 아저씨는 도시 초입에서 앨런을 내려줬다.
“목적지까지 태워다주고 싶지만,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힘들겠어.”
“괜찮습니다. 여기까지 태워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그건 정당한 거래였지. 어쨌든 바라는 일 제대로 성취하길 바랄게. 혹시 나중에 내 아들 녀석이 미궁 근처에서 기웃거리면 제발 두들겨 패서 설득 좀 해주게.”
아저씨의 인공 안구가 푸르게 물들었다. 통신하거나 정보를 전송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그것도 잠시, 곧 빛이 꺼지며 아저씨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어라? 자네 혹시 뇌 확장 시술 안 받았나?”
매직웨어를 머리에 직접 때려 박는 뇌 확장 시술은 눈과 귀를 거칠 필요 없이 정보를 뇌에 직접 전달할 수 있었다.
사람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시술을 받기에 순수주의자인 오크 의사나 앨런이 오히려 드문 경우였다.
아저씨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운전석 위의 선바이저에서 사진을 꺼냈다.
“마법공학자인데 신기하구만. 어쨌든 내 아들은 이렇게 생겼네. 어때?”
“유전자의 위대함을 느꼈습니다.”
“뭐? 아, 똑같다는 말이지? 하하하!”
아저씨는 그렇게 웃으며 떠나갔다.
그도 진짜 아들을 설득하길 원해서 한 요구는 아니고, 워낙 수다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리라.
덕분에 앨런은 메이즈시티에 오는 동안 심심할 틈이 없었다.
이제는 진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딜 시간이었다. 앨런은 도시 구경 따위에 시간 낭비하기 싫었다. 미궁에만 있는 신기한 지식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리를 걷던 도중, 앨런에게만 보이는 네모난 창 하나가 왼쪽 눈앞에 생겼다.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대규모 통신망의 이름은 ‘삼라만상’. 노박이 연구한 눈에는 접속 기능도 있었다.
앨런은 미궁에 관련된 공개정보를 훑으며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미궁의 입구는 도시 정부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탐험하기 위해서는 단체에 가입해야 했다.
기반과 인적자원이 탄탄한 기업이 신분증 없는 앨런을 받아줄 리가 없고, 앨런도 입사하기 싫기에 다음 대안을 찾았다.
‘탐험가조합도 꽤 많네.’
일단 메이즈시티에 들어왔으면 탐험가가 되기는 굉장히 쉬웠다. 도시를 경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미궁에 사람을 최대한 많이 밀어 넣어야 이득이었으니까.
앨런의 시선이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탐험가조합 중 가장 실력 있고 강대한 단체의 이름 위에 머물렀다.
‘브레이커’
무능력자도 쉬이 등록할 수 있는 다른 조합과 달리, 브레이커는 실력테스트가 있기에 어중이떠중이는 저절로 걸러졌다.
브레이커에 가장 가까운 역에서 내린 앨런은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지상에 올라가니 어느새 하늘은 깜깜해졌고, 그에 대비되는 번쩍이는 빌딩의 숲이 눈앞에 있었다.
탐험가로 보이는 사람들이 무거운 가방이나 보따리를 짊어지고 돌아다녔고, 앨런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1층은 굉장히 넓은 홀이었다. 양옆에는 업무별로 자동문을 만들어서 처음 오는 이들도 헷갈리지 않게 해놨다.
미궁탐험가로 보이는 사람들은 ‘정산실’이라고 적힌 문으로 들어갔고, 앨런은 ‘신규등록’이라는 화살표를 따라 움직였다.
저녁 9시라 당직을 제외하면 사람은 모두 퇴근했기에, 인간의 상반신을 본뜬 골렘 접수원이 앨런을 반겼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탐험가 등록을 하려고 합니다.”
[뇌 확장 시술을 받지 않으셨군요.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밑으로 손을 내린 골렘은 한동안 뒤적이더니 동그랗고 투명한 수정을 앨런의 앞에 내려놨다.
[수정구에 손을 올려 주십시오. 최근 범죄 이력이 있는지 파악함과 동시에 예비탐험가님의 인적사항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앨런이 수정구에 손을 얹은 부위가 푸른색으로 변했다. 지문과 마나패턴을 기록하는 단계였다.
[신분 조회 불가. 특기가 있다면 새로운 신분을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추가금액을 지급하시면 업무처리 속도가 굉장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라집니다.]
“하···.”
앨런은 이마를 짚으며 얼마 안 남은 지폐를 꺼냈다. 다행히 요구조건에 부합하는지 골렘은 별말 없이 돈뭉치를 챙겼다.
[귀하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
[특기가 있으십니까? 전투가 적성에 맞다면 지하로 가서 등급 측정 골렘과 실력을 겨루시고, 다른 특기가 있다면 지금 알려주십시오.]
“마법공학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앨런의 말이 끝나자 골렘이 책상 아래에서 뱀 형태의 기계 인형을 꺼내 들었다. 미궁에서 적으로 등장하는 오토마톤이었다.
[마찬가지로 지하에 수리 도구가 있습니다. 최대한 수리해보시고 저에게 가져오시면 됩니다.]
골렘이 설명하는 도중, 앨런은 눈으로 뱀을 살폈다. 투시하듯이 내부의 구조를 보며 끊어진 회로 3개를 찾아냈다.
굳이 귀찮게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룬펜을 꺼내 들고 뱀의 비늘을 살짝 연 뒤, 고장 난 회로를 다시 연결했다.
차르륵!
공격성이 거세된 뱀이 얌전히 똬리를 틀자, 비늘 스치는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골렘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기만 했다.
“끝났습니다.”
[그럼 다음 절차는···.]
여러 질문이 오가고, 골렘은 ‘ㅡ’자 입에서 앨런의 이름과 얼굴 사진이 있는 간단한 신분증을 뱉어냈다.
[미궁탐험가 신분증]
-이 름 : 앨런
-계 층 : 0층
-주특기 : 마법공학
-부특기 : 없음
앨런이 너무 간결한 신분증을 보고 있으니 골렘이 계속 말을 이었다.
[파티원 구인에 신상을 등록하시겠습니까? 초보 탐험가라면 파티를 추천해 드립니다. 아니면 브레이커 직속 탐험가의 실전 강의가 지금이라면 단돈 오백만···.]
“아뇨, 괜찮습니다.”
앨런은 갑자기 쇼호스트처럼 목소리를 내는 골렘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생각보다 시스템이 잘 짜여 있었다. 다른 단체였으면 앨런 같은 밀입국자는 소비재로 갈아 넣겠지만, 브레이커는 어떻게든 미궁탐험가를 키워내려는 노력이 보였다.
대신에 정산 수수료가 좀 세고, 다른 이유로 귀찮게 하기도 하지만.
미궁 초입은 혼자 다녀도 될 만큼 안전하기에 앨런은 내일 홀로 미궁으로 가서 직접 분위기를 살필 예정이었다.
“근처에 괜찮은 숙소가 있습니까?”
[브레이커와 제휴를 맺은 업체의 목록입니다.]
이번에도 골렘은 입에서 약도를 뱉어냈다. 고가, 중가, 저가로 분류된 숙소의 위치가 그려져 있었다.
앨런은 검문소 직원을 설득하고, 골렘에게도 기름칠하느라 지갑이 홀쭉해졌기에 저가형 숙소를 선택, 약도에 그려진 대로 도로를 건넜다.
무인 호텔 내부에는 허름한 복장의 탐험가들이 가득했다. 누군가는 희망 가득한 눈빛으로, 누군가는 우울함이 섞인 얼굴로 돌아다녔다.
1층부터 벌집을 연상시키는 캡슐형 잠자리가 빽빽했다. 수면이 필요한 사람들은 애벌레처럼 하나둘 안으로 들어갔다.
앨런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봤다. 저렇게 벌집에 들어가는 부류는 딱 두 가지였다. 애벌레의 먹이거나, 아니면 말벌로 우화 할 애벌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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