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16화 (16/193)

미궁(1)

[이번 역은 미궁, 미궁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안내방송이 들려오자, 모든 사람이 몸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수다를 떨던 인간도, 졸던 오크도, 장비를 손질하던 드워프도, 단검을 혀로 핥다가 피가 나는 고블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는 광경은 신기하면서도 소름 돋는 광경이었다. 지하철에 탑승한 사람 모두가 미궁탐험가라는 의미였으니까.

앨런은 어마어마한 인구의 흐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사람이 이렇게 많으면 입장에만 한세월 걸리려나?’

위기의식을 느낀 앨런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열린 문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야말로 인파였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사람의 파도가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여서 혼란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냥 앞에 가는 사람을 따라가다 보니 ‘미궁↗’이라고 적힌 계단까지 도착, 위를 향해 빠르게 올라갔다.

지상으로 올라서니 퀴퀴하고 삶에 찌든 냄새에 마비되었던 코가 뻥 뚫렸다. 도시의 공기가 폐에 좋진 않겠지만, 향취만큼은 지하보다 훨씬 좋았다.

미궁 주위의 지하는 개발이 금지되어있기에 내린 역의 이름이 미궁임에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그래도 각양각색의 화기나 날붙이를 볼 수 있고, 액세서리나 갑옷 등 다양한 형태의 에비를 관찰할 수 있어서 심심하진 않았다.

언제나 꿈에 그리던 일을 직접 경험하는 행위는 사람을 두근거리게 했다. 며칠 지나면 앨런도 익숙해져서 지루함에 몸서리칠 테지만.

[천천히 질서를 유지하며 입장하십시오!]

확성기를 든 도시방위군이 미궁탐험가들에게 차례를 지키라고 권고했다.

[거기 노란 머리 엘프! 두리번거리는 아가씨, 당신 말이야! 은근슬쩍 밀고 나오지 말고 지시에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모일까 봐 고개를 푹 숙이는 엘프 너머, 미궁의 입구를 둘러싼 요새가 보였다.

도시 한복판에 웬 요새냐고 할 법하나, 그것 말고는 딱히 어울리는 단어가 없었다.

높은 성벽 위에는 적의 급소만 노리는 공간 마법이 적용된 개틀링 기관포가 줄줄이 늘어섰고, 화약 대신 마석을 집어넣어서 마법을 펼치는 미사일도 보였다.

심지어 성벽 밑에는 대기 중인 타이탄 부대가 보였다. 조종사들은 열린 가슴 부위에 걸터앉아서 탐험가들을 내려다봤다.

일단 앨런의 눈에 보이는 것만 이 정도였다. 삼라만상에서 검색할 수 없는 비밀무기도 여럿 있음이 분명하리라.

‘미궁이 발견된 이래로 몬스터가 빠져나온 적은 없다고 했지.’

그래도 방비는 철저하고, 도시방위군의 군기도 사납기 짝이 없었다. 그들이 진심이니, 자연스럽게 탐험가들도 질서를 지켰고.

신분증을 보여주고 요새 내부로 들어온 앨런은 시선을 빼앗아간 미궁의 문을 보며 저도 모르게 작은 감탄을 내뱉었다.

“오···.”

높이 50m, 너비 100m의 검은색 문이 눈앞에 있었다. 지금까지 봤던 어떤 검은색보다 어두웠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정신이 빨려 들어가는 착각이 들었다.

원래 산이 있었는데 동굴 안에 있던 문을 발견한 후, 전부 깎아내고 평지로 만들었다. 사람의 위대함과 집요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산물이었다.

“하···. 우리는 언제쯤 편하게 입장할까?”

“그러려면 아래로 내려가야지. 오늘이라도 내려갈까?”

“아니, 됐어. 조금 있으면 애가 대학 들어가는데 그런 모험을 할 순 없지.”

앨런은 얼굴에 잔주름이 많은 오크의 대화를 들으며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줄은 네 개로 나뉘었다. 도달계층 1~20층, 21~40층, 41~60층 그리고 61층 이상.

당연히 앨런은 첫 번째 줄에 섰고,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두 번째 줄부터는 사람이 확 줄더니, 세 번째 줄부터는 사람이 아예 없었다.

이렇게 남쪽에서 입장하고, 나올 때는 북쪽으로 나갔다. 24시 그리고 365일, 언제나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문이 워낙 넓어서 줄이 차근차근 줄어드는 도중, 저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이 원정 날인가 본데?”

“운이 좋네. 저런 사람들은 한 번 들어가면 몇 달씩 안에 있어서 좀처럼 보기 힘든데.”

저 뒤에서 나타난 일단의 무리는 세 번째 줄로 향했다. 장비나 깃발에 그려진 육망성은 헥스테크의 원정대라는 의미였다.

어제 차를 타고 오면서 이야기를 나눴던 기업의 이름이지만, 원래도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덜그럭!

묵직한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앨런의 시선을 빼앗았다.

여물 대신 단백질 보충제를 먹었나 의심될 정도로 근육이 빵빵한 소가 얼핏 보기에도 묵직한 수레를 끌고 움직였다.

‘미노타우로스나 식인 소 궁기의 유전자를 섞었나? 털이 금속처럼 빛나는 걸 보면 불가사리도 넣은 것 같고.’

비슷한 시술을 받은 듯한 말도 수레를 끌며 소의 뒤를 따라서 움직였다.

공간 마법이 있는데도 저러는 이유가 있었다.

공간주머니, 정확히 말해서 공간 확장 주머니는 미궁 안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 주머니를 지니고 미궁 입구로 들어가면 뻥 하고 터져버리니까.

마법사들은 여러 가설을 세웠다.

공간의 형태가 비슷하지만 다르다.

미궁의 설계자가 세운 법칙이다.

차원이 달라서 그런다.

물론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미궁 안에서 공간주머니와 비슷한 오파츠를 찾으면 그런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그게 흔했으면 세계적인 대기업인 헥스테크가 수레를 끌고 다닐 일도 없었다.

앨런은 원정대와 거의 동시에 입장했다. 순간, 어둠이 눈앞을 덮쳤다.

미궁의 저층인 미로에서는 무조건 광원이 필요했다. 마력으로 안구를 강화해도 소용없는 미궁의 신비였다.

헤드램프를 켠 앨런은 미로의 여러 출입구 중 하나로 향하는 원정대를 바라봤다.

“···.”

“히익! 먼저 가시죠.”

감히 앞길을 막을 배짱 없는 탐험가들은 원정대원이 지긋이 바라보기만 해도 길을 비켜줬다.

물론 앨런도 길을 양보해줄 자신이 있었다. 아직은 말이다.

앨런은 풍경을 구경하며 다른 입구로 향했다. 1층의 미로는 바닥과 천장 역시 전부 돌로 막혀있었다.

가끔 맨홀과 비슷한 구멍이 발견되곤 하는데, 그곳에서 탐험가들을 적대하는 오토마톤이 튀어나왔다.

한참을 걷던 앨런이 천장의 맨홀을 발견하고 다가가는데,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누군가가 몸을 일으켰다.

“자리요.”

“···알겠습니다.”

자리를 선점한 엘프 근처에 앉아있는 동료들이 보였다. 1층은 사람이 워낙 많아서 이런 양상을 띤다고 삼라만상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긴 무섭지만, 돈은 벌고 싶어서 온종일 맨홀 앞에 죽치고 있었다. 심지어 새로운 인원과 교대하거나, 대가를 받고 자리를 팔 때도 있었다.

향상심 없이 매일 고철만 캔다고 이들을 탐험가가 아닌 고철수집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죽으면 아무 소용 없지.’

앨런도 이해했다. 죽음은 가장 커다란 공포이며, 근원적인 두려움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좋았다.

처음에는 앨런도 수긍하며 자리를 피했다.

그런데.

“자리요.”

“자리 있습니다.”

“우리 자리니까, 꺼져!”

“아이고, 내가 먼저 도착해버렸네.”

마음은 평온한 것 같은데 주인의 무의식을 반영한 미간이 저절로 좁아졌다. 미궁이라더니 오토마톤은 보이지 않고 탐험가들만 가득했다.

“후우······.”

앨런은 한숨을 쉬며 지나왔던 길을 되새겼다. 광원을 강제하는 미궁은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앨런이 램프를 꺼도 괜찮을 정도였다.

저 앞, 모서리를 보니 저곳에서도 빛이 흘러나왔다. 앨런은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고, 혀를 차며 빠르게 지나가려 했으나.

푸슉!

그때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요란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나왔다! 전투태세!”

“드디어 밥값은 벌겠구만!”

발걸음을 재촉하려던 앨런은 모서리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전투의 혼란을 틈타 몰래 구경했다.

전갈을 닮고 크기는 스쿠터만 한 오토마톤이 인간 셋과 대치하고 있었다.

전투는 생각보다 일방적이었다. 탐험가들은 1층에 오랫동안 죽치고 있었는지 전갈을 능숙하게 상대했다.

방패병이 전갈의 꼬리를 막고, 창수가 철판의 빈틈을 찔러서 이동을 저지하고, 마무리는 팔찌 형태의 에비를 착용한 사람이 했다.

거인이 망치로 때린 것처럼 전갈의 몸통이 움푹 들어가더니 가동을 멈췄다. 예상보다 싱거운 전투였다.

전투를 마친 이들은 전갈 주위에 섰다.

“마정석 떴냐?”

“마석이네······. 내가 설레발 치지 말라고 했잖아!”

소리를 지르긴 했어도 수확의 기쁨에 미소를 머금으며 전갈을 해체하는 도중.

푸슉!

이번에는 두 마리가 벽에 달린 맨홀에서 튀어나왔다.

“뭐야? 한 마리만 나온다며? 그리고 너무 빨리 등장했잖아!”

“에비 쿨타임 아직 안 지났어! 시간 좀 벌어봐!”

친구가 팔찌 형태의 에비를 두드리고 있으니, 창수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자식아! 그니까 마나하트 만들라고 했잖아!”

“그게 쉽냐!”

“맨날 놀고 마시지 말고 돈 모아서 인공 마나하트나 박아넣든가!”

서로를 비난하면서도 제법 잘 싸웠다. 그래도 에비에 내장된 마법을 사용할 수 없어서 장비에 흠집이 생기거나 상처를 입는 도중.

“억!”

방패를 사용하는 사람이 크게 넘어졌다.

다른 전갈을 상대하던 둘은 친구를 도울 수 없는 상황.

전갈의 뾰족한 꼬리가 방패병의 목을 노렸다. 독은 없지만, 낚싯바늘처럼 구부러진 침은 끔찍한 미래를 상상케 하는 위력이 있었다.

방패병이 넘어지기 직전, 위기를 감지한 앨런은 마력으로 눈을 자극했다.

왼쪽 시야가 확확 뒤바뀌며 마도구를 투시할 때처럼 전갈을 응시했다. 마법저항력이 약하거나 아예 없는지 내부가 제대로 보였다.

앨런은 지팡이 대용으로 사용하던, 속이 빈 금속 막대기를 앞으로 겨눴다. 마나리볼버의 마력탄환 생성기를 그대로 이식했기에 길쭉한 라이플이라고 해도 좋았다.

금속 표면을 따라 푸른 빛줄기가 내달리더니, 끝에 가서는 날카로운 탄환이 되어 비행을 시작했다.

퍽!

둔탁한 소리가 들리며 전갈이 방패병 위로 허물어졌다. 동력원을 제대로 타격당했으니 사람으로 치면 심장이 뻥 터진 것과 똑같았다.

“으아아!!! ······?”

끝을 직감하고 비명을 지르던 방패병은 그제야 이상함을 눈치채고 위에 쓰러진 전갈을 낑낑대며 옆으로 밀었다.

재충전이 완료된 에비로 전갈을 해치운 친구 둘이 가까이 다가가서 방패병의 상태를 살폈다.

“야, 괜찮아?”

“다친 데는?”

“난 괜찮은데. 갑자기 왜 쓰러졌을까? 아, 그러고 보니 갑자기 푸른빛이 저쪽에서···.”

방패병의 손가락을 따라 세 명의 시선이 돌아갔고, 거기에는 모서리에서 빠져나오는 앨런이 있었다.

앨런은 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정중하게 말했다.

“저 전갈은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혹시라도 오해할까 싶어서 막대기에 마력을 불어넣자 방패병이 목격한 푸른빛이 표면을 따라 작게 반짝였다.

“아···. 예. 그렇게 하세요.”

그들이 동의하자마자, 앨런은 전갈을 순식간에 분해해서 접이식 수레에 차곡차곡 쌓았다.

‘오늘의 수확은 이 정도로 충분해.’

앨런은 뒷걸음질 치며 탐험가들의 시선에서 천천히 벗어났다. 모서리를 돌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도중, 목소리가 소곤소곤 들려왔다.

“혼자인데 그냥 줘? 위험하긴 했어도 잡을 수 있었잖아.”

“무슨 소리야. 크게 다치거나 잘못하면 죽었어. 그리고 원래 혼자 다니는 놈들은 조심해야 해. 실력에 자신이 있거나 미친놈이거든. 그런데 존댓말까지 하잖아.”

“오,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아. 아예 동요도 없던데, 어디 집안의 도련님인가?”

졸지에 이상한 사람과 귀한 집의 자제가 된 앨런은 저들의 말은 금방 잊고 다른 생각에 몰두했다.

1층은 생각보다 쉬웠다.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했으니 준비를 철저히 하고 내일부터는 더 아래로 내려가도 될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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