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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17화 (17/193)

미궁(2)

일찍 탐험을 마친 앨런은 수확물이 담긴 수레를 끌고 브레이커로 향했다.

지금 시간은 오후 3시. 중간중간 멈춰서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면 훨씬 일찍 도착했겠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수레를 사용했는데도 뻐근한 팔을 주무르며 자신의 몸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통감했다.

‘해결할 방법이 필요해. 체질 개선은 당장 해결할 수 없으니 짐꾼을 고용하거나 외골격 슈트를 착용해서 몸의 부담을 덜어내야겠지.’

물론 앨런이 원한다고 쉽게 마련되는 게 아니라 전부 대가를 지급해야 했다. 그게 미궁에 들어가는 이유 중 하나였다.

앨런은 브레이커의 건물 중 어제 신규등록을 했던 5층 빌딩의 내부로 들어갔다.

전체적으로 하얀색의 실내장식이 돋보이는 1층 로비는 화사한 모습으로 방문객에게 깔끔한 느낌을 선사했다.

앨런은 어제와 달리 왼편에 마련된 정산실로 들어갔다. 일용직처럼 미궁을 출퇴근하는 탐험가들이 올 시간이 아니라 한산했다.

내부는 둘로 나뉘어 있었는데, 직원들의 구역과 미궁탐험가가 있을 구역이 투명한 벽으로 막혀있었다.

앨런은 그중 사람이 없는 창구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정산을 원하시는 물건은 저에게 주세요. 투명한 벽을 향해 밀어주시면 됩니다.”

직원의 말대로 수레를 밀자, 전리품이 벽을 통과했다. 앨런은 직원의 업무가 끝나길 기다리며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굳이 힘들게 브레이커까지 온 이유는 여기에서 등록했으면 전리품 정산도 여기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탐험가조합은 수수료를 대가로 등록 인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금융업무도 그 일환이었다.

미궁탐험가 신분증을 얻었어도 임시 체류자 취급이라 정식 시민이 되려면 멀었기에, 원금만 보호해주지만 귀찮게 통장 개설할 필요 없는 이곳에 맡기는 것이다.

반사회적인 행위를 하거나 범죄조직에 몸담을 생각은 없으니, 정식 신분도 꾸준히 맡은 일을 하면 언젠가 지나갈 단계에 불과했다.

앨런의 가장 큰 목표는 두 가지.

첫 번째는 뒤통수에 구멍이 뚫린 노박이 남긴 눈을 제대로 통제하에 두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마력과다증으로 허약해진 몸과 수명을 개선하는 것이다.

걷기라는 간단한 행위만으로도 뻐근한 종아리를 주무르고 있으니, 정산을 마친 직원이 앨런에게 말을 걸었다.

“탐험가님과 제 사이에 있는 투명한 벽에 손을 올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대로 따르니 수정구에서 그랬던 것처럼 손바닥이 닿은 부위가 파랗게 물들고, 중지 손톱 위에 생긴 숫자 0이 ‘70,000’으로 바뀌었다.

앨런이 첫 수확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직원은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동력원에 구멍을 뚫어서 깔끔하게 잡으셨는데, 아시다시피 마석과 영혼석이 망가져서 평가액이 떨어졌습니다. 온전했다면 십오만 코인까지는 기대해볼 만했습니다.”

영혼석은 인공영혼이 담기는 그릇이며, 단어 그대로 영혼 혹은 뇌의 역할을 하기에 오토마톤은 복잡한 설계 없이도 움직일 수 있었다.

cpu, 인공지능, 딥러닝 등 관련 학문이나 기술은 전부 영혼석에서 유래했거나 그대로 사용했다.

가격 책정에 대한 설명을 마친 직원이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혹시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실까요?”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다음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뵙길 바랍니다.”

정산실을 나온 앨런은 ‘구인‧구직’이라고 적힌 문으로 들어갔다.

탐험가들은 투명한 수정 비석 앞에 서서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누르고 있었다.

앨런 역시 수정을 건들자 문자가 출력되었다.

[앨런, 도달계층 : 1층, 매칭 서비스를 이용하시면 계좌에서 요금이 빠져나갑니다.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농경시대에 강물이 있었다면, 현대에는 돈이 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사람을 여러모로 미치게 했다는 것이다.

앨런은 메이즈시티에 도착한 후로 자주 좁혀지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다음 단계로 진행했다.

혼자 다니면 범죄에 노출되기 쉽기에 더 내려가려면 일단 뒤를 받쳐줄 사람이 필요했다.

물론 처음 본 사람이라 서로에 대한 신뢰도는 낮더라도, 조합에서 맺어주는 시스템이기에 아무나 붙잡고 행동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

“안녕, 난 칼슨이야. 주무장은 역장 방패와 샷건이야.”

적당한 키의 금발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아웅. 바다 건너왔다. 일하러. 마법 가능.”

큰 덩치의 남자가 어눌한 발음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에비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있었다.

“앨런입니다. 무기는 마력 탄환을 발사하는 지팡이입니다.”

미궁 역에서 합류한 이들은 각자의 소개를 마치고 검은 문으로 향했다.

어제처럼 살벌한 요새로 진입하자, 아까부터 앨런을 살피던 칼슨이 질문을 던졌다.

“마법공학자라고? 음···. 내가 브레이커의 매칭 시스템을 의심하는 건 아닌데, 싸울 순 있지? 몸도 좀 허약해 보이는데···.”

칼슨의 걱정은 타당했다. 사실 마법공학자가 빛을 발하는 영역은 전투가 아니었으니까.

보통 마법공학자라고 하면 탐험대에 합류해서 미궁 공략의 핵심인 마도구를 수리하는 역할이었다.

“6층으로 내려갈 계획은 없으니 오히려 전투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건 안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주기에는 힘드니까요.”

앨런의 말대로 비상사태가 아니라면 검은 문 근처에서는 소요 사태 방지를 위해 마력사용이 원칙적으로 금지였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자신은 있나 보네. 뭐, 제 몫을 해야 분배가 제대로 된다는 점을 잊지 말자고.”

칼슨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웅을 보는 눈빛에는 신뢰가 묻어났다. 그 근원이 아웅의 덩치인지 아니면 에비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미로에 들어선 앨런은 칼슨이 꺼내는 방패와 샷건을 유심히 살펴봤다.

“궁금한 게 있는데 질문해도 될까요?”

“1층은 사람도 많고 지나가는 길이니 괜찮아.”

칼슨의 말대로 사람이 발에 챌 정도로 많았다. 오히려 침입자를 막으려는 오토마톤이 불쌍할 정도였다.

“그 방패와 샷건은 기성품이 아니군요.”

“눈썰미가 좋네. 난 사실 미궁탐험가가 아니라 시립대 학생인데 과제 중에 현장답사가 있어서 이렇게 내려왔지.”

훌륭한 장비를 소유하고, 학비가 비싼 대학을 다닌다는 사실만으로도 칼슨이 꽤 잘 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앨런의 질문이 칼슨의 수다 욕구에 불을 붙였는지 쉬질 않았다.

“11층부터 지하인이 나온다는 정보는 알지? 사실 정확한 명칭이 없어서 지하인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이 부리는 오토마톤과 미로에서 나오는 것들의 기술이 똑같거든. 그래서 그들이 미궁의 창조자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연구 중이야.”

“미궁은 훨씬 깊잖아요.”

“섣불리 판단하는 거 아니냐고? 심층의 정보는 이름난 탐험대들이 가져다주겠지. 중요도에 따라 비싼 정보이용료를 지급해야겠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앨런을 다그친 것도 조바심이 표출된 것이리라.

칼슨이 아웅의 호구조사, 탄생 그리고 이민까지의 이야기를 전부 들었을 무렵, 앨런은 4층에 발을 디뎠다.

고작 5시간 만에 이뤄낸 결과지만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밑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미궁의 특성상 당연한 결과였다. 1, 2, 3층은 다른 탐험가들이 오토마톤을 상대해서 전투할 필요가 없기도 했고.

4층부터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대낮 같던 미로는 사라지고, 앨런과 파티원들의 헤드램프만이 어둠을 몰아냈다.

거의 혼자서 3시간 동안 말을 쏟아내던 칼슨도 침을 꿀꺽 삼키며 무기를 앞으로 세웠다.

좁아진 시야 때문에 긴장감이 한껏 솟아올랐다. 제한된 시각만큼 다른 감각, 특히 청각이 증폭되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을 발소리, 호흡 소리가 굉장히 거슬렸다. 심지어 맥박음까지 들리는 듯했다.

위층보다 커다란 4층의 맨홀도 위기감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심지어 이것들은 벽 내부로 사라지거나 나타날 수도 있었다.

미로를 따라 한참을 움직이던 도중.

푸슈우우···.

제일 뒤에서 걷던 앨런의 귓가에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감각이 예민해지지 않았다면 훨씬 늦게 알아차렸을 크기였다.

앨런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위로 들었다. 무당거미를 닮은 오토마톤이 천장에 매달려서 칼날이 달린 날카로운 다리로 아웅의 정수리를 노리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소리를 지를 시간도 모자랐기에 앨런은 바로 지팡이를 위로 겨눴다.

“앨런. 왜 무기를? 아군이다. 우리는···.”

아웅의 말이 끝나기도 전, 푸른 탄환이 거미의 철판을 뚫고 동력원을 타격했다.

쏘고 나서 마석과 영혼에 생각이 닿았지만, 워낙 급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기도 했다.

앨런이 아까워하는 동안.

“으억!”

거미에게 깔린 아웅은 힘차게 바둥거렸다. 무게만 해도 수십 킬로그램은 될 텐데 벗어나는 모습을 보면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아웅의 몸을 살피던 칼슨이 앨런 앞에서 머리를 긁적였다.

“위에서는 내가 오해를 했어. 거미는 네가 잡았으니 해체는 우리가 할게.”

상식 있는 칼슨과 아웅이 거미에 달라붙어서 철판을 떼어내기 시작하는데.

“여기 접합부. 떼기 힘들다.”

“팔근육만 보면 쉬울 것 같은데···.”

마치 삶은 닭의 깃털을 어떻게 뽑아야 할지 고민하는 아이와 비슷했다.

마음속으로 시간을 재던 앨런이 접이식 수레에 넣어놨던 빠루를 꺼내며 다가갔다.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야. 괜찮다니까.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우리도 할 수 있어. 봐봐. 다리 하나 떼어냈잖아.”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나중에 쉽게 하겠죠.”

둘이 물러나자 앨런은 빠루를 철판 틈에 꽂았다. 오토마톤을 비롯한 기계를 분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능력은 힘이 아니라 요령이었다.

끼익하는 소리가 작게 울리더니, 둘이 다리를 떼어내는 속도보다 빠르게 거미가 조각났다.

“멋지다. 잘 모르겠다.”

“아웅 말이 맞아. 분명 삼라만상에서 분해 영상을 보고 왔는데 어렵네.”

도움을 받은 아웅이 수레를 끌며 일행은 계속 움직였다.

그 후로 이어진 탐험의 양상은 비슷했다. 훨씬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앨런이 먼저 오토마톤의 등장을 파악하고 위치를 알려주면.

칼슨은 방패를 바닥에 박아넣고 공격을 막은 후, 샷건으로 오토마톤의 관절 부위를 날렸다.

아웅은 기회를 노리다가 ‘바람의 칼날’을 사용해서 오토마톤에게 치명타를 선사했다.

그걸 지켜보는 앨런은 무언가가 마음에 걸렸다. 제대로 형체를 갖추지 못한 무언가를 생각하는 도중.

“어떻게 그리 빨리 알아채는 거야? 인공 안구에 탐지마법이라도 있어? 계속 사용하려면 마력이 모자랄 텐데.”

“그건 아닙니다.”

“그럼 혹시 마력사용자야? 그러면 감각이 예민한 이유도 설명이 되지.”

그제야 앨런은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것의 정체가 답답함임을 알았다.

칼슨과 아웅의 장비는 괜찮은 편이지만, 둘에게는 마나하트가 없었다.

마나하트는 여전히 재능의 영역이었지만, 마도구와 매직웨어가 보편화되며 일반인들도 미궁을 오갈 능력을 손에 넣었다.

게다가 앨런의 도달계층이 1층이었으니 실력자가 매칭될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둘의 능력이 모자라진 않았다. 미로를 주로 탐험하는 사람들의 평균인데 앨런의 눈이 너무 높아서 발생하는 문제였다.

‘차라리 오토마톤을 데리고 다니는 편이 훨씬 속 편하고 유용······.’

앨런의 시선이 수레에 차곡차곡 쌓인 전리품으로 향했다.

앨런과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은 당연히 있지만, 미로 같은 저층에서는 가성비의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앨런은 오토마톤을 수리할 수 있는 마법공학자이며, 동력으로 제공할 마력도 넘쳐났다.

물론 계획을 그대로 실행하려면 오토마톤을 재프로그래밍할 ‘영혼석 언어’를 배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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